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 채널

학교에서 뉴스를 보며, 아키야마 선배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운석을 떨군 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일 거라고는 생각치 못했겠지.


모두의 시선이 선배에게 향하자, 선배는 보기 드물게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사레를 친다.


"아, 아니, 나는 그냥 사막을 찾았을 뿐이고......뭔가 하얀 게 특이하긴 했지만, 어쨌든 GPS는 여기도 사막이라고 가리키니까......"

"......뭐, 임무가 아니면 해외로 나가볼 일이 거의 없으니, 모를 수도 있죠."


우리가 요미하라에서 오차마을로 복귀했을 때, 상황은 정리되어 있었다.

아키야마 선배가 공둔술로 퓌르스트를 소금 사막으로 끌고 가, 운석을 떨궈 끝내버린 것이다.


"흥, 불쾌하지만 이 천재를 가르친 남자다. 설마 그 정도로 죽을까 보냐. 영혼 째 소멸시키지 않는 한, 거의 불멸에 가까운,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을 자랑하는 남자다."

"그래, 키류. 바로 네놈처럼 말이다."

"자, 잠깐 기다려다오, 무라사키. 난 딱히 도망친 게 아니라, 훗날을 대비해 은신한──끄아아아악!"


무라사키 선생님의 진심 펀치에 키류 선생의 몸이 펑 하고 터진다.

펑이다. 팔다리가 몸체에서 떨어져 나가며, 산산조각 난 것이다.


갑자기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펼쳐졌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구 하나 놀라지 않았다.

이런 광경도 이제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생괴인이라도 아픔은 느낄 텐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말리지 마라, 사쿠라. 이 녀석에게 근성을 주입하는 중이니."


무라사키 선생님과 키류 선생 사이의 인연 혹은 악연에 대해서 설명하면 길어지니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기자.


"여하튼, 일이 귀찮게 되었네요. 마을이 반파될 줄이야."

"그 덕에 인명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려나."


퓌르스트는 오차마을의 파괴에 집중했다. 그 덕에 마을에 멀쩡한 건물이라고는 학생이라고 해도 대마인들이 우글거리는 오차학원과 산 깊숙한 곳에 틀어박혀 있는 유키카제의 유럽풍 성 같은 대저택, 그리고 내가 연금당해 있던 옛 후마 종가 정도였다.


"일단 급하게 학원 지하 시설을 피난소로 쓰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단다."


학생들이야 기숙사 생활이라 칠 수 있다 쳐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 입장은 또 다르니까.

대마인도 사람이다. 나름대로의 사생활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불만이 쌓이고, 내부에서 터질 수 있다.


"일단 대다수의 학생들은 저희 집에서 머물게 할게요. 방이야 널널하니까."

"그래. 부탁할게, 유키카제."


학원 지하에는 현역 대마인 및 교사들이 쓰기로 했다.

여차하면 학원을 진지 삼아 싸워야 할 수도 있으니, 정예들을 한 곳에 모아두는 거다.


"그럼 남은 건 은퇴한 사람들......개중에서도 나이 지긋한 분들이신데."

"......"

 

모두의 불편한 침묵.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마십쇼. 옛 종가에는 틸이 만든 이계가 있습니다. 자연친화적인 공간이니, 어르신들 마음에도 쏙 들겠죠."

"아니, 그것보다는......그, 애들 앞에서 말하긴 좀 그런 이야기잖아......?"


사쿠라 선생님이 우물쭈물 거리며 말한다.

오차마을이 존재하기 전부터 닌자로서 살아온 노인들. 후마 단조의 반란을 기억하는 노인들. 

그 당시, 이가와 일족의 발 아래로 기어들어가, 후마를 적대하던 노인들.


개중에는 이름난 명가도, 오래된 닌자 일족도 상당하다.

그만큼 고리타분하고 편견이 심하다고나 할까.


다른 곳도 아닌, 후마 종가에 신세지긴 싫다는 것이다.

이전에 해온 짓도 있고 하니, 괜히 보복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크겠지만.


"지금의 후마 종가 당주는 저입니다. 못난 아버지가 떠넘긴 짐이라 할 지언정, 도망칠 생각은 없습니다. 제대로 마주보고 매듭을 지어야, 저도......그리고 후마 일족도, 제대로 오차에 뿌리를 내렸다 할 수 있겠죠."


아사기 선생님은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한다.


"후마 군......처음 널 만났을 때,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조차 되지 못한 어린아이였는데......어느새 이렇게 듬직한 청년으로 자란 건지......"

"아사기 선생님, 그렇게 말하면 엄청 나이든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후후훗, 슬슬 아줌마 소리 들을 나이인 걸."

"2030이라고 한데 묶어 젊은이라 부르잖습니까. 이제 서른 초반이면서 아줌마 타령하시면 딴 사람들이 욕해요."


뭐어, 그런 대견한 이유만으로 노인들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착각해 준다면, 이쪽으로서도 사양할 것 없다.


