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아~! 어디야아!"


찬란한 햇살과 따스한 바람이 밀려오는 그 날


오랜만에 나른하게 


창문 앞 햇살이 잘 비치는 의자에 앉아 딸아이와 놀아주는 날이었다.


"...어디게?"


"어! 아빠다! 이히히"


뭐가 그리 좋은지 발견하자마자 실실대며 웃어대는 리사.


마치 햇살의 따스함을 담은 듯한 미소였다.


바다를 담은 것 같은 눈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주고는 


반대편에 위치한 등받이 있는 의자에 가볍게


툭 툭


앉으라는 의미를 담아 2번 건드렸다.


그러자 곧장 도도도 달려와


의자가 아닌 나를 향해 달려왔고


이어지는 가벼운 포옹.


"히히.."


귓가로 들려오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소리


그렇게 나는 양 손으로 리사의 옆구리를 잡아 들어올려


그 가볍디 가볍운 몸이 어디 부러지지 않을까 조심 조심히


등받이에 최대한 리사를 붙인 채 그녀를 앉혀주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는 아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으으은.. 이야기 하나를 해줄까?"


길게 늘어놓은 말을


리사는 흥미롭게 생각하는 듯 


자리를 다시잡아 고사리 같은 두 손을 의자의 한 가운데로 모아


의자의 옆구리로 다리가 튀어나간 채로 나에게 약간 다가와 있었다.


"이번 이야기는 마녀의 저주에 관한거란다."


약간 고개를 돌리며 궁금함을 표출하는 아이.


"마아녀어어? 그게 모에요? 아빠!"


"마녀는 아주 아아아주우 착한 사람을 말하는 거야."


계속되는 두 번의 강조와 설명.


그녀와의 첫만남을...


아니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회상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


우중중한 날씨.


계속되는 구름의 우울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반복되는 나무들은 끊임없는 회의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축 젖어 눈 앞을 가리우는 머리카락을 손 등으로 대충 밀고는


축축한 습기가 가득한 이 곳을 하염없이 돌아다니는 한 남자.


남자는 저 멀리서 하나의 찬란한 태양이


눈 앞에 선명하게 드리우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 곳으로 뛰었다.


하염없이


계속


-퍽 퍽 퍽 퍽


이미 반 쯤 흙탕물에 빠져버린 발은 


마치 살려달라는 듯. 


어떠한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 이 곳을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나의 것일까? 하늘의 것일까?


누구의 것인지 모를 눈물을 흘려가며


빛의 옆에 사람의 인영이 비추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팍


하고 쓰러졌다.


---


-찌르르 찌르르


천천히 눈을 떠보니 나이테가 가득한,


결이 아름다운 나무로 만들어진 천장이 있었다.


"...괜찮나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내 바로 옆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서


천장에 닿을듯 말듯한 모자를 쓴,


심해를 담은 듯한 파란색의 눈을 가진 한 묘령의 여성이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심하게 갈라지는 목소리.


숲에서 하염없이 사람을 찾다보니 결국 목이 가버린 모양이다.


"숲에서 길을 잃으신 모양인거 같더라고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하는 그녀.


"...네. 저 도와주신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생명의 은인일지 모르는 그녀에게 가볍게 감사의 의미를 지냈다.


"그래서.. 어떻게 돌아가실 생각이죠?"


곧바로 들어가는 이야기의 본론.


나는 이어지는 이름 모를 그녀의 말을 들으며 고뇌했다.


"저 숲은 망각의 숲. 마녀의 저주에 의해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숲이죠."


가녀린 팔을 들고는 한 손가락으로 숲을 가리키며 말하는 그녀


"축하해요. 이제는 밖으로는 단절된 축복받은 삶을 살게 된걸."


약간 심술궂게 말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병 때문에 죽어가는 동생이 있어요."


짧막한 대답.


"한 달 안에.. 가지 않으면.. 죽어요.."


두 번.


