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결승전입니다! 현재 부동의 1위, 제니스 카파블 선수 입장합니다!"
내가 링 위에 올라갔다. 과연 세로프는 나를 이길 수 있을 지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학생의 몸으로 이곳 결승전까지 올라온 세기의 신동 세로프 누츠누트 입장합니다!"
세로프가 자신만만하게 링 위를 올라갔다. 세로프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나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눈빛. 그 베짱이 마음에 들었다.
"예선전에서 만17세의 몸으로 챔피언 후보 코르데 사이언츠를 제압하고 유력한 우승후보인 랭킹 2위 콩 지노까지 단숨에 제압한 세로프 누츠누트! 과연 유력한 우승후보인 랭킹 2위 콩 지노까지 단숨에 제압한 세로프 누즈누트는 과연 부동의 랭킹 1위인 제니스 카파블 선수까지 무릎꿇릴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제니스의 벽에 가로막혀 질주를 멈출 것인가! 제니스 카파블 대 세로프 누츠누트! 지금 시작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원하지 않던 싸움을 해야만 했던 것이. 나는 지긋이 그것을 생각해보며 국내리그 결승전에 임했다.


*


시작은 레스톡-카그란 전쟁이었다.

"응애! 응애!"
레스톡 왕국의 국경마을 프론토. 국경에서 10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이지만 레스톡 왕국의 적대국인 카그란 제국과의 잦은 소규모 교전으로 인해 잊을만 하면 피해를 입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주민들과 이곳을 지나가는 무역인과 군인과 진상조사단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한 여인이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상황이었다. 프론토는 카그란 제국이 한순간에 막강한 화력으로 레스톡 왕국을 공격하여 희생당한 두번째 마을이었다.
"제레나! 빨리 도망가! 카그란 놈들이 벌써 근처까지 왔어!"
"하지만 나는...!"
제레나의 옆집에 살던 파실라가 제레나를 재촉했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제레나의 출산을 도와줬던 파실라는 알 수 있었다.
"산후통 때문에 못 움직이겠는 건 알겠어. 하지만 도망가야 한다고! 정신차려!"
그 말에 제레나가 그녀의 아들을 누인 아기침대를 들고 걸으려 했다. 그러나 제레나는 한 발짝 가다가 중심을 잃었다. 파실라가 겨우 한쪽 팔을 부축하여 아기침대가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아기침대는 나한테 맡겨. 내가 어떻게든 들고 도망쳐볼테니까. 그러면 걸을 수 있겠지?"
"못 걷겠어. 날 두고가."
"제레나! 할 수 있다고!"
그 때 제레나의 집 앞에 총성이 다발적으로 울렸다.
"제레나! 제발!"
"아니야. 차라리 나 대신 내 아들만이라도 데리고 도망가. 난 이제 가망이 없어."
"제레나!"
"제발! 살아남으면 일요일에 폰토의 금빛다리에서 만나자. 그 때 내 아들을 다시 돌려줘."
제레나가 그 말을 하고 기력을 잃고 쓰러졌다.
"얘가 진짜!"
"그렇게 해줘. 난 가망이 없어."
파실라는 한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어려운 결정을 한 듯 아랫입술을 콱 깨물며 몸을 떨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파실라가 제레나의 아들이 담긴 아기침대를 들고 문 밖으로 나와 하염없이 도망쳤다. 제레나의 아들이 울고 있었다.
그 때였다. 그녀가 왔던 방향으로 비명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파실라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파실라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제레나였다.
학살로 악명높은 카그란 제국의 군인이 어느새 제레나의 집까지 들이닥쳐 마음껏 약탈하고 있었다. 제레나는 집 밖으로 강제로 끌려나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드러누워있었다. 그녀의 가슴팍은 이미 카그란 군인의 칼로 인해 엉망이었다.
"오 이럴수가..."
파실라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쳤다. 방금까지 옆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끔찍하게 숨통이 끊어지다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그 때 아기침대에서 이상한 빛이 뿜어져나왔다. 파란색 빛이었다. 파실라가 놀라서 그 아기침대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파실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서 막대한 양의 마력이 뿜어져나온 것이었다.
아기는 엄마의 죽음을 느꼈는지 크게 울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는 너무 커서 카그란 군인들이 모두 아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정도였다.
"레스톡 사람이다! 죽여라!"
카그란 군인 몇 명이 파실라와 아기를 향해 소총을 쐈다. 그러나 그 때 경이로운 일이 일어났다. 총알이 아기로부터 나오는 빛에 닿자 그 자리에서 멈추더니 밑으로 떨어졌다.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모르겠다. 쏴라!"
카그란 군인들이 아기와 파실라를 본격적으로 적군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그 때 아기가 더 크게 울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빛이 뿜어져나오더니 뎌러 갈래로 갈라져 파실라를 제외한 주변의 모두를 덮쳤다. 아기 근처에 있던 카그란 군인들이 모두 소리 한 번 못 내고 쓰러졌다.
아기는 그러고도 끝나지 않았다. 아기는 빛을 더 멀리까지 보내 근처에 숨어있던 카그란 군인들마저 모조리 죽였다. 그 모습은 마치 어머니를 잃은 절규였다. 다른 군인들과 달리 방금 제레나를 무자비하게 살해한 군인들에게 빛이 여러 번 뿜어진 것을 보면 특히 그랬다.

