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순이 세 자매는 서큐버스였다.

아버지는 인큐버스였고, 어머니는 인간이었다.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반쯤 헐벗은 상태로 멍하니 앉아있다가

아버지가 끌고 가면, 멍청히 끌려갔다.


아버지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학부모 회의를 가면 그 자리의 슈퍼스타가 되었다.

학교 친구들은 또래보다 얀순이의 아버지 얘기를 더 많이 하곤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얀순이는 몰랐다.



커 갈 수록

서서히 깨달아갔다.


지하철과 버스에서의 치한은 늘어갔다.

학교의 남자애들은 자신과 언니들을 바라보면 사랑 고백을 하거나, 음흉한 미소를 짓거나 했다.






첫째 언니는

제일 먼저 미쳐버렸다.



언제나 자기 방에 남자를 끌고 왔다.

끌려온 남자는 누군가는 으시대었고, 누군가는 쭈뼛대었다.

나갈 때는 모두가 인간성을 잃어버렸다.


단 한 번의 관계만으로

남자들은 첫째 언니에게 자신의 돈을, 재능을, 모든 것을 바쳤고

첫째 언니가 일정 시간 만나주지 않으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자살해버렸다.




얀순이에겐 꿈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둘이서 맺어져서, 서로 같이 바깥을 다니는 것.


아버지도 비웃었고 큰언니도 비웃었지만

작은 언니와 얀순이는 그렇게 맹세했다.


꼭, 그러자고.

어머니 같은 사람을 더 늘리지 말자고.




작은 언니는 대학에서 곧 남친을 만들었다.

남친과의 접점은 별 것 없었다.


대학에서 봉사활동을 다니다가

아이들을 돌볼 때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 모습에

둘째 언니가 반해서 먼저 고백했다고 했다.


키 크고 시원시원한 그 남자는 밝게 웃으며 얀순이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 네가 처제 될 사람이구나?"


작은 언니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집에 고자질하면 너 진짜 죽는다?"


셋은 행복하게 웃었다.




얀순이는 어머니의 수발을 들었다.


어머니는 멍하니 앉아있다가

자위를 하다가

다시 쓰러져 잠들다가


아버지의 기척이 느껴지면, 냄새가 나면, 소리가 들리면

눈에 빛을 내면서 아버지에게 달라붙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어머니의 졸업사진을.


밝게 웃는, 빛나고 있는.




둘째 언니의 남자친구는 실종되었다고 했다.


둘째 언니는 멍하니 앉아서 술을 들이켰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첫째 언니는 그런 둘째 언니를 비웃으며

또 새로운 남자를 끌고 왔다.





얀순이에게도 마음에 들어오는 남자가 생겼다.

얀붕이라는 그 애는, 얀순이보다 키도 작고, 소심했다.


둘의 접점은 별 것 없었다.


얀붕이는 학교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얀순이 뿐만이 아닌, 다른 여자애들에게도 수줍어하면서 자리를 피했다.


학교에서

다른 여자들도 모조리 피한다지만 여하튼

자신을 피하는 남자는 처음 경험해본 얀순이는 호기심을 가졌고


헌 책방에서, 낡은 책을 가지고 책방 주인과 함께 화목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얀순이는 충동적으로 고백했다.





둘은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었다.





얀순이는 화려한 여자였다.

얀붕이보다 잘난 남자들은 '그딴 남자 차 버리고, 자기랑 사귀자' 라고 껄떡대왔다.


얀순이 혼자 다닐 때는 '남친 있겠지, 잘난 사람 있겠지, 자기보다 나은 사람 있겠지' 하고 생각하던 이들이

얀붕이와 함께 다닐 때는 '쟤보다는 내가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손을 뻗어왔다.


얀순이는 그에 굴하지 않았다.




얀붕이는 조용한 남자였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협하면, 조용히 그 자리를 피하려 했다.


얀붕이 혼자 다닐 때는 아무도 얀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얀순이와 함께 다닐 때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얀붕이를 적대적으로 바라보았다.


