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 채널

완만한 구릉지와 너른 들판, 길 따라 늘어선 사이프러스 나무가 늘어선 풍경을 지나쳐, 넓은 포도밭이 펼쳐진다.

여기는 토스카나. 이탈리아 토스카나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일세."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인지부터 따지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개중에서도 몬탈치노. 토스카나 주에 속한 와인 산지다.


내 말에 파달라냐 신부는 싱긋 미소 짓고,


"보호자 동반 아닌가. 그 정도라면 문제없지."

"신부님이라는 분이 참......백주대낮부터 술이라니."

"어허, 그냥 술이 아닐세. 이건 그리스도의 피야.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좋지."


생긋 웃으면서 농담을 하는 신부.

나 또한 그리 말하면서도 손은 이미 잔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와인은 토스카나 와인 중 탁월하게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고 들었다.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맛볼 수 있을까.


"속물이. 타인이 주는 술을 함부로 들지 말거라."

"에이. 그 정도 대비는 당연히 하고 있죠."


품 안에서 은으로 만든 침을 꺼내, 잔 속에 채워진 와인을 빙글빙글 휘젓는다.

은침에 변색의 징조는 없다. 독이 들지 않은 건 확실하다.


"아, 이런 실례. 먼저 양해를 구했어야 하는 건데......"

"괜찮네. 서로의 입장 상, 그 정도 경계심을 품는 거야 당연한 법이니."


한적한 포도농가. 농장의 한 구석에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셋이서 둘러 앉는 형태로 마주보고 있다.

음양사의 톱, 그리고 엑소시스트의 대장 자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만나기에는 상당히 소탈한 모양새지만.


다르게 말하면, 서로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그런 자신감을 품고 있다는 거겠지.

보험을 하나 달고 온 나로서는 조금 쓴웃음이 지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유유자적한 분위기에서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참이지만......아무래도 이쪽의 노인 분께서는 성격이 급하신 모양이군."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지라. 시간이 금이라는 걸 이해해주게."

"노인의 시간이 금이면 젊은이의 시간은 은인가 보군."


설마 은침을 사용한 걸 들먹여 내뱉은 드립일까.

센스 참......


나도 와인을 즐겨보고 싶은 참이었지만, 노인네 눈치도 보이고, 어쩔 수 없다.

속으로 혀를 차며,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올려놓는다. 액정 위에 당당히 떠올라 있는 건 『악마소환 프로그램』.


신부의, 그리고 음양청 장관의 눈이 가늘어진다.


"꽤 당당하군. 훔쳐간 주제에 말이야."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팔에 소름이 돋았지만, 티내지 않고 웃어 넘긴다.


"덕분에 재미 좀 봤습니다. 이런 물건을 꽁꽁 숨겨두는 이유도 잘 알 만큼."

"바티칸......우리들, '네오 가톨릭'이 그걸 숨긴 이유를 말인가."


신부의 눈빛이 예리해진다.

'이면'에 얽힌 기관은 어디나 하고 가릴 것 없이 암부가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기독교에는 '메시안'이라 칭해지는 암부 인원들이 있다.

개중에서도 가톨릭 소속의 암부를 '네오 가톨릭'이라 부르는 듯 하다.


"예에, 여기서 해도 되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힐끗. 장관에게 시선을 돌리자, 콧방귀를 뀐다.


"겉멋으로 나이를 먹은 건 아니다. 그 정도는 진즉 눈치채고도 남았어."

"과연, 류메이 님이십니다."


다시 신부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류메이의 말이 진실임을 눈치챘는지 한숨을 내쉬고 어깨를 으쓱한다.

무언의 긍정에 나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연다.


"이 세계에는 천사가 없더군요. 아니, 애당초 우리가 '악마'라 부르는 그것들. 신화, 전설, 민담 등지에서 묘사되는 모습과는 다른 게 많았죠. 마(魔)인 것은 틀림없으나, 더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간다면......전혀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먼 우주의 외계인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인간과 지나치게 동떨어진 괴물 또한 인간 입장에선 외계인과 다를 바 없겠지.


"천사만 없던가?"


신부는 자조하듯 중얼거린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엑소시스트의 대장이다.

그 반응이 내게 확신을 준다.


"신도 없는 거군요."

"우리들의 신은."

"어이쿠. 지금의 발언, 이단 판정 아닙니까?"


유일신은 없지만, 그 외의 이교도의 신들의 존재는 인정한다는 것인데.


"애당초 신과 악마의 구분은 간단하지. 인간에게 이로우면 신, 그렇지 않으면 악마인 것이다."


참으로 인간 중심주의적인 이분법.

의외로 신부를 지원사격 해준 건 류메이였다.


