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세계는 싫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세계에서 더 살아가는 것은 무리였다. 지금까지 내가 이 세계에서 살아오면서 경험한 모든 상식이 부정 받는 느낌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 나갈 것 같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다.


애초에 이 세계에 뜬금없이 차원 이동을 했을 때부터, 뭔가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랑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각오했지만, 이거는 너무 하지 않은가?


기껏해야 회사 이름이 바뀌고 남자와 여자의 신체 능력이 뒤바뀐 정조 역전의 세계나 아니면 평행 세계의 내가 이상한 여자에게 얼마 전까지 납치 감금당했다는 사실만 해도 머리가 펑! 하고 터질 것 같은데 이제는  초능력자끼리 치고받고 싸우기까지 하고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애벌레가 실을 뱉어서 사람의 몸을 꽁꽁 묶거나 아니면 그림자에서 사람의 형체를 닮은 무언가가 튀어나와서 


강철로 만든 정원용 가위를 박살 내고 두 주먹으로 사람의 면상을 박살 내는 것도 모자라 몇m나 떨어진 담벼락에 크레이터가 생길 정도의 힘으로 사람을 날려보내는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도망쳐야 해.


내게 남은 건 이 선택지밖에 없다. 이 집에 있다가는 대체 어떤 일을 당할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오늘은 정원사가 담벼락을 향해 날아갔지만, 내일은 내가 담벼락을 향해 날아갈지 누가 아는가? 말 그대로 곤죽이 될 정도로 두들겨 맞는 건 이쪽에서 사양하고 싶다.


애초에 회귀 능력이 있다는 시점부터 알아차렸어야 했어..


뭐 판타지 소설 같은 걸 보면 이 세계 특전이라고 해서 치트 능력 같은걸 하나씩 쥐어주지 않은가? 작가들이 주인공에게 그런 설정을 집어넣는 건 지루한 빌드업따위는 생략하는 요즘 소설의 영향도 있지만,


애초에 이 세계 특전 같은 게 없으면 그 소설 자체가 진행이 안 되기 때문에 치트 능력 하나씩은 가져다주는 게 아닐까???


평범한 고등학생이 판타지 세계에서 뭘 할 수 있는데? 육체노동도 안되고 뭐 지적인 활동도 고등학생 수준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아니 애초에 용과 마법, 그리고 몬스터가 가득한 판타지 대륙에서 살아남는 건 고등학생이 아니라 UDT 특전 대원이 와도 힘들 거다.


그러니까 작가들은 평범한 고등학생이 이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살아남고 적응할 수 있도록 이것저것 치트 능력을 쥐여주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회귀 능력은 이럴 때 써야지.


개똥밭을 굴러도 저승보다는 살만한 법. 웬만하면 입 꾹 닫고 살겠는데 예진은 나에게 말 못할 짓을 너무 많이 했다.


감금, 폭행, 그리고... 음...골든 샤워까지.. 보통 사람에게 하면 잡혀갈 만한 그런 심각한 짓을 예진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했다.

그런 건 죽어도 싫어. 평행 세계의 한아름은 뭐 어떻게 참고 버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나까지 참고 버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머릿속으로 다시 회귀의 조건을 다시 떠올려본다. 죽음을 겪으면 시간이 되돌아간다.

뒤에서 예진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어떻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할 수 있을까???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걸어 잠근다. 그리고 서둘러 부엌으로 뛰어간다. 벌써 예진은 내 뒤를 따라왔는지 현관문이 덜컹거리면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반을 뒤지던 중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예진이 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나는 시간을 되돌려야만 했다.


어제같이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면서 쥐어 짜이는 그런 평화로운 일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어쩌면 오늘부터 나는 지하실에 다시 처박힐 수도 있고, 밥도 이상한 개밥 같은 걸 수저도 없이 그냥 손으로 퍼먹거나 아니면 입으로 먹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아름아? 문 열어, 문 열어야지 아름아?"


