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씨는 15세기초 쇄환 정책 시절의 실록 기록들을 언급하고 있다. 순서대로 정리해보자.


1. 1416년 김인우를 <무릉등처 안무사>로 임명해 파견함.


21417년 2월 김인우가 <우산도>에서 돌아옴.


이때의 우산도는 호사카씨도 울릉도로 해석하고 있다.





86명이 살고 있고 각종 산물이 나는 이 기록의 우산도는 독도가 될수 없으니 당연한 해석.


3. 1425년 김인우를 <우산무릉등처 안무사>로 파견함


문제는 이부분인데, 안무사 이름이 1417년에는 무릉등처였다가 1425년에는 우산무릉등처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호사카씨는 어떻게 주장하고 있을까?






"<무릉>이 <우산 무릉>으로 바뀐것은 우산도가 별개의 섬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탓이고, 그 우산도는 독도다" 

정리하자면 이런 내용이 되는데


1) 아니, 설령 우산도를 별개의 섬으로 보게 되었다치더라도, 그게 왜 하필 독도가 되는지?

당시 기록상 우산도=독도로 볼수 있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는데??


2) 또한 저 주장의 근본적 문제는 저 실록 기록 전체를 보면 알수 있다.





붉은 줄에 <무릉도>에 살던 사람을 병신년(1416년)에 김인우를 보내어 데려왔다고 적혀있다.

그런데 저 1416년 김인우가 파견된(돌아와 보고한건 1417년 2월) 해당 기록에는 뭐라 적혀있는가?

앞서 2번에서 말했듯이 <우산도(=울릉도)>에서 사람들을 데려왔다고 되어있다.

1425년 기록상의 우산도는 무릉도(=울릉도)란 소리가 된다. 


(혹시 김인우가 데려온걸 적은게 1417년이라 다른 기록이 아니냐 할지 모르겠지만, 

김인우가 데려와 보고한게 1417년 2월이고 사이에 다른 기록도 없고

데려온 사람 이름도 같은 3명이 적혀있으므로 같은 기록으로 보는데 무리는 없음)


호사카씨는 1425년 기록을 토대로 이때부터 우산도가 별개의 섬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애초에 해당 기록을 보면 우산도=무릉도=울릉도임이 명확하며

결국 저때까지도 우산무릉은 울릉도 한섬에 대한 동일한 표현 이라는 소리.

호사카씨는 이걸 언급하지 않으면서 우산도=독도라는 주장을 끌어내고 있다.

과연 호사카씨의 단순한 '실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