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프리퀄 21
코핀함은 수많은 침식체에 둘러 쌓였다.
밀려드는 침식체들과 코핀함 생존자들의 난전 속에 최고 원로와 라투스 만이 간신히 함선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최대한 몸을 숨겨 전력으로 빠져나온 결과 두 명의 탈출은 성공적이었다.
함선에 붙은 셀 수 없이 많은 침식체들을 언덕에서 내려다 보던 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농락하며 끝낼 수 있었던 에스퀘데 저택에서는 양한솔이라는 놈 때문에 모든 걸 망쳤다. 견습 나부랭이에 불과했던 놈이 갑자기 저런 힘을 가지고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라투스에게는 너무도 부조리하게 느껴졌고, 라투스 안의 열등감을 자극시켰다.
'제미니아도 놈에게 푹 빠져서는……, 나오기 전에 기회를 봐서 처리할 걸 그랬어.'
최고 원로 또한 마찬가지의 생각이었다. 과거 자신이 개입했던 양씨 가문 사건의 생존자가 강대한 힘을 가지고 나타난 것도 아니꼬왔지만, 대외적으로는 13의 넘버링을 가진 태스크포스였지만, 양한솔을 지원하기 위해 너무도 때맞춰 도착한 코핀 컴퍼니라는 정체불명의 태스크포스에도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아직 재기의 기회는 있다. 이 곳은 구원 기사단의 영지다. 놈들이 활개치기 전에 옛 동료들에게 합류할 수 있다면 게임을 더 유리하게 이끌 수 있어.'
최고 원로는 라투스에게 호위역과의 만남을 재촉했다.
"그래서, 궁수는 어디에 있지?"
"궁수는 저 언덕 너머에 대기시켜 놨습니다."
이면세계의 황량한 언덕이 지평선 너머로도 깔려 있었고, 최고 원로와 라투스는 말없이 언덕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라투스가 가르킨 지평선에 가까워지자 점점 주위에 침식체의 시체와 사람의 키만한 화살이 무수히 꽂혀 있었다.
라투스는 비록 고심도 마냥 강력한 침식체는 나오지 않지만, 궁수자리 단 혼자서 이 모든 시체밭을 일궈냈다는 것에 소름이 끼칠 정도 였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침식체의 시체는 늘어만 갔고, 꽂혀 있는 화살 또한 늘어났다.
"대단하군, 호위역으로는 손색이 없겠어. 진작 놈을 고립시켜 장기말로 만들어뒀던 것이 좋은 선택이었군."
라투스는 사소한 걱정이 있었다.
최고 원로는 분명, 궁수자리의 길포드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주기 위해 그의 아내를 끊임없이 괴롭혀 이윽고 사망에 이르게 했었다. 물론, 그가 양자리에게 사망한 지금은 루크레시아에 의해 언데드가 되었을 테지만, 과거에 품은 원한으로 인해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었다.
'최고 원로가 알아서 잘 했겠지. 내가 따르려면 그 정도의 앞가림은 해주길 바라는데.'
이윽고, 라투스가 가리킨 지평을 넘어 궁수자리를 마주할 시간이었다.
─이상했다.
놈은 양자리에게 사망했을 터였다.
언데드가 된 조디악나이츠는 별의 무구는 몰라도 그 몸에 깃든 별의 힘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 하늘에 뜬 선명한 궁수자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저 높게 뜬 궁수자리의 아래에는,

─복수의 화신이 서 있었다.
"라투스?"
손이 결박된 최고 원로가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의 가장 믿고 있었던 장기말은 이 세상 누구보다 자신에게 살기를 띄고 있었다.
"최고 원로님. 뭐, 뭔가 이상합니다."
언덕 너머 저 멀리 선 복수의 기사는 궁수자리의 아래에서 원한의 청산을 맹세한다.
그가 활에 수십발의 화살을 매겨 하늘을 물들였다.
하지만, 그 화살 중 어느 것도 최고 원로와 라투스를 꿰뚫지는 못했다.
다만,
"이건, 감옥 인건가? 건방짓 짓을 하는군. 주인을 못 알아보는 개라니, 당장 굴복시켜라. 라투스."
인간의 키에 이르는 크기를 가진 화살이 라투스와 최고 원로를 감옥처럼 포위했다.
최고 원로는 상황 파악이 안된듯 궁수자리를 통제하지 못하는 라투스를 꾸짖고 잇었다.
'멍청한 노친네 같으니, 우린 이제 끝났어. 양자리 놈이 무슨 수를 쓴거라고.'
라투스가 목줄을 조일 생각을 하지 않자, 최고 원로는 본인이 직접 위엄을 보이기로 결정했다.
"네 놈. 당장 이 구속을 풀어라. 사냥개의 주인으로서 명한다."
최고 원로는 팔을 내밀고, 근엄하게 궁수자리에게 명령한다.
궁수자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
궁수자리의 길포드, 레드시프트 부단장은 동료의 원수로서 동료의 원수에게 허공에서 시위를 매겼다.
하늘에 떠 있는 궁수자리에서 짧게 빛이 반짝였다.
"……어?"
하늘에서 발사된 눈으로 쫓기 힘든 빛줄기는 최고 원로의 능력 발현을 막던 구속구를 깔끔히 벗겨냈다.
