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그리드는 부하들을 이끌고 오보로의 주점을 급습했다.

대마인들이 도주 중이라는 보고는 이미 들었지만, 그쪽의 리나에게 추격을 맡겼다.


"......살아있었군, 오보로."

"어머, 늦었네. 늦게 온 거겠지만."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오보로가 망가진 주점에 앉아 있었다.

지하의 조교실로 이어지는 바닥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잉그리드는 그녀에게 검을 겨누었다.


"네 녀석,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적과 내통했군."

"어느 입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걸까."


급습 부대에는 틀림없이 이가와 아사기가 포함되어 있었을 거다.

그녀가 나서지 않으면, 다른 대마인들로는 오보로를 상대하기 힘들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보로 또한 노마드의 대간부 자리를 맡고 있는 만큼, 그 힘은 잉그리드도 잘 알고 있다.


"설령 내가 목숨구걸을 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여기서......나를 확실히 죽일 자신은 있고?"

"......"


이쪽은 여럿, 상대는 홀로. 그러나, 오보로가 도주를 우선시 한다면──.


"잠깐이라도, 적과 내통한 건 너와 나 마찬가지. 그리고 퓌르스트가 그걸 눈치채는 건 시간문제겠지.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걱정마라......다음은 그 녀석이다."


서늘한 눈초리로 오보로를 노려보며 잉그리드는 말한다.

노마드의 수령, 에드윈 블랙의 총애를 두고 다투는 건 퓌르스트 또한 마찬가지다.


"퓌르스트의 건을 입에 담는 걸로 보아, 사정은 대충 들었겠지."

"오차를 점령하기 위해 급습했다던가. 잘 될 지 모르겠네."

"설령 점령이나 궤멸시키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한동안 움직일 수 없게 만들면, 그 다음부터는 시간 싸움이니까."


어차피 노마드의 적은 오차만이 아니다. 反노마드파는 세계 각지에 있다.

당장 이 요미하라에도, 노마드의 독재를 견제하는 세력이 적지 않기에.


아마 대마인들의 도주극에는, 그들이 남몰래 손을 썼겠지.


"......"


잉그리드는 검을 거두었다. 그녀의 마검이 검집에 탁 소리를 내며 들어가자, 오보로의 눈꼬리가 휘었다.


"헤에, 바로 덤벼들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내가 너와 퓌르스트를 싫어하는 거다. 귀족 출신으로서 나름대로의 교양은 쌓고 있어.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뇌근이 아니란 말이지."


대다수의 인간들은 그들이 단순 전설, 신화 등지에 존재하는 헛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제대로 사회 그리고 문명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다만, 물리법칙부터 다른 인간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세계의 법칙에 어울리는 옷을 맞춰입는 것과 같다.

마족이라는 '종'으로 뭉뜽그려서 넘어오거나, 그 외에 다른 악마, 요마, 괴물 등의 이름을 들고 나서거나.


"좋든 싫든, 진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를 가지고 있는 네 녀석의 존재를 지금 바로 없애버릴 수는 없다. 노마드의 대간부 자리에 어울리는 후보를 따로 구하기 전에는 말이야."

"후후후, 어련하시겠어."

"이번 일은 서로 불문에 부치지. 너도 노마드를 나선다 해도, 딱히 갈 곳은 없을 테니."


오보로는 단순히 노마드라는 배경을 믿고 설친 게 아니다.

사악, 외도라는 개념이 사람의 탈을 쓰고 나타난 것처럼.


여태까지 자행해 온 악행이 너무 많아, '표면'의 세계에서든 '이면'의 세계에서든 원한을 너무 많이 샀다.

다른 조직으로 갈아타고 싶어도, 정보만 뺏긴 채 버려질 뿐. 지금처럼 간부 자리로 받아주지는 않을 거다.


오보로가 독립하려 들면, 노마드가 기밀누설 방지라는 명목으로 제거한다.

그때가 오면, 퓌르스트나 잉그리드나 쌍수를 들고 환희하며 서로 오보로의 목을 따겠다며 다투겠지.