"실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으면서, 그 존재를 믿고 섬기는 자들에게, 그 부재를 확인했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누가 들으면 신학자인 줄 알겠소, 노인. 그 말에 부정의 여지는 없지만."


유일신이 그들을 지켜보거나 비호하지 않는다 해도.

그 말씀과 가르침. 복음을 믿고 따르며 자신의 신앙을 증명한다.


종교인의 신앙이란, 어떤 의미에서 자기애의 극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래에서 온 악마도 있더군요. 그게 정말 미래인지, 아니면 우리 세계와 한없이 닮은 평행세계의 악마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틸의 이계는 요정향의 일부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이계를 통해 진짜 요정향이라 생각되는 곳에 발을 들여도 진짜 오베론과 티타니아를 만날 수는 없었다.


틸과 그녀의 이계에서 자연발생한 요정들 외에는 그 어떠한 지적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우리 세계의 요정향과 이어져 있다기 보다는, 틸이 만들어낸 독자적인 요정향이라고 보는 편이 더 합당했다.


굳이 그럴싸한 비유를 들자면, 기존의 개미굴로부터 독립한 공주개미가, 자기만의 굴을 만들고 여왕개미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정체불명의 힘을 함부로 신용할 수는 없지. 어느 시점부터 우리가 힘을 다루는 게 아닌, 우리가 휘둘리는 쪽이 될 수 있으니. 최악의 경우,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괴물들을 우리 세계로 불러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고 말이야."


빙 돌려서 뒤통수에 콕콕 박히는 비난.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뼈 아프다.


당시의 나는 힘이 간절했고, 그런 나에게 마치 운명처럼 해당 프로그램이 손에 들어왔다.

그때의 경위는 지금도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어쩌다가 그런 프로그램이 그리도 간단히 내 수중에 들어온 것인지.

누군가의 계략에 의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운명인지. 지금도 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뭐가 되었든 간에, 중요한 것은 한 가지.

내가 싸울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약도 과하면 독이 되고, 독도 쓰기 나름에 따라 약이 되는 법. 중요한 건 사용자입니다. 위험한 무기만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인간백정들은 이 와인잔 하나만으로도 사람 목 따는 게 쉬울 테니."


그 싸울 수 있는 힘은 물리적인 힘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이 정도 되는 사람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대등하게 입씨름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마찬가지.


"정(正)에서 반(反)으로. 혹은, 역(逆)으로."


와인잔을 바닥에 기울인다.

비싼 와인이 줄줄 땅바닥에 떨어진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게 아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길을 더듬어 올라간다면......결국 '하나'로 이어지겠죠."


빅뱅 이전의 우주처럼. 그저 '하나'로서 존재하는 영역.

피조물이 창조주를 직접 찾아 올라간다.


"제가 사전에 제안한 것. 그것에 동의하셨기에 모두 이 자리에 참석하신 것 아닙니까."

"......자네의 제안, 아주 잘 들었지. 그건 매우 심각한 이단 행위야. 굉장히 심각하고, 위험하지."


신부가 엄격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나, 말 뿐이었다.

내 목을 치려는 기색은 없다.


"세계는 더욱 혼란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끝이 파탄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지요. 시대의 물결, 이라고 칭하면 그럴싸 하겠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로서는 단순히 운명이랍시고 순순히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


묵시의 날을 아는 건 오로지 주님 한 분 뿐.

신도는 언젠가 올 그 날을 기다리며 진력을 다해야 한다.


......정말로?


"이 『악마소환 프로그램』으로 구세주를 만든다. 세계를 구할 구세주를."


앱의 기능 중 하나인 '악마합체'.

중화연합의 생명공학과 초능력을 과학기술로 재현하는 미연의 기술력.


그 모든 것들을 한데 뭉친다면, 누구나 흔히 생각하는 구세주를 재현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메시안이 다시 하나가 된다면, 미연을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겠죠?"

"......그렇겠지."

"대마인 측에는, 한때 중화연합의 끄나풀. '용문'의 마과의였던 사람이 있습니다. 인공악마를 만들어내는 건 간단하지요. 물론, 식신의 힘을 빌려, 인간의 몸으로 재현할 수 있는 음양사의 조력이 있다면 좀 더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 수 있겠지만."

"......"


네오 가톨릭 측도, 음양사 측도.

구체적인 표적은 밝히고 있지 않으나, 구세주의 힘을 필요로 할 정도로, 어떠한 위기와 대면하고 있다.


동서고금, 어디의 관점으로 보아도, 이단이라 칭하지 않을 수 없는 행위에 손 대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그럼, 이걸로 협상 성립이군요."


나는 싱긋 웃으며 잔에 다시 와인을 따라 들이킨다.


그리스도의 피. 참 좋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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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진 여신전생 2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