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2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였다. 


얼마나 기절해 있었던 걸까. 화장실 타일의 서늘한 느낌이 순식간에 내 감각을 일깨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으으….”


반사적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뭐야, 이 두통은? 뭔가 거지같은 꿈을 꾼거 같긴 한데. 두통 때문인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아, 아퍼…?!”


목소리를 내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도저히 내 목에서 난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영롱한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마치 옥구슬이라도 굴러갈 듯한 소리였다.


내 목소리가 이렇게 맑을 리가 없는데?


나도 모르게 저절로 목에 손을 가져갔다. 볼록해야 될 부분이 평평한 게 느껴졌다. 


뭐야, 내 목젖 어디 갔어?


“이게 무슨..."


영문을 모른 채 화장실 한가운데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욕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을 보며 그대로 굳어 버렸다. 


거울 속에서 왠 여자애가 나를 멍힌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인 내 키와 머리 하나는 더 차이가 날 것 같은 자그마한 키와 체구, 어깨까지 내려오는 길고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머릿결, 반짝거리는 눈망울과 오똑한 콧날, 그리고 앙증맞은 입술까지. 손을 들면 거울 속의 그녀도 따라서 손을 들었다. 놀란 내가 눈을 크게 뜨니 거울 속의 그녀도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니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시발?"


내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저 두 글자로 충분했다. 이 얼마나 대단한 단어인가. 저 두 글자만으로도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세종대왕이 위인은 위인이야.


아니.

지금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잡념을 떨치고자 머리를 흔들자 머리가 긴 머리가 좌우로 흩날렸다. 남자였을 때 짧은 머리만 고수하던 나로서는 신선한 감각이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깼나."


거울을 본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째서 화장실에서 잠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좋아.


일단 따뜻한 방에서 이불을 덮으면서 생각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고민하고 있어봤자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모두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가 된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좋아, 일단 한숨 자고 생각하는 거다. 아니지, 어차피 꿈인데 ts됐다고 커뮤니티에 자랑글이나 한 번 올려봐야겠다. 아니면 느긋하게 침대에서 여자의 몸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리 생각하며 화장실에서 나가려 했다. 그 때 나는 발 밑에 내 지갑과 함께 무언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뭐야?”


살면서 오줌싸는 곳에 지갑을 들고 온 적은 없는데. 확실히 꿈은 꿈인 모양이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지갑과 함께 떨어진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주었다.


그리고 그걸 줍는 순간 그대로 굳어 버렸다.


“…….”


주민등록증.


그 안에는 현재 내 모습을 한 여성의 사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세상사를 달관한 듯 무심한 표정. 여자만 아니었다면 정말로 재수없을 그 표정은 영락없이 나와 닮아 있었다. 아니, 여자가 된 지금은 이게 내 모습이리라.


2로 시작하는 뒷자리, 그리고 여자가 된 내 모습. 꿈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현실적인 감각이 온 몸을 지배했다. 나는 괜시리 내 볼을 세게 꼬집어 봤다. 


“…아프네.”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차갑게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설마 진짜 여자로 변한 거라면?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는 법. 이게 현실이라면 아무 이유도 없이 여자로 변할 리는 없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는 ts병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뭐, 애초에 여자로 변했다는 상황 자체가 그다지 현실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했다. 수능을 칠 때도 이 정도로 생각하려고 애쓴 적은 없었다. 생각하지 않으면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 


내가 방금 전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역시 그 미친 년인가…!”


룰루 그 썅년이 마지막으로 뱉었던 말이 기억났다. 나한테 w스킬이라도 썼다 이건가? 이게 무슨 aos 게임이야? 말이 돼? 애초에 왜 여자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냥 분노를 쏟아내기에는 너무도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띵동.


혼란스러운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다음 난관이 닥쳤다. 누군가 현관 벨을 울린 것이다. 현관문에서 몰래 방문자를 확인하기 위해 화장실을 나섰다. 낮아진 시야와 작아진 보폭이 어색했다. 여자가 된 모습을 볼 때보다 몇 발짝 걸은 지금 더 실감이 났다. 나는 문을 열지 않고 조심스럽게 문구멍 너머를 살폈다.



현관 앞에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썅….”


띵동. 띵동.


“아들, 뭐해?”


