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는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 소설은 '사람들'의 이야기네요. 제가 썼는데도 좀 어려운 감이 있는거 같아서요, 혹시 질문 있으시면 댓글 남겨주시고, 최대한 빨리 답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악취와 쥐들로 뒤덮은 거리는

끝없이 나약한 자들의 차지이다

술과 담배, 그리고 섹스로 가득한

낡은 빌라들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살고있다.


나는 죽이지 않으면 죽여야만 했고

사랑따윈 없이 그녀와 사랑을 했고

어젯밤 그녀를 죽였던 그는

아무 죄책감 없이 내 옆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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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씨발 다 과거 얘기 아니겠어.

지금 나는 세상의 꼭대기에 서 있는데.

나는 2020년에 있지, 2015년의 내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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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나에게 말했지.

"오빠, 정말 고마워요.
오빠 덕분에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오빠를 조건없이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듯이,
오빠를 조건없이 싫어해주는 사람도 있을 수 밖에 없어요.
오빠를 조건없이 좋아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오빠 바로 앞에 있잖아요."

하긴, 나는 그때 정의감에 불타던 새끼였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나는 그들을 위해 내 청소년기를 버렸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깟 돈없는 새끼들 한푼이라도 더 챙겨주느니 내 금고에 지폐 한 장이 더 들어가는게 더 좋아. 너네들이 날 비난할 처지는 못되지. 왜냐면 너네는 남들을 위해 헌신하던 시절따위도 없었잖아? 평생을 자기만을 위해 살아온 찌꺼기들이 왜 내가 금이랑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나를 비난하는데?

아 맞다, 건너건너 들었는데 내 중학교 동창이 벤츠 쳐 타고 다니면서 명품 쳐 사고 다니더라. 걔 남친새끼는 근육돼지고. 걘 왜 그러고 사는건데? 그 동네 살면 그 동네에 맞게 하고 다녀야될거 아니야. 나처럼 좋은 집 살면서 외제차타고 다니면 누가 뭐라 그래. 그 동네 낡은 빌라에서 살면서 그런 짓하고 다니면 뭐하게? 뭐? 아 조건하고 다닌다고? 그렇게해서 걔가 얼마 받는데? 한 번에 20? 그럼 그렇지. 고등학교도 안 나온 주제에 어떻게 나처럼 성공해. 내 중학교 동창들은 다 글렀어. 나처럼 명문고 나와서, 명문대 나오고, 부모님 덕에 군대도 째고, 부모님 회사 대충 물려받아서 살면 되는 놈이랑, 부모님 일용직이고, 고등학교 대충 자퇴하고, 걔넨 중졸이여서 군대도 쨌네? 대충 단기알바나 하다가 이상한 쪽으로 빠지겠지. 알겠니? 이게 너네랑 나의 차이야. 출.신.성.분 자체가 다르다고.

야, 나 사실 돈 때문에 가게 시작한거 아니거든? 근데 그 아이템이 너무 잘 통한거야. 장사 그냥 대박나더라. 나처럼 특이한 경우도 없어. 아빠가 그냥 한번 해보라고 대충 2억밖에 안 던져줬는데, 이젠 연봉이 10억이지 뭐야? 전국에 내 가게가 있어. 난 돈 욕심 별로 없었는데도 기분 째지더라. 물려받을 회사에 건물도 있는데, 내가 만든 회사도 있네? 야 좋다 뭐. 이 정도면 뒤질때까지 놀아도 먹고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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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참 많이 변했다. 너는 내 삶을 완전히 바꾸어 줬는데, 그때 그 마음은 어디 갔는지 모르고 돈자랑만 늘어놓고 있다.

넌 모를거다. 아마 다 잊었겠지. 넌 온통 대리석이 깔린 타운하우스에 살고 있으니까. 너네 집에 있는 벤틀리와 람보르기니, 페라리와 대비되는 우리 동네 공영주차장들의 마티즈들을. 너는 이제 모를거다. 왜냐면 너는 더이상 예전의 너가 아니고,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할 거니까. 아마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나같은 가난한 자들은 부유한 자들을 이길 수 없다. 그 이유가 단순한 것은, 부유는 가난을 알지만, 가난을 부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의 기부와 소비가 없으면, 그리고 정부에 바치는 뇌물이 없다면 저소득층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물론 그때의 기억이 아닌, 너가 졸업한 그 명문고에서 가르쳐줬겠지. 근데, 우리는 부유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길이 없다. 강남의 높은 빌딩 꼭대기에서, 너가 주사기를 꽂고 여자들과 파티를 즐기는 것을,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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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전화 왔습니다."
"아, 누군데? 중요한 전화야?"
"받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Блин, Ай, я думаю, что мне нужно позвонить."(스벌, 야, 나 전화받아야 할 거 같아.)
"Почему это важно?"(왜 급한 전화야?)
"Я не знаю ... он сказал что я должен"(몰라, 쟤가 급한 전화래)
"Ну, атмосфера была такая хорошая, я люблю твой член"(아...분위기 좋았는데, 오빠 자지 너무 좋아)
"Пожалуйста подожди минуту"(미안 진짜 잠깐만)
"окей"(오케이)