"......흥, 네가 노마드로부터 쫓겨나면, 마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노예창부로 전락해서, 죽느니만 못한 꼴이 될 걸?"


마계기사란, 마계를 통괄하는 『9귀족』으로 이루어진 연합을 섬기며, 마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은 기사이다.

비록 마계의 유력 귀족일지라도, 연합의 협정을 어기면 가차없이 처벌 받는다.


마계기사가 직접, 토벌하러 온다.


"그분을 따라, 연합을 저버리고 노마드라는 조직에 투신한 시점부터, 그런 미래는 버렸다."


설마 그 마계기사 중 하나가 대놓고 연합을 엿먹이고 인간계로 나올 거라곤, 그 당시 아무도 생각 못했겠지만.


힘이 있다면 그깟 연합의 협정 따위,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불사왕 에드윈 블랙과 그에게 투신한 잉그리드가 직접 증명한 거다.


그 시점에서 연합은 사실상 붕괴. 현재 마계에서는 9귀족 간의 세력다툼이 조금씩 불거지고 있다.


"퓌르스트가 돌아온 뒤, 그분께 불필요한 진언을 올리지 않도록 견제할 준비나 하도록. 지금은 너와 나, 똑같이 공범이 되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잉그리드는 부하들을 이끌고 나가버렸다.

일방적인 선언이었다.


인기척마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뒤, 오보로는 피식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이게 또, 사정이 달라졌더라고?"


본체......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육체'의 원래 주인.


"처음부터, 전조는 있었지......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아니, 눈치채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혹은, 그런 쪽으로 머리가 돌지 않게 제약이 걸려 있었다든가."


오보로의 공식적인 이명은 '배신의 대마인'.

그렇다. 그녀는 원래 대마인이었다. 그 이가와 아사기의 동료였다.


그런데 언제, 도대체 왜 배신했는가.


──그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다. 오보로 그 자신조차도.


'어느 시점'부터 배신했고, 그 결과 아사기에게 살해당했다.

죽은 그녀를 에드윈 블랙이 거둬, 요마와 합체 시킴으로서 부활.

다시 아사기에게 복수를 감행하며, 그 악연이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져 왔다.


공선술──정신을 옮겨, 육체를 갈아타는 인법.

'코우카와 오보로'의 인법은 그것이다.


대마인 하나에 인법 하나.

그 규칙에 따르면, 오보로 역시 공선술의 사용자여야 하겠지만.


오보로가 사용하는 건 '최면각인'이라는 기술이다.


이건 어떻게 된 것일까.

간단하다. 그릇과 내용물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코우카와 오보로가 버리고 간, 텅 빈 껍데기(육체)에 '나'라는 인격이 불어 넣어졌다......핫."


잉그리드와 퓌르스트 모두 알고 있었던 거겠지.

이제껏 그녀를 향한 모욕과 멸시는 단순히 경쟁자라서, 대마인을 배신해서가 아닌.


자기들이 만든 인형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맞먹으려 드는 게 고까웠던 거겠지.


"하핫, 하하하하......아하하하하하핫!!"


오보로는 웃었다. 머리에 열이 올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웃음이 터져나온 거다.


"손바닥 위에서 춤추는 인형이었단 말이지! 그것도 모른 채, 천방지축으로 날뛰어왔단 말이지! 이제까지의, 이 내가!!"


이 무슨 굴욕. 참을 수 없다.

자신을 가지고 희롱한 녀석들 모두, 씹어 죽여도 시원치 않다.


"......복수해 주겠어."


퓌르스트, 잉그리드......그리고 에드윈 블랙.

모두에게 복수하고 말겠다.


다만, 지금의 그녀 혼자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시는 오보로라는 얼굴과 이름으로 활동하긴 어렵겠지만, 새출발 하게 해주지.』


기회를 내려주겠다는 양, 건방진 얼굴로 손을 내밀어오던 햇병아리 대마인.

