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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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북부감시초소 전투


다음날 정오 경, 오크 부대가 시야에 들어오자 아인은 생전처음으로 오크를 보았다. 갈색 피부는 화살도 막을 것 같이 탄탄했고, 그 덩치는 멀리서도 오크임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거대했다. 그들이 타고 있는 짐승은 다이어울프로 황무지에 사는, 숲에서 가끔 나타나는 늑대들보다 3배는 큰 거대한 늑대라고 한다. 그들 사이로 오른손에 붉은 칠을 한 오크가 회색 빛의 다이어울프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하얀 털의 다이어울프를 타고 나타났다. 그의 등장에 드워프 군대가 일순간 긴장했다. 그가 바로 ‘불멸의 레드암스’ 였다.


“We will die in war! We will die in war!”


레드암스를 시작으로 수천의 오크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같은 말을 외치며 사기를 끌어 올리더니 레드암스의 손짓과 함께 그들은 아인 일행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온다. 준비하라!”


마누엘의 명령과 동시에 전군이 밀집하기 시작하더니 방진을 짠 군대는 마치 갈색 파도처럼 몰려드는 오크들을 맞이했다. 아인은 눈 앞의 오크를 향해 방패를 치켜들었다.


몇 시간 후, 아인은 눈을 떴다. 천막이 아인의 눈에 들어왔다. 아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자 마누엘을 비롯한 수많은 병사들이 아인처럼 간이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상태가 심각한 채로.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병사부터 아예 팔이나 다리 하나가 없는 병사까지, 상황은 심각했다. 그때, 마리가 다가왔다.


“정신이 들어?”


부상자들을 계속 치유하고 있는 듯 하나 그녀 역시도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아인은 자리에 앉으려 했으나 가슴이 너무나도 아파 누워서 말을 이어가기로 했다.


“어떻게 된 거야?”


“결론부터 말하면 너와 마누엘 씨의 작전은 90% 정도 실패했어, 놈들의 돌진력이 상상 이상이었거든. 방진은 단숨에 깨져버리고 수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이렇게 다쳤지.”


아인은 기억을 떠올렸다. 오크와 충돌한 직후 그 힘에 역으로 튕겨 나가 땅에 떨어진 이후의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신을 잃은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놈들도 피해를 조금 입었는지 군대를 물려 돌아갔다는 거야. 우리에 비하면 피해는 간지러운 정도겠지만.”


때마침 마누엘이 깨어났다. 마리의 말에 의하면 마누엘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병사들을 후퇴시키다가 다친 듯했다. 잠시 후, 잔이 아인과 마누엘에게 다가와 간단한 상황을 보고했다(그녀는 기적같이 부상 없이 남았다고 한다.). 그녀의 보고에 의하면 5000명의 병사 중 1000명 정도가 그 자리에서 전사했으며 남은 4000명도 부상자가 아닌 사람을 세는 것이 더 빠를 지경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참혹한 패배였다. 하지만, 아인과 마누엘은 웃고 있었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그들은 미친 듯이 웃더니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그런 것 같군요”


잔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는 또 뭐야?”


“사상자의 대부분이 초반 격돌로 나왔잖아.”


“그렇지.”


“그게 놈의 군대가 가진 한계란 것이지.”


“전 이해가 안 가는데요?”


“잔, 잘 들어. 그 정도의 돌진력을 가진 군대라면 필히 돌격으로 진형을 무너뜨린 후 난전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사상자가 상대적으로 고르게 나와야 해.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는 대부분의 사망자가 초반 격돌에서 일어났어. 그러니 저들은 단순한 돌진 외에는 다른 전술을 고려하지 않고 있는 거야.”


아인의 말에 잔도 드디어 깨달은 듯했다. 그러나 잔은 아직도 그들이 웃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저걸 이길 방법이 있는 거야?”


“그럼, 갑시다 마누엘 씨.”


“그러지. 나중에 오겠네.”


몇 시간 후, 아인과 마누엘은 남은 병력들을 끌어 모아 집합시켰다. 마누엘은 큰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제군들, 지난 싸움은 처참한 패배였다. 그 전투에서 하마터면 전멸할 뻔했네. 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놈들의 약점도 알아냈지. 다음 전투에서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병사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이도 있었고 공포에 질린 이도 있었다. 마누엘은 그런 병사들을 보며 아인에게 속삭였다.


“자네, 자네가 용과 싸울 때에도 저런 이들이 있었나?”


“몇 명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의 귀를 베었더니 조용해지더군요.”


“정말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은 없나?”


“알아서 하시죠.”


마누엘은 다시 목을 가다듬고 말하기 시작했다.