"안녕하세요, 대표 전화 바꿨습니다."
"아 넵, 안녕하세요, 성남시장 박희철입니다."
"아 시장님이군요, 안녕하세요."
"네, 잘 지내셨나요."
"네, 잘 지냈습니다, 시장님도 잘 지내셨나요."
"네 당연합니다. 저야 뭐...참 우리 만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 전이네요. 시간 참 빨라요. 그죠?"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요."
"네 뭐...아 오늘 전화드린게 다름이 아니라, 또 대표님 고향이 우리 은행동 아닙니까. 그 우리 시에서 이번에 은행동 뒷쪽에 있던 유흥업소랑 성매매업소를 싹 다 강제폐업을 시켰어요. 그래서 이제 그 일대가 아무래도 소득수준이 낮고 이미지도 안 좋다 보니까, 거기다가 아파트를 지으려고요. 그래서 대표님께서 좀 그쪽 철거를 맡아주십사 해서..."
"아 네 저희야 좋죠. 계약합시다."

전화 한 통이면 독점계약이 끝난다. 이게 우리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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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싹 다 철거해! 사람이고 나발이고 일일이 다 끌어내고!"
"네, 대표님!"

예전의 나였다면 저기서 철거하지 마라고 집을 점거하고 있었겠지. 참, 나도 많이 성공했다. 깡패들 데리고 싹 다 끌어내야지. 시장님이 돈 두둑히 챙겨주셨겠다. 어디 한번 시작해볼까?

"오빠...!"
"어? 뭐야...김수아?"

수아다. 수아가 나를 보고 와락 껴안는다.

"오빠...여기서 뭐하고 있어?"
"너야말로 여기서 뭐하고 있어...?"
"오빠, 오빠가 설마 이 깡패들 데리고 온거야?"
"아니 수아야 그게 아니라..."
"오빠가 이 새끼들 싹 다 데리고 온 거냐고."
"......"
"내가 물어보잖아. 얘네 오빠 얘들이냐고."
"수아야 잠깐만, 이리로 좀 와봐."
"변명할 생각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얘기해."
"어 맞아. 근데 오빠도 지금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 좀 생각 좀..."
"왜 사람이 이렇게 변했어?"
"어?"
"오빠 안 이랬잖아. 내가 아는 오빠는 항상 다른 사람 생각해주고. 오빠 맨날 나한테 빌딩 있다고 자랑하고 다녔으면서 맨날 나한테 용돈 주고, 밥도 사주고 그랬잖아. 내가 그때 오빠한테 해줬던 말 기억나? 난 오빠가 나중에 진짜 돈 많은 사람되면 다른 부자들이랑 다르게 나처럼 돈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 도와주고, 기부도 완전 많이하고, 자기한테 돈 안쓰고 남들한테 돈 엄청 많이 쓸거같다고. 그래서 난 항상 오빠를 응원한다고. 그때의 오빠는 도대체 어디 가버리고...이렇게 변한거야?"
"어...근데...내 얘기 잠깐만 들어줘봐. 그게 있잖..."
"닥쳐! 오빠는 우리 상황 모르지. 우리는 있잖아. 여기서 쫓겨나면 보상금도 못받고, 길거리에서 노숙하거나 친척한테 얹혀 살아야 돼. 보상금? 안 준다며. 그래, 오빠 눈에는 우리가 자기 돈 챙기려는 더러운 속물로 보이겠지. 근데 그거 알아? 진짜 더러운 새끼는 너야."

나는 잠시동안 정신이 멍해졌다. 수아 집에서의 추억이 힘없이 깨지고 있는 수아네 집의 창문과 오버랩되었다.

수아는 부모님이 안 계신다. 아버님은 일찌감치 어머님과 이혼하시고 잠적하셔서 한동안 어머님이 수아를 혼자 키우시다 금방 돌아가셨다. 수아는 친척분의 도움과 알바로 생계를 이어나갔고, 학교 앞에서 혼자 살았다. 나는 그런 수아를 편견없이 바라보던 몇 안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솔직히 난 여자를 볼때 외모하고 몸매만 본다. 배경따윈 중요치 않거든. 왜냐? 나는 연애하는 첫번째 목적이 성욕 해소거든 사랑따위는 두번째고. 나는 수아네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낮에는 거의 항상 있었고, 가끔씩 부모님께 친구들이랑 논다고 거짓말치고 수아네 집에서 하루밤자고 오곤 했다. 그게 내 중2때 일상이었다. 중3때부터는 명문고를 준비하느라 항상 대치동에 있어야 했고, 그러면서 수아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연락을 하지 않은지 5년만, 여기서 죽이려는 자와 죽지 않으려는 자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과연 무엇이 변한 걸까. 내가 변한 걸까, 아니면 수아가 변한 걸까, 아니면 세상이 바뀐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