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 수록 높아만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의 은혜는 어버이시다



아아아 고마워라~



아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음성지원 되지? 띵곡 들었으면 서문은 끝난거니 본문으로 들어간다.


1. 악의 평범성

요즘 운동 선수들 학폭 논란이 되고 있는데 농담 삼아 학교 폭력 논란의 진짜 승리자는

체벌 금지 이전의 교사들이라고들 하는데 어느정도 맞긴 한데 과장이 따를 수 밖에 없음


지금 가치관이 달라지고 다시 생각해보면 억울하지만 당시에는 학생끼리의 폭력처럼 억울하진 않았음

나도 체벌 허용 시기에 왕따 당해봤는데 같은 학생한테 맞은 것보다 선생님에게 맞은게 훨씬더 많다. 

선생님이 성인이라 힘이 더 강하고, 사랑의 매(물리)라는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 아픈건 말할것도 없지

근데 내가 왕따를 당하고 같은 학생에게 맞아서 억울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당시엔 선생님의 체벌이 억울하진 않았음


나는 선생님한테 진짜 어이없이 맞았는데

내가 일진한테 맞아서 선생님한테 일렀더니 일진도 때렸지만, 왜 너도 등신처럼 맞고 사냐면서 강해지라고 때렸다.

다음엔 일진 무리 중에 체격이 좀 왜소한 녀석이 나를 괴롭혔고, 나는 맞서 싸웠는데 왜 교실에서 싸우냐고 선생님에게 또 맞았다.

그 다음엔 일진 중에 뚱뚱한 녀석이 나를 때릴려고 하자 1층으로 도망치다가 수업에 늦었기 때문에 선생님에게 맞았다.


다 같은 선생님한테 맞은거다. 가불기가 따로 없지. 더 웃긴건 그 당시에 나는 정당한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어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는건 당연한데 수평적인 관계여야할 동급생이 우위에 서서 폭력과 폭언을 저지르는 것은 당연지사

억울하지만 당시 선생님은 학생이 잘못을 거지르거나 태만하게 행동하면 때려서라도 교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였거든

지금이야 상식이 아니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랬고 선생님들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다른 예시로 비유하자면

우리 부모님 세대에 성차별 심해서 우리 엄마는 좋은 성적에 착실한 학교 생활을 했음에도 대학을 포기하라는 할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는데 오빠와 남동생(내 외삼촌이기도 함)의 대학 등록증을 대줘야하기 때문이라는데 남동생(작은 외삼촌) 쪽은

엄마 보다 성적이 안좋았던 걸 생각하면 순전히 남자이기 때문에 대학을 가야한다는 의도였지. 현대로 따지자면 말도 안되는 

차별이지만 엄마는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어 "그땐 그랬지~"하면서 웃어넘김


그 시대를 관통하는 관념이라는 것은 가해자의 죄책감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억울함 마저 무뎌지게 하는 모양이야

물론 엄마는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자기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삼촌에게 대학 등록금을

양보하겠다고 말하지만 당사자의 의견과는 무관하게 사회의 피해자인건 딱히 부정할 여지가 없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을 주장했는데 그 사람이 속해있는 사회에 다른 사회에서 범죄라고 여기는

것에 무감각하면 그 사회에 소속된 일원도 무감각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악랄한 행동은 평범한 행동이라는 이론임


나는 그 책 읽으면서 암만 그래도 히틀러 딱까리에 학살자인 아이히만이 평범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예시가 나치가 아니라 훨씬 덜 극단적인 과잉 체벌 교사로 바꿔보면 악의 평범성이라는 단어가 엄청 와닿을 수 밖에 없더라

한나 아렌트는 나치를 설명하기 위해 악의 평범성을 주장했지만, 반대로 악의 평범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나치를 예시로 들진

않았을 거야. 왜냐면 나치는 공감하기에 너무너무 악하기 때문이거든. 하지만 전쟁범죄가 아니라 체벌의 경우는 피부에 와닿아


엄마가 당대 사회를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해서 크게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진짜 지독했던 선생님이 아니고서야 체벌했던 선생님들을 크게 원망하지는 않아 그들은 학창시절

매맞으면서 컸고 그게 당연하다고 배웠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든


하지만 엄마가 자신이 여자라 대학 못간건 웃어넘겨도 

현대 사회에서 내 여동생이 대학에서 여자가 너무 박식하면 매력없다는 시대착오적 소리를 듣고온다면 어떤 놈이 그런

말을 했냐고 얼굴 좀 보자고 엄청 화내겠지 그게 대학을 못간거에 비하면 아주 사소하게 기분 나쁜일에 불과한데도 말이야

나도 내가 학창시절 체벌 받은건 안억울한데 뜬금없이 체벌 금지 이후 십수년이 지나고 미래의 내 자식들이 체벌을 받고 

온다면 학교에 쳐들어가서 그 선생님 멱살을 잡고 항의할지도 몰라


이처럼 도덕성이라는 것은 시간적, 공간적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 거야.

