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우스 우클릭 - 연속 재생)
[카챈창작대회] 첫사랑의 법칙 (3)
―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카운터즈 플레이어로서 양심은 지키시죠. 이거 대회에서도 암묵적으로 안 쓴다는 일명 허연거덱 아닙니까? ”
“하지만! 이렇게 안 하면 한 번도 못 이기겠는걸?”
“연전연패는 아니잖습니까…”
누가 들으면 한 번도 못 이긴 줄 알겠다.
주시영이 압도적으로 이겨보고 싶다며, 프로 플레이어들도 기피한다는 각성 학회장 덱을 가져온 덕에,
상대하기도 가뜩이나 귀찮은데 빨리 끝내지도 못하고 있으니… 카일은 카드 게임을 하는 내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사실 적당히 어울리다가 져주면 되는 일이었지만, 한번 그랬다가 진심으로 하지 않는다며 주시영에게 한 소리 들은 뒤로는 매판을 진심으로 상대해야만 했다.
“하아…”
대체 내가 왜 이렇게 휘둘려야 하는 거지?
실수로 손을 쳐버린 날, 플레이어의 양심이고 뭐고 다신 나타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어야 했다며 정말 몇 번이고 지겹게 후회하곤 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애초에 모진 말도 맨정신으론 못하는 인간이지만.
“아하하! 이번엔 진짜 이길 거야~”
“이긴 적 많잖습니까…”
“아니야!”
확신에 찬 붉은 눈에 카일의 얼굴이 담겼다.
“네 덱은 정석적이어도 플레이어가 어떻게 전개하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고! 봐봐, 네가 지금 쓰는 타이탄 니가와 덱도 초심자용은 아니잖아. 한정 카드도 없는데 허연거덱으로 이만큼 버티는 거 보면…”
정작 그 에너지를 받아내야 하는 카일은 쏟아지는 칭찬 세례가 낯설어서 괜히 그 눈을 피해 허공을 보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무래도 좋으니 빨리 듀얼을 끝내고 책이나 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허연거덱은 저도 못 이깁니다. 지금까지도 대처법이 없잖습니까.”
“아직 모르는 거야!”
잔뜩 들뜬 목소리와 함께 카드를 내놓는다.
…
카드가 얼마나 오고 갔을까.
결국 주시영의 바람대로 카일의 덱을 완벽히 압살하는 데 성공했다.
승자의 웃음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진다.
“아하하! 처음으로 압살했다~”
“자주 이기지 않았습니까…”
“아니라니까! 이게 진짜 승리야! 만세~”
정말로 기쁜 듯, 위로 높게 뻗은 두 팔과 평소보다 더 밝아 보이는 해맑은 미소.
주시영에겐 승전보였지만, 카일에게는 해방의 신호였다.
“……하, 그럼 이제 끝입니다. 더는 방해하지 말아주시죠.”
“치, 네이~ 네이~”
조심조심 자기카드들을 챙겨 정리하는 두 사람.
카일은 왜인지, 순순히 한 발짝 물러나는 주시영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요 며칠 계속 보아온 패턴이라면 분명 여기서 끝내지 않을 텐데…
“너 혹시 한정 카드 중에 마리아 안토노프라는 사람 카드 본 적 있어?”
그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고, 들뜬 표정의 주시영이 책상을 가볍게 두어번 톡톡 치며 카일의 주의를 끌었다.
그래, 네가 그럼 그렇지…
“하… 유일하게 실존 인물로 만들어진 카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응! 카일은 본 적 있어?”
“일부러 뽑고 싶어도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애초에 한정치곤 고성능카드도 아닌데 무리해서 뽑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퉁명스러운 대답이 주시영의 기대감을 박살 내고, 카일의 틴케이스가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닫혔다.
영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뾰로통한 표정인 주시영.
이미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만큼 다해줬다고 여긴 카일은 관심하나 주지 않고 책상 서랍에서 읽다 만 책을 꺼내 들었다.
이건 아니지!
주시영은 앞에 있는 카일에게 앙탈 아닌 앙탈을 부렸다.