오보로는 굴욕을 참고 그 손을 잡았다.


"너희가 날 일방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야......서로 마찬가지다."


만들어진 인격이기에, 그녀의 사악은 갱생될 수 없다.

새출발을 해도, 기존과 마찬가지로 악행을 저지르고, 대마인과 싸울 거다.


그런 삶 자체는 어쩔 수 없다. 이제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그 외의 삶은 살아갈 수 없다.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오보로 자신도 거기에 큰 불만은 없다.


마음껏 죽이고, 범하고. 그런 삶을 즐거움을 알아버린 이상, 돌아갈 수는 없다.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지만.


'배신의 대마인' 오보로가, 자신의 시작점이니까.

그것마저 부정할 수는 없었다.


***


오차마을.

이제껏 단 한 번도, 그 본진을 적에게 습격당한 적 없는 그곳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오차에도 결계는 펼쳐져 있다.

魔를 비롯한 온갖 삿된 것들을 부정하는 결계가. 그러나 그 결계는 지금, 퓌르스트가 이끌고 온 막대한 장기(瘴気)에 침범되어, 무너져 내렸다.


"홋홋홋홋. 꽤 볼만한 광경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퓌르스트가 펼친 이계가 마을을 덮어, 그로부터 튀어나온 막대한 수의 악마들이 오차마을을 급습.

지금도 곳곳에서 비명과 고함이 오가며 대마인과 악마들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뭐어, 역시 정면승부에서는 큰 재미를 보기 어렵습니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화력만 따지고 보았을 때, 세계 전체를 보아도 대마인을 넘어서는 조직은 없다.

그래. '조직'은. 그것과 맞먹거나, 혹은 그 이상이 되려면 '국가' 단위에서 나서야 한다.


따라서, 퓌르스트가 내린 지시는 하나.

마을의 파괴를 최우선 사항으로 움직이라는 것이었다.


"전쟁은, 군인들을 다 죽여야만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면, 아무리 이가와 아사기라는 구심점이 남아 있어도, 뿔뿔히 흩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럼 일본 내의 협력자를 통해, 흩어진 대마인들을 각개격파.


최종적으로 대마인의 씨를 말린다는 퓌르스트의 계획이 성공한다.

일본의 정재계를 비롯한 고위층 중에는 노마드와 끈이 닿은 자들이 적지 않으니까.


몰살은 몰라도, 대마인을 크게 위축시키는 건 가능하다.


"그래. 장수의 목을 날리면 오합지졸들은 뿔뿔히 흩어지겠지."

"?!"


바로 근처에서 들린 목소리.


퓌르스트의 오른손에서 배어 나온 거무튀튀한 장기가 실체화 한다.

그것은 추악한 육종(肉腫)이었다.


구츗구츗 꿀렁꿀렁 육즙과 썩은 내를 풍기며, 고위 마족의 오른손에서 뻗어나온 역겨운 촉수의 칼날들이 목소리의 주인을 덮친다.


하지만──.


"누군가 그러더군. 일방적으로 농락하는 싸움만큼 재미없는 건 없다고."


그 모든 것들을 간단히 통과한 칼날이 퓌르스트의 목을 먼저 날려버린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야."


머리를 잃은 몸이 여전히 휘두르는 촉수들은, 검사의 주변에 떠오른 '공둔의 거품'에 닿아, 전혀 다른 위치에서 나타나 애꿎은 허공과 지면만을 때린다.


일도류(逸刀流 )의 검사, 아키야마 린코는 목을 잃은 퓌르스트의 사체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일어나라, 퓌르스트. 이미 너에 대해서는 키류 선생에게 듣고 왔다. 죽은 척이 장기라지?"

"──이런이런, 못난 제자가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떠벌린 모양이군요."


육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머리가 갑자기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목에서 촉수 가닥들이 뻗어져 나와, 육체와 이어져 그대로 끌려가 합체한다.


그 기분 나쁜 부활에 린코는 미간을 찡그렸다.


