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실험체 (5)

 

 

 

“그럼 나 갖다 올 테니까 청소 제대로 해라.”


“…….”


“뭐야, 뭔데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엘프의 공주, 루-나타니엘의 의뢰를 받고 2주가 지났다.

 

헤인킬은 의뢰대로 매주마자 그녀를 찾아갔는데, 릴리트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위산이 역류할 정도로 싫었다.

 

“나 원, 이젠 네 눈치도 봐야 돼?”


그가 그렇게 말한 뒤 오두막을 떠났다. 

 

릴리트는 그가 나가자마자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아……역시 나로는 안 되는 걸까……?”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래봤자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그건 릴리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그 여자, 나타니엘은 릴리트도 인정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세상에 그녀보다 아름다운 여자를 찾으라고 한다면 아마 평생이 걸려도 모자를 

 

터였다. 그런 여자한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남자가 얼마나 될까?

 

“이대로 가면 빼앗겨버려…….”


“뭘 빼앗긴다고?”

“꺄악!? 크, 크로로 씨…….”


어느새 크로로가 문을 열고 들어와 있었다. 릴리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호오, 그 표정. 마치 상사병을 앓는 암컷의 얼굴이로구나.”


“……아니거든요.”

“아니긴? 네가 헤인킬을 좋아한다는 건 동네 거지도 아는 사실인데.”


이 사람을 속일 순 없겠지. 정보로 밥 먹고 사는 그녀를 속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저나 그 녀석은 어디 갔어? 드디어 죽었나?”


“의뢰 때문에 마을로 갔어요.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전해줄 소문이 있어서. 성모 교단의 대주교 때문인데…….”

아아, 이건 말하면 안 되겠구나. 크로로가 자기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그 녀석이랑 약속을 하나 해서, 난 너한테 함부로 말하면 안 돼.”


“왜요?”


“우리 사이의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 나중에 다시 오지 뭐……그보다도 말이야.”


크로로가 음흉하게 웃으며 릴리트에게 다가갔다.

 

“너, 헤인킬이랑 어떻게 잘 해보고 싶은 거지?”


“…….”

“에이, 그렇게 점잔빼지 말고. 이 언니가 공짜로 도와줄 수 있는데?”


“선생님이랑 크로로 씨는-”

“나 유부녀거든? 그 기분 나쁜 놈이랑 엮지 말아줄래?”


그렇게 말하며 크로로가 목에 걸린 반지를 보여주었다.

 

벌써 결혼을 했다니, 릴리트는 믿을 수가 없어서 눈살을 찌푸렸다.

 

“하피들은 결혼을 일찍 해. 미리 점찍어둔 짝이랑 20살이 되기 전에 하거든.”


“그렇군요. 아무튼 왜 도와주겠다고 하시는 거죠?”


“재미있어 보이니까?”


아아, 이 사람은 원래부터 이랬지. 그녀는 크로로가 돈과 흥미 위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설마 서큐버스한테 연애 강의를 할 줄은 몰랐다만……이것도 다 경험 아니겠어?”


“좋아요. 절 도와주시겠어요?”


릴리트는 자세를 고쳤다. 크로로는 헤인킬을 오래 알았으니 자기도 모르는 무언가를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선 첫째! 남자들은 여자 취향이 전부 달라. 외형부터 성격, 출신이나 종족도 따지지.

 

일단 헤인킬의 여자 취향이 어떤지 알아보는 게 어떨까?”

 

“여자 취향이라……그 다음은요?”


“둘째! 너 자신의 매력을 갈고 닦아! 말투부터 사소한 버릇까지 세세하게 살펴보고

 

헤인킬의 취향에 맞추도록 노력해. 할 줄 아는 게 많으면 더 좋아.”

 

“흠흠, 그 다음은?”


“……어, 정 안 되겠으면 그냥 덮쳐버려. 기정사실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


안 되겠네 이 사람. 릴리트는 크로로가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튼 열심히 노력 또 노력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응!”


“일단 참고는 할게요.”