“두려운가? 잘 알고 있다네, 이해하고 있어. 그러니 내가 여기서 기회를 주겠다. 돌아가고 싶은 이들은 앞으로 나와라. 나는 처벌하지 않을 것이다. 가문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그러자 몇몇 병사들이 앞으로 나왔다.


“정말로 처벌하지 않는 것 맞습니까?”


“그렇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되나요?”


“죽을 것이다.”


아인의 말과 함께 칼이 번쩍하더니 앞으로 나온 병사들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눈깜짝할 사이에 앞으로 나온 7명의 병사들이 아인의 칼에 죽은 것이다.


“자 그럼, 돌아가고 싶은 병사 더 있나? ‘나는’ 처벌하지 않겠네.”


남은 병사들 모두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아인도 마누엘도 이런 방식은 전혀 선호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날 석양이 질 무렵, 다시 두 군대가 평원에 대치했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아인과 마누엘 마저도 각각 가슴과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또다시 오크들이 자신의 언어로 무언가를 외친 다음 성난 파도처럼 돌격하기 시작했다.


“전군 준비하라!”


마누엘의 말에 모두가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서 오크들을 노려보았다. 아인은 짧은 순간이지만 보았다. 선봉에 선 레드암스가 미동조차 없는 우리들을 보며 비웃는 모습을. 그리고 그들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병사들의 표정에서 공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직 아인과 마누엘만 웃고 있었다. 마침내 오크들의 선봉이 근접하는 순간…


“잔, 지금일세!”


마누엘의 한마디에 잔이 이제껏 유지하던 마법을 해제했다. 순식간에 두 군대 사이에 마법으로 감춰두었던 수레가 나타나자 오크들의 다이어울프가 본능적으로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


“쏴라!”


그와 동시에 수레 뒤에 숨어있던 병사들이 손대포를 갈기기 시작했다. 손대포의 가공할 만한 위력에 오크들이 낙엽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성공입니다! 저희의 예측이 맞았어요!”


“자네 덕분일세! 마법은 한 번도 이용해 본 적 없거든!”


원래 모든 동물들은 눈 앞에 무언가 갑자기 나타나면 본능적으로 멈추게 되는 것을 마누엘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잔의 마법을 이용하여 본진의 앞에 수레를 숨겨두고 오크들이 다가온 순간 마법을 해제해 다이어울프들을 멈추게 한 것이다. 성난 파도처럼 달려오던 다이어울프가 멈춰 서자 특유의 기동성을 잃은 오크 부대는 그저 갈색 과녁에 불과했다. 거기에다 환영으로 숨긴 것은 수레뿐만이 아니었다.


“돌격!”


마누엘의 외침과 함께 마상용 장창을 든 병사들이 오크 군대의 뒤쪽에서 튀어나와 돌격했다. 애초부터 오크들의 정면에는 손대포를 든 소수의 병사들뿐, 다른 군사들 역시 그저 환각인 뿐이었다. 잔의 마법으로 오크들의 정면에 모든 군사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꾸며 정면 돌격을 유도하고, 실질적인 병사들은 다른 곳에 포진해 있었다. 아인은 아까와 정 반대로 레드암스의 당황한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공격이 오크 부대의 후미를 들이받았다. 장창이 오크들을 관통하면서 부러지자 병사들은 칼과 철퇴, 단검 등을 꺼내서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인과 마누엘의 예측대로 오크 부대는 돌격만을 상정한 듯 후미에는 정예병의 수도 확연히 적고 한눈에 봐도 경험이 부족한 신병들이 더 많았다. 비록 신병이라 할지라도 오크는 오크이니 순수한 힘은 모두를 압도했지만 전투경험이 풍부한 마누엘의 병사들과 전통적인 기습 방식에 당한 그들은 밀리고 있었다. 아인은 칼을 휘둘러 오크 하나를 베어 쓰러뜨린 다음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크 부대의 전방은 손대포와 이어지는 잔의 마법으로 혼란스러웠고 후방은 마누엘의 공격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전투를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던 아인은 자신을 기습하려는 오크를 다른 병사가 철퇴로 그 오크의 얼굴을 박살내 버리는 것을 보고는 다시 전투에 임하기 시작했다.


“마누엘! 괜찮으십니까?”


“나야 생생하지!”


마누엘이 도끼로 오크의 배를 갈라버리며 소리쳤다. 그 오크는 배에서 창자를 쏟으며 쓰러졌다.


“빠르게 후방을 정리하고 레드암스를 사로잡읍시다!”


아인은 칼로 오크 병사의 허리를 가죽갑옷째 잘라버렸다. 그 순간, 아인은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소리를 들었다. 마치 강한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점점 거세지더니 이윽고 늑대의 울음소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인이 의문을 표했다.


“이건 뭐지?”


마누엘은 대답대신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마누엘의 표정에서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제기랄! 왜 안 부르나 했지. 놈들의 주술사가 정령을 소환한다!”


