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가 독도영유권의 증거로 내세우면서 유명해진 지도중 하나가 이 삼국접양도(1785). 


과연 이 삼국접양도에 독도는 그려져있을까?

이미 누차 지적되었듯이 저 울릉도 옆의 이름없는 섬은 위치상으로 독도로 보기 힘들다. 

따라서 울릉도 옆에 적힌 '조선의 것이다(朝鮮ノ持也)'의 대상에 독도는 안 들어간다는 소리.


그런데 이에 대한 반론으로 호사카 유지는 그 아래에 적힌 다음의 문구를 들고 있다.

此嶋ヨリ隠州ヲ望 又朝鮮ヲモ見ル

(이섬에서 은주(오키)를 볼수있고 조선을 볼수 있다.)

 

원래 이 문구는 은주시청합기(1667)에서 유래하는것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此二嶋無人之地 見高麗如自雲州望隠州

(이 두섬(=울릉도와 독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여기에서)고려를 보는것은 운주에서 은주를 보는것과 같다.)

 

즉 호사카 유지의 논리는 이렇다.

1) 은주시청합기의 해당 문장은 울릉도와 독도에서 보는 것이다.

2) 이 문장이 삼국접양도에 변형되어 적혔고, 여기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를 지칭하는 문장이 되었다.

3) 따라서 삼국접양도의 '조선의 것'의 대상엔 독도도 포함되며, 저 이름없는 섬은 바로 독도다.

 

과연 이 논리는 타당한가?


일단 은주시청합기의 해당 문장에 따르면 독도에서도 조선을 볼수 있다는 뜻이 되는데,

독도에서 한반도를 보는건 불가능하므로 타당하지 않다.


물론 '독도에서도 조선을 볼수 있다'는 것이 당시 인식이어서 이렇게 적었을수도 있지만,

문제는 이러한 인식 역시 시대에 따라 변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은주시청합기를 계승한 다른 문건들을 보면


<은기국풍토기隠岐国風土記(1737)>

従竹嶋見高麗如自雲州望隠州

(죽도(=울릉도)에서 고려를 보는것은 운주에서 은주를 보는것과 같다)


<은기고기집隱岐古記集(1859)>

'또한 서쪽 방향으로 70여해리를 가면 죽도(=울릉도)가 있다. 예로부터 이를 기죽도라고 한다. 대나무가 무성하여 큰 섬의 이름이 유래하며, 여기서 조선을 바라보면 은주에서 운주를 보는 것보다 더 가깝다'


즉 은주시청합기를 계승한 같은 문장임에도, 
그 보는 위치를 울릉도와 독도가 아닌, 울릉도로 한정해서 해석하는 경우도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저 삼국접양도에 은주시청합기에서 유래한 문장이 들어있다고해서, 
그것이 울릉도+독도를 의미한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소리.
 
결론적으로 1) 은주시청합기를 계승한 다른 문건들을 대조해볼때 
삼국접양도에서 '조선을 보는' 위치는, 은주시청합기에서 유래했다하여 울릉도+독도로 단정할수 없으며

2) 결국 삼국접양도의 해당 문구는 독도의 조선 영유권과는 관계가 없다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