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어지럽다.

 

 

어둠,

 

칠흑 같은 어두움이 가득하다.

 

피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터져 나오는 비명을 참았다.

 

어떻게 된 걸까, 단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몸부림친 것 까진 기억난다.

 

그리고 드리우는 갑종 보행기의 그림자를 마지막으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명령을 받고서, 단을 지키기 위해 싸우려고 했다.

 

명령은 물론이고, 자신의 결심조차 이루지 못했다.

 

괴수들은 다 섬멸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단을 찾기 위해서라도,

 

상반신을 일으키려 했으나 맘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비명을 지르는 몸에 힘이 안 듣는 것도 물론이거니와,

 

무언가가 자신을 무겁게 누르는 느낌이다.

 

흐릿한 초점에 어지러이 상이 맺히다 이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검은 머리, 자신의 몸을 내리누르는 익숙한 검은 머리가 들어온다.

 

무시하고서 머리의 주인을 일으켜도 됐겠지만,

 

조용하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잔잔한 노래처럼 긴장을 풀어주는 듯했다.

 

자신의 품에 머리를 묻고서 잠에 취한 이의 체온을 느꼈다.

 

살짝 열린 창문 너머로 부드러운 바람이 스며들 듯 불어왔다.

 

자신의 머리카락과 단의 머리카락을 어지러이 가지고 놀았다.

 

어렵사리 왼손을 빼내고서 품에 안긴 단의 머릴 쓰다듬었다.

 

얼마나 잠들고서 깨어난 건진 모르지만, 사실 단과 그렇게 떨어져 있었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을 때의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자신은 단과 같이 있었으니까,

 

웅크린 채 우는 단이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나의 목소리에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참으며 고개 올려 든 단을 보듬어 주었다.

 

단은 무어라, 무어라 나에게 감정을 쏟아 붓듯 말했다.

 

무슨 말인지 말 그대로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지만, 그저 나는 단을 보듬어 주었다.

 

눈물 자욱이 가득한 단의 모습이 아련했다.

 

그를 지켜보자면, 삭막하기 그지없던 병실에서

 

느꼈던 처음의 그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 그는 따뜻했다.

 

그를 생각하는 지금도 가슴 한 편이 따뜻하다.

 

‘단은 따뜻한 것’

 

속마음이 입을 탔다.

 

“단은 따뜻한 것”」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유나는 단의 머릴 쓰다듬었다.

 

단의 눈이 떠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단의 시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유나가 가득 찼다.

 

고운 손길이 머리 위로 느껴졌다.

 

누구의 것이라고 할 것도 없이 분명 유나의 손길이겠지

 

천천히 고개를 들고서 몸을 바로 했다.

 

여느 때와 같이, 무표정한 유나가 갸웃했다.

 

쓰다듬던 손길을 멈추고서, 유나가 입을 떼려 했지만, 단이 먼저였다.

 

“미안, 나 때문에 불편했지?”

 

쓴웃음이 나왔다.

 

유나를 지켜보던 때는 해가 한창 떠있을 무렵이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해가 지고도 한참은 전에 졌을 시간이다.

 

유나가 고갤 가로저었다.

 

유나는 말없이 이불 속에 숨어있던 오른손을 꺼내 단의 머릴 끌어다 다시 품에 넣었다.

 

유나의 왼손이 다시금 단의 머릴 쓰다듬었다.

 

당황할 틈도 없이 유나의 입이 열렸다.

 

“지켰어......”

 

유나의 한 마디가 마음을 저몄다.

 

유나의 한 마디에, 다시 품을 벗어난 단이 유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미안해, 약속 못 지켰어”

 

무력하게 유린당하던 보행기 속, 유나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자신을 위해 허우적거리던 유나가 떠올랐다.

 

마치 자신의 발목이 뜯겨나가는 고통이었을 텐데,

 

자신의 허리 밑 모든 것이 뜯어 먹히는 고통이었을 텐데,

 

 

유나를 외면한 자신이 떠올랐다.

 

유나가 입을 열었다.

 

“...... 어째서? 단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나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어깨를 붙잡던 단이 유나를 품 안으로 넣었다.

 

유나의 온기를 느꼈다.

 

한 마디의 따뜻함에,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갑작스레 안아든 단의 행동에, 잠시 생각에 빠진 유나가 단을 마주 안고서, 단의 들썩이는 등을 쓸어주었다.

