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2편

3-1편

3-2편

4-1편

4-2편

5편

6편

7-1편

7-2편

8편








1.

그 날 밤, 정우는 이상하게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거리며, 한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였다.

고개를 돌리자 쳐놓은 커튼 사이로 새벽 특유의 푸르스름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휴대폰의 시간을 보니 새벽 다섯 시.

정우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한참을 그 풍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진짜."


희수를 그 날선 말로 밀어내며, 속이 뻥 뚫릴 정도로 후련하던 감각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진득하게 잔류하는 찝찝함이 있었다.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불안에 떠는 그녀의 얼굴.

떨리는 목소리를 채 감추지도 못하던 그녀의 말.

차마 놓칠새라 하얘질 정도로 팔을 꼭 붙잡던 그녀의 손.

채 하루도 되지 않던 그 모든 것들이 늘어진 필름처럼 계속 그리고 천천히 그의 머릿속을 영사하고 있었다.


"씨발..."


참으로 더러운 기분이었다.

거칠게 욕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 정우는 화를 삭이듯 애꿎은 침대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펑-펑-


"왜, 씨발 왜."


침대가 철썩 거릴정도로 거센 손놀림이었다.

증오서린 눈으로, 마치 누구라도 죽일 기세로 미친듯이 침대를 치던 정우는, 이내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허억, 허억...씨발...씨발..."


침대를 내리찍는 그 일련의 행위로, 희수를 향한 그 애먼 원망의 표출로 감추어보았지만,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하나였다.


허무하다.


수진에게 지난 날을 풀어가며, 겨우 궤도로 돌려놓았던 그 일주일의 시간이 갑자기 되감겨버린듯, 정우는 다시 첫 날의 자신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겨우 잊었는데.

겨우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얼굴 한 번 다시 본 것 만으로, 어그러지고 틀어져버렸다.


"가자."


침대 옆에 머리를 기대곤, 한참을 생각하던 정우의 혼잣말이었다.

그녀에게 말했던 대로, 훌쩍 떠나자.

다시는 안 보게.

다시는 이런 일 없게.

멀리, 아주 멀리 떠나자.

그렇게 생각하며, 정우는 방을 나섰다.


"후우."


모텔을 나선 정우의 폐로 새벽의 서늘한 공기가 들어찼다.

해가 떠오르기 전, 아직은 어둑함을 가지고 있는 그 어중간한 푸른 공간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정우는 짐짓 그러고 있는 시간이 아까워서 곧장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갈까.

적어도 여기보다는 먼 곳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정우가 향한 곳은 인근의 택시 승강장이었다.

워낙 이른 시간이라 꽤나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과는 달리, 승강장에는 마치 정우가 타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택시 한 대가 정차해 있었다.


"어서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택시에 앉자, 꽤나 인상좋은 얼굴의 기사가 정우를 반겼다.

살가운 인사에, 살짝 고개를 끄덕여준 정우는 이내 아무 생각없이 창가를 보다, 기사가 어디로 갈지 묻고나서야 목적지 조차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그게..."


"천천히, 생각해요. 아직 미터기 안찍었으니까."


"아, 감사합니다..."


당황하여 우물대는 정우에게 기사가 푸근한 미소로 말했다.

느긋해보이고, 여유있는 미소에 황급하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을 느낀 정우는, 다시금 기사에게 고개를 푹 숙인 뒤, 천천히 목적지를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지금 가고 싶은 곳.

아...그 곳.

한참을 고민하며, 오래된 기억을 되짚어 올라가던 정우는, 이내 몇 없는 것 중 하나의 풍경을 떠올렸다.


"기사님."


기사에게 그 풍경의 주소를 불러주었다.

오래되고 케케묵은 기억이었지만, 여전히 또렷했기에, 무리는 없었다.


"여기서 꽤 멀은데, 괜찮아요?"


"네, 가주세요."


"예에~"


정우의 확신어린 대답에, 기사가 드디어 엑셀을 밟았다.

점차 익숙한 것들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집.

수진이 일하던 편의점.

하나, 둘 멀어져가자 정우는 그제서야 가슴 한 구석의 답답함이 조금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떠나니까.

이제는 볼 일 없으니까.

망설일만한 요소들이 눈 앞에서 멀어질때마다, 오히려 편안해졌다.

아, 졸리다.

정우는 그제서야 천천히 눈을 감았다.





2.

희수는 밤이 지나,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도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우의 침대에 누워 몇 초도 아닌 분 단위로 눈을 감으며, 빨갛게 눈이 충혈되어가면서도 행여 놓칠새라 식사도 잊은채 한참을 그것만 쳐다 보았다.


"정우 씨..."


그것은 그녀의 휴대폰에 저장된 수많은 정우의 사진이었다.

한 장. 두 장.