***


한때 후마 종가의 저택이였던 곳. 지금은 틸이 펼친 이계로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부가 더 넓다.

실제로 가본 적은 없지만, 대충 요정향과 비슷한 풍경이라는 듯 하다.


"진짜 요정향인데요."

"엥?"

"정확히는 요정향의 일부와 이어져 있어요."

"실화냐."


엣헴, 하고 가슴을 펴는 틸.

겉멋으로 요정왕 오베론과 여왕 티타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아니라는 건가.


"우리를 요정향에 가둬, 연금시킬 생각인가, 후마 당주."


나이 지긋하게 먹은 어르신 중 하나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날 쏘아보며 말한다.

은퇴했다고는 해도, 다들 한때 나름대로 이름 좀 날린 닌자들이다.


"그렇게 걱정하시면서, 잘도 따라오셨군요. 사전에 이계가 펼쳐져 있다. 그리 고지해 드렸습니다만."

"노인네들이, 젊은이들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지."

"......"


편견으로 가득 차 있던 건 이쪽이었는가.

명가의 자존심만 내세우는, 고집 센 노인네들 뿐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 그렇기에 더욱 그런 건가.'


지금과 달리, 일족 중심의 사회일 때는, '나'라는 개인보다 '일족'이란 공동체에 헌신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겨졌을 거다.

특히 일족의 웃어른을 공경하고, 일족을 위한 희생을 높이 샀겠지.


"그리고, 그 젊은이들의 앞길에 후마가 방해를 한다면......늙은 노구라 하여도, 칼을 뽑아들 수 밖에."

"토키코, 가만히 있어."


노인들의 살기에 토키코가 즉각 쿠나이를 뽑아들지만, 손을 들어 만류한다.


"하지만 당주님......"

"틸. 사전에 말해둔 것을 내줘."

"네. 금방 가져올게요."


틸이 호이호이 손을 흔들자, 작은 요정들이 우르르 이동하며, 술병과 잔을 가져왔다.


"요정향의 과실과 꿀, 그리고 이슬로 빚은 술이에요. 술치고는 많이 달겠지만, 양이 적으니 조금씩 드셔야 해요."

"......독을 탄 것 같지는 않군."


술의 냄새를 맡은 노인이 중얼거린다.

분명 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야나기 일족이었던가.


나는 조용히 무릎 꿇고 말한다.


"햇병아리가 선배님들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선배는 얼어죽을. 네놈과 우리 세대의 연배 차이가 얼마나 까마득한지는 아느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을 치는 노인. 저 불 같은 성격. 카미무라 일족의 장로 중 하나로 기억한다.


"조용히 하게, 카미무라 공. 좋은 술맛 다 떨어지지 않나."

"흥, 술이 들어가고 나서, 활시위나 제대로 당길 수 있겠나, 유바시리의 샌님."

"어떠한 때에도, 제대로 표적을 노린다. 우리 유바시리 일족의 궁술을 모욕하는 겐가."


노인들끼리 다투기 전에 중재를 한다.


"두 어르신들의 싸움을 보고 있자니, 제 친구들인 카미무라 마이카와 유바시리 하야테의 싸움이 생각나는군요. 둘도 자주 티격태격하기는 합니다만, 제대로 서로를 라이벌로 인식해, 절착탁마하고 있습니다. 진정 젊은이들의 앞길을 위하신다면......두 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주시는 편이 어떠신지."


두 노인이 헛기침을 하며 멋쩍어 한다.

그때, 이제껏 조용히 있던, 제일 나이 많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서로 솔직해지는 게 어떤가, 후마 당주."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가 연금 생활에서 풀려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 그동안, 우리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뼛속까지 사무쳤을 텐데?"


1년 전, 도쿄에서 일어난 대사건.

그 책임을 지고, 나는 1년 간 연금 생활을 보내야 했다.


그나마도 아사기 선생님과 야마모토 부장이 중재해, 그 정도로 끝난 것.

노인들은 더 가혹한 벌을 주장했었다고 한다.


"분명, 일도류의......"

"이젠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지 오래다. 사범 자리는 린코에게 넘겨줬어."


세월의 흐름을 직격으로 맞은 듯, 주름 가득한 얼굴과 손.

그럼에도 그 기세는 흐르는 물과 같고, 옷 너머로도 엿보이는 근육은 탄탄하다.


일정 경지에 이른 검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검과 같다 하였던가.


"배움이 얕아, 검술은 일천하나, 일도류의 힘은 어깨 너머로도 봐오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흥......입에 발린 말은 치워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말투는 딱딱하지만, 입꼬리는 살짝 움찔움찔 하고 있다.

아키야마 선배의 조부 아니랄까봐, 성격은 비슷한 듯 하다.


"그 말씀대로, 저는 여러분을 원망했습니다. 제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줄곧, 뿌리깊은 차별과 냉대를 받아왔으니까요."

