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얀붕이와 얀순이가 데이트하는 날이었어. 얀붕이가 오직 얀순이를 위해 준비한 날이기도 했지.

약속시간은 11시인데 얀붕이는 9시 반에 도착했어. 2시간 반이나 이른 시간임에도 얀순이는 얀붕이를 기다리고 있었지.

"얀붕씨, 벌써 오셨네요."

"얀순아, 너도 왔구나. 그런데 너무 일찍 나온 거 아냐?"

"이르다니요. 10시에 나왔는데 말이죠."

"뭐, 10시면... 잠깐만, 지금 9시 반인데?"

"맞아요. 어제밤 10시부터 기다리고 있었어요."

"끄응, 날도 추운데 굳이 일찍부터 기다릴 필요는 없었잖아."

"얀붕씨와의 데이트를 생각하면 온몸이 달아올라서 참을 수 없었거든요. 걱정마세요."

"아니 그래도 길거리에서 밤을 꼬박 지샜다는 건..."

"그래도 어제밤 얀붕씨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부 알고 있다고요? 10시 이후 기록이 어디보자..."

얀순이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무언가 찾아보고는 덤덤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읊었지.

"롤 승급전 마지막 판 11시 4분에 종료, 승급전 결과는 승승패패패, 어제밤 게임 도중 얀붕씨를 모욕한 인간말종 새끼들이 3명 정도 있었네요. 모두 내일 새벽 즈음에 조용히 도축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고 화가 나서 웹서핑을 28분까지 하셨네요. 방문기록은 그다지 걸릴 게 없네요. 그러다가 28분부터 성인사이트를 들어가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보셨군요. 제가 있는데 다른 여성이 눈에 들어오시다니, 별도의 '교육'이 필요하겠네요.

그러고 0시 6분에 사정을 해서 뒷처리 하시고 샤워하셨네요. 0시 29분에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간단히 머리 말리고 침대에 들어가셨군요. 유튜브로 영상 몇 개 보셨네요. 용케도 여캠방송을 보려다가 마셨군요. 흐응, 이건 칭찬해드릴게요. 그러다가 1시 10분에 잠이 드셨네요. 기상 후의 일까지 읊어드릴까요?"

얀붕이는 너무나도 당황했어. 얀순이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건 알아도 이렇게까지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알 줄은 몰랐어. 얀붕이는 얀순이를 제지하고 데이트하러 가자고 했어.

"좋아요. 오늘은 사랑스러운 얀붕씨와의 데이트 일이니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은 잠시 잊어둘게요. 아주 잠시 동안만 말이죠."

"그래서 어디로 갈래?"

"얀붕씨가 원하는 곳으로 갈래요."

"응? 오늘은 너를 위해 세운 데이트인데? 항상 내가 데이트를 주도하기도 했고."

"얀붕씨의 취향이 곧 제 취향이에요. 제가 원하는 건 오직 얀붕씨의 사랑이라고요."

"아니, 그러면 곤란하지. 예를 들어 내가 공포영화 보자고 하거나 T-익스프레스를 타자고 하면 망설임 없이 탈 거야?"

"물론이죠. 얀붕씨의 명령이니까요."

"아니, 너 무서운 건 딱 질색이잖아."

"괜찮아요. 저는 언제 어디서든 얀붕씨와 함께라면 그걸로도 충분해요. 거기다 겁에 잔뜩 질린 저를 얀붕씨가 위로하고 사랑스러워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게 아닐까요?"

"그러면, 너 갑각류 알러지 있잖아. 내가 너에게 새우 먹으라고 하면 먹을거야?"

"물론이죠."

"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도?"

"얀붕씨가 원하는 거니까요."

"그럼 내가 너보고 죽으라고 하면 죽을거야?"

"예."

얀붕이는 말문이 막혔어. 얀순이가 약간 병들었다는 건 알고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병들었을 줄은 몰랐거든. 얀붕이는 감정을 고르면서 말했어.

"잘 들어. 넌 나의 노예나 아바타가 아니야.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생각을 따라할 필요는 없어. 우리가 사귄지 비교적 오래됐지만 아직도 난 네가 나 말고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이런 건 정상적인 사랑이 아냐."

얀붕이는 화난 감정을 다스리면서 말했지만 얀순이는 의아했어. 자신의 행동이 어디서 얀붕이를 화나게 했는지 전혀 몰랐던 거야.

"저의 사랑은 얀붕씨에게 저의 모든 걸 맞춰주는 거에요. 얀붕씨를 위해서라면 이깟 목숨조차도 버릴 각오가 되었거든요."

"이깟 목숨이라고 하지마. 비록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너는 너대로의 자아가 있고 인생이 있는데 그걸 부정할 셈이야?"

"저를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저는 오직 얀붕씨를 위해 존재해요. 얀붕씨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직감했죠. 이것이 운명이고 사랑이라고. 그러니 그렇게 거부해도 소용 없어요."

얀붕이는 곤란하다는 듯이 스스로의 머리를 잡고 쥐어 뜯었어. 얀붕이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보증 좀 서줄..."

짜악--!

그 말과 함께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따귀를 날렸어. 얀붕이는 얼얼했지. 얀순이의 눈빛은 매우 차가워졌고 목소리는 격양되었어. 얀붕이는 얀순이가 이렇게까지 화내는 건 본 적이 없었어.

"보증을 서달라고 하다니, 얀붕씨는 쓰레기네요. 제가 얀붕씨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다고는 해도 얀붕씨의 파탄난 신용이나 산더미 같이 불어난 빚까지 책임지는 호구로 보이시나요?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하겠군요."

"히익! 미, 미안해."

"미안할 건 없어요. 미리미리 얀붕씨를 '교육'하지 못한 제 잘못이니까요. 거기에 얀붕씨는 저를 단물만 쪽쪽 빨다가 내팽겨 치려고 생각하셨다니, 이렇게 만든 제 책임이죠."

얀순이는 얀붕이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갔어. 얀붕이는 힘없이 끌려갔지. 도축장에 들어서는 송아지와도 같이 말이야.

"이번 '교육'은 특별히 기대하셔도 좋아요. 얀붕씨를 이상하게 만든 모든 것들을 얀붕씨 눈 앞에서 숙청할 생각이거든요. 그리고 백지상태로 만들어서 저만의 얀붕씨를 만들어야겠어요.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죄없는 사람들은 건드리지 말아줘."

"얀붕씨는 전혀 잘못한 게 없다니까요? 얀붕씨에게 괜히 이상한 생각을 주입시킨 그 새끼들이 문제인 거죠. 걱정마세요. 이 모든 게 다 사랑이니까요♥."

그 날을 끝으로 얀붕이와 얀순이를 본 사람은 없었다고 해. 얀붕이 주변인들도 사라졌다가 폐인이 되어 나타났다고도 하지. 그렇게 얀붕이와 얀순이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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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면 소프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