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가 새까맣게 탄 시골 급식 얀붕이랑 피부가 하얗고 마음씨가 좋은 급식 얀순이가 같은 얀촌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어

그 학교는 개깡촌답게 한 학년에 1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였고 그러다보니 부모님과 함께 귀농을 한 얀순이는 전학을 온 지 1년쯤 되고나니 건너건너 다 아는 사이가 되었지     


얀붕이는 근처에 같은 또래라곤 얀순이밖에 없다보니 얀순이를 저절로 좋아하게 됐어 물론 그렇게 사귀는 사이가 되면 온 동네방네 면사무소 하나로마트 우체국 파출소 철물점 구멍가게까지 다 퍼지게 되니 당연히 얀붕이는 겉으로는 툴툴거렸지 

그렇지만 얀순이는 마음씨가 좋아서인지 매일같이 약하다고 놀리고 장난도 치는 얀붕이를 싫어하기는 커녕 오히려 누나처럼 더 챙겨주는거야 그럴수록 어른들이 사귀는 거냐고 껄껄 웃어대니 얀붕이는 싫어했지만...



그런 생활을 유치원부터 중학교 졸업까지 거의 10년 넘게 둘이서 느긋한 일상&풋풋한 썸만 해오다가 이제 시내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어 

둘이 다니던 얀촌중학교도 이젠 둘이 졸업하고나니 학생이 3명도 채 남지않아 시내로 간 마당에 어쩔 수 없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근처의 고등학교에서 계속 이어질 줄 알았던 둘의 일상들은 이제 얀순이가 다시 서울로 가게 되면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돼


결국 얀붕이는 졸업식을 치른 뒤에 10년동안 쌓여있던 속마음을 얀순이에게 털어놓았지 

사실 어른들이 너랑 같이 다니면 놀리는게 너무 싫었다고, 할 수만 있다면 같이 서울로 가고싶지만 머리가 안 좋아서 좌절했다고, 부모님들이 사돈맺자는 농담에 김칫국물을 마셨다고, 10년동안 괴롭히고 장난쳐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좋아한다고...



얀붕이는 정말 자신의 모든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 눈을 질끈 감았어 그동안 해온 잘못들이 있으니 얀순이한테 자신의 진심만이라도 전하려는 생각이었지 연인이 된다면 좋겠지만 말이지


그런데 얀순이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은거야 

갑자기 훌쩍거리는 울음소리가 나서 얀붕이가 눈을 뜨니 얀순이는 인상을 찡그린 채로 펑펑 울고 있었어 

평소의 느긋하면서도 상냥한 모습과는 한참 다른 모습에 얀붕이가 눈물을 닦아주려고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지만 얀순이는 홱 고개를 돌려 도망쳐버렸지...


그래, 얀붕이는 얀순이와의 10년 동안의 일상을 아름다운 작별은 커녕 기분나쁜 기억으로 끝내버린 거야   

멍하니 얀순이가 떠나간 복도 끝을 바라보던 얀붕이는 멍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고 부모님 몰래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이나 펑펑 울었어

자초지종을 안 부모님이 첫사랑이란게 다 그런거라며 다독여줬지만 그런 걸로는 얀붕이의 쓰라린 첫사랑의 아픔이 가시지가 않아   



얀순이와의 작별이야 어찌되었든 이제 고등학교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얀붕이

비록 처음엔 친구 사귀는 것에 어색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도 만나고 피곤을 참고 야자도 하고 담임 몰래 야자를 째고 PC방에도 가고 하여튼 분주한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어 

물론 얀순이와 있을 때보단 즐겁진 않았지만 나름 얀순이에게 차인 슬픔이 잘 아물었던 거야


3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한순간에 지나가버리고, 그럭저럭 공부를 했던 얀붕이는 지방의 국립대에 진학하게 되었어

부모님이 농사짓는 밭이랑 비닐하우스를 물려받기로 했고 어차피 농사말고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던 얀붕이는 자연스레 농업 계열의 과에 진학했지 


그러던 중 우연치 않게 얀붕이는 얀희를 과 MT에서 만났어

얀희는 얀순이와는 다르게 피어싱도 하고 인상이 기가 세 보였지만 얘기를 해보니 오히려 툴툴대면서 잘 챙겨주는 츤데레에 더 가까웠지 

게다가 얀희는 얀붕이가 사는 얀촌면과는 산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던 얀봉면에 살았기 때문에 얀붕이의 고향친구나 다름없었고 농사와는 거리가 먼 축산 농장이긴 하지만 어찌됐든 똑같이 부모님의 가업을 물려받는 입장이라 마음도 잘 맞았던 거야 

당연히 그렇게 MT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친구가 되었고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썸 관계가 되었고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말이 딱 알맞게 과 CC가 되어버렸어 



시간이 지나서 얀붕이가 국방부의 부름을 받고 입대할 때가 되자 얀희는 떠나기 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얀붕이와 자취방에서 술을 한잔 들이켰지 

그러던 중 얀붕이는 우연치않게 자기 첫사랑 얘기를 하게 되고 이젠 더 이상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며, 고무신을 신고 기다리겠다는 얀희를 억지로 밀어내며 그만 하자고 울먹거렸어


하지만 얀희는 그런 얀붕이의 뺨을 강하게 후려친 뒤 얼빵한 얼굴을 한 남자친구와 입을 맞추는거야 

얀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한 번만 그딴 소리하면 얀봉산에다 갖다 묻어버릴 거라며, 절대로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다며 껴안아줬어 