조금 전에 그런 장면을 봤는데 순순히 문을 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와서는 예진이 사람인지 아닌지도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림자 속에서 이상한 형체가 튀어나와 정원용 가위를 박살 내는 그런 일이 내 눈앞에 일어났는데,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를 이유가 없었다.


쾅쾅쾅!!!


문과 벽을 잇는 잠금장치를 통째로 박살 낼 것처럼 예진은 현관문을 세게 열었다가 닫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예진이 내가 있는 이 부엌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서둘러 부엌을 뒤져 날카로운 과도 같은 것들을 찾아보지만, 도저히 내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저번에 어디서 과도 같은 걸 꺼내는걸 봤는데? 머리맡에 있는 선반, 그리고 싱크대 아래에 있는 수납대, 식기 청소기와 살균소독기 안을 뒤져 보지만 날카로운 물건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혀라도 깨물어야 하나?


아니 혀를 깨물어서 목숨을 끊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자살 방법 중 하나다. 사극을 보면 혀를 깨물어서 수절을 지켰다- 뭐 그런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그건 극 중 재미를 위해서 각색을 한 것이지 사람은 혀를 깨문다고 해서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 


혀라는 게 뭐 일단 실생활에 중요한 부위기는 한데 목숨에 영향을 줄 만큼 중요한 부위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혀를 세게 깨문다고 해서 사람은 죽지 않는다. 그냥 맛을 못 느끼고 말 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어눌하게 말하는 것? 그 정도 수준의 상처만 입지 혀를 깨문다고 죽는 일은 절대 없었다.


... 뭐 위생 관념이 희박한 중세 시대에 혀를 깨물면 그 상처에 각종 세균이 들어가 세균 감염으로 골골 고리다가 죽고 뭐 그럴 수는 있겠지만,


그건 애초에 내가 생각하는 자살 방법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그렇게 죽기 전에 예진은 병원에 데려가서 나를 살리거나 아니면 싸늘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내가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즐거워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최악의 경우의 수 중 하나다.


일단 칼로 자살하는 방법은 포기하자, 그럼 다른 방법. 쉽고 빠르게 시간을 회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변기통에 얼굴을 박는다? 사람이 익사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 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때 동안 예진이 나를 내버려둘까? 


투신자살? 집이 2층 건물인데 여기서 떨어지면 다쳐봐야 얼마나 다치겠는가? 

뭔가…. 방법이 있을 텐데.


철컹!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박살 난 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었다.

그때 내 눈에 조그마한 찻잔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하게는 찻잔의 아래를 받쳐주는 접시가 눈에 들어온 거지만.


서둘러 접시를 손에 들고 눈을 감고 바닥을 향해 내려친다.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날카로운 접시의 조각들이 바닥 여기저기에 튀었다. 그리고 그 조각들 중 제일 큰 조각을 손에 쥔다.


날카로운 조각의 단면이 내 손가락을 베어서 붉은 핏방울이 단면을 타고 바닥에 툭툭 떨어지지만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한방.... 이 고통만 참으면 다른 사람을 감금하는 예진에게서 벗어 날 수 있다.


어떻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에는 도망쳐주겠다.

나는 인형이 아니야, 나는 나다. 나는 다른 누군가의 심심풀이 인형 따위는 되지 않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눈을 질끈 감는다.


목표는 목의 경동맥이다. 잠깐 두 손으로 꼭 쥐기만 해도 두 손에 피가 흐르게 만들 정도로 날카로운 접시 조각의 단면으로 목을 찌르면 분명 나는 예진이 어떻게 손을 쓰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시간은 반대로 돌아가겠지.


두 손으로 날카로운 조각을 바라보았다. 두 손으로 얼마나 세게 쥔 탓일까? 조각이 파르르 떨리고 붉은색 핏방울이 바닥에 점점이 떨어진다.


