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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귀는 철포를 장전해두었다. 몰이사냥을 마칠 준비는 끝났다. 지친 짐승의 모가지에 창을 꽂듯이. 오늘은 실로 오래간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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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적을 내기에 앞서 잠시 설명을 들어볼 필요가 있겠다. 악귀는 철포를 돌려 서기관의 허리춤을 건들여보았다. 서기관의 입에서 전투시 린노스케가 취할 수 있는 몇가지 전략들이 출력되었다. 건조한 날씨. 기도비닉에 용이할 환경적 요소와 하천이 흐르는 형세와 돌파에 취약한 지점과 낮부터 저녁까지의 기상정보. 무색무취한 감탄이 이어졌다.


  회광반조라 하였던가. 드디어 좀 쓸만해지셨구려. 처음부터 이러셨으면는 약간은 나았을 거요. 죄송한데요 저는 삼 년 전부터 계속 이렇게 하려고 했었는데요 당신이 내 말을 도저히 안 들어먹었잖아요. 왜냐면 그때는 그대가 요괴를 최대한 안 죽이려고 무진 애를 써댔었으니까. 뻔한 대화. 서기관은 더 토를 달지 않았다. 말해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재갈이나 물려질 것이다. 논쟁은 의미가 없었다. 차라리 본래의 목적에 집중하는 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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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피아, 고려개, ep.144 中


읽다보면 한자어로 이루어진 온갖 개드립과 밈의 향연, 잔인하면서도 냉혹한 묘사가 즐거운 작품이었는데, 여기서는 총구를 가져다 대니 적절한 전략이 출력된다는 실로 서기관을 도구로 묘사하는 장면에서 뿜었음.



이외에도 주옥같은 몇가지로


(오니들과의 한바탕 싸움 이후)

호시구마 유기는 존경어린 시선을 담아 두 나찰에게 말했다.

"오늘 그대들은 참으로 개십상타취開什相打醉했소!"

"개십... 뭐요?"

"개십상타취. 여러 사람들이 서로 때리는 데에 취해 정신없도록 만들었다는 뜻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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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가 쌓일 만큼 몸을 움직인 일이 없는데, 피로로 인해 기절을 했다고 하면 상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닌가. 이때 그가 추정해볼 수 있는 건 다음의 두 가지 경우였다.


첫째, 액신이 짧은 새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둘째, 액신의 몸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먼저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경우. 뭐 거대한 벌레를 목격했다던지 귀신을 봤다던지. 잠시 생각해본 그는 첫번째 가설을 폐기해버렸다. 액신이 그리 심약한 성격은 아니다 싶었는지라. 액신이 뭘 보고 놀라서 기절했다고 치면, 그와 함께한 반 년의 세월 동안 기절할 일이 적어도 수십 번은 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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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서는 두 가지 길 중 하나만을 가실 수 있으시나이다."

"...?"

"이대로 사라지기, 또는 더 많은 액을 모으기."

"더 많은 액을 모으다니? 그럼 지금까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액신은 선택할 의무를 가니지 않았다. 선택할 의무를 지닌 건 그였다. 그가 액신이 가져야 할 액을 강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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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지금까지와 동일한 방법으로 하면 되었다. 요괴 무리를 찾아낸다. 악귀는 요괴들에게 스스로 재액이 되어준다. 요괴들이 다 죽은 후, 남은 액기를 액신이 빨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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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액신에게 일방적으로 계획을 통보했다. 액신의 의견은 듣지 않았다. ... 그가 액신을 구명하고자 결심한 것은 액신에게 어떤 미안스러운 감정을 지녀서가 아니었다. 단지 사용한 도구는 원상태로 돌려놓는게 좋다고 판단했을 뿐이며, 그는 요괴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즐거이 행할 용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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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그 규모와 잔인성 면에서 이전과 궤를 달리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요괴 학살 기행奇行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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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있는 제 손을 보십시오. 왼손 말고 오른손입니다. 아까 던지신 칼에 뚫린 상처가 치유되지도 않은채 그대로 남아 있지요. 회복에 쓸 힘까지 아끼고 아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패를 남겨놨었습니다. 저는 확신했습니다. 결국에 당신께서는 저를 붙잡아내실 것이었고, 반드시 고문을 할실 것이었습니다. 고문은 산 자에게 하는 것이니, 당신께 붙잡힌다 해도 충분히 오래 살아 있을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발동에만 한 시진이 넘게 걸리는 도술을 준비할 수 있을 만큼.

예상대로 충분한 시간을 주셔서 다행입니다. 저는 곂쳐진 허무 사이에 몸을 내맡겨 광산 밖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실 때쯤이면 이미 바다를 건너고 있는 중이겠지요. 비록 제 팔다리가 잘리고 살점이 베이고 혀와 눈이 뽑히는 등의 고문을 당하긴 했지만, 저는 탈출했고 당신께선 여전히 거기 갇혀계시고 앞으로 수백년은 더 갇혀계실테니, 아무래도 오늘은 제가 이긴 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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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잔인주의 ※
일단은 신체 말단부터 시작한다. 손발톱을 뽑고나면 이빨 속의 경맥을 긁어내고 피부에 화상을 입힌다. 화상을 입히는 정도는 물집과 부어오름이 생길 때까지. 면적은 전신의 칠 할 이하. 화상입힌 피부에 석쇠 모양으로 칼집을 낸다. 박피는 삼 할 이하로 제한한다. 박피가 끝나면 통각 외의 다른 모든 감각을 박탈한다. 눈과 혀를 뽑고 고막을 찢고 코구멍 속을 파낸다. 출혈량을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므로 절단은 자제한다. 아니다. 그래도 손발은 전부 자르는 편이 좋겠다.

손과 발은 경과를 지켜보고 치명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만 하나씩 절단한다. 상처가 온몸을 뒤덮어 도저히 더 상처입히지 못할 정도가 되면, 배를 열어서 내장을 적출한다. 육부
六腑는 모두 제거하고, 오장五臟은 심장과 허파를 남긴다. 간은 굳이 뺄 필요도 남길 필요도 없다. 적출한 위장을 갈라서 소화액을 취한다. 따라낸 소화액을 상처에 펴바른다. 마지막으로는 분근착골을 시행한다. 관절을 탈구시킨 뒤 근육과 인대를 꼬아놓고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뇌수를 휘저으면 격렬한 발작을 일으키며 신체가 스스로 반죽된다.


읽으면서 현란한 문장력에 감탄했던 작품. 읽는것만으로도 식견이 넓어지는 느낌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