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이 붉은 피로 물들어간다.

하얗다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일까. 아님, 순순히 받아드려버린 걸까.

오늘도 붉게 물들어가는 새하얀 전장. 누구를 위한 전쟁인 것인가? 누구를 위한 살생인가.

피를 볼 자는 피를 흘릴 각오가 되어 있어아한다. 그 각오가 없다면 살아 돌아갈 수 없다. 각오를 한다고해서 무조건 사는 건 아니지만.

오늘도 우리는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독립을 위해서라느니. 자유를 위해서라느니. 결국 싸움을 하지 않는 수뇌부들만 이득인 것이잖아. 진짜로 자유를 갈망한다면... 직접 참전해라.


레이나는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주변에 널부러져있는 시체들을 어루만진다. 참으로 불쌍한 영혼들. 정녕 싸움을 피해갈 순 없었던 걸까. 전쟁을 피할 수 없었던 걸까.

그녀가 한명 한명 차마 추위에 편히 눈을 감지 못한 자들의 눈을 감겨줄 때마다 검은 영혼들이 희미하게 나마 웃음을 내며 사라진다.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심심한 위로겠지.

그들은 완전히 성불하지 못했다. 차가운 눈이 그들의 길을 막아서며 끝없는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다.

"지파. 이게 과연 맞는 걸까? 결국에는 우리가 그들을 강제로 성불하는 거잖아. 하지만 거의 성불되지 못하는 걸."

"넌 천년동안 이 일을 했으면서 아직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거냐?"

"글쌔. 잘 모르겠어."

"죽은 자는 자신을 죽인 자에 대해 저주를 내리지. 즉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야. 우리라도 이 끝없는 꼬리를 끊어줘야하지 않겠어?"

"하지만... 결국에는 복수하지 못한 그 영혼은..."

"약육강식. 힘없는 자들이 뭘하겠냐. 힘있는 자들에게 또다시 먹힐 뿐이야. 아니면 그들이 마물이라도 되길 바라는 거냐?"

"그것도 괜찮을 지도?"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녀의 태도에 더는 할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전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레이나에게 치료마법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명령... 받았습니다."

잠시 뒤 엄청닌 굉음과 함께 살기위해 서로를 죽이려는목적적 이외엔 없는 울부짖음이 울려퍼졌다.

전쟁의 목적과 상관없이 그저 살기위한 몸부림일 뿐이다.

나는 그 한가운데에 들어가 큰소리로 외쳤다.

"양측 당장 멈추거라."

순식간에 정적이 되었다. 음.  역시 효과는 굉장하군. 하지만 나 이외에 《빌리티》를 사용하는 자들이 있는지 확인해야...

"빌리티를 사용할 거면 제대로 사용하시죠?"

"오호. 나의 명령을 견디는 자가 있다니."

"그야, 나도 빌리티의 사용자니까."

노란 머리의 남성이 우측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어느 정도 힘이 있는 자 같았다. 그에비해 좌측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아. 빌리티 없이 우측과 싸웠던 것인가? 이렇게나 버틴 것도 기적이군.

"지겨우니까. 이제 사라져줄래? 나 어서 빨리 폭도들 진압해야하건든?"

"너. 소속은?"

"가르간 소속 제1 왕위 계승자 세파스... 끄어억... 크악...!"

나의 검이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검 사이로 흐른 피를 레이나가 급하게 달려와 정성스럽게 햝았다. 그리고 손으로 검을 빼내어 그 틈에 손을 집어넣어 마구 헤집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장난감이라도 가지고 노는 듯했다.

"미안하다. 네가 빌리티임을 밝힌 시점에서 너는 죽은 자나 마찬가지라서."

"너, 너 이 녀석... 아버지께서... 너를...! 끄아아악!!!"

레이나가 손으로 모든 장기들을 다 꺼냈다. 후두둑하고 떨어지는 장기들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버렸다. 사인은 쇼크사.

그가 죽자마자 레이나가 치료마법과 부활마법을 동시에 걸었다. 그의 시체는 사라지고 새로운 육체가 생겨났다. 허공에 있던 그의 영혼을 레이나가 손으로 잡아 강제로 집어넣었다.

"대, 대체..."

숨을 급하게 쉬는 그는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네 빌리티는 내가 가져간다. 불만있나?"

"아, 아닙니다...! 가, 가져가십시오...!"

또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그는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이 모든 상황을 본 양측은 잠시 전선을 물리기로 했다.

"서, 성함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지파다."

"마.  말도 안, 안 돼. 살아있었다는 말인... 가?"

"죽고 싶지 않으면 내 시야에서 꺼져라.  명령이다."

"알겠습니다. 지파님!!!"

그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가 왕자임에도 자존심이란 없는 듯 부리나케 뛰어갔다.

"지파... 나한테 이런 걸 시켜야겠어...?"

"그게 너에게 어울리는 걸?"

"학살에 대한 벌이라는 것입니까. 벌써 그로부터 몇 천년이..."

"그 죄는 영혼히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나에게 충성을 맹새해라."

"네, 알겠습니다. 주인이시여."

새하얀 눈이 가진 색은 어쩌면 아무 특징도 없는 그저 다른 색을 질투하는 색일지도 모른다. 깨끗함, 순수함. 이를 표현하는 색이 하얀색이다. 그러나 그 사실에는 또 다른 이면이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