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카챈창작대회] 첫사랑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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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챈창작대회] 첫사랑의 법칙 (5)

― 1분 1초 한순간, 혹은…











나른한 문학 선생님의 목소리는 자장가가 되고, 창밖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은 이불이 되어 수업 시간을 낮잠 시간으로 만들었다.

턱을 괴고 꾸벅꾸벅 고개가 책상으로 꺼져가는 남학생, 흘러나오는 침에 놀라 황급히 잠에서 깨어나 닦는 여학생…

제각기 다른 모습 속에서 가장 모범답안에 가까운 학생은 당연하게도 카일이었다. 졸린 기색 하나 없이 선생님의 수업내용을 빠짐없이 귀담아듣는 각 잡힌 자세가 학업만큼은 모범생이라고 주장한다.




“자, 3연에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은 뭘까? 열매는 꽃이 져야만 맺을 수 있겠지? 꽃이 지면 열매를 맺는 것을 보고 화자는…… ”




카일이 쥔 볼펜 촉이 종이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선생님의 자장가가 절정에 다다를 때 타종 소리가 교실 안을 울렸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신호이자 오후의 단잠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 학생들은 언제 졸았냐는 듯 부스스 눈을 뜨거나 책상에 박은 머리를 들어 올렸다. 




“음… 그래. 일단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문학부장은 내일 6연 해석부터 해야 한다고 알려주렴~”




문학 수업이 마지막 교시였기에 교실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잔뜩 들떠 보이는 여러 가지의 표정들 사이에서 카일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기 지갑을 열어보았다.


검지손가락을 움직여 지갑 안에 있는 지폐의 개수를 천천히 센다.


하나, 둘, 셋, 넷… 이 정도면 괜찮겠지. 


용돈이 부족한 건 아니었지만, 혹시 모를 추가 지출이 있을지도 모르니 확인하는 것이었다.

가령 예를 들면 생각보다 카드팩이 비싸다던가… 사고 싶은 카드팩이 더 있다던가… 딱 그 정도의 변수 대비였다.





여자애랑 단둘이 있다는 것도 모자라 시내로 나간다니. 같은 반 학생들, 심지어 가족에게조차도 거리를 두는 카일에게 있어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그냥 카드팩만 얼른 사고 귀가하고 싶었다.



“야! 오늘 종례 없대!”




반장이 물어온 뜻밖의 희소식에 아이들이 환호하며 더욱 분주히 움직인다.

내일 보자. 잘 가. 우리 오늘 놀러 가자.

제각각 다른 인사말과 함께 교실을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웃음소리와 가벼운 발걸음들이 교실을 떠나고, 카일은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검은색 틴케이스만 연신 만지작거렸다.


어쩔 수 없었고, 이렇게 있는 게 제일 확실했다.

어차피 올 거니까 굳이 먼저 찾아갈 이유가 없는 데다, 애초에 주시영이 몇 반인지 모르니 그저 먼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옳은 판단이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검은색 틴케이스가 열렸다.




“오래되긴 했네…”




나지막한 혼잣말과 함께 맨 앞에 있는 카드 한장을 꺼내 들었다. 카일의 성격만큼 철저한 관리덕에 몇 번 꺼냈다 보관했다를 반복했는데도 새것처럼 반짝였다.

하지만 방금 꺼내든 이유미 카드는 인플레에 밀려서 더 이상 쓰지 않은 지 오래된 카드였다. 과거엔 꽤 성능픽이였는데…

오늘 사는 카드팩으로 새로운 성능 좋은 카드를 뽑을 수 있을 테니, 카드깡만큼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검은색 틴케이스의 뚜껑이 닫히고,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발소리와 왁자지껄한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일부러 늦게 찾아오는 건가? 나야 그래 주면 좋긴 한데…


불현듯, 묘한 시선을 느낀 카일이 교실 뒷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녕!”

“…….”

“히히―”




대체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걸까. 대체 오늘은 왜 안 부르고 쳐다만 보고 있었던 걸까.




“…언제부터 거기에 있던 거죠?”

“음, ‘오래되긴 했네’ 부터?”

“하…”




혼자 남았을 때부터 보고 있었다는 거잖아…


어이가 없다는 듯 이마를 짚은 카일의 귀가 살짝 빨개진다.

딱히 놀림당할 짓을 한 게 아닌데도, 온몸이 바싹 구운 오징어 다리처럼 오그라드는 느낌에 고개를 들질 못했다.


눈치가 없는 건지 개의치 않는 건지, 그제야 교실에 들어온 주시영은 잔뜩 움츠러든 카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자!”