─그 손목 째로.
"으, 크아아아아악!"
최고 원로가 고통에 못 이겨 비명을 지르며 땅을 기었다.
궁수자리의 길포드는 천천히 그들에게 걸음을 옮겼다.
"기다렸다."
쓰러져 기던 최고 원로는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된 듯 공포에 질려 좁디 좁은 화살의 감옥에서 길포드에게 최대한 멀어지려 발버둥을 쳤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게 무슨 일인가! 라투스!"
이 모든 상황이 이해 된 라투스는 허탈한 웃음을 내비쳤다.
"계획 실패입니다. 양자리가 놈을 죽이지 않았어요. 놈은 당신을 죽이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린 겁니다."
"그……, 그게 무슨."
최고 원로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자신이 궁수자리를 견제하기 위해 했던 모든 악행이 스멀스멀 전신을 기어올랐다.
"제미니아가 나한테 말했다. 양자리는 내가 죽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길포드가 다시 시위에 손가락을 걸었다.
"양자리는 내 잘못을 알려 주었다. 나는 나만을 위해 너무도 많은 동료들을 죽였어. 그녀가 살아돌아온다 해도 꼭두각시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야."
길포드는 담담하게 말하며 시위를 놓았다.
최고 원로의 오른 다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으아아아아아악!"
최고 원로는 온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물을 흘리며 실신 직전이었다.
"라, 라투스! 제발 놈을 막아주게! 부,탁이네!"
최고 원로는 덜덜 떨면서 라투스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그 동안 보였던 위엄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추잡한 모습에 라투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저도 무척 아쉽지만, 저 괴물이 저를 노리지 않는다는 게 그나마 나은 상황인데, 제가 당신을 도울 이유가 있습니까?"
"라투스, 네 놈!"
라투스가 최고 원로를 뿌리치자 밀쳐진 그는 길포드의 바로 앞에 던져지게 되었다.
"길포드! 내가 정말 미안하네, 길포드!"
최고 원로는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원했다.
"하지만, 나는 잘못을 알면서도 너를 죽여 마지막 죄를 쌓는다."
길포드는 시위를 매겼다.
시위를 놓았다.
다시 시위를 매겼다.
시위를 놓았다.
시위를 매겼다….
놓았다….
매겼다….
놓았다….
-
길포드가 등을 돌리며 본인이 만들었던 화살 감옥으로부터 화살 두개를 뽑아내 라투스가 빠져나올 길을 만들었다.
바닥에는 최고 원로였던 고기조각이 방금의 참상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나는 살려주는 건가, 길포드?"
길포드는 라투스에게는 어떠한 관심도 주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은채 다시 언덕 너머로 걸어가려 했다.
라투스는 안도했지만,
순간, 마음 속으로부터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더러운 감정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레드시프트의 동료 모두에게 가지고 있었던 악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라투스의 내면에 깊이 잠든 열등감, 낮은 자존감으로부터 이루어진 괴물이 깨어났다.
'네놈도 나를 무시하는 구나, 그렇지?'
그때부터는 조디악나이츠 최강에 비견 될 길포드도 어찌 할 수 없었다.
라투스의 능력, 게자리의 집착이 그의 허리와 오른팔을 앗아갔다. 균형을 잃은 길포드가 땅에 쓰러졌고, 양한솔과의 전투의 부상이 낫지 않은 길포드를 라투스가 뽑아낸 화살로 난도질을 했다.
"하아, 하아. 퉷."
땅에 쓰러져 피투성이가 된 길포드에게 침을 뱉고는 라투스는 품에서 조악한 기계 장치 하나를 꺼냈다.
"이거나 먹어라."
쓰러진 길포드의 가슴팍에 떨어진 기계 장치는 '이터니움 공명파 발생기'였다.
작디 작은 장치였지만, 주위의 침식체를 끌어들이는 기능을 가진 반인도적인 함정 장치였다.
"네 놈 시체를 먹이로 주마."
라투스는 그 말을 하고는 언덕 너머로 사라져 갔다.
라투스의 모습이 멀어지고, 길포드는 짧게 호흡했다.
온 몸을 난도질 당했고, 허리 아래와 오른팔은 움직일 수 없다. 아무리 그가 최강이라고 불릴지라도 이번에는 어쩔수가 없었다.
1종, 2종 침식체들이 저 멀리서 벌떼처럼 몰려 들고 있었다. 아마, 추락한 코핀함 방향이었던 것 같다.
"……왔구나."
길포드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그토록 그리웠던 그녀가 보였다.
"너를, 위해……, 해왔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모두, 잘, 못 되었지만……."
그녀는 과거의 그 때처럼 그에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녀의 환영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곧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리라.
그의 주위엔 이미 수많은 침식체가 모여 있었다. 무력화 된 그의 신체를 섭취하는 녀석도 있었다.
길포드는 움직이지 않는 팔로 매겨지지 않는 시위를 힘겹게 매겼다.
궁수자리는 하늘에서 마지막으로 빛나리라.
"그래도, 나는……, 너를."
길포드의 숨소리가 멎어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시위를 놓았고, 하늘에서 무수한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사랑했다."
길포드의 숨이 멎고, 그녀의 환영이 사라진 그곳엔,
이면세계에서 필리 없을,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