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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챈창작대회] 첫사랑의 법칙 (13)
― 남겨진 미련한 인연
쓸데없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학생 상담실에 우중충하고 까만 먹구름 하나.
그 앞에 앉아서 늘 웃던 표정이 아닌,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카일에게 이것저것 물어오는 선생님.
“그래, 카일. 괜찮아. 아팠었다고 부모님께 전해 들었어.”
“⋯⋯.”
“아픈 건 좀 괜찮아졌니?”
“⋯네.”
도망치고 싶다.
분명 주시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거란 생각이 들어, 괜히 테이블 밑에 숨긴 왼쪽 손목의 워치를 만지작거렸다.
“그래, 다행이구나. 음⋯ 카일.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
“시영이는―”
“죽었잖아요. 침식재난 때문에.”
카일의 날이 선 대답에 선생님은 잠깐 당황한 듯했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고 침착하게 다시 물었다.
“마음고생이 심한 모양이구나. 선생님이 카일을 따로 부른 것도⋯ 그래, 그 안타까운 사고 때문이야.”
“전 괜찮습니다. 상담 같은 거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
선생님의 눈을 보지 못하고, 테이블 아래로 내리 깐다. 그 시선 끝에는 새것처럼 반짝거리는 워치가 있다.
괜찮다고 말하지만, 늘 짓고 있던 자애로운 미소를 거두고 심각한 표정으로 카일을 지켜보는 선생님을 속일 순 없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감당하기엔, 그것도 어쩌면 유일하게 친하게 지냈을 단 한명의 친구를 그렇게 보냈다는 게 괜찮을 리도 없었고, 하루아침에 털어낼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
상담일지의 페이지를 넘긴다.
맨 뒤에 꽂혀있는 작은 종이 하나. 선생님은 그 종이를 카일에게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네 말대로, 선생님의 상담은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카일. 네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워.”
“⋯?”
‘카운슬링’
전문 상담사에게 카운슬링을 받기 위한 신청서였다.
그 네 음절을 똑똑히 읽은 카일의 입꼬리가 위아래로 꿈틀거렸다.
기쁘다거나, 슬프다거나⋯ 그런 단순한 감정이 움직이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무릎 위에 올려둔 양손을 꾹 쥔다.
마치⋯ 정말로, 아픈 사람으로 취급하는 게 싫어서.
혹은, 그렇게 위태로워 보였나 당혹스러워서.
어떻게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고장이 난 듯 얼굴 근육이 망가져 버렸다.
“카일, 너를 위해서란다. 선생님이 도와줄 수 있는 데까진 계속 도와주고 싶구나.”
파르르 떨리며 펴지는 손.
상담이란 건 필연적으로 마음을 찌르는 무언가와 대면해야 한다.
도망치기로 결심한 겁쟁이한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싫습니다.”
강제성을 띨 수 없으니, 바른길로 끌고 가기 위해선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법.
상냥한 선생님은 한숨이나 타이르기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그건 가지고 있으렴. 언제든 내킬 때, 적어서 가져오면 된단다.”
“선생님.”
“말해보렴.”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 카일의 눈을 쳐다본다.
아픈 손가락 같은 제자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일까.
“저, 카운터 등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도망칠 수 없는, 주박 같던 워치가 이번만큼은 도주로를 만든다.
그 노림수대로, 진지한 심리상담은 어느새 평범한 진로상담으로 변질 되었다.
***
조금 더 집중해서. 더 많은 학업량을.
같은 시간이어도 어떻게든 더 많이, 머릿속에 욱여넣으려 애쓴다.
특별한 바람이 불어서 같은 게 아니었다.
남들에게는 공붓벌레로 보일법한 행동이 겁쟁이 같은 부스러기에는 그저 도망치는 방법중 하나였다.
⋯⋯.
카운터란 건, 잘 뜯어보면 수없이 많은 단점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워치를 가진 모두가 절대적인 철인이 되는 것은 아니고, 배터리를 충전하듯이 이터니움을 주입받지 못하면 죽는 것과 다름없으며, 그 순간 살아있는 재앙이 된다.
그래도 카일에게 있어서 딱 하나의 장점은 있었다.
아직 정식 관리국 검증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니, 카일이 스스로 추측한 영역이었지만⋯
워치가 생긴 뒤로는 공부 머리가 꽤 잘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워치로부터 도망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적응하는 것일 뿐.
놀이공원에서 엄마의 손을 놓쳐서 정처 없이 떠돌며 헤매고 있는 미아처럼.
낙인 같은 워치를 안고 가야 하는 길은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오늘은 다큐멘터리를 하나 볼 거야. 너희들 이런 것도 다 학업의 일환이니까 무시하지 말고, 집중해서 보도록 해.”
그냥 귀찮으니까 시간 때우는 거면서⋯
말이 좋아서 교양 공부일 뿐, 학업에는 하등 도움도 되지 않는 미디어 콘텐츠를 틀어주는 게 전부인 시간이었다.