이렇게 두 번이나 말하니 마음이 다시 아려오기 시작했다.


"네.. 그래서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약간 울화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나갈 방법은 없어요?"


약간 강하게 말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가는 그녀


"내가 말했잖아요. 저거 못나간다고."


저렇게 귀여움 섞인 목소리에서 이 정도로 짜증나게 하는 것도 재능인듯 하다.


"저는 나갈겁니다."


나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고는


책이 가득한 곳으로 향하는 그녀를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곧바로 뛰쳐나왔다.


---


한 나뭇가지에서 뻗어나가 나뭇잎들이 맺히고 하나의 나무가 되어 하나의 숲을 이룬다.


그렇기에 하나의 나뭇가지를 파악할 수 있으면 그 나무를.


동시에 나무를 파악할 수 있으면 숲을 파악할 수 있다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웠다.


하지만 이 숲은 일반적인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시선의 나무와 내가 10보 간 후의 나무가 완전히 같다.


자국을 남기니 지금 그 자국이 10보를 지난 여기서도 보이니...


기한은 1달.


아니 이제는 어느정도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절했는 사이에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현재로서 그 방법을 알 방도는 하나이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어차피.. 결국은 그녀에게도 돌아가는 것이


현재의 나에게 최선이다.


동생을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고 


나는 그 것을 부정했다,


아니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긍정했을 지도 모른다.


터덜터덜 몸의 기운이 축 빠진채로 결국 그녀에게도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


-끼이익


나무로 된 문이라 그런지 열릴 때의 소음이 심했다.


그리고 그 반대편


서재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는


기지개를 피는 파란 심해를 눈에 담은 그녀.


그 모습이 무척 귀엽다고 느껴졌다.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 어느정도만 아는 그녀를.


"어때요? 나갈 수 있을거 같나요?"


탄식이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심장을 아려오게 만든다.


약하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실건가요?"


아침에도 느낀거지만 너무 단도진입적이다.


당신은 누구고,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하는지


그런 건 전혀 묻지 않는 그녀의 새파란 눈을 보며 말했다.


"...전"



"돌아갈겁니다."


돌아간다.


세계에 있어서 불변의 법칙을 말하듯.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되뇌었다.


"그럼... 어디서 머무실건가요?"


약간 뜸들인 채로 말하는 그녀.


아침에 떼 쓰듯이 나가겠다고 한게 잘못일까?


혹여나 여기서 머물지 않고


숲에 떠돌아 다닐건지 간접적으로 물었다.


그래도


"여기 근처에서 머물겠습니다."


오기는 오기, 현실은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혈기로는 안된다는 것을..


지난 여러 상황에서 뼈저리게 느껴서 알고 있다.


"아녜요. 오랫만에 손님인데 위 층 사용하세요."


약간의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애를 담은 듯한 그녀의 표정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늠되지 않았다.


사람을,


그것도 생면부지의 사람을 믿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약자의 유혹일지라도


누가 알려주었는지 기억도 나지않는


끊임없이 되뇌이던 구절.


그렇기에


"괜찮습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가족이 있어서."


거절했다.


"그래요.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약간 볼을 부풀리고 뾰루퉁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다.


그게 선의더라도 되지 아니 한다.


차라리 그런 제안을 하지않는 것이 선의다.


그녀는 미약하게 짜증을 내보이며 삐진듯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끼익


나무라 그런지 참으로 요란했다.


그래도 칼들이 하염없이 부딪히며 생사의 경계를 가르는


그런 것들보다는 한결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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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이 지났다.


동생에게 지금 내 주머니에 든 약을


어서 가져다 주어야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보내니 말라죽는 느낌이다.


하지만 저 깊은 마음속을 자리잡은 의문


그런데 내가 정말 동생이 있었던가? 


왜 그런 의문이 들지?


고개를 두, 세번 흔들고는 이 숲의 나갈 방법을.


아니 적어도 정체만이라도 알기위해 그녀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