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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챈창작대회] 첫사랑의 법칙 (14)
― 끝나지 못한 이별 뒤에는
조금 부산스러워 보이는 하교 시간의 교무실.
그 제일 안쪽에서 카일과 조용히 면담을 하는 선생님의 얼굴은 사뭇 심각했다.
카일이 종이 하나를 가지고 온 순간, 그게 며칠 전에 준 카운슬링 신청서인 줄 알고 드디어 제자가 마음을 열었나 싶어서 기쁜 마음으로 받았지만⋯
그 종이는―
“카일⋯? 이건⋯”
“합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카운터 양성 프로젝트 신청서입니다.”
―일종의 군사학교 지원서였다.
사실상 전학 절차를 밟아야 하는 데다,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제자의 선택을 지지하기가 어려웠다.
카일이 워낙 평소에도 우중충한 표정으로 다니는 탓에 겉으로는 알 수 없어도, 오랜 시간 교단에 선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제자가 겪고 있는 고민과 풍파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혼자서 선택하고 감내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을.
그렇기에 제자가 바른길로 가고 있는지, 홧김에 내린 결정은 아닐지 알아야 했다.
그게 참된 선생님으로 해야 할 도리니까.
“카일, 이건 사실상 군사학교로 전학을 가는 거란다. 이 학교를 떠나야 해.”
“네, 이미 인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일반 학교와는 많이 달라. 군사학교는 입학한 순간부터 군에 입대하는 거야.”
대부분의 학생이 전부 하교하고 복도가 한산해지는 시간에도, 선생님은 카일을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른은 그저 알겠다며 서류 몇장과 도장이나 찍어주면 스쳐 지나갈 찰나의 일이었지만,
학생은 아니었다. 어른들의 무심한 결정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른다.
“네, 알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엄격하고, 협동심 같은 것도 많이 요구하게 될 거란다.”
“지금보다 더 타인과 협력해야 한다는 점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정말 충분히 생각해본 거니? 조금만 더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구나⋯”
카일은 선생님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거란걸 이미 예상했다.
하지만 선택한 길에서 물러설 수 없는 만큼,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어떻게 되는지 어떤 식으로 가는지는 물론이고, 이미 어른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준비와 계획은 끝마친 상태였다.
준비한 대로 딱 맞아떨어지는 반응이 나오자, 카일은 생각해둔 다음의 수를 내놓았다.
“그럼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허락을 받아오면, 제가 진지하게 생각한 진로라는 걸 인정해주시겠습니까?”
“음⋯”
일리 있는 말에도 여전히 걱정되는 듯 심각한 표정의 선생님.
프로젝트 신청서를 보며 한참 동안 턱을 매만졌다.
결국 이 의사결정도 부모님의 지지가 있어야 가능한 건 사실이니, 건네받은 신청서를 업무용 책상 위에 올리며 말했다.
“일단 그래보렴. 이 프로젝트 신청서, 카운터 등급을 기재해야 하는구나. 정식라이선스 등록도 받아야 하지 않겠니?”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과하다 싶어질 정도로 허리를 굽혀가며 감사 인사를 하는 카일.
그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평소의 카일이라면 절대 짓지 않을 미소를 희미하게 띠고 있었다.
“⋯그래, 오늘도 남아서 공부하고 가니?”
학교에서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던 제자가, 조금이라도 웃고 있는 걸 본 선생님은 안심이 되는지, 걱정으로 좁아졌던 미간이 풀어졌다.
어쩌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극복하는 돌파구를 찾은 걸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일하게나마 가까웠던 친구도 카운터였으니 그럴 것이라고⋯
“아니요. 오늘은 바로 하교할 계획입니다.”
“알겠다. 조심해서 가렴. 내일 보자.”
“감사합니다.”
웃으며 뒤를 돌아 걸어 나가는 제자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선생님은 눈을 떼지 않았다.
무엇을 하든지 이제 더는 제자에게 감당하기 힘든, 필요 이상의 난관이 없길 바라며.
“하⋯”
교무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짧은 한숨과 함께 표정이 굳어졌다.
웃는 연기⋯ 집에서 해볼 땐 분명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잘 먹혀들어 갔다는 생각에 한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확실한 절차로 들어가기 위해서 남은 건 부모님의 허락.
얼핏 들으면 무겁고 힘든 과정 같지만, 카일의 예상대로라면 이미 이 시점에서 모든 준비는 끝난 것과 다름없었다.
끼이익. 교실의 뒷문을 열며 나는 소리가 빈 교실을 울렸다.
모두가 하교하고 아무도 없는 시간, 혼자서 조용히 책가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이제는 정말 불가항력의 변수가 아니라면, 모든 건 예상대로 흘러가겠지⋯
더 이상의 학교 공부는 무의미해질 테니, 교과서를 챙기진 않았다.
들어가게 되는 프로젝트, 군사학교에서 문학이라던가 세계사 따위의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친다는 내용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하나하나 배제하고 나니, 책가방은 평소 메고 다니는 무게보다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마치 마음의 짐을 몇 개 덜어낸 것처럼, 깃털처럼, 한 손으로 들고 가도 충분할 정도로 가벼웠다.
그 느낌이 낯설어서 가방을 멘 채로 자기 자리를 내려다본다.
“⋯⋯.”
