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카챈창작대회] 첫사랑의 법칙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8편 9편 10편

11편 12편 13편 14편 15편  16편 17편 18편 19편 20편

21편








[카챈창작대회] 첫사랑의 법칙 (完)

―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코핀 컴퍼니의 성실한 직원 유미나는 항상 그랬듯이 업무지시에 따라 이면세계에서 침식체를 토벌하고 있었다.

1종, 2종 정도야 숨 쉬듯이 잡아 왔던 놈들이었기에 얕은 심도의 이면 세계에서 침식 코어를 처리하는 일 정도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방금 유미나의 발에 차여 부서진 침식 코어가 마지막으로 남은 침식 코어였고, 주어진 일을 끝마쳤기에 철수하기 위해서 같은 소대원인 주시윤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코어였다며 눈길을 돌리니, 돌아온 것은 수고했다는 말이 아닌 팔짱을 끼고 바닥을 내려다보는 주시윤의 뒷모습이 있었다.






“음? 선배, 그새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유미나가 주시윤의 등 뒤로 가까이 다가가자 재미있어 보이는 물건을 발견했다며, 땅바닥에 박혀있는 TV를 검지로 가리켰다. 이면 세계에 버려진 물건이야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 주시윤이 발견한 TV는 버려졌다고 하기엔 꽤 새것처럼 깨끗한 상태였다.


누가 함선에 싣고 왔다가 실수로 떨어뜨리기라고 한 것인가?
의문을 가진 순간, 브라운관에 팟! 소리와 함께 화면이 들어왔다.






[ 안녕하신가요, 여러분! ]


“헉, 깜짝이야⋯! 켜진 건가⋯?”


[ 여러분은 좀비 퇴치를 좋아하시나요? ]


“흐음, 진짜 좀비를 본 적은 없지만, 좀비를 잡는 게임이라면 몇 번 해봤는데요? 미나 양은 어떠세요?”






홀린 듯이 브라운관에서 나는 소리에 대답하는 두 사람. 얼마나 당황했는지 저들도 모르게 TV가 던진 대화 주제에 대답하고 있었다.
영화로나 봤지 게임 같은 건 해본 적 없다며, 별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갈 때 TV에서 답변이 흘러나왔다.






[ 그렇다면 두 분에겐 좋은 기회가 되겠군요! 오늘 좀비를 마음껏 해치울 수 있을 테니까요! ]
[ 새로운 타이틀! ‘버려진 세계의 패잔병과 패자 부활전 한바탕!’ 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어라? 잠깐만⋯ 방금 저 방송에서 우리가 하는 말에 대답한 거야?”
“흐음, 더 신기한 건 이런 이면 세계에서도 TV가 멀쩡하게 송출되고 있다는 거죠.”






이면 세계야 늘 이상 현상을 동반하는 곳이라곤 하지만, 이 TV는 마치 유미나와 주시윤의 말에 실시간 방송처럼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녹화나 재방송 따위가 아니라는 등의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는 게, 혹시라도 누군가 장난을 치는 건가 싶어 눈을 살살 굴려 주변을 살폈다.








[ 아! 말씀드리는 순간, 뒤편에서 상대측 선수들이 입장하는군요! ]






“뒤쪽이라고?”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유미나와 주시윤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얼굴들이 서 있었다.


불쾌할 정도로 아는 이를 쏙 빼닮은 외형을 가진 형체들이 두 사람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으니, 유미나가 소름이 끼친다는 듯 양손으로 팔을 매만졌다.






“선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거, 선배한테도 보이는 거지?”
“네, 소리도 없이 나타나서 하마터면 뒤를 잡힐뻔했어요~”






단순 침식 코어 제거 임무라고 생각했거늘, 생각지도 못한 적성 개체에 주시윤이 타 소대로 지원요청을 시도해보지만⋯.


똑같은 임무를 위해 나온 사람들도 좋은 상황은 아닌지, 오히려 역으로 두 사람에게 지원요청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이미 여기에 온 이상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나. 주시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건 저희뿐만이 아닌 것 같네요.”






유미나도 긴장한 듯, 언제든 싸울 수 있도록 펄스 리볼버를 장전한다.