 

유나의 상냥함이 마음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유나의 따뜻한 시선을 견딜 수가 없다.」

 

 

「강평회에서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단은 유나를 찾아가지 않았다.

 

병실은 다시금 유나 혼자만을 위한 독실로 변했다.

 

이따금, 훈련을 위해 격납고에서 마주칠 때에도, 단은 유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원래부터 모르던 사이였던 것처럼,

 

인사를 건네려던 유나의 입이 굳게 닫혔다.

 

가슴이 시렸다.

 

차갑다.

 

혼자서 우두커니, 창문으로부터 보이는 푸른 달을 봤다.

 

푸르고, 덧없는 그 모습이 미웠다.

 

속으로 소년의 이름을 부른다.

 

‘단’

 

‘......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나’

 

단과 함께 있으면 따뜻했다.

 

단과 함께 있으면 평온했다.

 

단과 함께 있으면 가슴이 떨림이 멈췄다.

 

단과 함께 도시락을 비우던 순간이 떠오른다.

 

단과 함께 출격하기 전날, 단이 말해준 ‘괜찮을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땐, 가슴이 간지러웠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강평회가 끝난 날로부터 단은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멀리 밀어내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왜?’

 

한 마디의 물음이, 잔잔한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키고서 사라졌다.

 

바라보고 있는 푸른 달과도 같이, 가슴이 시려왔다.

 

아팠다. 하지만 보행기를 타다 얻은 아픔과는 달랐다.

 

유나는 이불을 꼭 쥐고서 웅크렸다.

 

몸 안에, 알 수 없는 곳에, 큰 구멍이 난 듯했다.

 

어떻게든, 그 구멍을 메우고 싶지만, 별달리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단이 보고 싶은, 여느 날과 같은 밤이 지나간다.

 

단과 다시 만나게 된 날은 그로부터 머지않은 날이었다.

 

새로 들어온 조종사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며 지나가는 단이 보였다.

 

밝게 웃는 단의 얼굴이 빛났다.

 

점점 가까워졌지만, 역시나 단은 아는 척하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단의 팔소매를 자신도 모르게 붙잡았다.

 

단이 웃던 표정을 지우고서 멍하니 팔소매를 붙잡은 소녀에게 시선을 던졌다.

 

“단”

 

소녀가 소년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무리가 술렁였다. 이윽고, 단에게 무어라 속삭이던 그들이 사라지자,

 

격납고로 향하는 넓은 복도에는 단과 유나만이 존재했다.

 

단은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단......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단이 오지 않는 날이면, 가슴이 아파......”

 

“단이 오지 않는 날이면, 가슴이 괴로워......”

 

“단의 존재가, 나에게서 멀어져 가면......”

 

“단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려......”

 

“알 수 없는 곳이 텅 빈 것만 같아......”

 

 

“나 어떻게 된 거야......?”

 

그간의 마음이 터져 나오듯, 유나의 입에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단이 유나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너를 구해줄 수 없었어, 나는 나만 생각했어, 그런 상황을 외면했던 나야”

 

“나는 아무것도 못해, 너처럼 강하지도,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도, 없단 말이야!”

 

단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 단은, 나를 대신해 보행기를 타주었어”

 

“단은, 나를 위해 계속 곁에 있어 줬어......”

 

“단은 상냥해, 나를 소중히 생각 해줘......”

 

투명한 물방울이 유나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계속 곁에 있어줘”

 

고개를 숙인 유나의 어깨가 조용히 들썩였다.

 

“나, 도움이 될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매달리 듯, 부탁하는 유나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너무 애처로웠다.

 

유나를 밀어내던 단의 마음이 허물어져 간다. 

 

억지로 밀어냈다. 더 이상 관계의 상실감을 느끼고 싶지 않던, 언제까지고 지속될지 모를 관계에 상처받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유나는 다가온다.

 

그 순진무구함이, 자신만을 위해 그녀를 밀어낸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자기 몸조차 겨우 가누는 자신이 유나의 곁에 있어도 되는 걸까?

 

그때는 운이 좋았지만, 언제고 그런 일이 행운이 계속될지 모른다.

 

그 행운이 한계에 부딪칠 일이 온다면, 자신은 반드시 그녀를 잃을 텐데,

 

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을 필요로 하는 유나의 모습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 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고독함이 유나를 원하는 걸지도 몰랐다.