“근데 말이지, 아마 많이 힘들 거야. 그 녀석은 여자한테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

 

헤인킬은 자기 꿈을 이루는 데에만 신경 쓰고 있거든.”

 

“꿈이요?”


“그 녀석은 인간의 몸으로 ‘불멸’을 꿈꾸고 있으니까.”

 

헤인킬의 꿈.

 

릴리트는 그 단어에서 낯선 감정을 느꼈다.

 

 

 

 

 

 

 

*****

 

 

 

 

 

 

“투약은 끝났다. 그럼 다음 주에 다시 오지.”


“잠시만, 헤인킬 님.”


유령 저택. 헤인킬은 평소처럼 약을 지어주고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그런 그를 나타니엘이 붙잡았다.

 

“진료비 협상은 끝난 걸로 아는데?”


“그게 아니라, 잠깐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요.”


대화라……헤인킬은 이것도 의뢰의 일부라 생각하고 자리에 도로 앉았다.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일단 덮쳐라. 그럼 뭐든 되겠지.”

“아니, 그게 아니라…….”


“예뻐지는 약이라면 나도 모른다. 종종 여편네들이 날 붙잡고 물어보던데…….”


“그보다도 당신의 목표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만.”

 

목표. 그 단어를 듣자마자 헤인킬의 표정이 굳었다.

 

“얼마나 알고 있지?”


“당신이 불로불사를 완성시키려고 하는 것까지요?”


“젠장, 다 알고 있잖아.”


헤인킬이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평소라면 그냥 무시하고 나가면 될 일이지만, 상대는 거액의 의뢰비를 준 의뢰인이었다.

 

그도 의뢰인에게 무례를 저지를 만큼 불성실하진 않았다. 

 

“영구 재생 환원 마법. 더 쉬운 표현으론 ‘불멸 인자’라고 부르지.”

 

그것은 모든 마법사에게 금지된 영역.

 

불로불사, 인조인간, 공허탐구.

 

흔히 3대 금기라 불리는, 마법사들이 절대로 연구해선 안 되는 분야들.

 

“어디서 그 이야기를 들었지?”


“저희는 귀가 밝답니다, 헤인킬 님.”


“그러시겠지. 귀가 그리 큰데.”


헤인킬이 팔짱을 꼈다. 그리고 나타니엘을 노려보았다.

 

“엘프의 법도 어쩌고저쩌고 잔소리를 할 생각이라면 이만 돌아가지.”


“아뇨, 전 그에 대해 아무 불만도 없습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는 당연히 인간 주제에 건방지단 말이라도 나올 줄 알았다.

 

“그럼 왜 그 이야기를 꺼냈지?”


“궁금해서요. 당신은 어째서 불멸을 꿈꾸시는 거죠?”


오래 전에 들었던 질문. 그는 오랜 학우를 떠올렸다.

 

아아, 그 녀석은 지금쯤 뭐하고 있으려나.

 

“너희 엘프는 압도적으로 긴 수명을 지녔지. 너희에게 10년은 찰나에 불과할 정도니.”


“네.”


엘프의 정확한 수명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누군가는 1,000년, 누군가는 2,000년이라고 했지만 엘프가 늙어죽는 걸 본 사람이 없어

 

모두 추측에 불과했다. 어찌됐든 그들의 수명이 길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반면 나 같은 인간은 100년도 살기 어렵다. 젊은 시절은 고작 3, 40년에 불과하지.

 

정말이지 짜증날 정도로 시간이 부족하단 말이야.”

 

“영원히 살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 난 수명 따위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

 

헤인킬의 대답에 나타니엘의 표정이 조금 변했다.

 

“어쨌든 생물은 죽는다. 중요한 건 뭘 이루고 어디까지 나아가느냐, 그뿐이지.”


“의외의 대답이네요.”


“죽음은 무(無)에 불과하다. 그냥 끝날 뿐, 그저 그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하지만 나는 죽음 이후에도 나라는 인간이 살았다는 걸 역사에 각인시키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는 인간들 위에 군림하여 왕이라 불렸다.

 

누군가는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한 마왕을 물리쳐 용사라 불렸다.