“…진짜 가야 합니까?”

“흐으음…?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면 안 돼~”

“그쪽이 억지 부린 거잖습니까…”




질색하며 그림자가 드리우는 얼굴.

하지만 결국 가야 한단 사실은 몸으로 깨닫고 있기에, 투덜거리면서도 책가방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금쪽같은 어제 오후를 지키자고 오늘을 희생시킨 게 맞는 건가?

카일이 한숨 한번 크게 내쉬려는 순간 왼팔에 드는 따뜻한 감촉에 황급히 팔을 빼내어 옆으로 도망쳤다.




“아익…! 손대지 마십시오!”

“엑? 팔짱도 싫어?”

“당연한 거 아닙니까? 불쾌하니 붙잡지 마시죠.”




괜히 주시영의 손이 닿았던 팔을 손으로 툭툭 턴다.

가족들도 잘 안 건드리는데, 친구도 아닌,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그것도 또래 여자애가 붙잡는 느낌이…


불편하다? 불쾌하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떠오르질 않아서 퉁명스러운 표정만 얼굴에 남았다.




“흐으음… 그래! 싫다니까 안 할게~”




그래도 마냥 좋다며, 막 피어난 해바라기 같은 웃음이 핀다.

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카일은 저 모습이 질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더니 먼저 앞서나가는 주시영을 따라간다.




“카일은 카드샵 아는 곳 있어?”

“없습니다.”

“엥? 그럼 카드는 어디서 사?”

“인터넷 주문이 가능한데 굳이 나가야 합니까?”

“센스가 없네에~”

“이건 효율의 문제입니다. 대체 센스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두 사람, 서로의 거리 일 미터.


자기가 특별히 봐둔 곳이 있다며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발걸음.

나가는 길이 내키지 않아 터덜터덜 내딛는 걸음걸이.




복도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오후 네 시의 햇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









가는 길 내내 할 말이 뭐가 그리 많은지. 얘는 벽 앞에다 앉혀놔도 혼자 잘 떠들겠네.


카일이 아무 반응도 대답도 안 해주는데도 주시영은 쉴새 없이 자기 얘기를 하느라 바빴다.

시내의 카드샵을 모른단 이야기에 자기만 믿으라며 계속 재잘거리면서도 끝없이 지도 앱을 보면서 길을 찾는다.




“으흠? 일단 저기 건물 2층이래!”

“…….”




주시영이 자신 있게 팔을 뻗어 가리킨 곳엔 한눈에 봐도 꽤 규모가 있는 매장이었다.

실제 카드샵을 처음 본 카일은 대충 상상했던 것과 조금 다른 모습에 당황한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카드샵이면 카드팩이나 따로 고성능, 고레어의 카드를 파는 게 아닌가? 이렇게까지 매장이 커야 한다고?


얼빠진 표정 앞으로 손바닥 하나가 빠르게 왔다 갔다 움직였다.




“…!”

“카일! 뭐해? 얼른 가자~”

“알았… 자, 잠깐! 제가 알아서 가겠습니다!”




여태껏 일 미터의 거리를 유지한 것이 무색하게, 손목이 붙잡혀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가 되고 만다. 

아무리 카운터라지만… 여자애 힘을 못 이기고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니, 괜히 창피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잡힌 손목을 풀어보려고 하지만, 주시영은 카일이 힘을 쓰는 게 느껴질수록 더욱 꽉 잡고 놓지 않았다.




“왜애~ 다 왔어, 다 왔어~”

“아… 진짜…”




역시 어떻게든 못 간다고 해야 했어― 라며 후회했지만, 어차피 오늘도 내일도 안 된다면 어떻게든 끌고 갔을 인간이니 자포자기 심정으로 건물 계단을 올랐다. 잡힌 손목이 괜히 아려온다.




“우와~ 카일, 카일! 봐봐!”

“호들갑 좀 그만…”

















입이 떡 벌어지는 카드샵의 내부.

소문에 의하면 보통 카운터즈 카드샵은 협소하고, 꿉꿉하고, 북적인다더니… 실제로는 조금 많이 달랐다.

사람이 제법 있음에도 깨끗하고, 넓고 쾌적한 덕에 협소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드문드문 놓인 테이블엔 게임을 하는 사람들, 카운터 주위로 카드깡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환호 소리.

경험해보지 못한, 앞으로도 경험해보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풍경을 마주하니 놀라움과 긴장감에 침을 한번 꼴깍 삼켰다.


주시영은 이 매장의 광경이 익숙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카일의 손목을 꽉 붙잡은 채로. 