얀붕이는 그래도 지조를 지켰다.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고

얀순이는 얀붕이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둘은 술을 한 잔 했고

얀붕이는 쭈뼛쭈뼛 손을 내밀었다.


얀순이는 취기에 손을 잡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올렸다.

첫째 언니와 남자들을 떠올렸다.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손을 슬쩍 밀쳤다.




얀붕이는 서서히 자신감을 잃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아직 얀붕이는, 자기에게 고백해온 얀순이를 좋아했고

얀붕이는 자기에게 고백해온 사람을 차낼 성격이 되지 못 했다.





둘째 언니가

문득 갑자기

술을 먹다가


얀순이에게 말했다.


"남친이랑 헤어져."


"내가 왜?"


남친을 잃은 슬픔에 미쳐버린 둘째 언니는

멍하니 얀순이를 바라보았다.


"... 갑자기 왜?"


"우리는, 인간 잡아먹는 괴물이니까."


둘째 언니는 얀순이를 끌고

밖으로 나섰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자물쇠가 몇 겹으로 걸쳐진 지하 자취방이 보였다.


멍하니 있는 얀순이 앞에서

둘째 언니는 익숙하게 자물쇠를 하나 둘 풀었다.



집 안에는 남자가 하나 있었다.

실종되었다던 둘째 언니의 남친이었다.



"이게 무슨..."


충격을 받고 멍하니 있는 얀순이의 앞에서

둘째 언니는 남자친구와 입을 겹쳤다.


곧, 언니의 남친이 입을 열었다.


"어으... 어... 쥬인님... 더..."


첫 만남 때의 그 시원시원한 미소는 온데간데 없었다.




"사랑하고 싶었어! 보통 사람들처럼 행복하고 싶었어! 우린 그럴 수 없어! 우린 괴물이니까! 인간 잡아먹는 악마들이라고!"


둘째 언니는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남자친구 위에서 허리를 찍어내리고 있었다.


침을 질질 흘리며

남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고


"우린 저주받은 존재들이야... 우린... 너랑 나는... 포기해... 첫째 언니가 옳았어..."


다시 남자친구에게 입을 맞추며

눈물을 흘리며

둘째 언니는 속삭였다.


"사랑한다면 놔줘... 나처럼 되기 싫으면... 큰언니처럼 되기 싫으면......"


"..."


"아빠처럼 되기 싫으면..."


어머니의 졸업 사진 속

환하게 웃던 어머니와

어머니 어깨에 팔을 걸친

해맑게 웃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주변 사람들 시선에 네가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 라는 이유로.


얀붕이가 납득할 만한 대답이었고

그렇게 둘은 헤어졌다.




얀순이는 다른 남친을 만들지 못 했다.


얀붕이는 곧, 새로운 여친을 만들었다.

한 달 뒤, 또 다른 여친이 생겼고

또 그 다음달 뒤엔, 또 다른 여친이 생겼다.


그리고 얀붕이의 여친들은 하나같이 얘기했다.


"얀순이랑 사귀길래 뭐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잖아?"



누군가는 얀순이가 얀붕이의 테크닉에 빠져,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소문을 듣고 들이댔다.

얀붕이는 동정이었다.


누군가는 얀순이가 얀붕이의 재산에 빠져, 자기 몸으로 유혹했다는 소문을 듣고 들이댔다.

얀붕이는 가난했다.


누군가는 얀순이가 얀붕이에게 협박을 당해서 사귀었다고 소문이 나 알아보려고 들이댔다.

얀붕이는 소심했다.



모두의 호기심이 절반쯤 해결된 채로

얀붕이는 그렇게 버려졌다.


'그냥, 얀순이 취향이었던 남자였다' 라는 결론이 나올 때 까지

얀붕이는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들에게 고백을 받았고


운 좋아서 여신 한번 사귀고 나더니, 지 주제를 모르고 여자를 후리고 다니는 쓰레기라는 루머까지 돌았다.