 

누군가는 절대 일어날 리 없는 기적을 구현하여 성자라 불렸다.

 

“최초로 불로불사를 이룩한 인간. 그 이름은 100년, 1000년, 아니 억겁의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겠지. 불멸의 마법사 헤인킬! 꽤 듣기 좋지 않나?”

 

풋.

 

나타니엘이 짧게 웃었다. 헤인킬을 그걸 보자마자 혀를 찼다.

 

“역시 비웃는군.”


“아뇨, 아뇨. 비웃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실 줄은 몰라서…….”

“그게 비웃는 거잖아! 하여간 귀쟁이들이란, 낭만을 몰라! 낭만을!”


헤인킬이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바보 자식, 그러게 왜 주절주절 떠든 거야…….”


조금만 띄워줘도 나불거리는 버릇은 죽어도 못 고치겠지.

 

그가 투덜투덜 중얼거리며 저택을 떠났다.

 

 

 

 

 

 

 

*****

 

 

 

 

 

 

 

킁킁.

 

헤인킬은 집에 다 도착했을 무렵 무언가 타는 냄새를 맡았다.

 

혹시 마법사 사냥꾼인가? 헤인킬이 호신용 나이프를 빼들고 오두막으로 다가갔다.

 

어쩌면 안에 함정을 설치했을지도 모른다. 그럼, 릴리트는?


“릴리트!”


그가 문을 걷어차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안에선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나왔다.

 

“켈룩, 켈룩! 오, 오셨어요?”


“……너 뭐해.”


“요리요!”


헤인킬이 부엌에 있는 요리를 흘끗 보았다.

 

대체 저 물체의 어느 부분이 요리라는 거지……?

 

“다 됐으니까 앉으세요! 자자, 얼른요!”


“나는 무신론자지만, 오늘만은 신을 찾고 싶군.”


헤인킬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릴리트가 테이블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아마 당근이었을 채소와, 어쩌면 물고기였을지도 모르는 숯 덩어리가 있었다.

 

“조금 태웠지만 괜찮을 거예요.”


“조금?”

헤인킬이 포크로 물고기……비슷한 무언가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으음, 으흐음.”


“맛있어요?”


“이거 참,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구나. 전혀 안 익어서 말이다.”


그는 여자의 외모나 그림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재주는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 그가 미(美)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음식이었다.

 

“오, 이건 뭐지? 닭고기인가? 얘는 아예 안 익어서 치료를 해주면 되살아나겠어.”


“…….”


“동네 사람들 이것 좀 보시라! 우리 꼬맹이가 다 자라서 자기 주인님을 독살하려 하는군!”

 

“그, 그만…….”


“릴리트, 들려? 이 당근이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데. 저주할 테다! 나를 이딴 탄소

 

덩어리로 만든 네 년을 음식 지옥에 가서도 영원히 저주할 테다!”

 

“으으으으으……!”


그 뒤로 약 15분 동안, 헤인킬은 자기가 쓸 수 있는 모든 단어를 사용해 릴리트의

 

음식을 평가해주었다. 평소와 달리 더 상냥한 말투여서 그런지 더 사무치게 아팠다.

 

“그, 그래도 열심히 만든 건데…….”


“세상은 네 의도나 노력 따윌 평가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결과뿐이지.”


헤인킬이 물로 입을 헹군 뒤 말했다.

 

“덕분에 내가 열심히 번 돈으로 산 식재료가 쓰레기가 됐구나. 자알 했다, 정말.”


“죄송해요.”


릴리트는 의기소침해졌다. 헤인킬이 좋아할 줄 알고 열심히 만들었는데, 오히려

 

그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어버렸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요리를 한 거지?”


“선생님이 제 요리를 먹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너치곤 괜찮은 발상이었다만, 모든 발상이 그렇듯 결과물은 실망스럽기 마련이지.”


헤인킬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옷소매를 걷었다.

 

“요리는 마법이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려면 이론과 실전 모두 박식해야 하는 법.

 

이리 와라. 너한테 요리라는 이름의 마법을 가르쳐주마.”

 

“네?”