[ 자,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


[ 상대는 죽어버린 세계에서 희망의 냄새를 맡고 나타난 패배의 잔재! 그림자! 도플갱어! ]

[ 이야! 이 선수들 별명이 너무 많아서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

[ 하지만 확실한 건, 저 패배자들을 오늘 두 카운터 선수가 쓰러뜨리게 될 것이라는 거죠! ]






TV는 두 사람의 속도 모르는지 계속 신나게 떠들어대기 바빴다.
눈치가 빠른 주시윤은 저들이 무엇이고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고 있는 정보들로 추측할 수 있었다.


“아마, 델타세븐의 도플갱어⋯⋯겠죠”


저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얼굴이며, 그림자라는 설명에 유미나가 도플갱어가 무엇인지 물어왔다.






“도플갱어⋯?”
“도플갱어 신드롬. 리플레이서 사태 이후로 출몰하기 시작한 반쪽짜리 그림자입니다. 본체의 생사와 관계없이 나타나는 존재라고 하더군요.”






설명을 들은 유미나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시윤의 설명대로라면 저들은 그저 어떤 현상이며 가짜에 불과하다는 것이니, 익숙한 얼굴이라고 감정에 휘둘릴 일 따윈 없었다.
그 점에서 안심이 되는 듯 유미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단지 지금 걱정해야 할 건, 이 세계에서의 델타세븐은 두 사람에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것.
아무리 가짜여도, 원본의 강함을 어느 정도 따라간다는 것 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기에, 열화판 델타세븐이라고 하더라도 쉬운 상대는 결코 아니었다.





“그럼 한번 해보죠. 귀띔해줘서 고마워요, 티비씨.”






주시윤의 능청스러운 인사말과 함께, 동시에 튀어 나가는 두 사람.
눈앞에 있는 도플갱어. 실비아 레나 쿠퍼와 카일 웡도 기다렸다는 듯, 지독한 침식파가 섞인 총탄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미나 양, 제가 호위를 맡겠습니다!”
“응!”






이미 합을 수도 없이 맞춰본 두사람은 자연스럽고, 신속하게 포지션을 잡는다.
유미나가 매서운 공격을 피해 가며, 두 도플갱어에게 접근한다.


조금 다행이라는 점이 있다면, 델타세븐의 최고 전력으로 볼 수 있는 마리아 안토노프와 제이크 워커의 도플갱어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실비아와 카일의 열화판이라면 무리해서 고유 무장을 꺼내 싸울 필요까진 없을지도 모른다.
무리해서 클리포트 인자를 사용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기에 선택지가 없었다.




같이 임무를 수행했던 기억을 되살려본다면⋯
계속 거리를 벌리려는 시간을 주지 않으면 된다. 빠르게 근접해서 단숨에 코어를 찌르는 것이 이상적.


그리고, 도플갱어들도 원본의 지휘체계를 따르려고 한다면 제일 먼저 도출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지가 있었다.








“카일 웡 소령님의 도플갱어를 먼저 제거하죠!”
“접근할게!”






도플갱어들은 스스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유미나와 주시윤에게서 계속 거리를 벌리려고 하지만, 속도는 유미나가 훨씬 빨랐다.


바닥에 흙먼지가 날리도록 빠르게 달려드는 유미나의 주위에서 쏟아지는 총알들을 주시윤이 계속해서 제거하고.
계속 거리를 내주지 않으려던 카일 웡의 도플갱어가 이면 세계에 내버려진 폐건물에 뒤가 막힌다.


그걸 감지한 실비아의 도플갱어가 유미나를 향해 침식 오염된 전자기펄스를 터뜨리려고 하자.






“안되죠!”






주시윤이 공간째로 베어 넘겨 실비아의 도플갱어의 전자기 펄스를 차단한다.
이 기회를 타서 CRF를 다시 한번 응축해 눈앞에 당황하고 있는 실비아 도플갱어를 일격사 시켜야 한다.