아인은 소리의 진원지로 눈을 돌렸다. 늑대가죽을 뒤집어쓴 몇몇 오크가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진 통나무 같은 무언가를 땅에 박고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것을 중심으로 바람이 불더니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번개가 그것에 정확히 내려치자 놀랍게도 흩어져야 할 번개가 서로 뭉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 자리에 푸른빛의 늑대가 나타났다. 그것이 오크들이 섬기는 정령이었다.


“전원 대비하라! 정령이 나타났다!”


정령들은 주술사의 명령에 따라 수레를 뛰어넘어 병사들을 공격했다. 공격당한 병사들이 정령을 향해 손대포를 발사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전군 놈들의 주술사를 공격하라! 정령을 소멸시켜야 한다!”


아인을 비롯한 병사들이 주술사들을 향해 돌격했다. 그러나 오크의 베테랑 병사들이 그들의 돌격을 필사적으로 저지하자 병사들은 물론이고 아인과 마누엘마저 그들을 뚫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주술사들도 공격에 가세하여 진영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아인 일행이 고전하는 사이 전방의 손대포 병들이 거의 전멸해버렸다. 곧이어 오크들의 공격 대상이 된 잔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한 오크에 의해 지팡이를 놓치고 사로잡혀버렸다. 


“잔!!”


분노한 잔이 그 오크에게 달려들어 빛으로 순간 시야를 가리고 빛의 힘을 이용하여 그에게 계속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그 오크가 떨어뜨린 잔에게 정신이 팔린 찰나의 순간, 마리는 오크의 주먹에 얼굴을 얻어맞고 그대로 땅에 처박혀 뻗어버렸다. 결국 마리마저도 오크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마누엘 씨! 마리와 잔이!”


“알고 있네! 전군 후퇴하라!”


마누엘의 명령에 따라 모두가 포위를 풀고 빠르게 이탈했다. 그리고 마누엘과 아인은 마리와 잔을 들쳐 매고 있는 오크에게 빠르게 달려가 무기를 휘둘렀다.


단 한 순간, 한 순간이었다. 아인과 마누엘의 무기가 정확히 한 점을 지나는 한 순간, 그 오크의 칼은 그 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움직였다. 아인의 검도, 마누엘의 도끼도 그의 대검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했다. 둘은 빠르게 무기를 빼고 다시 달려들었다. 세 개의 무기가 불꽃을 튀기며 부딪힐 때마다 아인과 마누엘의 얼굴에서 당혹감이 드러났다. 아인도 마누엘도 절대 자신들의 검술실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그것은 자신들만의 생각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둘의 공격을 이 오크는 손쉽게 막아내고 있었다.


‘이 오크는 도대체 뭐야…?!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아인은 멀어져 가는 마누엘의 군대를 보며 빠르게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피할 틈도 없이 오크의 대검이 아인을 공격했다. 아인은 본능적으로 방패를 치켜 들었고, 동시에 엄청난 힘이 아인을 덮쳤다. 방패를 짓누르는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인은 검을 튕겨 내기는커녕 그 오크의 압도적인 힘에 방패 채로 쪼개지지나 않을 까 걱정하는 상황에 놓였다. 


“끝이다!”


마누엘이 높게 뛰어올라 오크의 머리를 노렸다. 그 순간, 오크의 왼손이 번쩍이더니 마누엘은 경악한 얼굴로 공중에 떠있었다. 오크가 그 찰나의 순간 자신의 단검으로 마누엘을 찌른 것이다.


“마누엘 씨!”


마누엘은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아인은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의 엄청난 힘으로 검을 튕겨내고 마누엘에게 달려갔다. 단순히 단검에 찔린 수준이라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마누엘은 큰 충격에 전혀 일어나지 못했다. 분노한 아인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 오크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우리말을 알아들을 리는 없지만, 네놈은 오늘 나에게 죽을 것이다.”


아인은 기합과 함께 검을 고쳐 잡았다. 그 순간, 그때처럼 검이 빛나더니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인을 노려보던 오크는 물론이고 어느새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다른 오크들과 아인까지 크게 놀랐다.


“이건 도대체?”


그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인은 뒷목에 무언가 부딪히는 고통을 느끼고는 쓰러졌다. 레드암스, 그자가 아인을 기습한 것이다.


“네놈…!”


아인은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어갔다.


“Let’s withdrawal, our damage is also great.”


“Then what should they do?”


“Take them to the black swamp”


레드암스와 그 오크는 그들의 언어로 대화를 나눴다. 아인은 자신의 운명을 하늘에 맡기며 의식의 끈을 완전히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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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의 전력으로 5000의 오크군을 요격한 아인의 포위섬멸진은 음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