"역시 키류부터 제거했어야 했는데, 눈치 빠른 건 여전하더군요. 바로 도망쳤더라고요."

"그래. 그거 아쉽겠군. 그 탓에 너의 계획은 여기서 막힐 테니."

"과연 그럴까요?"


다시 수없이 많은 촉수와 지독한 장기가 린코를 덮쳐온다.

그러나, 그녀의 몸 주변에 피어오르는 '공둔의 거품'에 닿은 순간, 모든 것이 표적과 전혀 다른 장소에서 출현한다.


퓌르스트는 혀를 찼다.


"이래서 공간조작 계열 능력이란, 성가시기 짝이 없다니까요. 왜 당신들 대마인은, 그런 흉악한 능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오는 걸까요."

"기우군. 나도 그렇게 말하려 했는데."


눈 깜빡할 사이에, 린코가 퓌르스트의 코 앞으로 순간이동한다.

그리고 그의 옷깃을 붙잡더니, 또다시 어딘가로 이동한다.


그들이 다시 나타난 곳은, 어딘지 모를 사막이었다.

뭔가 사막치고는 지나치게 하얗긴 하지만, 모래 알갱이 같은 것들이 널려 있고, 주변에 넓은 땅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아마 사막이겠지.


"후우......역시 장거리 이동은 지치는군. 구체적인 좌표를 안다고 쳐도, 바다를 건너는 건 역시 빠듯한가."


태연하게 GPS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는 린코.

그 모습을 보며 퓌르스트를 혀를 내둘렀다.


"9귀족도 못할 짓을 태연히 저지르고,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군요. 하지만......예로부터 물량 앞에 장사 없는 법."


이동한 건, 퓌르스트만이 아니었다.

그를 중심으로 펼쳐진 이계, 그 자체도 한꺼번에 이동한 거다.


"너무 멀리 이동해, 이계는 깨졌을 텐데?"

"직전에 거두었지요. 여기서, 당신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 당신의 능력은 너무 위험하거든요."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살기를 발산하는 퓌르스트.

그건 진심이었다.


노마드의 대간부가 아직 학생인 대마인 하나를 죽이기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거다.


린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악마들이 우글우글 거리고 있다.


"마침 잘됐군. 나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당신의 능력, 남발할 수 없는 모양인데, 방금 전 같은 잔재주는 부릴 수 없을 겁니다?"


강자를 쓰러뜨리는 정석. 그건 철저히 상대의 힘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그걸 위해 소비해야 하는 목숨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퓌르스트는 그것의 동원이 가능했다.


"아아, 그렇지. ──그래서, 전부 없애버리기로 했다. 이런 사막이라면, 거리낄 것 없으니."

"무슨 소리를......어?"


무언가, 아주 커다란, 압도적인 존재감을 느끼고, 퓌르스트를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운석이. 굉장히 커다란 운석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자랑하려는 건 아니지만, 아사기 선생님 다음으로, 최강의 대마인이라 불릴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일 거라고, 후배에게 들은 적 있단 말이지."


그녀의 공둔술은 공간을 조종하는 능력.

오감을 도약시켜 머나먼 곳의 풍경을 지각하거나, 자신 및 주변의 사물, 인물을 도약시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구 근처의 운석 하나 끌어오는 것 또한 마찬가지.


"잘은 모르겠지만, 저 정도 규모다. 핵폭탄 이상의 화력은 기대해도 되겠지."

"당신......!"

"저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아남는다면 인정해주지. 역시 노마드의 대간부는 강적이라고."


그리고 린코는 다시금 사라졌다.

퓌르스트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지금부터 저것으로부터 도망친다 해도, 충격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크으으......대마이이이이이이이인!! 용서치 않겠다! 반드시 살아남아, 복수하고야 말겠다아아아아아앗!!"


그리고 운석이 떨어져.

──세계적인 관광지로 유명한 '소금 사막' 하나가 지도 상에서 사라졌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린코 존나 셈.

ㅇㅇ.


멍청한 건 밸런스 패치임.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