그리고⋯남는 도플갱어는 믿음직스러운 후배가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거리로 접근해 처리하면 된다. 
총탄과 사격으로 싸우는 이들에겐 접근하면 대처하기 어려울 테니, 검술을 이용한 근접전에 특화된 유미나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거리를 더 벌리려고 도망치는 카일 웡 도플갱어를 쫓아 전력으로 질주한다.






“이거나⋯! 먹으라고!”






한 번에 찍어눌러야 한다!


펄스 리볼버에서 울브즈베인이 살벌한 금속 마찰음을 내며 뽑혀 나온다.
이 정도 거리면 총알만 믿고 설치는 놈들도⋯!!












“크읏⋯!?”






카일 웡의 도플갱어의 발이 유미나의 복부를 강타했다.
원본이 군인인 만큼 대인 전투 능력도 갖춘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미나 역시 전장에서 구를 대로 구른 베테랑 카운터나 다름없었다.
곧바로 자세를 고쳐잡아 버텨 선다.






“이거 가지고는 안되지⋯!”






금방 무게중심을 바로 잡은 덕분일까, 단숨에 도약해 도플갱어로 다가갔다.
클리포트 인자가 칼날에 모이고, 갑자기 따라붙는 유미나의 속도를 예측하지 못한 카일 웡 도플갱어.


울브즈베인을 잡은 오른손을 휘둘러, 원본을 흉내 내기 바쁜 열화판에게 칼끝을 들이민다. 






“울브즈베인, 한정 개방!!”






도플갱어의 붉게 침식된 눈이 빠르게 돌아가고⋯




















응축된 클리포트 인자가 쿠구궁! 소리를 내며 검기와 함께 폭발했다.
폭발음으로 인해 유미나의 귀에는 삐이이―거리는 이명이 맴돌고, 검기의 여파로 박살 난 바닥은 흙먼지를 계속 뿜어대어 도플갱어를 눈으로 좇을 수 없었다.






“⋯없어?”






유미나는 알 수 있었다.
비록 클리포트 인자가 담긴 검기가 주 전력이었지만, 달려든 거리는 충분히 도플갱어의 신체에 칼날이 닿았어야만 했다.


하지만 칼날에 닿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예감에 황급히 주시윤을 찾는다.






“선배! 여기에 소령의 도플갱어가 사라졌어!”




























도플갱어도 결국 침식체라면 침식체이며, 카운터의 도플갱어는 그림자에 가깝다.
그러니 그런 허상 같은 존재들에게도 망집은 있었다.


이미 유미나의 일격에 왼팔이 날아가 버린 도플갱어는 붉은 눈을 부릅뜨고, 유미나의 시야에서 이탈해 달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고 있어⋯!?”






줄곧 거리를 벌리던 도플갱어가 유미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닌, 주시윤에게 달려든다니.


울브즈베인의 일격을 맞고 원본을 따라 하는 것조차 힘들어진 것인가? 혹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이미 평범한 카운터들과는 다른 경지에 있는 주시윤에게는 우스운 가정이었다.
차라리 잘됐다며, 주시윤은 이미 처리한 실비아 도플갱어에 꽂힌 장검을 신속하게 뽑아 들고, 카일 웡의 도플갱어를 향해 달렸다.






“미나 양이 강하긴 하죠. 아무리 소령님의 도플갱어라고 해도 많이 아프셨을 겁니다!”




“선배!”






붉은 장검에 CRF가 모인다.
그를 도와주려고 오는 유미나의 모습이 보인다.






“괜찮습니다. 미나 양! 충격에 주의하세요!”






카일 웡 도플갱어와의 거리가 공간을 베기에 적합할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다시 한 번 더 공간을 베려고 하는 그 찰나의 순간










“어⋯ 어⋯!?”
























“이거⋯. 이건 예상 못했⋯”




“선배――!!”






































































“선배! 괜찮아⋯?!”






유미나가 황급히 달려와 주시윤의 상태를 살폈다. 그를 뒤덮은 핏자국은 주시윤의 피가 아니었고, 눈앞에 펼쳐진 이해하기 어려운 풍경에 경악했다.


그리고 당사자인 주시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겨눈 붉은 장검에 스스로 핵을 찔러넣어 자결할 거라고 그 누가 상상했을까.






