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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아니, 왜라고 물어도...... 일단은 처음 보는 사이고”

 

‘처음 보는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지 않는 걸까?’

그런 소년에게 대뜸 유나가 물었다.

 

“엄마가 뭐지?”

 

“응?”

 

“...... 엄마, 네가 말하던 엄마가 무엇인지 궁금해”

 

무거운 침묵 속에서, 힘겹게 소년이 입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단”

 

병실의 문이 열리고 달빛이 그 안을 비추었다.

열린 문 쪽에서, 소년을 부르는 소리가 나왔다.

 

“교수님”

 

“다리의 기능이 회복되면 일주일 후 작전 투입이다.”

 

교수가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만 둘겁니다.”

 

“투정은 그만 둬라, 네가 해야 할 일이야”

 

교수를 쫓던 시선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 들어갔다.

교수는 소년을 죽 살펴보더니 시선을 소녀에게로 옮겨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대용품은 있기 마련이던가?”

 

“대용품?”

 

그렇게 말을 마친 소년이 교수의 시선을 좇아 자신에게 머물렀다.

 

“썅!”

 

소년의 활력 징후가 불규칙적으로 요동치면서 불안한 비프음이 병실을 가득 채웠다.

 

소년이 안간힘 쓰며 상체를 일으켰다.

 

“어른이면서 애들 등이나 떠밀어? 애들로 연명하는 세계 따위 모조리 죽어버렸으면!”

 

“다른 대안이 없지 않나?”

 

싸늘한 표정과 목소리는 활력 징후의 비프음 사이로 사라져 갔지만,

 

교수의 말은 소년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렇게 교수가 떠났다.

 

병실의 긴 침묵을 깬 것은 유나였다.

 

“단, 너의 이름은 단?”

 

단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말할 힘도 없다는 듯

 

그럼에도 단은 짜내듯 입을 열었다.

 

“너는, 너는 무섭지 않은 거야? 죽을 수도 있어”

 

“무섭지 않아, 명령은 명령 그뿐......”

 

“죽을 수도 있다고!”

 

단의 외침이 적막한 병실을 가득 채웠다.

 

곧 죽을듯한 눈동자가 소녀를 향했다.

 

그 말을 끝으로, 병실은 깊은 어둠 속에 잠겼다.

 

시간은 느리지만 확실히 흐른다는 느낌으로 지나갔다.

 

단은 죽은 눈으로 소녀를 매일 지켜봤다.

 

이따금 유나는 단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지만

 

대화는 없었다.」

 

 

 

「그가 찾아왔다.

죽은 듯이 누워있는 단을 흘끗 살펴보던 교수는 유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교수의 내려앉은 목소리가 병실을 감돌았다.

 

“유나, 출격이다.”

 

“......”

 

침묵 속에서 그의 명령을 긍정하듯, 유나는 읽던 책을 접고서 나갈 채비를 갖추었다.

그렇게 유나가 단의 병상을 지나쳐, 병실을 나서려던 때, 단이 유나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챘다.

 

느껴지는 강한 힘에, 유나가 인상을 구겼다.

 

“뭐 하는 짓이지?”

 

그런 행동을 지켜보던 교수가 싸늘하게 물었다.

 

“시간은 없다.”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세운 단이, 쥐어 짜내듯이 말했다.

 

“내가, 내가 간다.”

 

“뭐라고 했는지 안 들려”

 

분명히 들었겠지만, 잔인하게도 교수는 다시 물었다.

그러자 단이 또렷한 목소리로 토해내듯 다시 말했다.

 

“내가 간다고”

 

유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단이 강한 힘으로 유나를 끌어당겼다.

힘없이 끌려간 유나는 단의 병상에 앉는 꼴이 되었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서, 신음성을 내는 유나의 모습에 급하게 유나를 잡아 쥐던 손을 거둔 단이 병상을 나섰다.

 

“누구든 좋다, 당장 준비하고 본부로 오도록”

 

뒤돌아서 나가는 교수를 힘없는 걸음으로 따라나서려던 단에게 유나가 물었다.

 

“...... 이것은 나의 명령”

 

“아니, 내가 하겠어”

 

돌아보며 싱긋 웃는 단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다.

 

“왜?”

 

“지킬 테니까, 누구든 지켜 보이겠다고 엄마와 약속했으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단은 병실을 떠났다.

그날 밤, 단은 병실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 소년은 죽은 것일까?’

 

이제는 멍든 손목을 매만졌다.

 

묘하게 쓸쓸해 보이던 단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왜 단의 생각이 떠오른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니 더 이상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년과의 첫 만남과, 대화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렇게 책을 덮고서 생각에 잠길 무렵, 누군가가 병실을 찾아왔다.