그렇다고 지금의 선생님들이 겪고 있는 교권 추락이 자업자득이라는 말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왜냐면 체벌 금지 이후 교사 자격을 얻은 경우도 있거든. 이런 논리는 20대 남성들이 50대 남성들이

자행한 여성 차별에 대한 응보를 받아야 한다는 페미들의 주장과 다를게 없어. 현대 여성도 물론 차별을

받고, 20대 남성 중에서도 꼴마초들 많지만 페미들은 이상하게 여자라는 이유로 대학도 가지 못하던 엄마

세대와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하고 내면화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시간적, 공간적 상황이 다르지만 동일한 직업,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동일한 업보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감정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어



2. 체벌을 대하는 이중성

그리고 체벌 금지에 대한 논의에는 이러한 이중성이 따르는데

내가 다른 채널에서 윗짤처럼 과잉 체벌을 가하는 선생님 짤을 올리거나, 선생님에게 억울하게 맞았던 썰을 풀면

붕이들은 선생님이 백번 잘못했고 당시는 미친 사회고 체벌 금지된게 다행이라는 주장이 압도적이지


반대로 내가 다른 채널에 학창시절에 목격한 빌런 썰을 풀면 그 새끼는 맞아도 싸다.

선생님이 참교육 시켰다. 요즘 잼민이들은 체벌 금지 시대에 태어나서 버르장머리가 없다.

내가 초딩 시절에는 최소한 맞는게 두려워서 저렇게 까불지는 않았다 이런 덧글들이 많이 달려

내가 많은 채널을 하는건 아니라서 덧글 다는 붕이들도 대부분 같은 붕이들이고, 닉네임도 확인해봤는데

1달 전에 체벌 욕하던 붕이가 1달 후에는 불량학생은 체벌이 답이라고 말하는 것도 흔하게 보이더라


담당일진이라는 단어는 일부 극단적인 예외를 빼곤 대부분이 농담으로 사용하고 찐따가 아무리 찐따짓을

해도 일진이 폭력을 할 권한은 없다고 생각하고, 폭력으로 찐따짓이 교정된다고도 결코 생각하지 않아 그냥 드립이야


하지만 담당일진은 신조어지만 담당교사라는 말은 실생활 용어야. 일진이 찐따짓하는 찐따를 패듯이 선생님들도

엇나간 행동을 한 학생을 패는데 담당교사의 행동은 당시에 정당화될 뿐만 아니라 체벌 금지 시대에도, 심지어는 체벌을

당한 아픈 기억과 체벌 금지에 옹호하는 생각을 둘다 가진 사람 역시 맞는 입장에 "맞을 짓"을 하면 정당화해버린다는 거야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는데, 그건 발언자인 철학자처럼 가방 끈 긴 사람 한정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각하는 갈대가 아니라 생각이 갈대 같은 사람이다. 어떠한 의견을 볼 때 마다

생각이 변해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는 타인이 겪은 일을 마치 자신의 일인냥 이입을 해서 보게되지

그리고 보는 글에 따라서 이입의 대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 이토록 다른 의견을 주장할 수 있게 되는거야


또다시 내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자면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 정도 수준은 아니였는데 중학교 시절은 온갖 빌런들이 우글거리는 정글과 같았어


그 중에 두개만 소개해볼게

어떤 놈이 선생님 자전거를 훔쳤는데 경비실에 있는 전기장치 수리에 쓰이는 전선 자르는 펜치를

훔쳐다가 자전거 자물쇠를 절단해서 훔쳐간거임 선생님이 지금이라도 돌려주면 용서해주겠다고 했는데

이미 고물상에 팔아서 없다고, 고물상에 팔아서 그 돈으로 담배샀다고 그러니까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나서

