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카챈창작대회] 첫사랑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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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챈창작대회] 첫사랑의 법칙 (21)

―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잊지 못한다.















‘테라사이드’

안배라는 선택지만이 남은⋯ 저항이 아닌 그저 인간이 아닌 것으로 안주하는 것.
그걸 깨달은 시점에서, 이미 카일이 알고 있던 테라사이드는 변질되어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는 거라고, 그렇게 멋대로 단정 지었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시간 벌이용 버림패로 남겨진 것에 대해선, 조금의 불만도 없었다.

선택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선택한 것이니.



애초에 밑바닥에서 기어올라 여기까지 온 게 기적이었다. 


인간 부스러기처럼 아무렇게나 살다가 게임이 열리면⋯

관리국의 보호 하나 받지 못하고,


그 녀석처럼⋯


죽어버렸을 거라고, 속으로 곱씹었다.



⋯⋯.










“카일⋯ 통신이 차단됐어⋯.”



실비아의 물기 젖은 눈이, 올리브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아, 벌써 쓸데없이 주마등 같은 걸 보고 있었나. 우습네.

결코 혼자 서있던 게 아닌데, 여전히 군인인데 쓸데없는 잡생각에 빠져있었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제 저 기이할 정도로 고결해 보이는 신성침식체의 손바닥 위에서, 칠 수 있는 발버둥이란 발버둥은 필사적으로 쳐야 한다.








“실비아 씨. 하나 묻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임무에 필요한 감정교류 이상은 하지 않았으니, 위로하고 싶어도 방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아마 카운터가 되기 전 카일 웡이라면 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어쭙잖은 말로 위로 하는 것은 질색이었다.


그러니 위로 대신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떨지 않았던, 최초의 위선을 떤다.





“무서우면, 뉴오하이오 기함에 합류해 사령부로 퇴각하셔도 좋습니다. 퇴각하시겠습니까?”

“뭐⋯?”




실비아가 기가 찬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카일을 노려보았다.




“혼자서 뭘 어쩌겠다고⋯? 너 혼자서 뭘 할 수 있는데! 내가 도망간다고 뭐가 달라지길래?”

“달라집니다. 아주 많은 걸 바꿀 수 있습니다.”

“대체 무슨⋯? 내가 방해라도 된다는 거야?!”



지금 말싸움할 때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우유부단한 태도에 실비아는 화가 나는지 신경질적으로 카일의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그 끌어당겨지는 힘이 느껴지자, 카일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뭔가 말하고 싶지만, 차마 떨어지지 않는지 입술을 몇번이나 떼었다 붙이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천천히 눈을 뜨며,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가까웠던 누군가는 구하고 죽었다고, 그렇게 되면 자기 위로 정도는 하면서 죽을 수 있으니까.

―라는 이기적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삼켜졌다.


역시 괜한 생각이며 위선적이다.

이미 델타세븐의 대원으로서 많은 사람을 구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극한에 몰려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한심한 생각도 하는 거라고, 그렇게 단정 지었다.




“어차피 여기서 저기로 뛰어가 봤자야. 내가 얼마나 뛰어갈 수 있겠어⋯? 네가 잘 알잖아. 매일매일 체력테스트 결과지 봤으면서.”




실비아가 잡은 카일의 옷소매를 놓아주고는 리프노드를 전투모드로 바꾸기 시작했다.

정확한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도망치지 않겠다는 뜻을 확고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군요. 저도 여기까지 몰려본 게 처음이라, 오판을 좀 했습니다.”




이 지상 위에 남는 사람이 있더라도, 통신기가 망가지고 멀쩡한 통신기도 완전히 먹통이 되어버린 지금⋯

그들은, 두 사람이, 브리핑이 아닌 목소리와 전장의 소음에 의존해야 했다.



째깍. 째깍. 째깍.


젖 먹던 힘까지 끌어다가 머리를 굴리려니, 워치가 빠르게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에 진짜인지 환상일지 모를 현기증을 느꼈다.


저 신성침식체는 왜 아직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건지. 

이 게임을 개최한 마왕은 누구지?


뉴오하이오는⋯






귀를 기울였다. 청각에 특화된 카운터는 아니었으나,

일종의 청음훈련과 비슷한 것을 훈련생 시절에 받은 적이 있었으니 시도해볼 가치는 있었다.



⋯⋯.





총성 소리, 비명, 울음소리,

엄마를 찾는 목소리⋯


그런 비극적인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그리고⋯



마치 천둥소리 같은 거대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이크 대령의 CRF 방출과는 다른 소리였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니, 붉은 하늘엔 작게 보이는 뉴오하이오가 현실부상을 위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아⋯ 뉴오하이오네⋯”




카일이 들은 그 천둥소리는 함선이 차원 이동을 하며 내는 소리였다.




“대령님이라면⋯.”




그럴 거라고 믿었습니다.


통신이 두절된 상황에서는 제이크 대령에게도 선택지가 없었을 테니.