연신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게 이상한지 엄마가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 한마디로 나는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들’. 즉, 현실에서는 내 존재를 여전히 남자 강수진으로 인식하고 있을 확률이 컸다. 일단 민증에서는 이름이 똑같아서 무심코 방심하고 말았다. 혹시 내가 여자로 바뀐 걸 세상이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건 아닐까 하고. 그 룰루 년이 그 정도로 능력이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애초에 내 사정을 봐줄 거면 이런 상황을 만들지도 않았겠지.


남자였던 내가 있던 자리에 ‘여자 강수진’으로 대체되는 게 아니라면… 지금의 나는 뭐란 말인가?


“진짜…. 돌겠네.”


일단 어머니가 그대로 유턴을 하는 것.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최선이었다. 만약 들어오게 된다면 어떤 식으로 변명을 해야 되나. 지금 상황에서 나는 단순히 가택을 무단으로 침입한 도둑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현관문 앞에서 간절히 빌었다. 평소 무신론자라고 말하던 건 이미 잊었다. 지금의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 하나만으로도 어떤 신이라도 믿을 자신이 있었다. 


개독이 되더라도 좋습니다, 머리를 밀라면 밀겠습니다. is에 들어갈 자신이 있습니다. 오, 제발….


물론 어머니는 돌아가지 않았다. 

니체가 옳았다. 신은 없었다. 


나는 세상을 저주했다. 


삑. 삑. 삑.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 자취방 비밀번호를 어머니가 모를 리는 없었다. 

어머니가 비밀번호를 모두 누르고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어색한 미소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아하하하…. 안녕하세요?”


나를 보는 어머니의 표정은 기묘했다.

그 순간 본 어머니의 표정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하겠지.


“……아가씨는 누구?”


어머니가 들이닥치기 전에 숨는 선택지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선택지는 과감히 버렸다. 이 좁은 자취방에서 숨어봤자 얼마나 숨는다고. 그렇다면 결국 이 모습으로 어머니에게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 저, 그게….”


나는 그제서야 내가 중대한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변명을 할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래서야 무단침입한 도둑놈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여기서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내 당황한 감정을 아시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한 번 훑어보시고는,


“…그거 우리 아들 옷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잠시 생각하는 듯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망부석이라도 된 마냥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들어갈까요?”


마침내 어머니께서는 이 상황을 나름대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조금은 개운해진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 것이다. 


아들의 집에 본 적도 없는 예쁘장한 여자가 아들의 옷을 입고 있었다. 어머니가 뭘 생각하고 계시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납득해준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나로서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아, 네.”


나는 어머니를 방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청소를 하지 않은 방은 손님을 불러오기에는 꽤나 민망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남자 특유의 군내까지 진동을 하고 있으니 절로 내 얼굴이 벌개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쪽팔린 건 쪽팔린 거다. 


“어휴, 그 녀석은 뭐한다고 청소도 안 하고.”


어머니가 투덜거리며 방 한쪽에 털썩 앉았다. 언제까지고 멀뚱거리며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나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일단 차라도 대접하고자 물을 끓였다. 차라고 해 봤자 인스턴트 커피나 녹차 티백 정도가 다였지만. 그래도 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이거라도 있는 게 대단하지.


“드세요. 별 건 없지만.”

“아유, 젊은 아가씨가 예절도 바르네.”


어머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내가 건낸 차를 받아들였다. 어머니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나에 대한 이미지가 한층 올라간 모양이다. 하긴, 맨날 방구석에서 겜이나 하던 휴학충이 갑자기 이런 이쁘장한 여자친구를 데려온 거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지금 내 모습은 꽤 이뻤다. 그것도 옷을 서로 입을 만큼 막연한 사이라면….


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겠군.


“학생은? 수진이 여자친구?”

“아, 네. 얼마 전에 대학교에서….”

“휴학중인데 학교에도 다 갔나봐요?”

“아, 예. 동아리 모임에서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휙휙 떠올랐다. 홀든 콜필드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순발력이었다. 


“내 아들이지만 연애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할 건 다 하고 사나봐? 이렇게 이쁜 아가씨도 꼬시고.”

“고, 고맙습니다.”

“근데 학생 엄청 어려 보이네. 혹시 고등학생인 건 아니죠? 호호, 나도 참 주책은. 새내기인가 봐요?”

“아하하하…. 네, 뭐….”


차를 홀짝이며 어머니와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눈앞의 소녀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지. 대화를 하면서도 내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이제나 저제나 어머니가 언제쯤 돌아가실지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수진이는 어디 갔나 봐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