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참가 할 생각은 없어서 유동으로 글 싼다.

대회 주제 중에 '스토킹' 이 있길래 순간적으로 떠오른 거 적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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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겨울도 끝나가는가 싶었던 2월의 어느 밤.

아직도 눈이 온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온 동네에 눈이 쌓인 것 외에도 믿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다.

마침내 남아있던 담배를 모두 태우고 말았다는 것.

분명 잔뜩 쌓아두고 내가 죽기 전까지 다 태울 수나 있을까 싶었는데,

이토록 허무하게 동이 나 버릴 줄이야.

그렇게 많이 피웠던 기억도 없는데!

...텅 비어있는 보루 포장지를 보고 있자니 다시 한 대 태우고 싶어 졌다.

굳이 이 추운 날에 밖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흡연자란 본디 니코틴을 갈구하는 생물이 아니던가.


내일까지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결심은 

간절한 한 모금 생각에 금방 무너져버렸으니,

하는 수 없이 갖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두꺼운 점퍼를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기왕 편의점으로 가는 김에, 야식거리 삼아 주전부리를 한아름 담아 오는 길이었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등 뒤에서 시선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자기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고,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이전부터 사람의 시선 같은 것을 잘 느끼는 편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갈고 닦은 눈치... 혹은 육감이라 부를 만한 것이 적신호를 울리고 있었다.

어쩌다 한 번 쳐다보는 것이 아닌 명백한 응시.

한참 동안이나 같은 대상, 즉 나를 주시하고 있는 존재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귀신이라도 나왔나 싶어 뒤를 돌아 봤으나,

눈밭 위에 발자국이라고는 오직 내가 찍은 것 뿐이 없었다.



'...?'



내 착각인가 싶어 다시 가던 길을 가려고 했으나,

오래 가지 않아 다시금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은 착각인가 싶어 넘길 수 있어도

두 번째 부터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이전보다는 더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얼핏 살펴 보니, 발자국 근처 화단의 생울타리에 쌓인 눈이 한 곳만 무너져 있었다.

마치 조금 전에 뒤돌았을 때에 내 뒤를 쫓던 이가 급하게 몸을 숨기기라도 한 듯이. 

아까까지는 몰랐었지만, 눈치 채고 나니 소름이 돋았다.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감추려는 존재가 있다면

보통의 경우에는 적의를 느낄 수 밖에 없겠지.

미친 스토커가 한 명 따라 붙기라도 했나? 


다시 몸을 숨긴 기척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내 착각이 아니라면야

굳이 이렇게까지 쫓아오는 기색을 지운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악의를 품고 있다는 뜻일 터다.

어쩌면 어느 미치광이가 묻지마 살인의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죽이려면 지금 이 곳보다 범행에 적합한 장소들은 충분히 지나왔다.

도대체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 것이지?


어찌 됐건 내가 추적자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걸 알리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이미 들켰다면 막무가내로 나올 가능성도 없지는 않고, 혹시나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




다시 걸으면서 잔꾀를 짜내려 머리를 굴렸다.

이전부터 공부머리는 꽝이었지만서도 잔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지 않았는가.

지금 상황을 타파할 묘수를 열심히 생각해 본다.


...


주머니 속에서 담배라도 꺼내 피울까 싶던 찰나,

하나의 아이디어가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술책 치고는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우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하.... 이 맛이야.

엄밀히 따지면 작전행동의 일환이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꺼냈던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되돌리려 손을 내렸다.


주머니에 손이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




"어...?!"


약간 몸을 움츠리며 주머니를 더듬기 시작한다.


다급히 비닐봉투 안도 살펴 보고,

점퍼 주머니도 뒤져 보고,

옷 위를 더듬으며 지갑을 잊어버린 '연기'를 했다.


물론 지갑은 내 주머니 안에 얌전히 들어 있다.

다만 위화감 없이 내 뒤를 수색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약간의 액션을 보여준 것 뿐이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내게 필요한 건 추적자의 구체적인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추적자의 유무만을 확인하는 것이었으니까.


그 자리에서 담배를 밟아 끈 뒤, 본격적으로 뒤를 살피기 시작했다.




지갑을 찾는 척하며 왔던 길들을 되돌아가며 확인해 본 결과,


내가 걸어온 경로의 발자국 위에

내 발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발자국이 겹쳐져 있었다.

언뜻 보면 구별하기 어려웠지만, 신발 바닥의 문양이 확연히 달라졌기에

가까이서 보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추적자는 분명히 존재하며, 내 생각보다도 훨씬 치밀한 또라이다.

착각이기를 바랬던 것이 사실로 판명되자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미지의 대상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공포 중의 하나였지.

한 마디로, 무섭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여 다른 증거가 없을까 싶어 다시 바닥을 살피며...

바닥을....





어째서 담배꽁초가 없어져 있지?


분명히 눈이 파인 자국이나 담뱃재를 문댄 흔적은 남아 있지만,

정작 꽁초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딱히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고, 이 시간에 지나가는 이도 없거니와...

추적자가 회수해간 것인가?

생각하기도 싫은 가능성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것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이유가 없었다.



   


또 하나.

나는 이전의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역방향의 발자국을 남겼으나, 그 곳에는 발자국이 겹쳐지지 않았다.  

그 말은 즉슨, 이번에는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는 것.

추적자가 추적을 포기했거나 다른 경로를 택했다는 뜻이다.

더이상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전자의 쪽이길 간절히 바라고는 있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 단순히 추워서가 아니라, 불안과 공포에 의해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



도망치자.


비닐봉투를 꽉 틀어쥐고는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더이상 잔꾀같은 걸 내고 있을 때도 아니고,

어차피 집까지의 거리도 멀지 않으니 그냥 달리는 쪽을 택했다.


눈길에서 몇 번이고 미끄러질 뻔 했으나 여의치 않고 계속 달린다.





달리고,





달려서...









마침내 집 안으로 들어와 잠금 장치를 걸 수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글 수 있는 모든 장치에 잠금을 건 나는

마침내 불안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귀신이라도 본 것일테지.

안도감에 싸이자 그저 별 것도 아닌 것으로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무시하고 집으로 왔으면 됐을 텐데.

이 추운 날씨에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헛수고를 했다는 게 스스로도 한심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식은땀이 잔뜩 나온 탓에 찝찝함과 추위가 가시질 않는지라,

들어가서 샤워라도 하려고 등을 돌리니







내가 아까 버렸던 꽁초를 든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다.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