“요리 가르쳐주겠다고. 너도 한 사람 몫을 하게 되면 좋겠지.”


그 말에 릴리트의 표정이 밝아졌다.

 

“잘 부탁드립니다!”


“좋아, 좋아. 우선 손부터 씻고, 재료 손질부터 시작하자.”


그 후, 릴리트는 헤인킬에게 요리를 배웠다.

 

의도한 것과 달랐지만- 어쨌든 더 이상 상관없는 문제였다.

 

 

 

 

 

 

 

*****

 

 

 

 

 

 

 

“……선생님……?”


도둑마저 잠들었을 어두컴컴한 밤, 릴리트는 조심스레 헤인킬의 상태를 확인했다.

 

완전히 잠들었다. 더 이상 깊게 잠들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죄송해요.”


옷이 하나, 둘 씩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녀는 천천히, 바람이 스치는 소리보다도 조용히 헤인킬의 옷을 벗겼다.

 

들키면 어떻게 될까. 날 경멸할까? 너도 결국 더러운 서큐버스였다고 말할까?


릴리트는 자신의 피를 혐오했다. 서큐버스가 아니었다면, 평범한 여자애였다면…….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단 둘이 살 일도 없었을 터. 더러운 서큐버스였기에

 

함께 할 수 있다. 쓸모가 있는 동안엔, 그 전까지는…….

 

“좋아, 좋아해요. 정말 좋아……앗…….”


릴리트가 그와 몸을 겹쳤다. 그리고 혀로 땀을 핥아마셨다.

 

짭조름한 맛. 헤인킬의 맛, 사랑하는 사람의 맛.

 

“흐응……으흣, 아히잇……아…….”


그녀는 오래 전에 본, 남자의 여자의 교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골목에 있었다. 그 땐 너무 어려 그게 어떤 건지 알지 못했지만, 그 광경만은

 

떠올릴 수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벽에 기대게 하고, 엉덩이를 잡고 허리를 흔들었다.

 

조용히 울려 퍼지는 교성과 흘러내리는 땀.

 

사랑을 속삭이는 달콤한 목소리.

 

상상한다.

 

헤인킬이 힘껏 그녀를 밀어내, 힘으로 제압하고 강간하는 것을.

 

“안 돼, 선생님……그러시면 안 되는뎃……앙…….”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선생니임, 선생……니임, 하읏, 으흐응……그렇게 팡팡, 찌르면 안 돼요오…….”


섹스하고 싶어.

 

이런 게 아니라, 진짜 섹스를. 

 

그의 위에 올라타 경멸받으면서, 허리를 흔들고 싶어.

 

이러면 안 된다고 애원하는 걸 듣고 싶어.

 

잔뜩 키스해서, 질식할 때까지 잔뜩 키스해서 뇌가 흐물흐물 녹아버리면 좋겠어.

 

“자지 국물 아기 방에 븃븃, 하면 안 돼요. 오흐읏……파앙, 파앙하는 거 안 돼요…….”


매일매일 섹스하고 싶어.

 

불알이 텅텅 비어서 국물 한 방울 안 나오게 쥐어짜내고 싶어.

 

아기를.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만들고 싶어-

 

“아……아핫……후우우, 후웃, 후우, 후우웃……앙…….”

 

몸이 가볍게 떨리며 절정한다.

 

릴리트가 손가락을 꺼내 보았다. 젤리처럼 끈적끈적한 애액이 거품 져 흘러내렸다.

 

“점점, 심해져……이러면 안 돼, 안 돼. 참아야 돼……그래야 하는데…….”


잘못됐다는 건 알고 있다.

 

이러다가 들키면 어떤 경멸을 받을지 생각하면 오금이 저렸다.

 

두려웠다.

 

……한편으론, 기대됐다.

 

 

 

 

 

 

 

 

 

야설도 자주 써버릇 해야지 쓰다 안 쓰다 하니까 안 꼴리는 것 좀 보소

그나저나 원래 10편 예상하고 썼는데 이거 10편 안에 절대 못 끝내겠는데...

아 몰라 레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