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여지지

 

편찬자: 유형원

편찬연도: 1656년 (효종7년)

기술되어 있는 주요 문장:

于山島 鬱陵島 一云武陵 一云羽陵 二島在縣正東海中 三峯岌嶪撑空 南峯稍卑 風日淸明則 峯頭樹木 及山根沙渚 歷歷可見 風便則二日可到 一說于山鬱陵 本一島地方百里
우산도(于山島)ㆍ울릉도(鬱陵島) 무릉(武陵)이라고도 하고, 우릉(羽陵)이라고도 한다. 두 섬이 고을 바로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세 봉우리가 곧게 솟아 하늘에 닿았는데 남쪽 봉우리가 약간 낮다. 바람과 날씨가 청명하면 봉우리 머리의 수목과 산 밑의 모래톱을 역력히 볼 수 있으며 순풍이면 이틀에 갈 수 있다. 일설에는 우산ㆍ울릉이 원래 한 섬으로서 지방이 백 리라고 한다.

 

ps: 시기상 안용복 사건 이전 울릉도에 대해 조사 못해 일도이명설이 유효할때 편찬됨 동국여지승람 문구 그대로 따옴



강계고

 

편찬자: 신경준

편찬연도: 1756년 (영조32년)

기술되어 있는 주요 문장

愚按輿地志云一説于山欝陵本一島而考諸図志二島也一則倭所謂松島而蓋二島倶是于山国也

내가 생각컨대 여지지에 따르면 일설에 우산 울릉은 하나의 섬이지만 여러 서적을 고찰해볼때 두섬이다. 그중 하나가 왜인이 부르는 송도이고, 아마도 두섬은 모두 우산국이다.

 

ps: 시기상 안용복 사건 이후 장한상과 박석창이 울릉도에 찾아가 조사된 이후에 편찬됨



동국문헌비고 여지고

 

여지고 담당자: 신경준

편찬연도: 1770년 (영조46년)

기술되어 있는 주요 문장

于山島 · 鬱陵島  在東三百五十里 鬱一作蔚 一作芋 一作羽 一作武 二島一卽芋山

우산도(于山島)【울릉도(鬱陵島):동쪽 3백 50리에 있다. 울(鬱)은 또 울(蔚)이라고도 하고, 우(芋)라고도 하고, 우(羽)라고도 하고, 무(武)라고도 하는데, 두 섬으로 하나가 바로 우산도(芋山島)이다.

 

중략 (울진에서 세봉우리로 보이는 울릉도를 설명함 가상의 우산도가 없어짐)

 

輿地志云 鬱陵·于山皆于山國地. 于山則倭所謂松島也

여지지에 이르기를, 울릉과 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인데, 우산은 왜가 말하는 송도(松島)이다.

(그리고 안용복의 진술을 소개)

 

자 그러면 여기서 호사카 유지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에 가깝게 되려면

 

1. 신경준이 인용했다는 책이 유형원의 동국여지지가 아닌 우산도는 왜가 말하는 송도라고 적혀있는 여지지라는 책이어야함

동국여지지는 동국여지승람을 인용했을뿐 우산도는 왜가 송도라고 부른다고 적혀있는 부분은 없음

(현실은 동국여지지가 아닌 그냥 여지지라는 책은 존재하지 않음)

 

2. 우산도는 왜가 말하는 송도라고 적혀있는 여지지라는 책을 찾아도

 

신경준 본인이 왜 강계고에 내가 생각컨대 여지지에 따르면 일설에 우산 울릉은 하나의 섬이지만 여러 서적을 고찰해볼때 두섬이다. 그중 하나가 왜인이 부르는 송도이고, 아마도 두섬은 모두 우산국이다.

 

이렇게 써넣었는지에 대해 설명할수 있어야함

호사카 유지 주장에 의하면

일단 여지지에 따르면 일설에 우산 울릉은 하나의 섬이라고 적은 것 자체가 저렇게 쓰여있는 동국여지지를 참고했단 것은 확실하고

여러 서적을 고찰해볼때 두섬이고 그중 하나가 송도라는 것은 (그냥) 여지지라는 책에 또 저렇게 적혀 있었단 소리인가?

호사카 유지가 복잡하게 꼬아버리니 (애초에 간단하고 쉽게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면 될 기록들을) 뭐가 뭔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애초부터 쉼표와 마침표 없다는 것을 운운하면서 헛다리 짚으면서 부정할 경우 저 강계고 기록 자체가 이상해지는 것 같고

이렇게 될 경우 신경준은 왜 강계고와 여지고를 편찬할때 동국여지지와 여지지를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여지지라 썼는지 설명도 필요

 

3. 1 2번을 넘었다 해도

그리고 또 우산도와 울릉도가 울진동쪽 350리에 있다고 기록한것과

당시 지도에 우산도를 죽도처럼 그려놓은 것을 설명해야함

우산도를 왜인들이 송도라 불렀다고 기록하면서

저 두섬이 울진 동쪽 350리에 있고

우산도를 죽도처럼 그려놨다는 것은 많이 이상하지요.

 

상식적인 결론

 

1. 당시 사람들은 육지에서 우산 울릉도가 보인다고 믿었고

저 상태에서 그려진 불확실한 고지도들과

이러한 현상은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에도 그대로 인용된다.

 

2. 안용복 사건 터진후 장한상과 박석창이 울릉도를 조사하며 해장죽전이 자라는 작은 섬 죽도를 발견하고 우산도를 그리면서

해장죽전이라고 써넣는다.

 

3. 여러 지도와 서적들을 참고했다는 신경준은 유형원의 (동국)여지지, 여러 지도 (정황상 장한상과 박석창의 지도등등), 안용복 진술등을 참고한다.

그 결과 일설에 우산울릉은 한섬이라고 적혀있는 (동국)여지지등의 그 이전 지리지들을 부정 

후대에 조사된 장한상과 박석창 등의 울릉도에 대한 기록 토대로 울릉도 우산도는 두섬이라고 결론 내리고 안용복의 진술을 참고해 우산도는 왜인들이 부르는 송도라고 써넣으면서 (동국)여지지에서 인용한것처럼 왜곡한다.

 

4. 우산도를 죽도처럼 그려지는 지도들은 계속 쏟아진다.

 

5. 조선은 독도 존재 자체도 모르고 안용복 진술에만 의존해 왜인들이 부르는 송도=우산도=현 죽도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