카일은 실비아와 함께 서서히 사라져가는 뉴오하이오의 기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춘 그때.










https://youtu.be/k3mfc5uNSpE









신성침식체의 등 뒤의 하늘에 거대한 겹눈이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파리 떼들이 기다렸다는 듯 카일과 실비아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옵니다! 최대한 엄폐하며 사격 개시!”




침착하게, 최대한 큰 목소리로, 전장의 소음에 묻히지 않도록 외친다.


이미 평범한 용병들과 미숙한 카운터들은 클리파를 버티지 못하고 차게 식었건만,

델타세븐의 두 대원은 멈출 줄 몰랐고, 이것이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순식간에 클리파의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이 터져 죽을 수 있으며.

혹은, 단 1분 1초라도 벌기 위해서 저 신성침식체의 머리에 총탄을 꽂아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희망도 절망도 그 무엇도 없이. 오로지 최선이라는 포장지 안에서 움직이는 저 먼지 부스러기―

붉은 하늘 위의 겹눈은 그게 흥미롭다는 듯,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두사람을 노려보았다.




그렇군. 늑대는 이미 죽은 모양이지?




“늑대⋯?”




뜻 모를 말에 카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굴 지칭하는 말인지 알 수 없지만,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이제 무슨 소용인가.





“카일! 우측에!”




실비아의 다급한 외침에 황급히 개머리판으로 달려드는 소형 침식체를 쳐내고 정확한 사격으로 침식체를 저지했다.

그러나 개떼 같은 침식체만 두사람을 노리는 것은 아니었다.


기회를 포착한 파리떼가 카일에게 달려든다.




“큭⋯!”




왼쪽 어깨면 아직 괜찮아. 싸울 수 있어.

일시적으로 CRF를 과부하 시켜 왼쪽 어깨에 힘을 싣고, 총구를 겨누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걸 지켜본 겹눈이, 신성 침식체가 결말이 정해진 인형극을 보는 것처럼 카일을 내려다보며 조롱하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닌 죽음을 각오한 춤사위가 애처롭구나.


피의 분수를 뿜고, 진작 토해냈어야 할 비릿한 한계를 집어삼키며.


어찌 이런 후회를 가지고도 이토록 두 눈을 치켜뜨고 있는가.







파리떼의 방향이 바뀐다.

두 사람을 갖고 노는 것처럼 여기저기로 치대던 떼거지들이 하늘 높이 한곳으로 모인다.




젠장, 저 작은 파리하나만 두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텐데.

침식파를 가진 파리목 형태의 침식체가 떼거지로 달려드니 손쓸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다.






일희일비한 일생을 살진 않은 모양이군. 부스러기.




“⋯⋯게임의 주최자는 당신입니까?”




그런 지옥에서 기어 나온 놈치고는 너무도 우매하구나. 만약 사실을 알았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지?




“이 행위 자체만으로도 저는 당신을 잡아둘 수 있다는 사실이 남아있죠.”




어리석군. 하지만 재미있어. 간섭해볼 가치가 있었군. 




“간섭이라고? 으윽⋯!”




“아아악⋯! 하으악⋯!”




신성침식체의 합장 한 번에 지면 위로 클리파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앞선 전투가 무색할 정도로, 너무도 무거운 압력이 몸을, 정신을 누른다.


간섭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두 사람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른다.




재미있군, 재미있어. 어디까지 추락할 건지 보여봐라. 부스러기 같은 필멸자여.




두 사람 모두 일어서지 못하고, 조금씩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팅⋯ 팅⋯ 팅⋯ 팅⋯ 팅⋯ 팅⋯ 팅⋯

촤르륵⋯! 촤르륵 촤르륵⋯!




“하아⋯! 으윽! 파리⋯⋯ 떼가⋯!”




정신과 마음이 좀먹는 순간에도 미처 왼손으로 채 가리지 못한 오른쪽 눈동자를 간신히 떠 전황을 확인한다.

한꺼번에 모인 파리떼는 신성침식체의 손짓을 따라, 마치 거대한 송곳처럼 모이고 있었다.

앵앵거리는 파리들의 소음이 점점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카⋯ 일⋯!”




실비아가 다급히 리프노드를 이용해 역장을 펼쳐주려고 시도했지만, 리프노드가 가는 속도보다 파리떼가 날아드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 간절함을 알았을까. 카일은 간신히 오른손을 들어 파리떼의 선두에 총 끝을 겨누었다.

총신의 끝에는 얼마 남지 않은 CRF가 서서히 모여 과부하 되고 있었다.




“중력파⋯⋯ 임계점, 도달⋯!”




파리떼와 신성침식제의 뒤에서 겹눈이 휘어지게 웃는다.

반동을 버티려면 두손으로 제대로 견착해야 하지만, 다른 한손으론 본능적으로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느라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어깨와 팔이 날아가더라도. 저것만큼은⋯!




“방출개시⋯⋯!”