 

실험 때문일까? 하는 생각에 문을 봤다. 그러나 그곳에는 교수가 아니라 한때 병실을 함께 쓰던 단이 한 아름 되는 꽃을 안고서 서 있었다.

 

무언가, 가슴 한곳이 간지러웠다.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보는 유나의 시선을 느꼈던 탓일까, 꽃을 들고 선 단이 더듬으며 말했다.

 

“아, 아니 이건 그냥, 빈손으로 오는 건 조금 실례니까 한 번 들고 와봤는데”

 

단이 느린 걸음으로 유나의 병상 옆에 섰다.

 

“받아주지 않을래?”

 

단이 조심스레 건네는 꽃다발을 유나가 받아 들었다.

 

늘 풍기는 약품 냄새와 함께 희미한 꽃향기가 코끝을 간지렸다.

 

한창 꽃내음을 마시듯 맡던 유나가 단을 향해 물었다.

 

“...... 명령?”

 

“무슨 명령?”

 

“이곳에 온 것은 명령 때문?”

 

 

어색하게 웃던 단이, 절대 아니라고 정정했다.

 

알겠다는 듯 다시 꽃다발로 고개를 돌린 유나를 쳐다보던 단이 입을 열었다.

 

“그때 엄마에 대해 물어봤었지?”

 

따뜻하다.

단의 시선에서 따뜻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대답해 주지 못했었지, 그걸 대답해 주고 싶어 엄마는 말이야,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히 알아, 나를 지켜주는 분”

 

“엄마, 어머니의 사전적 정의는 자식을 낳아 기르고 키우는 여성을 일컬음”

 

유나의 입에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나 나올 법한 정의가 흘러나오자, 단이 난감하다는 듯 웃음을 흘리더니 다시 말했다.

 

“느낌말이야 느낌”

 

그러거나 말거나 한 가지 행동만을 하던 유나가 돌연 입을 열었다.

 

“...... 처음”

 

“뭐가?”

 

“꽃의 향기를 맡는 행위, 꽃에게서는 모두 이런 향기?”

 

“다 똑같지는 않을 거 같은데”

 

이내 병실은 다시 침묵을 되찾았다.

 

마침내 향기를 다 맡았다는 듯, 꽃다발을 자신의 옆에 놓은 유나가 단의 손을 잡아끌었다.

 

끌려가듯 상체를 숙인 단의 어깨 맡에 머리를 들이민 유나가 나지막이 말했다.

 

“파스”

 

붉게 물든 단의 얼굴이 그의 난처함을 설명해줬다.

떨리는 목소리로 단이 되묻자, 유나가 말했다.

 

“파스 냄새”

 

유나를 밀어내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단이 어쩔 줄 모르는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고서 답했다.

 

“아, 응 저번 출격에서 조금 멍들어서......”

 

“그 출격은 내 명령의 대신으로?”

 

“아니, 원래 내가 해야 했던 거니까”

 

우물쭈물하던 단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유나는 어디가 아픈 거야?”

 

조심스러운 질문에 유나가 답했다.

 

“한유나, 체온, 맥박, 혈압, 호흡 수 모두 정상 범위, 신체 기능에 지장 없음, 언제든지 출격 가능”

 

기계적인 답변은 답변이라고 보기엔 자신의 상황을 보고하는 듯했다.

 

“그러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야”

 

“이곳에서 대기하라는 상부의 명령”

 

쓸쓸해 보이는 단의 눈빛이 유나에게로 향했다.

다시 찾아오겠노라 말하며 떠나는 단을 붙잡은 건 유나의 물음이었다.

 

“꽃다발”

 

챙겨 가라는 듯, 옷깃을 붙잡고서 꽃다발을 내미는 유나의 행동에 단이 말했다.

 

“선물이야”

 

“선물?”

 

“응”

 

 

“선물, 남에게 호의로 주는 물건. 대개 순수한 마음에서 호의를 표하는 예물”

 

“그렇게 말해줘도 말인데 도무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말한 단이 유나의 손에서 꽃다발을 받아들고선 다시 유나에게 돌려주었다.

 

“또 보자”

 

다시 작별 인사를 남기고서 떠나는 단의 뒷모습을 유나는 이번엔 그저 지켜봤다.

그러고서 단이 선물이라고 말한 꽃다발을 품었다.

꽃이 따뜻할 리가 없겠지만, 따뜻했다.

 

그렇게 떠나간 단은 하루가 멀다 하고 유나를 찾아왔다.

 

찾아오지 못하던 날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날보다, 찾아온 날이 더 많았음은 말하지 않아도 분명했다.」

 

「단은 항상 품속에 선물을 안고서 나타났다.