두들겨 팼어 근데 이건 다음에 설명할 두 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국어 선생님이 안경을 벗고 세수를 하고 다시 안경을 쓰려는데 갑자기 안경이 사라졌는데

학생 한 명이 국어 선생님 안경을 가지고 튀는 거야 나중에 그 학생 찾고나서 안경 어쨌냐고

물었는데 충격적이게도 그 학생이랑 친구가 안경을 4조각으로 부러트려서 안경알은 담배 잿덜이로

사용하고, 안경 다리는 (담배 냄새 손에 안베게 하려고) 담배 꽁초 잡는 용도로 사용 중이였던 거였어

그 때 순하고 화도 안내던 국어 선생님이 심하게 열받아서 그 학생 두명 엄청 두들겨 맞았지



이걸 보고도 여전히 체벌 금지의 원칙으로 폭력이 아니라 훈계와 회유를 통해서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체벌 금지에 대한 신념이 강한거니까 인정할게.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체벌 금지를 외치면서 이 정도 수준의

빌런을 보면 때려야 한다고 말하더라. 마치 때리지 않고 타일르면 말듣는 학생과 때려야 말을 듣는 학생이 따로 있어서

선택적 체벌 금지를 해야한다고 까지 생각되게 하는 반응인거 같아

 

요즘 촉법소년 문제 때문에 체벌 금지를 더 부당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데

어쩌면 범죄급의 물의를 저지르는 불량학생을 교정할 적법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런 체벌에 대한

이중적인 반응이 생겨난건 아닐까? 범죄를 저지르면 미성년자라도 선생님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하지 않을까? 근데 법을 제정하는게 그리 쉬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이런 논쟁은 몇년간은 지속될거야



3. 모방심리

10대들의 모방심리는 상상이상이야

맹자의 어머니가 삼천 번이나 이사를 간 이유도 이웃에게 나쁜 것을 배우지 않게 하지 위함이야

삼천번이면 대충 8년 동안 하루에 한번씩 이사를 간거겠지? 혹시 삼천지교가 세번 이사간 거라고

주장하는 게이들 있으면 반성해라 동네 흙수저도 네번은 이사 가는데 어떻게 세번 이사간게 사자성어가 되겠냐?


근데 집을 여러번 옮겨도 학교를 여러번 옮기는 부모는 없어

그렇기에 어제 본 선생님 오늘도 또 봐야하는데 모방심리를 가진 메타몽 같은 10대는

선생님 조차도 모방의 대상이 되는데 체벌이 가능한 시대에는 그 체벌 마저 모방하지


나의 중학교 시절에는 "선생님 흉내"가 유행했는데 일진들이 약한 놈들 괴롭히는 장난이였음

선생님 특유의 말투, 사투리 등을 흉내내면서 그 선생님이 가하는 특유의 체벌을 동급생에게 자행하는 것이였는데

깍지끼고 엎드려 벌받기, 대나무 꺾어서 때리기 등등인데 일진들은 선생님을 흉내내면서 그들이 권위를 모방하는 행위를

즐겼던 것이라고 생각해 과거에 문제가 되었던 선생님 흉내가 성적인 부분으로 표출되기도 하는데 "체벌 놀이"의 경우는

그것이 성적이지만 건강한 성이라기 보다는 기형적으로 표출된 모방 심리의 한 부분이야


이게 윤리적 차원에서의 체벌 금지랑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

뭐든 모방하는 10대들에게 있어서는 체벌 역시의 모방의 대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은 소위 "맞을 짓"을 하는 녀석들 조차도

혹은 맞을 짓하는 녀석일 수록 체벌하지 말아야한다는 결론을 도출해도 이상할게 없는게

보통 맞을 짓하는 불량학생일 수록 가장 악독하게 체벌 행위를 모방하거든 


사람을 교정시키는 방법은 폭력이 유일하다고 여기는 사고방식도 이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 없지

10대 시절 모방된 가치관은 어른이 된 이후에 더 확고해지기 마련이니까



여기서 마친다. 마지막으로 체벌 금지와 교권 추락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은 

교권은 체벌이라는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 폭력적 권위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나는 과도하지만 않다면 학생이 배움의 권리가 있듯이 선생님도 가르칠 권리가

있어야 하기에 교권은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그 수단이 체벌이 아니라던 더할 나위없고

지금은 그러한 비폭력적 교권이 확립되어 가는 과도기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