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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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속이다


다음날, 아직 마누엘로부터 별 다른 소식이 없었기에 아인은 도서관의 위르겐을 만나러 갔다. 간 밤에 그에게서 편지가 온 것이다.


“위르겐 씨, 무슨 일인가요?”


“발터 씨, 오셨습니까? 간 밤에 나쁜 일은 없었나요?”


“지진 말고는 아무 일 없었습니다. 최근 들어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고 하던데 폭발의 전조 같은 건가요?”


“폭발이라니요. 산의 폭발은 저희가 항상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럼 최근의 지진은 무슨 의미인가요?”


“저희도 아직 조사 중입니다. 그보다 아인 씨,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방패를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제 방패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듣자 하니 그 방패로 용의 공격을 막아냈다고 하셨다던데 한번 그 방패를 연구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인은 3년 전 자신의 아버지가 이 칼과 방패를 절대로 몸에서 떨어뜨리지 말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위르겐의 눈빛에서 오는 신뢰감이 너무나 컸던 것일까, 아인은 별 의심 없이 그에게 방패를 넘겼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이틀이면 끝날 겁니다. 그 동안 쉬고 계세요.”


도서관을 나선 아인은 다시 마누엘의 집으로 돌아갔다. 밤새 도시를 돌아다닌 마누엘은 어느새 돌아와서 자고 있었고 아인은 아이들과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몇 시간 후, 아인은 자고 있는 아이들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도시는 산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마그마 때문에 매우 무더웠다. 아인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산 전체가 흔들렸다.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강력한 지진에 주변의 몇몇 집들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마누엘의 비명이 아인의 귀에 들어왔다.


“안돼! 우리 집이!”


아인은 무너진 마누엘의 집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집 안에는 마누엘의 가족들과 잔, 마리가 있었던 것이다. 마누엘은 정신이 반쯤 나간 체 무너진 집의 잔해로 허둥지둥 달려가고, 아인도 그 뒤를 따라 가던 중 잔해더미들이 공중에 둥실 떠오르더니 사방으로 흩어지며 그 안에서 잔과 마리, 마누엘의 가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누엘이 그의 가족들을 끌어안고 안도의 눈물을 흘리자 잔은 지친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슬아슬했어, 나나 마리나 주문도 못 외우고 그 자리에서 죽을 뻔했다고…” 


마누엘은 어제까지의 완고한 모습은 사라지고 잔과 마리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엄청난 지진은 도대체…”


아인은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은 주택뿐만이 아니었다. 천 년간 그 자리를 지켜온 역사의 보물창고가, 거대하고 아름답던 도서관이 처참히 무너진 채 불타고 있었다. 셋은 정신없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도서관 앞에 도착했을 때에는 드워프 군인들이 불을 막 진압하고 있었다. 셋은 연구소가 있었을 법한 자리를 향해 잔해를 해치며 나아갔다. 곳곳에서 잔해에 깔린 드워프들의 신음 소리가 들리고, 마리가 그들을 구하기 위해 사라졌지만 아인에게 지금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방패와 위르겐의 행방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잔해 밑에 깔린 위르겐을 발견했다. 잔이 마법으로 그를 짓누르던 돌을 치웠다. 그는 금방 정신을 차렸지만 안색이 좋지 못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드디어… 우리는 찾았습니다…”


잔이 물었다.


“뭘 말이죠?”


“불의 정령군주의 봉인과.… 해제 방법이죠…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컸습니다…”


위르겐은 피를 토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불의 정령군주의 화를 산 겁니다… 놈이 대지진을 일으켰어요… 다른… 이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위르겐은 계속해서 피를 토했다. 둘 모두 본능적으로 그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느꼈다.


“아인… 아인 발터 씨… 할 말이 있습니다… 다른 분은 잠시 자리를 비켜주세요…”


잔도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자리를 비켰다. 이인은 조용히 그의 손을 붙잡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는 조용히 죽어가고 있었다.


“당신은… 너무 잘 속는군요.”


“네?”


그 순간 비웃음이 섞인 미소가 그의 얼굴에 일더니 밝은 섬광과 함께 폭발이 일었다. 아인은 그 풍압에 5미터는 족히 날아가 잔해 위에 떨어졌다. 위르겐이 있던 쪽을 보는 순간, 아인은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믿었던 위르겐 마테우스는 애초부터 아인을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용이었다. 붉은 비늘의 용은 조용히 아인을 바라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고맙다, 아인. 덕분에 이 위험한 물건을 빼앗을 수 있었다. 모두 네놈 덕분이다.”