...이런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내 손으로 목숨을 끊는다니, 뭐 어떻게 거창하게 목숨을 끊어서 시간을 회귀한다.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정말 실천으로 옮기는 건 다른 문제다.


두 번의 경험을 통해서 내가 죽으면 시간이 되돌아가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거랑 실천을 하는 거는 별개다.

번지점프를 예로 들어보면 안전장치가 튼튼하게 설치되어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막상 뛰어내리는 건 대단한 용기를 구하니까.


"아름아, 이게 뭐하는 짓이야??"


어느새 집에 들어온 예진이 나를 바라보더니, 굉장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무표정한 유지 하고 있던 그 무표정한 모습을 하는 그녀와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오지마요, 거기서 절대로 움직이지 마, 사람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생각 잘 해"


손에 쥔 접시 조각을 목에 겨눈다. 다가오지 말라는 내 행동에 어떻게 한 발짝 내딛으려던 예진의 걸음이 멈춘다.


"내려놔 아름아, 그거 위험한 물건이야. 착하지?"


어린 아이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거는 예진,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것처럼 말을 하던 평소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목소리가 조금 떨린다.


예진은 팔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초조한 듯 주먹을 쥐었다 피는 것을 반복했다. 


목숨을 끊어 회귀하는 것보다 더 좋은 수단이 생긴 게 아닐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의 예진과는 달랐다.

불안하고 살짝 겁에 질린 그녀의 표정, 여기서 내가 대형 사고라도 칠까 조마조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진의 팔을 뻗어도 닿지 않을 거리, 예진은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보며 언제 당황했느냐는 듯 예진의 표정은 다시 무뚝뚝한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사정없이 흔들리던 그 눈동자가 다시 차분하게 자리를 잡았다.


"틴달로스"


그때 예진의 그림자에서 아까 정원사를 사정없이 두들겨 팬 그것이 놀라운 속도로 튀어나와 내 손에 들고 있는 접시 조각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손에 들고 있는 조각으로 목을 긋는다. 아주 살짝 피가 흐를 정도로, 뭔 허튼 수를 쓰면 나는 죽을 거야.

일종의 자해를 통해서 예진에게 위협을 주려는 의도였다.


....!!!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묶여 고정된 것처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내 팔. 무슨 곤충이 쏜 실에 맞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뭐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박제된 곤충처럼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당황한 눈으로 예진을 바라보았다. 예진과 예진의 등 뒤에 있던 그것은 걸음을 옮겨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내 팔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는 달리 천천히 방금 예진을 만나기 전에 접시 조각으로 목을 찌르기 전의 그때 그 자세로 돌아가는 내 팔. 


방금 내 상황을 비디오로 되감기를 하듯 아까 있었던 일이 천천히 거꾸로 흘러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이 다시 올라와서 내 상처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빠르게 아물기 시작하는 손아귀의 상처. 몸을 뒤로 돌려 손에 들고 있는 접시 조각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러자 조각들이 춤추듯이 움직이면서 다시 하나로 합쳐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진열장에 고스란히 전시된 접시.

정말 말도 안 되는 마법과도 같은 광경에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를 지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어느새 예진은 내 앞에 바짝 다가왔다. 모든 게 반대로 흘러가는 이 상황 속에서 예진은 아무렇지 않은듯했다.


지금까지 보와 왔던 어떤 상황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내 앞에 펼쳐지자. 다리에 저절로 힘이 풀린다.

못을 박은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던 사지가 자유로워졌지만,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뭐야…. 이 상황은..?"


(대충 황홀의 얀데레 포즈)


"아름아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야 알겠지?"


....지금까지 두번의 회귀 전부 내가 시간을 되돌린 게 아니었다.


이 경험으로 모든 게 확실해졌다. 지금까지 겪었던 두 번의 회귀 전부 다 내가 아닌 예진이 시간을 되돌렸다는 사실을 나는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시발…. 이건 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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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