그렇게 제레나 카파블의 아기 제니스 카파블의 원치않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경기장 위에서 빛을 뿜었다. 세로프가 그것을 보고는 마법으로 방어막을 만들었다. 내가 세로프에게 빛을 발사했다. 세로프의 방어막은 내 공격을 충분히 막아내었다. 세로프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세로프가 방어막으로 내 공격을 막는 와중에도 무슨 재주인지 전격 마법과 바람 마법으로 일종의 검을 만들어내었다. 아마 저것은 나무 계열 마법을 극한까지 활용한 것. 역사 이래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나무 계열 마법이었을 것이다.
세로프의 전격이 나에게로 날아들었다. 나도 빛으로 방어하려고 했지만 나의 마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지어본 적 없는 편안한 미소가 지어졌다. 드디어 1등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


"이 아이가 그 아이란 말인가?"
대마법사 에뉴린 가미지가 갓난아기인 제니스 카파블을 어루만졌다. 국정원 고위요원 베크마 룰이 말했다.
"네. 이 아이이게서 갑자기 빛이 뿜어져나오더니 카그란 제국 군인 24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소대 하나가 전멸한 셈이죠."
"24명이라. 갓 태어난 갓난아이가 그런 마법을 쓰다니. 무슨 사연이 있으려나."
"이 아이를 가지고 피난하던 파실라 카이버에게 듣기로는 이 일이 있기 직전 이 아이의 어미가 죽았다고 합니다."
"아이고 그런 일이. 그래서였구만. 불쌍해라. 그럼 어디 한 번 보도록 하지."
에뉴린이 제니스의 이마와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결과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이 동그래졌다.
"이 아이 선천적으로 마력이 매우 강력해. 벌써부터 대마법사인 나보다도 높아."
"진짜요?"
"그래. 이 아이가 어른이 된다면 세상에 이 아이를 이길 자는 찾아보기 힘들 거야."
"그런 게 가능하다니... 그럼 앞으로 이 아이는 어떻게 해야하죠? 아버지 하르나스는 군대에서 싸우다 죽고 어머니 제레나는 학살로 죽었는데."
"글쎄, 그건 하기 나름이지. 일단 파실라를 보모로 삼고 국정원에서 지원해줘야겠어."
"그럼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아이가 삐뚤어지지 말아야 할텐데."
에뉴린이 제니스를 지긋이 보았다. 



*


"이 무슨 일입니까! 지금까지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제니스 카파블이 세로프 누츠누트에게 패배였습니다! 역시 세기의 신동으로 불리는 세로프 누츠누트입니다!"
사회자가 1세트의 결과에 놀란 듯 했다. 하긴 지난 평생 한 번도 져본 적 없는 내가 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았다.
나는 2세트를 준비하기 위해 다시 링 위에서 자세를 잡았다. 
벨이 울렸다. 링 위에서 다시 대결이 펼쳐졌다.


*


점점 시간이 지났다. 나는 남들처람 한 살 한 살 나이를 막었고 키도 그에 따라 커졌다. 여기까지는 평범했다.
국가는 나에게 능력을 기대했고 나는 여기에 부응할 수 밖에 없었다. 국정원이 내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웬만한 정부요인들도 나를 찾아와 귀여워하면서도 감탄했다. 유치원 때부터 나는 웬만한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았고 초등학교 때 나는 대학교 전공 수준 마법까지 전부 마스터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싸우는 법을 배웠고 중학교 2학년에 대마법사 에뉴린 가미지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판단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국정원이 해보라고 권유해서 몸도 만들었다. 이 때 근육이 붙었다.
솔직히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주변의 기대가 나를 밀어붙였다. 이것이 어쩌면 나의 운명같았다.