그리고, 아주 찰나에 순식간에 몰아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만가지의 감각에 넋을 놓고 있었다.












“선배⋯?”






기이할 정도로 멍해 보이는 표정의 주시윤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소심스럽게 부르자,
그제야 주시윤은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장검에 꽂힌 채로 서서히 부식되어 사라져가는 도플갱어에게서 칼날을 빼내었다.






“엇챠, 이 도플갱어들⋯ 우리 세계의 도플갱어가 아니었네요.”
“우리 세계⋯? 그럼 그 사람들이랑 다르다는 거야?”








주시윤이 도플갱어의 원본을 아주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망령의 망집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네, 다른세계에서 살아왔던 사람, 그 사람의 도플갱어인 것 같아요.”
“뭐⋯?! 소령님이 또 있어?”








주시윤의 푸른 눈이 아주 잠깐 붉게 빛났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요. 자⋯. 긴장을 늦추지 말죠. 이게 끝이 아닐 테니―”










그 망령의 망집도 주시윤의 용아 처럼, 붉게 물든다.
























































⋯⋯.











“야! 카일!”






상쾌하고, 간드러진 목소리가 귓가에 봄바람처럼 살며시 닿았다.
왠지 그 살랑이는 바람이 간지러워서 자기도 모르게 짙은 한숨을 내쉰다.






“놀자!”
“싫습니다.”
“왜? 책은 이따가 읽으면 되잖아~”






바로 옆 책상으로 달려와 팔짱을 끼우는 탓에 기겁하며 자기팔을 빼냈다.

아무리 싫다해도 지치지도 않는 걸까. 왜 하필 나일까.






“아⋯! 좀 건들지마시죠⋯!”
“알았어, 알았어~ 그러니까 한 판만!”






정말로 한 번만이라며 검지를 들어 애교 섞인 미소를 짓는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더니,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틴케이스를 꺼내 들었다.






“⋯⋯하, 다음은 없습니다.”
“와아아!”






대체 그게 뭐 얼마나 기쁘다고, 만세까지 해가며 들뜬 모습을 감추질 못했다.
카드를 펼쳐놓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만개하는 교실에 꽃향기가 불어온다.






“넌 언제 말 놓을 거야?”
“꼭 그래야 합니까?”
“응! 친구잖아.”




또 다시 한번 한숨이 터져나왔다.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들은 목구멍 아래에 맴돈다.




편견이라곤 조금도 없고,








“카일~”
“왜 또 부릅니까. 지금 당신 차례입니다.”










날이 선 말에도 웃고 있다.










“진짜 안 놓을 거야?”










내가 무엇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싫은데.”
“아? 아하하하! 거봐 할 수 있잖아~”








항상 활짝 핀 꽃처럼 웃고 있는 너는―


































―첫사랑의 법칙
Fin.

















+)


작년 초부터? 쓸까말까 고민한 소재였는데 메인인물도 인물인데다가 태그가 피폐라서 묻어두기만 해두다가

마침 대회도 열렸겠다 쓰고 싶은거 한번 쓰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데엔로 나오면서 얘가 이렇게 찌질한 이미지가 잡힐 줄은...ㅋ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난주에 현생문제로 너무 바빠서 막판에 너무 몰아서한게 좀 아쉽달까..

좀만더 시간을 들였다면 더 재밌고 낫지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

결국 짧은 시간에도 재밌는글을 뽑아내는게 글쓰는 사람 역량이니

제 역량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피폐도 피폐고... 메인주인공이 꼬추새끼인데다가 진행 내내 고구마 잔뜩이라 정말 읽기 힘드셨을것같은데

끝까지 읽어주신분들, 재밌게 감상해주신 분들 정말 모두 감사합니다.

덕분에 안꺾이고 재밌게 쓸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동기부여를 해주신 대회 주최자 분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혹시 이관 유입은 모르는 사람 있을것같아서 덧붙이면

주시윤 유미나 나오는 부분은

지금은 볼수없는 방어구 렐릭챌 저항의 흔적 스토리를 살짝 살만 더 입힌거임




https://youtu.be/IDdO5Feky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