정말 열정적인 선생님이라면 학교 밖의 매체로 때울 생각을 안 할 테니, 애초에 배울 점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시간이었다.
무시하고 자체 자습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조금만 딴짓해도 영상에 집중하라며 꾸중하곤 했으니 남는 선택지는 그저 무의미하게 시간을 땅바닥에 버리는 것뿐이었다.
[ 세계 각국엔 침식재난에 대응하는 관리국의 지부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
[ 오늘의 평화로운 하루는 관리국의 보호 아래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웃기시네⋯
좋든 싫든 뭔지 보기나 하자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지.
내레이션의 말에 카일은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다.
뭔가 했더니 고작 뒤가 구리고 무능한 관리국 찬양 프로그램이었다니.
집중해서 보려던 정자세를 풀고, 턱을 괴며 뚱한 표정으로 교실 앞의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 하지만 오늘날 만들어진 대침식전 교리는 관리국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
[ 오늘 이 시간에는 관리국과 카운터들처럼 세계를 위해 힘쓰는 군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겁니다. ]
‘군인’이라는 말에 흥미가 동하는지, 카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대침식전 교리’. 관리국이 만들어 낸 것 같지만, 사실은 합중국의 어느 영웅이 탄생시킨 교리입니다. ]
[ 세계 곳곳에 있는 카운터들은 관리국이 인정한 태스크포스에 소속되어있죠. 하지만 그중엔 합중국의 특수부대 소속도 존재합니다. 그렇습니다. 대침식전 교리는 그저 어느 특수부대의 카운터 지휘관이 만들어낸 겁니다. ]
[ 그녀는 여전히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합중국의 위인이라면 반드시 거론되고 있죠. ]
[ 네. 합중국을 대규모 침식재난에서 구했던,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시절의 ‘마리아 안토노프’ 사령관이 지금 단상 앞에 서 있습니다. ]
[ 합중국이 만들어낸 대침식전 교리를 처음 발표하는 순간입니다. ]
“⋯⋯.”
분명히 알고 있는 익숙한 이름이 들리자, 속으로 투덜댈 땐 언제고 홀린 듯이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전성기 시절 영웅의 모습과 지금을 살아가는 영웅의 모습을 극찬하는 내레이션의 목소리를 쉴 새 없이 귀에 담는다.
군인. 그것도 특수부대에 속한 카운터 장교의 삶과 가치관은 신선하고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이야기를 학교 수업에서는 접할 일이 거의 없기 마련이니까.
평소의 수업 시간 선생님의 목소리보다도, 영웅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마치 스펀지처럼. 생각, 이상, 신념⋯ 그 하나하나를 흡수할수록, 불만 가득했던 표정이 서서히 풀려갔다.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다큐멘터리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
우중충한 집안엔 늘 사각거리는 펜 소리와 무미건조한 한숨이 전부였지만⋯
오늘은 경쾌한 타자 소리와 마우스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고등학교 2학년.
감정에 휘둘리기도 하고, 타인의 사상이나 가치관에 감화되기 쉬운 나이.
카일은 오늘 보았던 그 다큐멘터리의 후속편을 찾아서 멍하니 액정을 바라보았다.
네모난 화면의 빛이 동그랗게 뜨고 있는 두 눈동자에 담겨있다.
“군인⋯”
체계, 지휘방식, 신념, 발자취⋯
하나하나가 마음에 각인된다.
대재앙 하나 수습 못 하는 관리국과는 다르다고, 흉흉한 세계에서 필요한 건 바로 저런 사람들 아니냐고.
저들이 앞장섰더라면⋯
“아으⋯!”
앓는 소리와 함께 세차게 고개를 내젓더니, 또 마우스를 달칵달칵 눌러댄다.
합중국, 군인, 마리아 안토노프⋯
특정 단어들이 녹은 정보의 바다, 그 바다에 치는 파도를 따라간다.
“합중국이 발표한 카운터 양성프로젝트⋯?”
무의식적으로 워치를 만지작거렸다.
흥미로운 듯, 거북목처럼 얼굴이 점점 화면과 가까워져 갔다.
“난 군인은 별로야. 너무 딱딱해~ 카일 너처럼?”
“쯧⋯”
마치 못 볼 걸 본 것처럼 일그러지는 얼굴.
아무리 노력해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처럼, 무엇을 하다가도 불현듯 떠오른다. 꼭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말과 기억들이 다시금 낙인을 박는 것 같아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네가 별로면 어쩔 건데⋯”
너는 이제 없고, 나는 나잖아.
신경질적인 한숨과 함께, 화면에 문서파일을 하나 띄운다.
‘카운터 양성 프로젝트 안내 및 신청서’
이걸로, 망할 녀석에게서 벗어나는 첫 단계다.
그렇게 생각하며, 웃는 것도 슬픈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지었다.
상담받을 때처럼 입꼬리가 엉망진창으로 요동쳤다.
그것도 결국, 스쳐 지나간 추억 중에 가장 닳고 닳아버린 페이지에 갇혀있다는 것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