만 15세, 다시 말해 중학교 3학년 때 일어난 제2차 레스톡-카그란 전쟁에서 국정원에서 나의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전투에 투입한 적이 있었다. 내가 어머니처럼 여기는 파실라 카이버는 그런 위험한 곳에 왜 보내냐면서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나의 힘을 두 눈으로 보고는 말없이 허락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 전장과 마주했다. 넓은 초원과 신산한 바람이 인상적이었던 그곳은 그새를 못 참고 또다시 선제공격한 카그란 제국의 군인들로 가득했다.
나는 중대 규모의 군대 속에 있었다. 주변 군인들이 중학생이 여기 왜 왔냐고 궁금해하며 쑥덕거렸다. 누군가는 중학생 때가 좋았다며 추억했다. 그러나 곧 저쪽에서 울려퍼진 총성에 그런 대화는 금방 끊겼다.
적이 우리 군인들을 향해 총을 갈겼다. 마법사 국가인 레스톡 왕국의 특성 상 마법으로 막아내었다. 그러나 카그란도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미 납치한 레스톡 사람들에게서 마력을 뽑아 무기를 만들어놓았던 지라 쉬운 전쟁은 아니었다.
"가보게나."
중대장인 프레드가 버로우스 대위가 말했다. 이 분도 국정원 소속이라 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 한 번."
제니스가 전장에 나갔다. 카그란 군인들이 왜 중학생이 여기서 나오는 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이내 손쉬운 먹잇감이라고 생각을 바꾸어 총을 쐈다.

그러나 그것은 제니스에게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았다. 제니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카그란 군인들의 총알을 멈추고 튕겼다. 총알이 카그란 군인들에게 다시 돌아가 박혔다.
"뭐야, 전쟁 별 거 아니잖아."
아까 총알을 맞은 군인 2명이 죽은 것을 보고 뒤에 있던 카그란 군인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저 중학생이 레스톡의 최종병기인가 하고 카그란이 대응하기 시작했다.
카그란 군인이 전차포를 쏘았다. 마력을 넣어 개조한 전차였다. 이 무기는 제대로 맞으면 레스톡 군 전체가 혼비백산할 수준이라 이 정도로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이건 또 뭐야?"
제니스가 별 거 아니라는 듯 전차에서 날아온 탄환을 허공에 멈췄다. 제니스가 그 탄환을 다시 반대쪽으로 보냈다. 그러자 카그란 진영에서 큰 폭발이 일더니 그쪽 군인들이 우왕좌왕했다.
"오, 이런 무기구나."
"쟨 또 뭐야? 최대한 모든 화력을 저 아이에게 집중한다!"
"예!"
그 때 동시다발적으로 전차포와 수류탄 등이 나에게로 날아왔다. 나는 바로 방어진을 만들어서 반사시켰다. 그러자 전차포를 쏜 쪽에 큰 폭발이 일어나 그곳 군인들이 전멸했다.
그러자 카그란은 그걸 보고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사기를 잃었다. 금방이라도 달아나려는 병사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이 쯤이면 됐다고 판단하고 프레드가에게 다시 갔다.
"이 정도면 되죠?"
"어, 그래. 내 생각을 한참 뛰어넘는구나."
프레드가 대위가 입을 딱 벌리면서 말했다. 표정이 얼떨떨해보였다. 아직도 놀라움이 멎지 않은 것 같았다.

지역 이름을 따서 가스토 전투라고 불린 이 전투는 레스톡 측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다.


*


"이럴수가! 제니스 카파블이 세로프 누츠누트에게 2번 연속으로 패배! 이제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는 건가요? 아니면 제니스가 역전승으로 세로프를 이길까요?"
2세트마저 세로프가 이기자 사회자가 호들갑 떨며 진행했다. 관중들이 엄청 집중해서 이 경기를 보고 있었다.
드디어 나보다 강한 자가 나오는 것인가 하며 안도했다. 이제 이 자리에서 내려와 평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3세트의 시작을 알리는 링이 울렸다.

*


그 후로도 나는 이곳저곳에 많이 불려갔다. 솔직히 하기 싫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평화로운 집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힘은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내 힘을 보고 국가와 국민은 나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기대했다. 그럴수록 나는 몸을 점점 더 단련해야 했고 결국 웬만한 운동선수 못지 않은 근육을 지니게 되었다.
내가 5번째로 참전한 메디아 전투에서 보병중대 궤멸. 시르타 전투에서 기계화소대 전멸. 사이키아 전투에서 기계화중대 궤멸. 떴다 하면 중대 하나를 날려버리는 괴력으로 인해 내 이름은 금세 유명해졌다. 모든 국민들이 내 이름을 알았고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그러나 나는 할 수록 내가 이걸 왜 해야하나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압박감이 어깨를 짓눌러 거부감이 들었다. 나의 능력이 그런 감상적인 곳이 아닌 험악한 곳으로 나를 자꾸만 이끌고 있었다.
이 능력이 싫었다. 이 능력은 나의 소박한 꿈 하나 이루지 못하게 했다. 기회만 있다면 지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소대 하나를 전멸시키고 있어 지는 것이 불가능했다.
싸우는 것이 싫었다. 전쟁은 결국 사람을 죽이는 것. 하나하나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감정을 표출하고 싶지만 나타낼 적절한 단어가 없었다.
어느새 나는 카그란 제국의 1순위 제거목표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 누가 와도 나를 이길 수 없었다. 총도 독도 모두 내가 해결 가능한 범위였다. 싸우는 것이 싫었지만 죽는 것도 싫었기에 나는 나에게 다가오는 적들을 모두 이겨버렸다.
소꿉친구인 에스다 가미지를 볼 때면 자꾸만 이런 힘이 미웠다. 나보다 한 살 정도 어린 에스다는 대마법사 에뉴린의 피를 물려받아 남들보다 훨씬 강력했다. 그래서 나랑 비등비등할 줄 알았더니만 내가 에스다를 완전히 넘어서있었다. 그래서 에스다는 내 힘을 동경하면서 경의 반 우정 반으로 나를 대했다.
나는 내 힘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에스다처럼 평범하게 강했다면 이렇게 전장에는 안 불려나갔을 것이었다. 에스다는 그의 아버지와 할머니처럼 국정원에서 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에스다가 부러웠다. 전장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국정원이 더 나았다.

