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순이는 언제나 밝고 친절했다.

얀순이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얀순이는 집안도 부유하고, 재능도 넘쳐났다.


모든 이들이 얀순이를 좋아했다.


얀순이와 한번이라도 사귀고 싶은 남자들은 줄을 섰고

그저 대화조차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셀 수가 없었다.


얀붕이를 제외하고.




얀붕이는 얀순이를 싫어했다.

서로 과거에 아무런 접점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서로 무관심하다가

남들과 달리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 얀붕이를 얀순이가 슬쩍 노려보았다가

그 뒤부터는 늘 이 모습이었다.


얀순이는 모든 이들 앞에서 투명한 미소를 지었다.

얀붕이 앞에서는, 조금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얀순이는 모든 이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갔다.

얀붕이 앞에서는, 조용히 얀붕이를 쫓았다.


얀붕이는, 오로지 얀붕이만이

얀순이의 '뭔가 다른' 모습을 보았다.




떨쳐내고 싶었다.

얀붕이는 그래서,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외모를 가꾸려 했다.

공부를 열심히 했다.

운동도 열심히 했다.


다른 여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었다. 얀순이가 아닌.


적어도, 자신이 다른 여자와 사귄다면, 얀순이의 저 꺼림칙한 시선을 피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아버지의 공장이 망했다.

얀붕이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졌다.

얀붕이는 병수발을 들어야 했다.



얀붕이는 그렇게

다른 여자를 바라 볼 틈조차 내지 못했다.





얀붕이 아버지의 공장은, 얀순이의 집에서 매입해갔다.


얀순이는 섬뜩한 미소를 지었고, 얀붕이만이 그걸 보았다.


얀붕이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은, 얀순이의 친척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얀순이는 조용히 얀붕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바라보았고, 얀붕이는 소름이 끼쳐 했다.






길거리를 걷다가

조용히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얀붕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 네가 그랬지?"



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얀순이가 자기 뒤에 있을 것이다.

그 끈적한 시선은, 몇 번을 받더라도 익숙해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뭘?"


얀순이는 미소를 지었다.

해맑은 미소가 아니었다.

애완동물이 뭔가 새로운 재주를 배웠을 때처럼, 얀순이는 기특하다는 듯, 얀붕이를 낮잡아 보며 웃었다.


"우리 아버지 공장. 납기 기한에 맞추지 못 해서 망한거. 네가 뭔가 했지?"


확신이 있었다.

물증은 없어도 심증은 있었다.


얘라면 뭔가 했을 거라고.


"아, 그건 어쩔 수 없었어. 너희 어머니가 충격을 받고 쓰러지게 해야 했거든. 연약한 분이라는게 보여서, 정신적 충격이 조금 있으면 되겠다 싶더라고."


순간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던 얀붕이에게

얀순이가 계속해서 속삭였다.


"우리 삼촌 병원에 입원해야, 네가 내 근처로 올 거잖아? 넌 나 싫어하니까. 날 피하니까."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에게? 왜 저런 재능있는 사람이? 왜?


"나한테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야?"


입술을 꽉 깨물고

화를 가라앉히면서 얀붕이가 물었다.


"네가 날 싫어하니까. 정말 인생에 더할 나위 없이 날 싫어하니까. 그러면, 내가 너에게 뭘 하더라도, 넌 지금보다 더 날 싫어할 수 없잖아?"


또 그 미소였다.

섬뜩하고, 비인간적인.


남들 앞에서 보여주지 않던 그런 미소.


"있잖아. 내가 너에게 뭘 하더라도 넌 날 지금보다 더 싫어하진 못 해. 이미 날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니까. 하지만, 어쩌면, 네가 지금보다는 날 좀 더 편하게 여기게 될 수는 있잖아. 그래서 그랬어. 뭐건 하다 보면, 언젠가는, 네가 날 좋아할 수도 있겠지."


고작 그런 이유로

얀붕이의 가족이 망가졌다는 생각에


순간 얀붕이는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목에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들린 후

의식을 잃었다.




"떡정도 정이라는데, 이러면 좀 나아지려나?"


온 몸이 묶인 채로

눈에 안대가 씌인 채로

얀순이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벌써부터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음, 뭐,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네가 날 좋아할 수 있게, 최선을 다 해 볼게!"


팔목에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성기에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얀붕이는 그렇게 얀순이를 계속 싫어하다가

증오하다가


모든 것을 놓았다.




"우와, 벌써 우리 얀붕이가 날 싫어하지 않게 된 거야?"


재갈을 풀어주었다.

구속도 풀어주었다.


얀붕이는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채로

눈은 저 먼 곳을 바라보는 채로


바닥에 주저앉다가, 이내 쓰러졌다.


"그러면, 이제 좋아하게 해 줄 일만 남았네?"


얀순이는 다시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p.s. 매일매일 하루 한 편씩 쓰려고 했는데, 은근 빡세네.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yandere/8328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