“카일―――!!!”







(BGM OFF)






















⋯⋯.


아⋯?




점점 붉게 변하는 눈앞.

하늘이 빨간 것이 아닌, 어딘가에서 솓구치는 피 분수⋯.


분명히 이 정도 화력이면 팔은 물론이고 어깨까지 날아가 버렸어야 했는데⋯?



목이, 목이 뜨겁다. 후두둑 거리는 소리가 기이할 정도로 선명히 들려왔다.


왼쪽이 뜨거워서, 자기도 모르게 과열되어 터져버린 총을 떨어뜨리고,

터져 나오는 피 분수를 오른손으로 막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 하ㅇ⋯!”




생각 이상으로 깊게 베였는지 말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무겁게 짓누르던 클리파의 진동도 멈추었다.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보고 싶어도, 눈앞이 너무 붉어서 보이질 않아서 황급히 남은 왼손을 들어 소매로 눈앞을 닦아내었다.


벨제부브의 겹눈이 두 번 깜빡이더니 진노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또 나의 관망을 방해할 생각인가⋯! 타기리온!



고작 벌레떼를 부리는 것이 전부이거늘.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네놈은⋯ 네르비에인가.





그제야 진상이 드러난다. 

아마도⋯ 또 다른 마왕의 사도일 것이며.

카일의 왼편 뒤쪽에 박힌 붉은색 날붙이가 목을 베어버린 범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 머리를 울리는 듯한 기 싸움은⋯


이미 샤레이드의 대재앙에서 사도간의 교전 흔적이 있었다고 했으니⋯

게임에 마왕 간의 개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




내 눈앞엔 무언가가 더⋯
















“ ■■? ”



















https://youtu.be/Ucpz0CvGKyA






내 눈앞에 있는 이 붉고 흰 침식체는⋯ 네르비에가 아니다.

직감을 믿는 것은 싫었지만, 모든 오감이 선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왜 그래! 카일! 움직여! 그냥 서 있지 마! 죽는다고! 아악⋯!”




실비아의 주위로 파리왕의 분노가 쏟아지다가, 그 앞으로 보라색 십자가 조립체가 내려꽂힌다.

이미 저항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는지, 실비아는 전의를 잃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결국 쉼 없이 도망친 현재의 끝에서, 묻어두고 싶었던 과거가 나타나는 바람에.





이미 카일에게 있어서 실비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하찮은 잡것을 더 늘려왔다고 해서 네놈이 나를 방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이미 늑대의 숨통은 거두어진 지 오래로다.

아무리 날아봤자 새장 속에 갇힌 새만도 못한 날벌레 한 마리가, 어딜 감히 우리의 왕을 모욕하느냐⋯!



이 제약이 없었다면 네놈들을 찍어누르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 게임의 규칙을 등에 업고 기고만장하구나!








벨제부브가 만든 신성침식체의 클리파는 이미 타기리온의 클리파에 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파리의 왕이 분노하자 파리떼가 거기에 답하는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지상을 노린다.





그러나, 네르비에의 보랏빛 조립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느 그림자의 붉은 날붙이가 제약이 걸린 파리왕의 분노를 순식간에 찢어발겨 버린다.

































“ -..- . -.- ..- ...- ..-. .- ...- .--. ”




마치 고장 난 통신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처럼, 노이즈가 잔뜩 끼어있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간혹 그림자들은 알아듣기 힘든 말을 하곤 하니 그럴 수 있었다.




“아⋯. ⋯! 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목을 너무 깊게 베인 탓에, 바람 빠지는 소리만이 난다.








“ ..-. .- ...- .--. . -.-.-- ”






“ ■■ ! ”









“⋯⋯.”









두 형상의 주위로 백야가 내려앉는다.

함박눈처럼 새하얀 곳의 두 사람.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은, 그런 풍경.




지겨웠었고, 귀찮았고, 보고 싶지 않았던 그 아이.


덮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었던⋯

한결같았던, 해바라기 같은 미소가 보인다.















“ 놀자! ”





















그래, 이걸 이제야 생각해낼 줄이야⋯⋯.










카운터가 침식지대에서 실종되었다는 건 무슨 의미겠어.










곱게 죽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이제 와서 알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












결국 먼지 부스러기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밑바닥인 거야.











카운터워치라는 낙인이 찍힌 순간⋯⋯










아니, 너한테 눈에 띈 순간 끝났던 거야.






















결국 도망칠 수 없는 첫사랑의 법칙인 거지.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도 안 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지만.












진짜⋯⋯. 마지막까지 최악이야, 너는.












결국, 여기까지 도망쳐도.
















죽기 직전에 와서야,


알아보고 싶지 않아도,


단 한 번에 누군지 알 수 있는 너에 의해서.















나도, 네 붉은 바다에 빠지는구나.











































그래.


이제 부정하지 않을게⋯⋯.

















“놀자⋯”












































다음 마지막편



+)


다음이 마지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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