“음음! 여기 카드샵도 나쁘지 않은데? 오! 카일! 저기 봐! 한정 카드팩!”

“알았으니까 좀 놔주시죠… 놔달라고 제가 계소옥…!”




카드샵으로 올라오는 계단부터 카운터 앞까지 놔달라는 말만 여러 번. 말하는 도중에 끌려가는 바람에 말꼬리가 늘어진다.


결국 그렇게 바라던 손목의 자유는 주시영이 카운터 앞에 서서 지갑을 꺼내겠다고 주머니를 뒤적거릴 때가 되어서야 되찾을 수 있었다.

괜히 붙잡혔던 손목을 매만지며 옆에 있는 주시영을 째려보지만, 빵긋빵긋 웃으며 들뜬 얼굴에 차마 뭐라 할 수가 없어서 머쓱하게 자기 가방을 앞으로 끌어온다.




“오오, 커플 손님이고만. 뭐 줄까 학생들? 너네도 마리아 리미티드 에디션 카드팩?”

“네? 커플 아닌…”

“아하하! 맞아요! 마리아 리미티드 에디션 세 통 주세요!”

“……한 통이요.”




목 아래로 그런 거 아니라고 한참을 맴돌았지만, 어차피 말로도 힘으로도 주시영을 이길 순 없었다.

어차피 한번 보고 말 사람이니 대충 어영부영 넘어가면 그만. 그냥 조용히 묻혀가자며 결제를 마치고 건네주는 상자를 받아든다.


가챠로 뽑아야 하는 주제에 한정이라고 이렇게 비싸게 팔아먹다니…


성능 좋은 키카드였어도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섣불리 구입하기가 꺼려질 텐데 주시영은 붉은 눈을 반짝이며 받아든 박스 세 통을 내려다보았다. 대체 얼마나 좋아서 그런 건지 헤-하고 벌린 입에서 침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제 됐습니까? 까보죠.”

“씁! 어허!”

“…!?”




갑자기 불쑥 눈앞에 나타난 검지손가락. 반사적으로 머리를 뒤로 뺐다.

까딱까딱하는 검지손가락 뒤로 안 된다는 듯 내려간 입꼬리와 가로젓는 고개가 의문을 갖게 했다.




“목적 달성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과정이 잘못됐지!”

“…대체 여기서 뭘 더 해야 하죠?.”

“음음! 이 누나가 다 생각이 있단 말씀~”




검지손가락이 천천히 거두어지고, 양손으로 가득 상자를 들며 입꼬리를 올린다.


누나고 뭐고 대체 여기서 뭘 더하자는 건지, 카드팩만 까면 끝이지…


짜증으로 뒤덮이는 얼굴. 가늘게 뜬 눈이 해맑아 보이는 얼굴을 어이없단 듯 쳐다본다.

원래대로라면, 팩 다 까보고 끝났으니 이제 끝이라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라는 거창한 계획이 있었지만 주시영의 검지손가락 하나에 박살이 나버렸다.


사실 멋대로 카드팩을 까버리거나, 그냥 이대로 철판 깔고 집으로 가버리면 될 일이었지만…

맨정신으로 그럴만한 뻔뻔함도 없고, 인성이 개차반인 것도 아니니 차마 그렇게까진 할 수 없었다.




“원래 하이라이트는 제일 마지막에 하는 거야!”

“약속이랑 다르잖습니까…”

“아하하! 무조건 사자마자 깐다곤 안했는 걸?”




당했다.


상자를 쥐지 않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린다. 역시 그냥 처음부터 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한숨을 쉬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뒤였다.




“아으으… 응?”




앓는 소리와 함께 손을 치우자, 주시영의 앞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오프게임을 즐기러 온 플레이어임이 분명했다.




“학생, 남자친구랑 카드 사러 온 거야?”

“아하하! 맞아요. 이번에 한정 카드 뽑으려고 왔답니다~”

“오우! 여학생 플레이어라니 흔치 않은데? 남자친구는 복 받았구만?”

“남자친구 아닙…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반박해보지만 이미 저 두 명의 대화에 카일이 낄 자리는 없었다.


그보다 처음 본 사람인데다, 꽤 험상궃게 생긴 인상의 남자와도 곧잘 대화하는 게…

도대체 저 사교성으로 왜 친구가 없단 소리를 했는지 의아하게 느껴졌다. 


카운터즈 게임을 할 플레이어가 필요한 거였으면 처음부터 카일이 아닌 오프게임이 가능한 카드샵에 오면 될 일이었다.


굳이 성격도 친화력도 아무것도 없는 다른 반 남학생에게 와서,


그 소중한 카드들을 흩뿌리면서까지 붙어있으려 하는지.