“야아- 그래도 너도 카운터즈 카드 유저면 갖고 싶지 않아~?”
“관심 없습니다.”
“카일은 성능충이구나? 그래도 한정은 한정이라서 가치가 있는 건데~”
성능충이라는 말이 거슬리는지 줄곧 무시한 주시영의 얼굴을 째려보았다.
동급생인 남자애가 째려봐봤자지. 카일이 다시 자신을 쳐다보자 뭐가 그리 좋은지 자신의 빨간색 틴케이스를 손에 꼭 쥐곤 씩 웃어 보였다.
그 사람 좋은 미소가 못마땅하단 듯이 노려보다, 다시 펼친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또 주시영의 페이스에 휘말렸다간 반납 기한까지 다 읽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옆에서 뭐라 해도 글씨는 항상 눈에 들어왔던 것 같은데…
괜히 왼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그 답답한 마음을 알 리가 없는 주시영은 여전히 맞은편에 앉아 양손으로 턱을 괴곤 책을 읽는 카일에게 말을 걸어왔다.
“근데 넌 카드 왜 모으는 거야? 오프라인 대회 나가려고? 아니면 그냥 수집?”
“……."
카일이 대답해주지 않아도, 주시영은 굴하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올려다보았다.
눈에서 빔이라도 나올 것 같은 초롱초롱함이 궁금증을 계속 흘려보낸다.
“수집만 하는 거치고는 엄청 잘하는 것 같은데?”
“……."
“아니면 친구들이랑 놀려고?”
친구라는 말에 카일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처음 주시영과 마주쳤던 날과 같은 짜증이 몰려왔지만, 카일은 모든 인내심을 끌어모아 최대한 자신의 선에 날이 서지 않은 대답을 했다.
“친구 같은 거 없고, 그냥 모으는 겁니다. 됐습니까?”
“헤에~ 신기하다. 보통 그냥 모으기만 하면 게임은 잘 못 하던데.”
수집이 주목적이면 게임 잘하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나.
이미 깊숙이 자리 잡아온 꼬인 마음이 악의 없는 칭찬을 빙빙 꼬아버렸다.
…….
아주 잠깐의 정적.
교실 창밖에는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봄향기를 만끽하는 소리가, 복도엔 간간이 들리는 선생님의 발소리.
겨우 책의 내용에 집중할 때쯤. 불현듯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카일 자신은 왜 모으는지 뚜렷한 이유를 잊어버렸지만… 저 아이, 주시영은 왜 모으는 건지 의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카운터즈 카드는 대부분 카일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좋아하고, 주 고객층도 일반인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주 고객층에 하나도 맞지 않는 주시영이 정말 희귀케이스인 것.
여자인 건 둘째치고, 카운터들은 대부분 카운터즈 카드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카운터즈 카드에 실린 실존 인물인 카운터라면 모를까…
“저기, 있잖아~”
“…….”
“난 마리아 안토노프라는 사람처럼 이름을 날리는 카운터가 되고 싶어. ”
갑자기 그런 얘기는 왜 하는 거지…
괜히 생각을 읽힌 것 같아서, 책을 잡은 카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의문과 궁금증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의문은 가지지만 궁금해하진 않았다.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 한 번 안 하는 모습에 포기할 법도 한데.
주시영은 늘 그랬듯 굴하지 않고, 듣든지 말든지 자기 얘기를 하느라 바빴다.
“나도 카운터즈 카드에 실존 인물로 실리는 베테랑 카운터 할거야~ 이왕 카운터가 된 거 알차게 써먹으면 좋잖아?”
“…….”
“그렇지 않아? 안 궁금해?”
“제가 왜 궁금해야 하죠? 그리고 집에 안 갈 거면 조용히 좀 해주십시오.”
“아하하! 그래~ 그게 너 답네~”
알면 제발 말 좀 그만 걸었으면 좋겠는데.
뭐가 그리도 좋은지, 눈꼬리가 휘어지게 꺄르르 웃는 모습이 카일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젠간 제풀에 꺾여서 더 이상 찾지 않는 게 제일 좋은 결말일 텐데.
