년도 따윈 알 수 없는 어느 3월의 이야기.


 푸른 나무와 갖가지 꽃이 빛을 내야할 봄이었음에도, 세상은 재와 흙으로 물들어가있다. 하늘은 낮과 밤이 없었고, 시간이라는 개념은 점차 사라져만 갔다. 사람들은 그저 살아갈 의미조차 알 수 없는 채로 거리를 배회할 뿐이었다.


 한 명의 청년이 황폐한 도보 위를 걸어간다. 그는 다른 누구와 무엇 하나 다르지 않은, 흐리멍텅한 죽은눈의 사람이었다. 걸음걸이는 좀비같았고, 양팔은 헐렁했다. 그들에게 말하는 방법은 필요없었다.


 상점가에 총알을 흩뿌리고, 그 안의 물건을 가져간다. 주위의 사람들은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혹은 아예 이 광경을 놓치고 지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거워보이는 가방을 맨 사내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그는 총구로 사내의 머리를 두들겼다. 그 사내는 인형같이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섬광이 번쩍이고, 이내 물이 사방으로 튄다. 분명 피여야 할 터였지만, 그의 눈에 그것은 피로 보이지 않았다.


 대충 사내의 가방 속 물건을 둘러본 그는 그것을 제자리에 돌려놓고서 다시 길을 떠난다.


 어디를 향하는 걸까, 무엇을 바라는 걸까, 이러한 질문은 존재마저 희미해졌다.


 그 끝이 다가오고, 평범하지 그지 없는 종장이 드리운다.


 그 종장은 마치 천국처럼 밝게 느껴지는 듯했다.


 흩뿌려진 조각은 의미없이 굴러떨어졌다.


 그가 행한 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