 

모두와 벽을 세우고 지내던 나날들이, 지금 와서 타인의 애정을 고파하게 만든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일방적으로 호의를 표하고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으려 했던 자신이 역겹지 않은가, 

 

자신이 무엇이라도 된단 말인가? 결국 자신도 끝없이 혼자이고 싶지만, 끝없이 타인을 원하는 인간에 지나지 않은가,

 

유나를 잃을 때의 슬픔이 두렵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눈앞에 애처로이 고개 숙여 울고 있는 소녀를 보듬어 주고 싶을 뿐이다.

 

저 소녀를 울린 자신이 미웠다.

 

한참을 서서, 생각의 바다에 빠져있던 단이, 유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따뜻함에 유나가 고개를 들었다.

 

젖은 시야로, 자신의 어깨에 머릴 파묻은 단의 검은 머리칼이 보였다.

 

훈련은 끝났다.

 

다시, 유나는 병실로 돌아간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쓸쓸하지 않았다.

 

단이 옆에서 함께 걸어줬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 없이 그저 걸었다.

 

말은 필요 없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그의 온기로 충분했다.

 

나란히 걷고 있던 유나가 단의 옆모습을 흘끗 바라봤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그렇게 속으로 말한다.

 

그의 옆모습에서 묘한 안도감이 밀려든다.」

 

「유나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단이, 유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살짝 호선을 그린 유나의 입가가, 단의 입을 막아섰다.

 

‘웃을 줄 아는 구나’

 

항상 무표정하거나 찡그리던 얼굴에서 피어난 희미하고도 밝은 미소

 

그 모습에 넋이 나가, 우두커니 멈춰선 단을, 이상하다는 듯 유나가 갸웃했다.

 

“...... 왜?”

 

그런 그들의 모습을 스쳐지나 가던 이 하나가 단에게 말을 붙였다.

 

정체모를 이의 등장에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여, 그 날의 영웅 단이냐!”

 

유나를 보며 서 있던 단이 시선을 돌렸다.

 

웃음기를 띤 단의 얼굴이 살짝은 어색해 보인다.

 

“혜은 씨”

 

흰 색 가운 걸친 여자가 서류뭉치로 가득한 에코백을 매고서 다가오더니 단과 유나를 유심히 살폈다.

 

이윽고 여자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단의 머릿속을 백지장과도 같이 하얗게 물들였다.

 

“거기, 여자애는 애인?”

 

“예, 예?”

 

“뭘 그렇게 얼어붙니? 장난, 장난, 그건 그렇고 어디로 가는 길?”

묻고서 잠시 생각하던 혜은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 어디 이상한 데 가는 건 아니지?”

 

음흉한 그녀의 눈빛이 단을 스쳐서 유나에게 닿았다.

 

그 시선의 의도가 무엇인지 뒤늦게 알아차린 단이 버럭 소리쳤다.

“아, 아니 그런 거 절대 아닙니다!”

 

간신히 내뱉은 말들 사이로, 단의 얼굴이 홍시같이 물 들어갔다.

 

“헤, 정말이야?”

 

웃음기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에 단이 고갤 가로 저으며 말했다.

 

“정말 아니에요!”

 

그런 단의 반응이 재밌는 듯, 혜은이 웃음기를 가득 내보였다.

 

“흠, 그럼 이번만은 믿고 넘어 가줄까? 그나저나 진짜로 어디 가는 걸까나?”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는 듯, 고갤 숙인 단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데려다 주는 길인데......”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안 들리는 데 어떡하지?”

 

손을 귓가에 대고, 앞으로 향하는 과장된 그녀의 몸짓이 장난기로 가득했다.

 

“데려다 주는 길입니다! 그럼 이만”

 

외치듯 말한 단이 도망치듯 몸을 움직였다.

 

그런 단에게 끌려가듯 유나도 그 급한 발걸음을 함께 놀려야 했다.

 

그 자리에 멈춰있던 혜은이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더니 점점 멀어져 가는 단에게 외쳤다.

 

“이봐, 실험 날, 까먹지 말고 반드시 찾아오도록 해!”

 

혜은의 말을 듣고서 잠시 주춤 거린 단이,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아까 그 사람은 누구?”

다시금 둘만이 걷는 길에서, 유나가 단에게 물었다.

 

“아, 혜은 씨야,”

 

그런걸 묻는 게 아니라는 듯, 유나의 시선이 떨어지려고 하지 않자, 아차 싶은 단이 설명을 이었다.

 

“대괴수 전담 부서 수석 과학자 라고하면 될까?”

 

그제야 납득하고서 고개를 바로 한 유나가 갸웃하더니 입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