"그에 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설령 전대 당주의 반란이 없었더라도, 처음부터 오차마을에 발을 들였더라도. 사안도, 인법도 자각하지 못한 제게 일족 내외로, 멸시와 천대는 당연했겠죠. 어쩌면......지금 이렇게, 당주 자리에 앉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런 내가 당주가 될 수 있는 건, 전대 당주 후마 단조의 적남이기 때문.

이복누이인 토키코가 첩의 소생이 아니었더라면, 진즉 당주가 되고도 남았을 거다.


그만큼 재능도 출중해, 어린 시절부터 모두에게 환영받고는 했으니.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겠지.


"저의 역할. 태어난 의미는 그저 다음 대로 이어가기 위한 톱니바퀴일지 모릅니다."

"......어둠에 살고, 어둠 속에서 죽어가는 닌자가, 삶의 의미에 연연할 필요는 없을 터."


퉁명스런 대답이었지만, 노인 나름대로의 배려일 거다.

그들은 '나'를 죽이고 '모두'를 위해 살아가는 삶에 익숙한 세대이니.


"그렇다 할 지언정, 저는 그런 식으로 매듭을 짓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타협하기도, 체념하기도 싫습니다. 그래서, 힘을 추구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점을, 동료들로 채워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조금씩 그 결실을 맺어가고 있습니다."


주로 헤비코, 시카노스케, 유키카제를 동원하고는 하지만.

때에 따라 다른 인원을 데려가기도 한다.


적재적소에 따라, 다양한 인원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 독립유격대의 최대 장점이다.


"여러분을 존경도 하지만, 원망도 합니다. 그러나, 후마가 제대로 이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공존하려면,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찾았나?"

"여러분을 이 자리에서 도륙내는 건 간단하나, 그리하면 제 동료들의 가슴에 말뚝이 박힙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정에 휘둘린다고, 야유하는 목소리조차 없다.


그들의 손자, 손녀들이.

지금의 나에겐 동료들이다.


"그러니까, 서로 휴전하지 않겠습니까?"

"휴전이라고......?"

"예. 앞서 했던 말과 충돌하겠지만......전 역시 여러분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가 아닌, 후마 일족의 당주, '후마 코타로'는 용서할 수 없는 겁니다."


성 뿐만 아니라 이름까지 세습하는 문화에 익숙한 세대인 만큼, 내 말뜻을 금방 이해했으리라.


"그대의 아명(兒名)을......우리에게 알려주는 이유는, 선을 긋고자 함이겠지."

"결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닐세. 닌자로서는 어떠할지 몰라도, 당주로서의 자세는 제대로 되어 있군. 그거 하나는 인정할만 해."


나는 여전히 과거에 얽매여 있다.

나를 구하기 위해, 죽어갔던 수많은 종가의 닌자들. 어린 나에게 모두 친절하고 상냥했던, 그런 가족들이었다.


"일족을 등에 업은 당주가 쉬이 누구에게 웃음을 팔거나, 고개를 조아려선 안돼. 용서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닌자의 은원은, 오직 피로 묻는 것이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주십시오. 저의 동료들이, 저의 과거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었을 때.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의 목, 후마 당주의 이름으로 직접 받으러 가겠습니다."


사실상 선전포고를 해놓고, 조건부 휴전을 들먹인다.

어이가 없는 말이겠지만, 눈 앞의 세대에게는 유효하다.


"햇병아리가! 포부 하나는 제법 당차군!"

"노인이라 해서 너무 얕보는 거 아닌가. 네놈 따위, 연륜만으로도 능히 대적하고도 남는다."


아사기 선생님은 새로운 시대를 약속했다.


더 이상 닌자 일족끼리 갈등을 빚으며, 서로 죽고 죽이는 게 아닌, 오차의 기치 아래 하나로 묶어......피비린내 나는 어제를 뒤로 하고, 더 나은 내일을 바랬다.


거기에 수많은 닌자들이 응했다.

토키코도 그 중 하나였다.


이가와 장로중의 개들을 피해, 아사기 선생님의 비호 아래 들어가고자, 오차를 찾자고 먼저 권유해왔던 건 토키코였으니.


하지만, 그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한 낙오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 낙오자들은 지금 여기에 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와 억울함에, 어쩔 수 없이 체념해야 했던.


그들의 가슴에, 눈에, 그리고 뇌리에.

옛 기억을 상기시킨다.


"용서치 않겠다, 썩을 노친네들. 자랑스런 손주들이 내 아랫배에 깔려 앙앙거리는 걸 보며 뒈져버려라."

"해보거라,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애새끼야. 사내구실조차 못하게 만들어, 질긴 후마의 핏줄을 끊어줄 테다."


서로에게 매도를 하면서도, 입가는 호를 그린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러나, 노인들이 아직 젊었던 그 시절은, 아직도 여기에 묶여 있다.


내가, 붙잡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용서하지 않는 게 서로를 위한 것일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