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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불러도, 귀를 닫은 듯 그저 품속을 파고드는 유나의 모습에 먹먹한 감정이 든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저마다 의미 있는 행동을 하며 노력 하지만, 세상이 답을 내놓을 때마다 항상 그들의 뜻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런 세상에 홀로 던져진 유나가, 자신에게 부딪쳐 온다.

 

이토록 용감하고, 순진하며, 아름다운 유나를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그녀는 자신과 다르다.

 

세상의 부조리함에 설령 그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바와 다를지라도 용감히 맞선다.

 

순진한 그 열정이, 그녀를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그녀와 달리 세상과 타협하고, 부조리에 순응하는 자신이 그녀를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누군가를 지키겠단 소망이 무너졌을 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모두를 밀어내며 스스로만을 생각하는 자신이, 이토록 뚜렷이 세상을 바라보는 소녀를 사랑할 자격이 있을까?

 

그렇지만, 그런 자신에게, 그런 소녀가 날아들었다.  

 

품속에 안겨서 바들바들 떨면서도, 용기 있게 세상에 부딪치는 소녀를 무시할 수 없었다.

 

아니, 틀렸다.

그녀를 무시하기엔,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

 

분명 자신이 받아주지 않더라도, 약한 자신과 달리 소녀는 다시 세상 속에서 일어 설 수 있을 텐데,

 

스스로가 그녀를 놓칠 수 없었다.

그녀를 스스로가 원했다.

 

이렇듯 자신은 스스로만을 생각하는 쓰레기인데도, 

그녀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녀의 용감함이 탐났다.

그녀의 애정이 탐났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탐났다.

 

그런 스스로가 혐오스럽다.

 

선뜻 유나에게 같이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자신에겐 자격이 없다는 걸, 아니까 그렇다고 그녀를 포기할 수 도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어렵사리 입을 떼 이름을 불렀다.

 

유나가 이제는 조금 진정된 건지 조용히 올려든 눈동자로 자신을 담는다.

 

“유나, 내일 다시 올게”

 

유나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주억 거린다.

 

그렇게 유나를 한 번 안고서 유나와 멀어져 갔다.

 

유나는 멍하니 병상에 앉아 멀어지는 자신을 지켜봤다.」

 

「자신을 거듭 부르던 단이 내일 다시 오겠다며 갔다.

 

내일이면 다시 단을 볼 수 있다.

 

당장의 이별로 인한 슬픔보다, 내일 다시 만날 기쁨으로 가득 찼다.

 

떠나가는 단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창문 너머로 눈을 돌렸다.

 

그 큰 달이, 오늘은 시리지 않았다.」

「전날 밤 자신을 원하던 유나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돌아오면서도 그때의 고민은 끝나지 않고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 됐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음에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고민이 생각을 어지럽혔다.」

 

「“동기율 40.1%!”

 

혜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격납고에 낙담으로 가득 찬,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혜은의 뒤로 안경을 쓴 여자가 계기 단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흠......”

 

혜은이 낙담 가득한 푸념을 내뱉었다.

 

“40.1% 라니, 그 날도 그 날이지만, 이거 평균 미달 아니야?”

 

“그의 기준으로는 평균 미달이긴 하지”

 

“짐작 가는 게 없을까, 소연아?”

 

“여기서 같이 일하는 마당에 나라고 별 다른 게 있겠니? 내가 알면 너도 알 마당에......”

 

“그래도 말이야, 계기만 밝혀낸다면 될 텐데”

 

며칠 동안 진행된 소득 없는 실험이 그녀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실험 표본의 평균 동기율인 80%를 크게 밑도는 수치, 뭐가 잘못된 걸까?

 

“초심자의 행운이란 걸까.....?”

 

혜은의 추리에 소연이 쏘아붙였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직접 물어보지 그래?”

 

“하긴, 그때랑 지금이랑 뭐가 다른지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르겠지”

 

그렇게 생각을 마친 혜은이 계기 단말을 꼼지락 거리더니 단말을 향해 말한다.

 

“단 씨”」

 

「어젯밤 있었던 유나와의 일로 생각에 잠긴 단을 혜은의 목소리가 현실로 끄집어냈다.

‘실수다.’

 

“아, 혜은 씨 실험 시작입니까?”

 

영상 채널이 켜지며 혜은의 얼굴이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착 가라앉은 표정에서 뭔가 잘못됨을 느낀 단이 말을 더듬었다.

 

“무슨 일입니까?”

 

“실험......”

 

“네, 실험?”

 

“진즉에 시작했는데?”

 

차가운 혜은의 말에 등골이 시렸다.

 

“잠깐 딴 생각하느라......”

 

단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혜은이 크게 한숨 쉬었다.

 

“실험 재시작 하겠습니다. 모두들 준비해주세요. 이번에도 얼 빠져서 실수하면, 그땐 어떻게 될지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정적이 흐르던 격납고에 바쁜 움직임이 오갔다.

