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 채널

헤비코의 먹물로 범벅이 된 잉그리드의 집무실.


돌로레스의 방해 전파 탓에 뇌의 전기신호를 탈취해 명령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주변에 흩뿌린 전파가 반사되어 돌아와 주변을 탐색하는 건 가능하다.


"시카노스케, 위치는!"

"등을 밀어서 가르쳐줄게!"


도주? 바보 같은 소리를. 이곳은 요미하라. 노마드의 안마당과 다름 없다.

잠입조는 오보로의 제압만으로 바쁠 거다. 괜히 잉그리드를 꼬리에 문 채 달고 나오면, 추격 도중 그쪽으로 잉그리드가 가버릴 수 있다.


그래서야 임무 실패.

잉그리드를 확실히 잡아둬야 한다.


물론 잉그리드를 쓰러뜨리거나 인질로 잡는 건 어렵다.

그러나, 여기에는 잉그리드만 있는 게 아니다.


"뭐, 뭐야, 우와아아아아앗!"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시카노스케의 위치 탐색을 믿고 내달려, 돌로레스를 인질로 잡는다.

잉그리드의 능력은 강력하지만, 그렇기에 주변이 휘말려 들 수 있다.


이런 집무실에서 예의 사염을 터뜨리진 않겠지. 그걸 노린 기습 공격, 그리고 인질 포획이었다.

그때였다.


"휘몰아쳐라, 마검 사쿠라블로섬!"

"!?"


빛도, 색도, 모든 것을 칠흑으로 물들인 헤비코의 먹물 공간에, 연분홍빛 꽃잎이 떠오른다.

하나가 아니다.


수를 계속해서 불려나가, 점차 방 안 가득 채운다.

어둠이 물러나고, 만개한 벚꽂의 색 아래 우리들의 위치가 노출된다.


"......썩어도 마계기사라는 건가. 과분한 물건을 손에 쥐고 있군."

"썩어도, 라는 건 빼라! 나는 엄연히 마계기사다!"

"그래. 그런 리나를 인정하며, 내가 친히 하사한 마검이다. 내 최측근을 너무 얕보지 말아주었으면 하는데."


최측근이라는 말에 바로 표정이 느슨해지며 헤헤거리는 리나를 뒤로 하고, 우리를 포착한 잉그리드가 마검 다크플레임을 뽑아든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돌로레스의 목에 쿠나이를 가져다 댄다.


"움직이지 마라. 허튼 짓을 한다면 이대로 목을 그어버리겠어."

"미, 미안해......언니! 나, 붙잡혀 버렸어......!"


잉그리드는 미간을 찡그렸다. 소중한 가족을 인질로 붙잡혔는데, 설마 과감하게 나서진 않겠지.

그러나──.


"돌로레스. 나를 믿나?"

"언니?"


다크플레임에서 검푸른 사염이 화르륵 타오른다.

이 자식, 설마......!


"나의 불꽃은 한 번 타기 시작하면 재가 되기 전까지 꺼지지 않는다. 그게 누구라도. 나 역시 마찬가지. 이것은 그만큼 위험한 마검이다. 그런데도, 널 구해내기 위해 휘두른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겠나?"


돌로레스의 떨림이 전해져 온다. 신뢰와 공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유키카제와 헤비코가 틈을 노리고 있지만 리나가 앞에 나서 가로막는다.


시카노스케는 전력으로 삼기 어렵다.

실질적으로 잉그리드와 대치하는 건 나 하나 뿐.


이윽고, 돌로레스의 떨림이 가라앉는다.


"......응, 믿을게, 언니!"

"착한 아이군. 그럼, 언니로서 나서볼까."


각오를 다진 잉그리드의 눈빛. 저건 진심이다.


휘둘러지는 검. 허공을 뱀처럼 유영하며 날아드는 검푸른 사염.


"망할......!"


나는 돌로레스를 들어올려 방패로 삼는다. 그러나, 검푸른 사염은 유도 미사일처럼 돌로레스의 몸을 빙 돌아, 내 왼팔에 직격했다.


"크윽!?"

"후마짱!"


단호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여전히 돌로레스를 놓지 않은 채 동료들 쪽으로 달린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동료인 만큼, 내 의사는 확실히 알아본다.


"......! 아아, 정말! 나중에 후회하지나 말라고!!"


유키카제가 전신에서 강력한 전격을 발한다.

피아구분 없이 막 흩뿌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적의 눈가림을 위해.


"후마짱, 미안해!"

"미안해 할 것 없어. 내 바보짓이 원인이니까!"


시카노스케가 나에게 달라붙어, 머리에 두 손을 얹고 뇌에 직접 전기신호를 흘려넣는다.

이걸로 통각은 멈췄다. 그리고, 헤비코의 닌자도가 내 팔꿈치 아래를 절단한다.


통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해도, 몸에서 무언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은 분명하다.