그가 보여준 것은 아인의 방패였다. 아인은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은 자신을 자책했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비록 방패는 없지만 아인에게는 칼이 있었다. 분노한 아인은 칼을 뽑아 들고 용에게 돌격했다. 그러나, 칼이 용의 비늘에 닿기도 전에 아인은 놈이 휘두른 앞발에 얻어맞고는 날아가 버렸다.


“지금 네놈을 상대할 시간은 없다.”


그는 곧바로 하늘로 날아 도시 중앙 마그마 호수를 향해 날아갔다. 뒤에서 잔과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잔이 물었다.


“아인! 저 용은 뭐야? 위르겐 씨는 어떻게 됐어?”


아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위르겐 씨가… 위르겐 그 놈이 용이었어… 우릴 속였던 거야.”


셋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마리와 잔도 충격에 빠진 얼굴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더니 곧바로 아인을 일으켜 용에게 달려갔다.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마그마 호수 상공에 떠 있는 그를 둘러싸고 드워프 병사들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아인은 그들을 비집고 나가 그에게 소리쳤다.


“이 배신자! 당장 내려와!”


그는 아인을 보더니 또다시 코웃음을 쳤다.


“배신자라는 말은 틀렸다. 애초에 나는 너희들 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 ‘이라’, 오늘 네놈들의 하찮은 도시를 무너뜨리겠다!”


놈의 입에서 만들어진 불덩이가 아인에게 날아들었다. 아인은 급하게 옆의 병사의 방패를 빼앗아 치켜들었으나 불덩이에 맞은 방패는 산산이 부서져 녹아버리고, 아인은 그 충격에 나가떨어졌다.


“하! 나약한 놈, 네놈에게 그 방패가 없으면 뭐지? 넌 아무것도 아니구나!”


“뭐하고 있나? 전군 발사!”


어디선가 마누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드워프 병사들이 일제히 활과 석궁을 치켜들고 ‘이라’에게 공격을 가했다.


“네놈들을 일일이 상대하기에는 시간이 아깝구나. 너희들의 도시는 놈이 살라버릴 테니 말이다.”


그 말과 함께 ‘이라’의 몸에서 묘한 빛이 나더니 또다시 강한 지진이 일어났다. 모든 병사들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마그마는 넘쳐흐를 듯이 출렁거렸다. 


“여기서 할 일은 끝났다! 잘 있어라!”


‘이라’는 그렇게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모두가 멍하니 ‘이라’가 날아간 곳을 쳐다볼 때 누군가 외쳤다.


“마그마에… 저게 뭐야!”


아인을 비롯한 모두가 마그마 호수를 바라보았다. 마그마에 거품이 평소보다 강하게 일더니 호수의 중심에서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세찬 소용돌이에 의해 호수의 밑바닥이 드러나고, 그 밑바닥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진 붉은 빛의 기둥이 떠있었다. 아인이 중얼거렸다.


“저게 뭐야?”


그런데, 잔의 얼굴이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거짓말… 저게 왜 여기에…”


“잔, 저게 뭐야?”


마리가 대신 답했다.


“불의 정령군주가 봉인된 봉인석이야. 위르겐 그 놈, 그 말만큼은 거짓말이 아니었군.”


그녀 역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소용돌이 치던 마그마가 기둥을 중심으로 멈추더니 기둥에 금이 가면서 마그마들이 마치 의지를 가진 듯 기둥으로 일제히 모여들었다. 마그마들이 모여들수록 기둥의 균열이 커지더니 끝내 기둥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 모여든 마그마들이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형체가 완성되어갈수록 호수를 둘러싼 드워프들의 표정에서 절망과 공포가 드러났다. 마침내 호수의 모든 마그마가 사라지고, 아인이 여태까지 보았던 그 어떠한 것들보다도 거대한 생명체가 그들의 눈 앞에 나타났다. 타오르는 듯한 머리, 마그마가 흘러내리는 육신, 눈빛 만으로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한 카리스마… 끝내 불의 정령군주가 재림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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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비중 있는 높으신 분은 모두 용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