 

혜은의 분노에 휘말려들지 않기 위해 모두가 긴장했다.

 

“단 씨?”

 

“...... 네?”

 

“이번엔 집중해”

 

‘그러지 않으면 죽는 거야‘ 라는 뒷말이 들리는 듯 했다.

 

실험이 재개됐다.

 

“주 전원 접속”

 

“전 부속 동력 전달 완료”

 

“중추신경 접속 이상 없음”

 

“기동”

 

보행기에서 웅웅 거리는 소음이 터져 나왔다.

냉각수가 끓어 올랐다.

 

혜은과 소연이 계기 단말을 빤히 쳐다봤다.

 

“동기율 86.1%”

 

단이 분리된 조종간에서 나오자 혜은과 소연이 승강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전, 자신의 실수로 화를 참던 혜은의 기분이 어떨지 걱정 됐다.

 

가만히 서있는 혜은을 대신해 소연이 입을 열었다.

 

“동기율 86.1%, 전과 비슷해 낮다고 볼 수 없는 동기율이지만, 그 날 당시 너의 동기율과 비교했을 땐 상당히 낮은 수치야, 그날의 동기율은 도대체 뭘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안납니다.”

 

“어쨌든, 동기율에 대한 실마릴 잡기 전 까진 실험, 계속 해야 할 거야, 귀찮더라도 참아?”

 

“네”

 

이윽고 승강기에서 내린 그들은 서로의 갈 길을 향해 헤어졌다.」

 

「단이 식은땀을 흘리며 조종복을 갈아입었다.

 

처음 본 혜은 씨는 항상 장난기가 가득해 보였지만, 이런 날의 혜은 씨에겐 방심해선 안됐다. 그런 면에서 오늘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운이 좋다고 할 수 밖에,

 

그런 생각을 하며 탈의실을 나섰다.

 

이윽고 복도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가 소매를 잡아 당겼다.

 

유나가 서 있었다.

 

훈련이 끝나고, 따로 실험이 있어 곁길로 샌 자신을 기다린 건가?

 

먼저 돌아갔을 거라 여겼는데

 

무표정하게 소매를 당기는 유나에게 웃음을 흘렸다.

 

“유나?”

 

“단”

 

유나가 단의 손을 잡았다.

 

잠시 빼내려고도 했지만, 완강한 유나의 힘에 포기하고 말했다.

 

“같이 돌아갈까?”

 

“응”

유나의 단호한 의지에 어쩔 수 없구나 싶은 단이, 묵묵히 유나가 이끄는 대로 걸어갔다.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유나는 여느 때와 같아 보인다.

 

그 모든 고민은 자신이 떠맡은 것 같다.

 

당 떨어질 나이도 아닌데, 머리가 핑핑 돈다.

 

몸을 돌려, 원래 가던 방향과 반대로 유나를 이끌었다.

 

항상 가던 방향이 아닌 탓인지, 이끌려가는 모양새가 된 유나가 입을 연다.

 

“...... 단, 그 방향이 아니야”

 

걱정과 당혹스러움이 느껴지지만, 어쩔 수 없다.

 

묵묵히 걸어가는 자신에게 유나가 다시 한 번 더 입을 뗐다.

 

“단?”

 

“카페테리아”

 

어느새 자신의 옆에 따라붙은 유나를 보며 말했다.

 

“카페테리아에 가자”

 

잠시 갸웃하던 유나는 카페테리아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

 

「‘카페테리아?’ 

단의 입에서 낯선 단어,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그곳을 향하는 단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단의 말대로 도착하면 알게 되겠거니, 고민을 지우고서 단의 보폭에 맞춰 걷는다.

 

단의 발걸음 소리와 자신의 발걸음 소리가 합쳐져 복도를 울린다.

 

단의 발과 자신의 발이 서로 같은 순서로 진행되는 모습에 마음이 하나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좋다.

 

그렇게 발걸음을 생각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단이 이끄는 장소에 도착한 유나는 자연스럽게 자릴 찾아 앉는 단의 모습에 의문을 느꼈다.

 

‘무엇을 하러 온 걸까’

 

몇 없는 사람이 부산히 식기를 움직이며 음식을 입에다 밀어 넣는다. 몇 번 씹더니 삼키고는 마주보며 대화한다.

 

그런 일련의 행동들이, 자신의 뇌리에 박혀 의문을 해소시켰다.

 

‘아, 단은 지금 배가 고프구나’

 

확실히, 식사가 필요 없는 자신과 달리 단은 식사를 통한 열량 보충이 필요하다.

 

저번의 도시락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 깜빡했다.

 

단이 옆자리에 앉으라는 듯 빼놓은 의자에 손을 툭툭 쳤다.

 

의문을 접어두고서 그의 곁에 앉았다.