내 옷 속에 숨어 있던 디아가 튀어나와 회복 마술을 펼친다. 출혈을 막는 게 고작이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가자!"


여전히 돌로레스를 인질로 삼아, 어둠의 궁전에서 탈출하기 위해 달린다.


"놓칠 거라고 생각마라!"


리나가 검신에 벚꽃잎 돌풍을 머금고 달려 들어온다.

그러나 유키카제의 뇌격에 튕겨 날아간다.


우리를 쫓을 수 있는 건 잉그리드 뿐.

나는 돌로레스를 헤비코에게 떠넘기고, 잉그리드가 보란 듯이 웃으며 쿠나이를 그녀의 옆구리에 처박는다.


"으극......!"

"?!"


친애하는 여동생이 피 흘리자 멈칫하는 잉그리드.


"쫓아오면 이 녀석을 죽여버리겠어! 처신 잘 하라고, 잉그리드!"

"네놈......!"


우왕좌왕 하는 경비병들을 돌파해, 요미하라 한복판을 질주한다.

아직 상황 파악 못한 어둠의 주민들이 의아해 하지만, 곧 상황을 깨닫고 덤벼들어 올 거다.


여기선 쫓기는 녀석이 나쁜 거니까.

전국시대의 낙오무사 사냥처럼, 사정도 모른 채 이쪽을 공격하러 올 거다.


그 전에 아군과 합류해야 했다.


"어디로 갈 생각이야, 후마!"

"잠입조에게로 간다!"

"뭐어? 잘못하면 잠입조까지 적들에게 둘러쌓여 뭇매를 맞는다고!"

"어쩔 수 없어! 우리들끼리 오차로 돌아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퓌르스트가 오차를 습격하는 건 막을 수 없다.

얼마나 피해가 생기든, 마을에 남아있는 자들이 시간을 벌어주거나, 격퇴에 성공하기를 기원하는 수 밖에.


"우리는 엄청난 손해를 봤어! 이 손해를 메꾸려면 단순히 오보로 포획만으로는 부족해!"


그래. 포획만으로는 끝낼 수 없지.


***


쿵! 하고 오보로는 벽에 처박혔다.

바닥에 주르륵 미끄러져,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리면, 턱밑을 아사기의 닌자도가 들어올린다.


"이걸로 끝이다, 오보로."

"하......다 이겼다는 양, 지껄이기는."


함정을 파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정면승부에서 아사기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보다 몇 년 전에도, 오보로는 부하들을 이끌고 아사기를 습격한 적 있지만, 끝내 패배하고 말았던 것처럼.


'잉그리드......이 망할 년이......'


사실상 패배하고 사로잡힐 위기에 처했음에도 허세를 부리는 오보로.

그러나,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다.


요미하라 한복판에, 소수정예라고 해도 대마인들이 침입해 깽판을 쳤다.

잉그리드가 즉각 눈치채고 도우러 와도 모자랄 판에, 아직도 감감 무소식.


'날 팔아넘긴 거냐......!'


에드윈 블랙의 관심을 독차지 하기 위해, 대마인과 남몰래 손을 잡고 배신한 것이 틀림없다.

설령 이제와서 나타난다고 해도, 순수히 오보로를 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닐 거라고, 그녀는 믿는다.


대마인과의 교전 과정에서, 불행하게도 오보로는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런 시나리오를 전개해도 이상하지 않다.


오보로를 쳐내기 위해 대마인과 손을 잡은 시점에서, 잉그리드는 긍지고 명예고 다 버린 셈이니.


"아사기 선생님!"

"후마 군? 잠깐, 그 팔은......"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타이밍 좋게 뛰어들어온 햇병아리 대마인들.

오보로는 팔꿈치 아래가 잘린 지 얼마 안 된 대마인보다, 그 일행이 끌고 온 소녀에게 눈길이 갔다.


그건 잉그리드의 친척 여동생인 돌로레스였다.


"......"


오보로의 머리 속 두뇌회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다급히 들어온 햇병아리 대마인들. 잘린 팔. 피 흘리며 끌려온 돌로레스. 이제껏 찾아오지 않던 잉그리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가 되었다.


"오보로."

"나와 거래를 하고 싶은 건가 보지, 아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꺼내자, 남자는 잠시 미간을 찡그렸지만,


"이야기가 빠르다면 그걸로 좋아. 아사기 선생님, 허가를."

"......좋아. 이 작전의 입안자는 후마 군, 너이니까."


이 애송이가? 어떻게 잉그리드를 구워 삶았는지 몰라도, 방금 전에 결렬된 건 확실해 보인다.

궁지에 몰린 애송이가 어떤 식으로 자신과 거래를 터보려 할 건지, 흥미진진한 눈길로 올려다 보면,


"너의 본체를 소개시켜주지. 그 대신, 노마드를 완전히 배신해줘야겠다."

"뭐......?"


전혀 예상치 못한, 폭탄 발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