허전해 보이는 깨끗한 책상.
가벼워진 가방만큼이나, 텅 비어 보이는 눈이 내려다본다.
전학 절차까지 밟으면 이 자리도 더 이상 앉을 일이 없어진다.
제일 칠판이 잘 보이는 자리이기에 항상 이 자리를 고집했고, 사물함이 있는 곳으로 가기도 편했으며⋯
오후엔 항상⋯ 순식간에 달려와선 귀찮게 굴었던, 그 자리.
“⋯⋯쯧.”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더니,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집어넣곤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간다.
일종의 이별 준비나 다름없는데 사색에 사로잡힌다는 것 자체가 한심한 일이라고,
자신에게 화가 난 듯 한숨을 크게 내쉰다.
이대로⋯ 도망치는 길을 잘 따라가면 돼.
그거면 돼.
***
노을이 거의 다 져가는 저녁. 어두워지는 방안.
방이 조금씩 점점 어두워지는데도, 카일은 형광등 스위치를 누를 생각은커녕 무언가에 잔뜩 집중한 듯, 방바닥에 앉아서 꼼지락대고 있었다.
찌익⋯ 찌이익―
계속해서 들리는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
앉아있는 카일의 앞으로 놓인 작은 상자 하나. 그 안으로 조각조각으로 찢어져 떨어지는 카운터즈 카드.
마치 눈처럼, 함박눈이 내리는 것처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잘게 찢어진 카드 조각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애지중지 모아왔는데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듯 망설임 없이 찢어버리는 두 손.
수집한 카드들은 신체의 일부처럼 소중히 대하기― 같은 국룰은 이젠 마음에 닿지 않았다.
분명 지난 방학까지만 해도 새로운 카드에 대한 설렘과 소장 욕구가 솟아올랐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워치는 부술 수 없기에, 낙인처럼 달고 살아가야 하지만.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에서는 도망칠 수 있으니까.
이런 종잇조각들을 계속 가지고 있어봤자, 벗어나고 싶은 시간에 갇혀 있을 뿐이니까.
온종일, 계속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과정이면서, 걸림돌을 배제하는 일이었다.
“하, 왜 이렇게 많아⋯”
돌아보니 정말 쓸데없이 열정적이었다며 자조했다.
처음부터 이런 거 안 모았다면 마주칠 일도 없었을 텐데.
한심하게도 살았구나.
혹은, 그냥 기구하거나.
하도 종이를 찢어서 검지와 엄지의 감각이 이상해질 때쯤에서야 카드 찢기가 끝이 났다.
이젠 정말로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잘게 찢어진 카드들.
투박하게 마구잡이로 찢긴 모습을 한참을 내려다보다가⋯
“아⋯”
무언가 생각난 듯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서랍을 연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당겨진 서랍안엔 잊고 있었던 마리아 안토노프 한정 카드와 고양이 스티커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랍속에서 남의 속도 모르고 웃고 있는 고양이 스티커가 괜히 짜증이나서, 화풀이 하듯 신경질적으로 집어 들었다.
“틴케이스에 붙여~ 안녕!”
질끈 감았다가 뜬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니네.”
성큼성큼 방 한가운데로 가더니, 스티커를 쥔 손을 상자 안에 집어넣는다. 갈기갈기 찢어진 카드들 속에 웃는 고양이가 파묻힌다.
일방적으로 했던 그 약속⋯ ‘틴케이스에 붙여달라’는 말은 지켜지지 않고,
찢어진 시간과 기억들 속에 가라앉았다.
남은 건 한정 카드.
원래 계획대로라면 똑같이 찢어서 버려야 했지만⋯
“⋯⋯."
한정 카드를 집어 든 카일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니, 카드도 따라서 파르르 떨려왔다.
분명히, 이 카드도 주시영과 깊게 얽힌 카드지만⋯
실존 인물이. 그것도 카일의 방향을 정해준 인물이 담긴 카드다 보니, 차마 무참히 찢어버릴 수가 없었다.
머리가 아픈 듯, 카드를 들지 않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
“⋯젠장.”
한정 카드는 다시 서랍 안으로 들어간다.
이건⋯ 롤모델의 카드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그 녀석과는 상관없이 어차피 내가 뽑았던 카드팩에 있었던 거니까.
실존 인물 사진을 막 찢을 순 없으니까.
합리화. 자기 위로. 정당방위⋯
수없이 많은 변명거리와 함께 한정 카드는 다시 서랍 안에 갇히고,
이젠 무가치한 종잇조각들이 가득 든 상자를 들어 방 밖으로 나갔다.
***
타닥⋯ 탁⋯
워치를 부수려고 했던 그곳. 뒷마당에서 종이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게 찢어서 버리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때아닌 불장난이 벌어진다.
묘하게 넋이 나간 듯한 눈동자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종이조각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됐어.”
이제 남은 건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 설득이라기보단 그냥 말하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무엇을 하든 알아서 잘할 거라고, 그렇게 말씀하실 테니까.
⋯⋯.
카운터 용병? 태스크포스? 그런 것보다⋯
난 네가 싫어했던⋯ 군인이 될 거야.
타닥⋯ 타닥⋯
제일 많은 기억이 담긴 물건들. 가장 컸던 교집합은⋯
순식간에 새까만 잿더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