하나의 사진을 충분히 눈에 담으면, 다른 사진으로 넘겨 똑같이 그런 행동을 반복했다.


스윽, 스윽.


"정우 씨...정우 씨..."


화면 속 그의 얼굴을 확대한 채, 그것을 마치 진짜 정우의 얼굴인듯 정성스레 매만지며, 희수는 메마른 입술로 계속 그를 되뇌었다.

사진 속 정우가 자신을 바라보기를.

그것은 불가능한 일에 억지를 부리는 아이같은 모습이었다.


눈을 감으면, 그 순간이 떠오른다.


'진짜, 역겨울정도로 이기적이네요. 당신이란 사람은'


차가운 말을 꺼내는 정우가 있었다.


'내가 무릎까지 꿇어서라도 빌었어야 했을까? 정도껏 해.'


비웃으며, 붙잡은 손을 쳐내는 정우가 있었다.


'알아서 잘 살아. 신경쓰지 말고, 난 이미 너한테 신경 껐으니까.'


떠나는 정우가 있었다.


그것이 참을 수가 없어서 희수는 눈을 감는 것이 무서웠다.

자꾸만 나타나니까.

내가 모르는 정우가 자꾸 나타나니까.

희수는 그 사실을 부정하며,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아, 왔다.

다시금, 이제는 뻑뻑하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는 눈을 감아야 할 시간이다.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점차 흐려지고 침침해지는 눈.

결국 참을 수 없어서 완전히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잠깐의 어둠, 그 너머에서 가면을 쓴 정우가 곧장 나타났다.


히힛.


조소하듯, 비뚜름한 미소를 짓고있는 그 가면 너머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정우는, 이내 성큼거리며 다가와 떨고 있는 나에게 얼굴을 들이 밀었다.


'역겨운 년.'


어둠 속 정우의 말이었다.


"허윽, 하악...하악...흐흐흑..."


그것은 마치 악몽을 꾸는 느낌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예의 그 발작하듯 숨을 거칠게 들이 내쉬는 자신이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정우 씨, 제발 돌아와 줘.

개가 되어도 좋아.

때리고, 차고, 짓밟아도 좋으니까...

그냥 내 옆에만 있어 줘...

제발...


"허억...허억...흐윽..."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이 집 그 어디에도 남지 않은 정우의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지독한 공포와 가슴을 옥죄는 끔찍한 답답함이었다.

그것들은 의식하면, 할 수록 서서히 숨을 조여왔다.

어둠 너머에서 조소하며, 조금씩 의식할때마다 걸음을 좁히며 키득댔다.

무서웠다.

죽고 싶지 않았다.

그녀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이 회색의 집은, 어느 순간 부터 감당할 수 없이 크고 무섭게 변해 있었다.


그것들이 어느새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고 느낀, 희수가 황급히 정우의 사진에 눈을 고정했다.

유일한 탈출구.

그를 보면, 의식하지 않는다.

그를 보면, 답답하지 않다.

이 작은 화면의 정우는,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지만 일단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정우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갈구하는 불티같은 희망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이정우씨가 사라졌습니다.]


"무...뭐?"


화면 상단에 내려오는 김실장의 문자에, 희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야!

황급히 김실장의 문자를 보니, 정우가 묵고있던 모텔 방의 사진이 한 장 있었다.

예의 그 편의점이라도 간게 아닐까 억지로 생각도 해봤지만, 그렇다면 열쇠도 없이 김실장이 이렇게 방의 내부 사진을 보여줄 리가 없었다.


[모텔 주인의 말로는 새벽에 체크아웃 했다고 합니다.]


아...

아아...

아아아!!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에, 희수가 발작적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디 갔어!

정우 씨...어디 갔어!


[찿아ㅛ 지그ㅁ 닺자ㅏㅇ!!!]


[네. 바로 찾아보겠습니다.]


급하게 보낸 문자였지만, 김실장은 금세 알아듣고 그녀에게 답했다.

정우가 사라졌다.


으득, 으드득...


그 사실만으로도 초조해져, 희수는 저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으득, 으득.


어디야.

정우 씨 어디야 지금.


으득, 으득.


도망가려는 거야?

날 이렇게 버려두고?


으득, 으득...


절대 못 도망가.

어디든 쫓아갈거니까.

어디 마음대로 해 봐.


으득, 으드드득....찌익.


살이 찢어지는 소리였다.

따끔한 고통에 손을 보니, 생살을 뜯었는지,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희수는 엄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멍하니 보다, 이내 휴대폰 화면 속 정우의 얼굴에 그것을 조심스레 묻혔다.


"내 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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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때 부터 비축분없이 생 날 것으로 쓰는 지라, 글 상태가 들쭉 날쭉 할 수 있음.

주말에 좀 쌓아놓던가, 아니면 며칠 좀 쉬면서 여유 좀 가져야 될듯.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