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1

베일의 아버지는 베일이 어릴 때 죽었다. 그렇기에 베일은 그의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다. 문제는 베일이 그의 아버지와 보냈던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다는 것이다

베일의 유년기는 그의 부모와 함께 보냈던 행복한 기억들로 가득했다. 베일의 아버지는 키가 3미터가 넘었다. 뒤뜰에 있는 나무, 거목이라 불러도 무방할 그 나무에 베일이 올라가면 아버지는 바로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베일이 나무를 타면 항상 올라가는 가지는 딱 3미터 정도의 높이다. 그 가지에서 아버지의 볼에 뽀뽀를 하곤 했던 기억이 났다. 분명히, 아버지의 두 발은 땅에 붙어있었다

얼굴은 가물가물했지만 아직도 그 뿔은 또렷이 기억났다, 머리 양옆에 달린 뿔은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아버지의 고향에서 뿔은 힘의 상징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마을에 한 명밖에 없는 신관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신관은 아버지가 그 뿔을 자르길 원했지만 그 뿔은 해가 갈수록 커져만 갔던 것이다. 그 신관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5번째 기일에 그가 술에취해 혼자 울고 있던 것을 목격하고 나서야 베일은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아버지에겐 등? 꼬리뼈? 하여튼 뒤쪽 어딘가에 다용도 팔이 하나 달려있었다. 아버지는 평상시에 그 팔을 몸 속에 수납하고 다니셨다- 무언가를 고치거나 그림을 그릴 때, 여러 상황에서 아버지는 그 팔을 참 유용하게 사용했다. 어머니는 부드러운 털에 쌓여있었던 그 팔을 꼬리라고 불렀고 베일은 으레 그 팔을 목마마냥 타고는 했다

베일은... 철이 들면 들수록 그가 아버지라 불렀던 존재가 다른 사람들과는 퍽 다르게 생겼음을, 그리고 그의 몸속에 흐르는 피 중 절반은 그 존재의 것임을 깨달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2

사실 베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혼혈처럼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지는 않았다. 그의 세계에서는 인간들은 이종족들과의 교류가 꽤나 잦았으며 그들과의 혼혈도 꽤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일은 분명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 어릴 때부터 그의 덩치는 남달랐고 얼굴또한 이국적인, 어머니의 말마따나 아버지와 똑닮은, 그런 외모였다. 어릴 때는 따돌림도 당했었지만 조금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는 그 덩치와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또래들 사이에서 으레 대장역을 맡고는 했던 것이다. 그의 세계에서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말 그대로 '유치한 짓' 이었다.  베일은 자신 또한 그런 혼혈중 하나겠거니, 라고 생각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의 첫 번째 혼란은 스무살 생일에 찾아왔다.

베일은 생일 선물로 받은 종족도감을 - 정확히는 생일선물로 받은 돈으로 직접 산것이지만- 나흘 밤낮을 세워 5번 가량 완독했다.

그의 세계에서는 꽤 권위 있는 조직이 1년전에 출판한 따끈따끈한 도감이었다

오크, 엘프와 같은 정석적인 판타지 세계의 종족들과 오지와 해저에 사는 이종족, 외계와 다른 차원에서 찾아온 이형의 존재들, 그리고 그들의 세계에 있는 오지와 해저에 사는 이종족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아버지에 대한 묘사는 없었다. 

키가 3미터가 넘으며 뿔과 털북숭이 꼬리를 가지고 자상하게 웃음짓는, 그런 종족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는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마을 전체가 악마에게 홀리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일단 초반부만 써봤어요. 아빠 종족을 찾으러 여행가면서 자아 정체성같은걸 깨달는 판타지 성장소설쪽으로 가닥을 잡을것같은데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