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쉬수이(바오딩 동북부의 작은 마을)


"덴노 헤이카 반자이!!"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한밤중에 공세를 해온 일본군에 맞서 이 지역을 지키는 26군 2사단 소속 중국군 병사들은 상당히 분전하고 있었다.


일본군의 포격과 그 뒤를 이은 1차 돌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북지나 방면군 6사단장이 시간 계산을 잘못한 나머지 지원포격이 끝나고 한참 되서야 돌격을 시키는 실수를 저질렀고, 포격 중 참호에 박혀있던 중국군은 포격이 끝나고 재정비할 시간을 충분히 벌어 일본군이 돌격하는 족족 기관총으로 갈아버렸다.


피해가 커지자 31사단장은 후퇴를 명령하고, 양측 병사들 모두 약간의 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31사단 3중대 2소대에 속한 이사하라 상등병조는, 중국군 진지에서 2km도 떨어지지 않은 벌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가 돌격하던 방향에서는 중국군의 대응사격이 그나마(어디까지나 다른 곳에 비해) 심하진 않은 나머지 사상자도 별로 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막 전장에서 돌아온 병사 치고는 상당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휴~ 지나 놈들 의외로 저항이 심하구먼, 그렇지 않냐? 이사하라."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길래 돌아보니, 그가 속한 분대의 분대장인 마츠모토 병장이었다. 그는 이사하라가 처음 군에 입대했을때도 걸핏하면 구타와 가혹행위, 욕설을 일삼던 선임들 중 그나마 이사하라를 따뜻하게 대해주던 몇 안되는 좋은 인물이었다.


"상등병 이사하라! 역시 장중정(장제스의 또 다른 이름, 장제스의 한자 독음인 ㅈㄱㅅ 중 ㅈㄱ 부분이 금지어인 관계로 넣음)이라는 놈이 작정하고 만든 선이라 그런지, 저희 황군도 돌파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내가 우리 소대장 얘기하는 걸 지나가다 들었는데, 우리 옆쪽에서 돌격하던 2중대 애들은 훨씬 피해가 큰 모양이야. 전체의 절반 이상이 죽은 부대도 있다더군."


"그게 정말입니까? 저희 쪽이 그나마 피해가 적은 모양입니다."


"다행인거지. 우리 분대원들도 다 살아있대."


"저희... 살아서 집에 갈 수 있겠지 말입니다?"


아마 원래의 일본군에서 이런 말을 했다면 얼차려 받고 신나게 얻어맞았어도 모자랐지만, 마츠모토 병장은 그의 마음이 이해됐는지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살아갈 수 있겠지. 그런 건 전쟁터에서 생각하지 않는게 좋을거야. 희망적인 것만 생각해. 예를 들면 집에 가면 뭐할지라던가."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병장님은 집에 가면 뭘 할 것입니까?"


"나는... 사실 내 고향 히로시마에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어. 이 전쟁 끝나면 결혼할거야. 봐봐. 아름답지 않나?"


마츠모토는 주머니에 항상 가지고 다니던 그의 약혼녀의 사진을 보여줬다. 이사하라가 보기에도 그 여자는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런 여자친구를 둔 병장님이 부럽습니다."


"하하하! 그렇지? 너 그렇다고 미치코 노리면 나한테 죽는다?"


"알겠습니다!"


한창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돌격 준비를 알리는 호각이 중대 사령부쪽에서 들려왔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려는지 89식 전차 여러대와 장갑차들이 도열하는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역시 우리 군은 굉장하다!'


"도츠께끼! 마에!"


뚜우~~


돌격을 알리는 호각 소리와 동시에, 마츠모토와 이사하라를 포함한 중대원 모두는 저 앞에 보이는 중국군 진지로 돌격해 들어갔다. 첫 돌격의 실패 원인인 기관총을 저지하려는지 수 대의 89식 전차가 앞장섰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덴노 헤이카 반자이이~~~~!"


이사하라는 옆의 마츠모토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전차의 뒤에서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었다. 앞쪽에서 기관총과 박격포가 불을 뿜는 소리가간혹 들리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뛰었다. 전차가 방패 역할을 해줘서 그런지 아까보다도 기관총 세례가 약한 것 같다. 그때,


"中華民國 活著!(중화민국 만세!)


그의 앞에있는 전차 쪽으로 회색 군복을 입은 병사 몇명이 뭔가 동그란 걸 두르고 달려오는게 보였다. 그게 뭔지 깨닫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그 사이 전차에 달린 기관총의 대응사격에도 불구하고 그 중 3명이 전차에 올라타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전차의 뚜껑이 터져나갔다. 몸에 수류탄을 두르고 달려오던 병사들도 흔적없이 사라졌다. 전차병들은 수류탄에 나자빠졌는지 전차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전차병의 것으로 추정되는 팔 같은 물체가 전차 밖으로 터져나왔다.