내가 활약하다보니 전쟁이 끝났다. 제2차 레스톡-카그란 전쟁에서 카그란 제국이 레스톡 왕국에게 역풍을 맞고 몰락했다. 레스톡은 카그란이 강제로 병합한 영토들을 다 뱉게 하고 빅시스 등 여러 국가들을 독립시켰다.
그리고 나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나 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몇 년 후 카그란이 뭔 짓을 했는지 다시 전쟁을 걸었다. 이번에는 마이어리 제국도 함께였다. 간만에 조용히 사나 했더니 더 큰 전쟁이 또 일어나자 국민들이 내 이름을 갈망했고 국가는 나에게 참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조용히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운명이 가혹했디.
이 전쟁은 어느새 여러 나라들이 휘말리면서 스케일이 커졌고 나는 고등학생인데도 이곳저곳으로 불려나가 중대와 대대를 처리했다. 카그란과 마이어리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내 평온을 깬 죄로 카그란과 마이어리를 단죄했다. 그리고 나는 인간병기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추후 세계대전이라 불린 이 전쟁에서 레스톡 측이 승리하여 여러 나라들이 카그란을 분할통치하게 되었다. 여기서 나도 조약에 사인해야 할 정도로 큰 공적을 남겼다.
이제 끝나나 했다. 이제 평화롭게 살고 어깨가 가벼워지나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국지전 수준의 작은 전쟁이 반복되었다.

나는 이 작은 전쟁에서 도망쳤다. 이제 큰 전쟁은 없을 것이니 내 힘이 필요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국민과 국가는 나를 놔주지 않았고 여러 자리들을 제안했다. 달콤한 제안도 분명히 많았지만 나는 단지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국가는 끊임없이 달라붙었다. 나는 적절한 핑계를 찾기 위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다 해보았다.
그 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국제마법대회. 이제 선수나 코치로 살겠다고 하고 군인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다. 다행히 국가는 이를 받아들였다. 아깝지만 선전도 되고 국내 고급 마법사를 육성하는 데도 도움이 되긴 하기 때문에 차선택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바로 국제마법대회에 도전장을 던졌다. 전쟁영웅이 대회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국내예선과 국제예선리그와 본선토너먼트를 모두 거쳐 1등을 차지했다. 이 때 사람들이 나를 가장 나중에 만난 사람이 2등을 하는 대회라고 평가했다. 
싸우기 싫어 도망친 곳에서 이렇게 되다니 참 아이러니였다. 그아마 이곳은 스포츠맨십을 지켜야 하고 살인이 안 된다는 게 장점이라 여기에 남기로 했다.


*

벨이 울렸다. 경기가 끝났다. 세로프는 이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다. 0:3. 세로프의 완승. 내 기대보다 세로프는 아주 강력했다. 나로서는 최고의 결과였다.
무슨 수식어를 갖다붙여도 모자랄 이 희대의 결과 앞에 관중들이 소리지르며 환호했다. 이전의 챔피언은 지나가고 이제 세로프의 시대가 온 것이었다.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해방감.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인간병기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기뻤다. 세계 최강이라는 무게는 이제 나의 어깨를 짓누르지 않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어느정도 덜 수 있을 것이었다.
후련했다. 홀가분했다. 속이 시원했다. 구속이 풀리는 듯한 감정이었다.

나는 바로 결과에 만족하고 링 밑으로 내려왔다. 링 밑에서 링 위를 올려다보니 세로프가 나를 이겼다며 기자들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다.
그래, 이걸로 된 거지.

이후 나는 은메달을 받았다. 이 은메달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금메달과 트로피와 챔피언벨트보다도 더 값졌다. 이 은메달은 내가 그토록 고대하던 나의 모습이었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손에 든 상품만큼 나의 마음도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