“그럼 학생, 나랑 한 판 할래?”

“정말요? 저 좀 할 줄 아는데요~”

“오, 그럼 나야 좋지. 좀 할 줄아는 플레이어랑 한판 해보고 싶었거든.”




그새 즉석 게임판까지 까는 주시영의 모습에 카일은 그저 불편한 얼굴로 쳐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평소보다 더 들떠 보이는 얼굴이, 반달로 휘어지는 눈에 보이는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가, 입꼬리가―

쳐다보고 있으면 왜인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그래, 맞아. 결국 이렇게 들러리나 할 운명이었던 거겠지.

꼬리표가 있으니까.

인간미라곤 조금도 없고, 타인에게 가시를 세우며,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부스러기 같은…




“…! 잠깐! 놓… 아니…! 잡아당기지 마시죠!”




끝없이 마른 우물을 파고 들어가던 중. 상자를 들지 않은 팔이 다시 붙잡히고, 땅으로 꺼진 올리브색 눈이 흔들린다.




“왜 그렇게 서 있어~ 가자!”

“소, 손대지 말라고 계속 말했는데…!”





잔뜩 들뜬 웃고 있는 붉은 눈에 무어라 소리치지만,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어이 힘으로 게임 테이블에 끌고 오고 나서야 잡힌 팔을 놓아준다.




“자! 카일! 여기 앉아!”

“네? 아까 봤던 분이랑 게임하려던 거 아니었습니까?”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모르는 플레이어랑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카일의 당황한 표정이 웃긴 건지, 주시영은 입을 살짝 가리고 킥킥거리다가 책가방에 달린 작은 주머니에서 틴케이스를 꺼내며 말했다. 




“아하하! 그러려고 했는데, 난 그래도 카일이랑 놀고 싶어서 온 거니까~”




매일매일 질척거리면서, 얼마나 더 놀고 싶다는 건지…

멋쩍은 듯 들고 있던 카드 상자를 쳐다보며, 다른 손으론 괜히 뒤통수를 헝클어뜨렸다.




“그냥 여기서 카드 까고 집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싫어! 카일! 같이 놀자~”




주시영은 보란 듯이 붉은색 틴케이스의 뚜껑을 열어 보인다.

딱! 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리고, 깨끗하게 잘 관리된 카드들이 조명빛을 받아 반짝인다.



내심 딜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수를 던진다.




“…카드 먼저 까보고 덱 짜는 게 낫지 않습니까?”

“쓰으읍! 하이라이트는 나중이래도? 자! 빨리 덱꺼내! 나 카드샵에서 오프게임 꼭 해보고 싶었단 말이야~”

“하아…”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

저 반짝이는 카드와 웃음꽃에 결국 또 지고 만다.


결국 마지못해 교복 주머니에서 검은색 틴케이스를 찾아 꺼내 들었다.

교실에서 하는 거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하는 거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 탓인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틴케이스의 뚜껑을 열어 보인다.




“카일!”

“또 뭡니까.”

“이거 봐! 테이블에 필드이거!”

“그게 뭐 어때ㅅ…”




주시영이 테이블 밑에 딸린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마치 장 패드처럼 말려있는 도톰한 매트를 펼치자, 카운터즈 카드 게임 전용 필드가 펼쳐졌다.

학교 책상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대회에서나 볼법한 필드에 놀란 듯 카일의 눈이 커진다.


생각보단… 괜찮네…


그리고, 그 표정을 맞은편에 앉은 붉은 눈은 놓치지 않았다.




“음! 역시 오길 잘했지?”

“……나쁘지 않군요.”




카일이 멋쩍은 듯, 괜히 주시영의 눈을 피하며 자기 덱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귀가 뜨거운 것 같아서, 괜히 귓바퀴에 잠깐 차가운 손등을 가져다 댄다.


원래 예상대로라면 카드팩만 사고, 집에 돌아가서 빌린 책을 130 페이지까지 읽는 건데…

일단 빨리 대충 몇판 놀아주면, 저녁 7시가 되기 전까지는 집에 갈 수 있겠지.

계속해서 예상을 뛰어넘어 변수를 만들어내는 저 음흉한 하이에나 때문에 이게 뭐냐고…


꽃밭에 먼지 부스러기가 아무리 꽃향기를 들이마셔봤자, 결국 먼지일 뿐인데.

즐거운 걸 즐겁다고, 신기한 걸 신기하다고, 좋다는 걸 좋다고 받아들이지도 내쉬지도 못한다.


정작 저 붉은 눈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쉴 새 없이 꽃향기를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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