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소재 주의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는 평소와는 달랐다. 적색, 흰색, 녹색의 색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창 밖을 바라보던 도서하는 초록색 트리가 그려진 벽지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크리스마스라 해서 돈을 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나, 그저 기분이라도 내려 붙여놓은 트리였다.


 성탄절. 크리스마스에는 온갖 기적또한 일어난다 하던가.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다. 의자 반대편에 열어놓은 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손에 쥔 리볼버만큼이나 차가웠다. 따라놓은 위스키를 한 잔 마시자 기묘한 열기가 몸을 데웠다. 곧 꺼져버릴 불꽃의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크리스마스의 성냥처럼 꺼져버릴 불꽃이었다. 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불꽃처럼 사그라질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곧 꺼질 불꽃은 한 줄기 바람으로도 스러진다. 도서하는 실탄 하나만을 리볼버에 넣었다. 실탄 하나보다도 값어치가 낮을 삶이었다. 종이 한 장의 값어치라도 있다면 좋겠다마는. 철컥거리는 쇳소리가 서늘했다. 그 위로 떨어져 내린 눈송이가 녹아 들어갔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그처럼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내던진 종잇장이 화로에서 타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한숨을 내쉰 도서하는 창 밖의 정경을 바라보았다. 겨울답지 않게 녹색을 띄는 트리가 불편한 위화감을 불러낸다. 붉은 색을 띄는 장식들이 초록색을 띄는 장식과 어지럽게 얽혔다. 하얀 눈으로 덮인 지붕이 싸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누군가는 환호성을 터트릴 크리스마스 이브의 정경에 그녀는 불편함을 느꼈다.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속이 메스꺼워졌다. 바라보는 것만큼으로도 역겨운 장면이었다.


 의자에 몸을 기대듯이 누운 그녀는 리볼버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손에서 스쳐지나가는 쇠의 감촉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그녀의 인생에 세상이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차가움은 평생 그녀를 떠나지 않았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흰 종잇장들이 차가운 바람에 넘어가며 펼쳐진 종장은 서늘하기 그지 없었다.


 글 서(書)에 아래 하(下). 글 아래에 있다는 말이 참으로 어울렸다. 한 줄 글보다 못한 삶이었다.


-탕!


 날이 밝아오기 직전의 새벽녁에 총성이 울려퍼졌다.

초록색 트리에는 붉은 피가 흩뿌려졌고 흰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녹아내렸다.

뭉개진 핏덩어리는 하얀 뼛가루와 뒤섞였다.

적. 녹. 백.

모순적이게도 그것은 크리스마스의 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