하지만 주시영은 카일이 바라는 결말을 알 리가 없었다.
“나 사실 강제로 전학 와서 여기에 친구 한명도 없어. 카일이랑 똑같아! 아하하!”
“…그렇군요.”
“오! 이제야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는구나!”
대충 맞장구쳐줬을 뿐인데 그게 마냥 좋다며 엎드려있던 주시영이 상체를 일으켜 물개박수를 쳤다.
듣자 하니 똑같이 친구 없어 보이는 애한테 접근한 것처럼 보였지만, 주시영의 성격이라면 친구를 못 사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사교성 없는 카일이라도 주시영이 착하고 나쁘고를 떠나 친화력이 얼마나 좋은지는 지금 계속 떠드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단지, 같은 반 친구들이 아닌 다른 반 동급생, 그것도 쓸데없이 존댓말만 하고 사교성도 없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회 삼아 친구로 지내려는 것은 아니었다. 카일에게 있어서 주시영은 그저 찰거머리 같은 사람이고, 자기 말고 다른 친구를 사귀어 빨리 떨어져 주길 바랄 뿐…
그런 새까만 속을 모른 채, 관심을 받아 기쁜 찰거머리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어갔다.
“왜냐하면~ 내가 카운터가 된 날에, 카운터 아카데미에 보내달라고 떼썼더니!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게 최고라면서 강제로 전학을 보내버리셨어.”
“…….”
“그래서 내 고향은 여기가 아니라 샤레이드라는 대도시야.”
“그렇습니까.”
“응! 얼마나 머냐면 음… 비행기 타고 몇시간 정도 슈우웅― 날아가야 해.”
주시영이 비행기를 표현하는 듯 오른손을 기역(ㄱ) 자로 꺾어 비행기 소리를 흉내 내며 허공을 그었다.
슈웅―
주시영의 손 비행기가 카일의 책상에 콕하고 박힌다.
“…그렇군요.”
“응!”
이젠 성의 없어도 재깍재깍 대답이 돌아오니, 더 신난 듯 아기새처럼 재잘거린다.
카운터 아카데미가 정말 가고 싶었고,
성인이 되면 카운터 무기를 장만할 거라는 희망 사항,
여기는 태스크포스가 별로 없고 군인들만 득실득실한 게 별로라는 것…
…
건성으로 대답하던 카일이 무심하게 툭 던지듯이 물었다.
“이상하군요. 당신이 말한 한정 카드에 있던 마리아 안토노프라는 사람도 군인 아닙니까? 카운터 군인.”
마치 틀린 답을 정정해주듯 또박또박한 말.
카일이 고개를 들어 뚱한 표정으로 책이 아닌 주시영을 보았다.
다른 생각, 다른 감정을 가진 두 눈이 또 마주친다.
묘하게 피곤해 보이는 올리브색 눈, 뭐에 놀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붉은 눈.
이번에도 제일 먼저 피한 것은 올리브색 눈이었다.
“왜, 왜 그렇게 보는 겁니까?”
“풋! 아냐, 아냐.”
“뭐가 웃긴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군인은 너무 꽉 막혀서 싫어. 차라리 그냥 용병할래. 카운터 스타 용병 멋있지 않아?”
“……별생각 없습니다.”
“아하하! 그래, 그래.”
이제 네 패턴은 다 알겠다는 듯, 웃으면서 다시 책상 위로 엎드렸다.
고개를 돌려 창가에 비치는 나뭇잎들이 속삭이는 것을 보며, 주시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편안한 듯 그저 은은한 미소로 붉은 눈에 하늘을 담았다.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으니 이제야 읽을 만하다며,
카일도 만족스러운 듯 살짝 풀어진 표정으로 읽고 있던 책에 집중했다.
그런데… 앞 내용이 뭐였더라…
파르르 넘어가는 책장 소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선명한 파란이 천천히 지워지고,
꽤 오랫동안 고요하고 평온한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