이제서야 여자친구의 진심을 깨달은 얀붕이는 얀순이와의 추억을 모두 잊고는 얀희와 ㅍㅍㅅㅅ를 했지


이틀 뒤 까까머리가 된 얀붕이는 머쓱하게 웃으며 얀희를 껴안고 훈련소로 들어갔어

이미 편지지는 몇십 개나 챙겼고 불안하던 마음도 이미 다 정리가 되었으니 막상 입대날에는 그닥 슬프거나 외롭지 않은 얀붕이였지

훈련소에 있는 동안에는 혹여나 목소리를 들으면 조교들, 동기들 보는 앞에서 목놓아 울까봐 전화는 못하고 그저 불침번 시간에 편지를 꺼내보며 강하게 마음을 다졌어 


그렇게 5주동안 구르고 구르며 겨우겨우 작대기 하나를 단 얀붕이, 수료를 하고 나서 부모님을 모시고 온 얀희를 껴안고 놔주질 않다가 갑작스레 못 보던 두 면회객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지 그분들은 얀희의 부모님, 그러니까 얀붕이의 예비 장인어른, 장모님이 될 사람이었어  

갑작스레 진행되는 상견례에 정신을 못 차리고 삐질삐질 앉아있던 얀붕이는 뒤늦게 얀희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듣게 돼



얀희는 지금 임신을 한 상태였던거야ㄷㄷ

임신한 지 대략 4주 차쯤이라고 하니 아마 입대하기 전날에 야스를 한 게 당첨인 모양이었나봐 

그렇게 졸지에 임신시켜놓고 입대해버린 놈이 되버린 얀붕이는 장인어른께 싹싹 빌면서 어떻게든 책임지겠다고 말했지 

물론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야 현역으로 입대했던 얀붕이는 졸지에 자대에 일주일 가량 신병으로 들어왔다가 말년병장보다 더 빨리 전역을 해버렸어 

그러고는 곧바로 동네 면사무소의 상근예비역으로 빠지게 된 거지 


그렇게 강원도 최전방에서 다시 극적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얀붕이는 곧바로 식을 올리고, 부모님 집에서 조금 떨어진 신식 주택에 신혼 생활을 하게 되었어 

이제 얀희와 함께 오순도순 살 일만 남았는데, 문득 동네에 오랫동안 비어있던 낡은 주택 안이 환하게 불이 켜져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 분명 저 주택은 동네 꼬마들과 함께 귀신이 나온다며 담력 시험을 하던 곳이었는데...

임신한 채로 조심조심 침대에 누운 얀희에게 얀붕이는 옆집에 누가 이사를 왔냐고 물어봤고, 얀희는 대충 젊은 여자가 혼자 온 것같다며 별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지 



그 다음날, 면사무소에서 서류 정리를 하던 얀붕이는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는데,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진 거야 

서울로 가서는 연락 하나 없던 얀순이가, 조금 더 성숙해지고 자란 채로 얀붕이의 앞에 서서 빙긋 웃고 있었던 거지

이제 만나지 못할 줄 알았던 아니, 이젠 다 잊은 줄로만 알았던 얀순이의 얼굴을 보게 된 얀붕이는 억지로 고개를 푹 숙이며 사람 잘못 봤다며 도망쳐버렸지 


그러나 얀순이는 생각보다 훨씬 집요했어 

매일같이 면사무소에 와서는 구석탱이에 앉아있는 얀붕이를 부르고, 계속해서 시덥잖은 얘기를 꺼내며 어떻게든 말을 섞어보려고 하는 거야 결국 지치다 못한 얀붕이가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얀순이를 캐묻고 얘기를 하겠지 

얀순이는 환한 얼굴로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간 뒤에 이곳을 많이 그리워하셨다며, 서울에 있는 동안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너무 외로웠다며, 그동안 잘 지냈느냐며 저녁이 다 되도록 두서없이 마구잡이로 말을 늘여놓는 거야 


얀붕이는 당연히 첫사랑인 얀순이를 보게 되어 반갑긴 하지만 이제 아내가 있고 가정이 있는 사람으로써 더 이상 그녀하곤 엮일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 

결국 얀붕이는 와이프가 기다린다며, 날씨도 요새 쌀쌀한데 집에 들어가라며 손을 휘저었는데 얀순이는 '와이프'라는 말에 죽은눈을 하고는 도대체 무슨 말이냐며 추궁하는 거야 



그제서야 얀붕이의 설명으로 모든 사실을 깨달은 얀순이는 거칠게 얀붕이의 팔을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어 

얀붕이는 의외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얀순이를 떼어놓을 작정으로 그럼 그때 고백했을 때 왜 거절했냐며, 왜 아무런 대답도 없이 멀리 떠났냐며 성을 냈지 

하지만 얀순이는 그게 무슨소리냐며, 얀붕이와 못 만난다는 사실에 아쉬웠지만 네 고백을 듣고서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며, 오히려 그렇게 사귀게 되었는데 별 연락도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며 도리어 얀붕이에게 역정을 내는 거야

          

뒤늦게 서로가 엇갈렸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얀붕이는 결혼까지 해버린 상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얀순이가 야스파트너라도 좋으니까 얀희 몰래 다시 합치자며 유혹해오자 얀붕이는 기겁을 하며 부리나케 도망쳤지 

겨우 잡은 자신의 행복을 더 이상 과거의 첫 사랑, 얀순이에게 빼앗기기 싫었어     


 

하지만 맨 위에서 말했다시피 얀촌면은 매우 작고 건너건너 다 아는 사이야

당연히 면사무소로 출퇴근하는 방위병 군바리네 집쯤은 얀순이가 가볍게 알 수 있겠지 


임신 초기라 야스를 못하는 얀희 때문에, 강제 금욕중인 얀붕이를 계속해서 유혹해오는 얀순이 

그리고 과거 첫사랑이지만 현재 집착하는 그녀 때문에 고민하는 얀붕이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