 

꽃들도 물론이지만 어느 날은 식사하는 걸 못 봤다는 단의 물음에 ‘식사를 하지 않는다.’라는 답변이 돌아오자 경악한 단이 도시락을 챙겨오기 시작했다.

 

그런 단의 행동에 자신에게 식사는 불필요한 행동이란 걸 설명해 주었지만 단은 아랑곳 않고서 도시락을 넘겨주었다.

 

며칠은 그의 도시락을 원형 그대로 돌려다 주었지만, 그럴 때 느껴지는 단의 슬픔에 어느 날은 도시락을 먹고서 돌려주니 단에게서 행복이 느껴졌다.

 

이제 단의 도시락을 비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 갔다.

 

단이 오지 않는 날은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했다. 

오지 않는 날이 길어질 참이면 참을 수 없는 불안함이 커져갔다.

 

 

그렇게 몇 주, 단에게 빈 도시락을 건네주던 순간이었다.

 

병실로 교수가 들어섰다.

 

“유나, 작전이다.”

 

도시락을 건네받던 단의 눈동자에서 불안함이 일렁였다.

 

“무슨 소립니까?”

 

“심도 5등급 이상 괴수, 다수 출현이다.”

 

“기존의 조종사 전원은 물론, 모든 가용 보행기를 ‘동원’한다는 게 이번 작전의 골자다.”

 

입술을 잘근 잘근 씹는 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나가 말했다.

 

“...... 명령?”

 

“그렇다.”

 

“둘 다 본부로”

 

이따금, 향하던, 그렇지만 지금은 오랜만인 본부로 가는 길은 또 다른 동행자가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서는 같은 풍경이었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발걸음 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본부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단과의 대화는 없었다.」

 

 

「“사전 보고, 6급 괴수 10개체 이상, 5급 괴수 3개체 이상이라는 정보.

 

이번 작전의 기본은 압도적인 화력을 통한 적 섬멸. 세부 사항은 관제사들의 통제에 따르도록“

 

잠시간의 술렁임을 끝으로, 송출되는 영상 너머의 사령관이 말을 마쳤다.

 

“건투를 빈다.”

 

 

그렇게 조종사들은 하나둘씩 격납고로 향했다.

 

그들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우두커니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유나의 어깨에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손이 올라왔다.

 

“괜찮을 거야”

 

말없이 지켜보는 유나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단도 격납고로 향했다.

 

‘준비된 조종사로부터 출격’ 이란 명령이 떨어지자 거대한 강철로 이루어진 사출기가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보행기들을 지상 위로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강철의 노래가 잇달아 울려 퍼졌다.

 

무선 통신 단말을 귀에 차려던 순간, 자신을 향해 무어라 외치는 단의 모습을 발견한 유나가 그 행동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고민했지만, 정비사들의 닦달에 이윽고 무선 통신 단말을 차고서 조종간에 탑승했다.

 

며칠 만에 타는 보행기는 항상 낯설었지만, 단과 함께 나선다는 생각이 그 낯설음을 지워줬다.

 

조종간이 움직이며 보행기와 하나 됐다.

 

익숙한 중력이 느껴졌다.」

 

「“방위선 붕괴!”

 

“갑식 무종 보행기 대파!”

 

“조종사와의 연결 두절, 활력 징후 감지되지 않음!”

 

관제사들의 떨리는 외침이 관제탑을 연거푸 울렸다.

 

“현재 남은 보행기 6량, 감지되는 괴수 9 체!”

 

“동북 내곽 지역, 접전 중!”

 

 

 

노리쇠가 후퇴 전진하며 탄피를 미친 듯이 뱉어냈다.

 

장탄 수를 표시하는 LED가 빠르게 점멸했다.

 

40mm 철갑고폭탄이 괴수의 질긴 외피에 부딪히며 강한 열기를 발산해냈지만,

 

괴수는 아랑곳 않고 지면에 균열을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틱 틱’ 거리는 소리와 함께 no ammo라는 철자가 LED에 점멸했다.

 

“병종 보행기 근접전에 돌입하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보행기의 조종사가 견착 자세를 풀고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산발적인 교전 소식과 시끄러운 비명으로 인해 통제탑은 아비규환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모든 것이 순조로웠는데

 

희망에 차오르던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도심 내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솟구쳐 올랐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할 정도의 괴수가 대지를 분쇄하며 솟아올랐다.

 

흡사 지옥의 아가리가 있다고 한다면 저걸 보고 말하는 것이리라

 

곧이어 그것은, 괴수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상황은 인간들의 손을 벗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