 

“뭐 먹고 싶어?”

 

단이 그렇게 말하곤 책자를 펼쳤다.

 

알 수 없는 단어의 조합들이 펼쳐졌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함께 먹으면 그가 기뻐해준다는 사실은, 일전의 일들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책자에서 보이는 익숙한 단어의 낯선 배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그 중에 하나를 읽어봤다.

 

“초코 파르페”」

 

「초코 파르페를 먹고 싶은 건가? 물어봤다.

 

“초코 파르페, 먹고 싶어?”

 

그녀가 고갤 가로 젓고서 책자의 맨 밑에 써진 글자를 가리킨다.

 

초코 파르페가 써져 있었다.

그냥 따라 읽은 거구나, 어쩐다.

 

한참을 유나와 책자를 번갈아 보며 씨름했다.

맞은편에 앉은 유나가 미동도 없이, 책자에 시선을 떼어 놓지 않는다.

 

책자를 덮고서 한숨을 뱉어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나에게 말했다.

 

“딸기 케이크 먹을래?”

 

“딸기 케이크 ......”

 

자신의 말을 한 말을 따라한 유나가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로 눈을 굴렸다.

 

“잠시만 기다려, 갔다 올게”

 

생각에 잠긴 유나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불안한 눈길을 보낸다.

 

가버린 다고 생각한 걸까, 그 모습이 귀여워 머릴 한 번 쓰다듬었다.

 

딸기 케이크 두 개가 올라간 접시에 홍차 두 잔을 담은 트레이를 들고서 다시 자릴 찾았다.

 

유나 앞에 딸기 케이크와 홍차를 놓고서 자신의 것을 챙겼다.

 

자기 앞에 놓인 딸기 케이크가 낯선 건지,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나가 이내 포크를 쥐고서 이리저리 생크림을 깨작거렸다.

 

홍차를 한 모금 삼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나가, 자신을 따라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살짝 기울어진 찻잔에 유나의 입술과 홍차가 만났다. 

 

홍차의 뜨거움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 뜨거워”

 

그런 일련의 행동들이 덧없이 순진해보여 귀엽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뜨거움에 놀랐나 보다.

 

놓치듯 찻잔을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놓은 유나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갤 숙였다.

 

“뜨거운 건 못 먹어 ......”

 

실망으로 가득 찬 유나의 말이 우스웠다.

 

“식으면 괜찮아”

 

알겠다는 듯, 고갤 다시 든 유나가 전과 마찬가지로 케이크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행동에 나섰다.

 

그녀가 보라는 듯, 케이크를 조금 덜어 입 안에 넣자, 그녀도 따라 딸기 하나를 푹 찍더니 입 안으로 넣는다.

 

한 입에 먹기엔 컸던 걸까, 입안에 다 들어가지 않아 인상을 구기던 유나가 살짝 베어 물고선 포크를 접시 위에 올렸다.

 

유나가 오물거리며 입 안에 퍼지는 낯 선 감각을 탐구한다.

 

자신이 준 도시락을 먹던 순간과 비슷하게, 온갖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느리게, 우물거리며 씹을 때 마다 미간과 눈매를 앙증맞게 찡그렸다.

 

그렇게 베어 문 딸기를 마지막으로 오물오물 씹고 삼키더니 말했다.

 

“찌릿 찌릿해 ......”

 

“신 맛이야”

 

다시 포크를 쥐던 유나가 자신의 말에 눈을 마주치더니 중얼거렸다.

 

“...... 이것이 신 맛”

 

딸기를 마저 입에 넣은 유나가 다시 찡그리며 우물거린다.

 

마침내 케이크 위에 놓인 딸기를 마무리한 유나가 포크를 케이크에 꽂아 넣고선 고개를 숙이고 스커트를 움켜쥐었다.

 

신맛이 과했던 걸까, 아려오는 입 안이 괴로운 듯하다.

 

유나에게 아까 전부터 손으로 식혔던 찻잔을 건넸다.

 

“식혔어”

 

걱정스러운 눈으로 들이밀어진 찻잔을 노려보던 유나가 자신의 말에 안심하듯 찻잔을 받아들고서 조금 마신다.

 

양손으로 받아든 그 모습이 뭔가 소중한 것을 애지중지하는 모습이다.

 

이제 자신도 케이크를 먹었다.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함이 좋았다.

 

딸기의 신 맛도, 그걸 씻겨주는 홍차의 쓴 맛도,

 

그런 자신을 따라, 유나도 천천히 케이크를 먹었다.

 

이윽고 딸기 케이크는 빈 접시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입가에 생크림을 묻힌 유나가, 손에 쥔 포크를 놓고서

빈 접시를 보더니 자신을 바라봤다.

 

아쉬워 보이는 인상이다. 맛있었다는 걸까?

“맛있었어?”

 

“...... 맛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