이사하라는 그 팔에 걸려 미끄러졌고, 마츠모토는 저 앞에 달려나갔다.


그때, 마츠모토쪽으로 뭔가 쐐액 하고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고, 그곳에서 박격포탄이 터졌다.


"병장님!!!! 병장님!!!!!!"


급히 달려갔지만, 마츠모토는 수 개의 파편이 배에 박히고 양팔과 왼다리가 잘려나간체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고, 간간히 말을 하긴 했는데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사하라는 그 말 중 몇개를 힘겹게 알아들었다.


"오카상... 미테 미타이...(어머니, 보고 싶어요)"


얼마 되지 않아 마츠모토는 숨을 거두었고, 이사하라 역시 이성을 잃었다.


"병장니이이이이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개같은 새끼들아!!!!!!!!!!! 죽어!!!!!!!!! 죽어!!!!!!!!!!!!"


이성을 잃은 그는 총을 집어들고 앞에있는 중국군 진지를 향해 마구잡이로 난사했다. 탄창이 빈 것도 모른체 그는 총을 쐈다. 그때 총성이 들리더니, 그의 목이 총알에 꿰뚫렸다.


잠시 골골거리던 소리를 내던 그는, 곧 먼저 간 마츠모토를 따라 그토록 싫어하던 전장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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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를 앞세운 일본군의 돌격에 변변한 대전차무기도 없는 중국군이 할 수 있는 건 수류탄이나 박격포로 전차에 사실상의 자살 공격을 하는 것 밖에는 없었고, 그것도 곧 한계를 보여 4만명 가까운 병력을 상실하고 바오딩 코앞까지 밀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중국군에 희망적인 건 일본군도 그 과정에서 9천명에 달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는 거고, 베이핑에서 장자충이 한 대로 바오딩에서도 시가전을 감행할 준비가 거의 끝나간다는것이다.


공격하는 일본군에게는 아직 부비트랩 같은 함정에 대처할 방안이 포격으로 건물을 싹 다 지워버리는 것밖에 없었고, 그러면 오히려 중국군이 잔해속에 숨어서 공격하기 더 쉬워진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는 '장제스 라인' 방어선의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인 장자커우쪽은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군 병력이 여기보다 유달리 적은 그쪽은 역시 전차를 앞세운 일본의 공격에 신나게 밀리고 있었고, 1시간 전 보고 기준으로는 장자커우 시청 20km까지 일본군이 접근해왔다고 한다.


또다른 방어선의 한 부분인 창저우쪽은 아직 보고가 없다.


나는 원래 밤잠이 없던지라 거의 5시 가까운 시각까지 밤샘을 해도 지금은 끄떡없었다. 물론 이것도 너무 많이하면 문제지만.


회의실에 긴장감이 감돌던 그때, 전화가 울렸다.


"총통 각하, 창저우 북부를 지키던 탕언보 13군장이 일본군 지나주둔군 1여단의 공세를 격파, 일본군은 톈진 방면으로 후퇴중이며 반격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허가할까요?"


"지금은 아직 일본의 공세가 끝나지 않았으니, 반격은 아직 생각할 때가 아니네."


생각해보니 탕언보는 원 역사의 베이핑 탈환전에서도 무리하게 반격을 펴다가 부대를 말아먹은 전과가 있었다.


일단 모든 지역에서 보고가 들어왔으니 정리해보면, 원 역사인 8월 말보다 좀 빠른 8월 초에 '장제스 라인' 에 대한 공격이 들어왔음에도 장자커우를 빼면 잘 버티고 있었다. 특히 창저우는 아예 공격해오는 일본군을 털어버렸고. 내가 미래를 알고 있어 일본군의 주요 공격 루트로 예상되는 지점에 효율적으로 군단들을 배치했고, 그게 지금 효과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지역에서의 공통된 보고는 한 가지 애로사항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군의 전차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단이 없다는 것. 사실 전차라면 우리도 있긴 하지만 일본에 비해 수던 질이던 부족하고, 그나마 일본 전차랑 싸울만한 전차들은 곧 있을 일본의 상하이 공격 (제 2차 상하이 사변)에 대비해 항저우에 배치해뒀다는것.


미국이나 독일에 대전차무기를 추가로 요청해야되겠다. 내 기억으로는 이 시대쯤에 초기형 대전차무기가 나왔고, 일본군 전차의 종이장갑은 그 무기 정도면 충분히 격파할 수 있을거다.


일본군 상대로 한 숨 돌리고 나서는, 일본에 대한 반격 및 마오쩌둥과 빨갱이들을 토벌할 작전을 계획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