다시, 얀붕이는 새 여친을 만들었다.


얀순이보다 훨씬 부족한.


얀붕이는 만족스럽지 못한 성관계나마 감사하며 받아들였다.

얀붕이는 만족스럽지 못한 데이트코스도 억지로 따랐다.

얀붕이는 만족스럽지 못한 지갑사정으로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호구 하나 잡았네.' 라는 얀붕이 여자친구의 통화내용을 들은 얀순이는

술을 입 안에 쏟아넣기 시작했다.


고작

섹스 하나 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얀붕이도 자신도 상처를 받아야 한다는 이 현실이 증오스러웠다.


술을 마시고 또 마실 때

첫째 언니 역시 취한채로 들어왔다.


"막내야... 너도... 깨달았구나."


옷에서는 정액 냄새가 났다.


"난... 나는... 포기해버렸어... 히히히..."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났다.


"너도... 그럴 거야... 둘째처럼..."


미친 것처럼 히히 웃으며

첫째 언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

그럴 운명이었구나.


운명이 자신을 악마로 규정했다면

악마같이 행동해 주는 것이 예의겠지.




얀순이는 얀붕이를 슬쩍 찾아갔다.


얀붕이는 별것도 아닌 일로 화내고 있는 여자친구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고

얀순이는 그 앞에 뚜벅뚜벅 걸어간 뒤

대놓고 얀붕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돌아와 달라고.




다음 날, 얀붕이는 얀순이를 피했다.


완벽한 여자가, 자기가 별 거 아니라 여긴 남친에게 들이댄다는 사실이 불쾌했던 얀붕이의 여자친구는 히스테리가 늘었고

얀붕이는 '자신은 이미 여자친구가 있는 몸이라, 미안하지만 네 마음에 응할 수 없다.' 라고 답했다.


예상한 일이었다.



다음 주, 얀붕이는 여자친구의 화를 받아주며 쩔쩔맸다.

전화가 끝나고 얀붕이는 엎드려 울다가, 술을 한 잔 들이켰다.



한 잔이 한 병이 되고, 두 병이 되는 순간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다가갔다.


얀붕이의 주량은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 그리워하고 지켜봐 왔으니까.


이성을 반쯤 잃은 얀붕이의 옷을 벗기며

얀순이는 속삭였다.


"내가 다 복수해줄게."



다음 날

얀붕이는 얀순이와 팔짱을 낀 채로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얀순이는 얀붕이의 전 여자친구를 비웃었다.

모두가 얀순이의 외모에 감탄하고

누군가는 혼자 분노를 터트릴 때

얀붕이는 혼자 공허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



다음 주

얀붕이는 이제까지의 전 여친들이 살던 곳 앞을

슈퍼카 조수석에 타고 다니고 있었다.

운전석에선 슬쩍 파인 옷을 입고 얀순이가 자기 몸매를 과시했고

비싼 차에 얀붕이의 전 여자친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으며

얀붕이는 혼자 공허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



다음 달

얀순이에게 남자가 하나 들이댈 때마다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입을 맞추고,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죄송해요. 저는 주인님이 있어서..."

남자가 조금 더 치근덕거리면 하이힐로 남자를 걷어 차 버리면서 치한이라고 소리쳤다.

얀붕이는 혼자 공허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었다.




얀붕이에겐 표정을 지을 자유가 없었다.

얀붕이에겐 감정을 느낄 자유가 없었다.


언제나 얀순이가 시키는 대로 말했고

언제나 얀순이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고


언제나, 얀붕이가 잘 하건 잘 못 하건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포상'을 내렸다.


악마에게 영혼을 지배당하는 채로, 얀붕이는 그렇게 멍하니 있었고

얀순이는 모든 것이 다 비틀려 버린 채로, 행복만을 손에 넣었다.






p.s. 읽는 건 순애 가득한 달달한 게 땡기는데, 왜 쓰는 건 피폐물에 가까운 게 써지는지 모르겠다...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yandere/8328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