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 눈 앞에 또렷히 보이는 것은 늘 보던 풍경.  섶불이 번지어 마을 곳 곳에 불이 나고, 아낙네와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 

다닌다. 다늙은 노친네들의 주름진 손은 벌벌 떨렸고, 이미 포기한듯한 회한의 눈동자 안에는 타고있는 불길이 속까지 번져있다. 


 구멍 난 허파에서 바람 소리를 내며 무너져내린 여럿의 장정들. 장작더미처럼 포개어 넣고 당겨지는 불. 끊어지지 못한 숨을 아직도

붙잡고있는 놈들 몇몇이 미약한 힘으로나마 장작더미 신세를 떨쳐내려 애 쓰지만,  양쪽으로 쪼개어 지는것은 장작이 아닌 그들의 

머리.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등을 밟고 도끼를 들어 정수리의 사이를 향해 날아가는 도끼. 튀는 피.  잔뜩 튄 피를 핥으며 호탕하게 웃는 남자.


 숨죽인채 오두막 아래에서 침을 꼴깍 삼키는 아이. 살아 남기위해,  그저 이 순간이 끝나기만을 기도하며 입을 꾹 막고 

가만히 누워있던 아이의 눈 앞이 깜깜해진다. 불 타는 건물들에서 쏘아대는 빛을 막는 하나의 얼굴 덕택에. 마주친 두 얼굴. 

깜빡이는 세번의 눈꺼풀.


질질 끌려 나온 아이는 그대로 불길 속으로 던져진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 넘어진 아이를 바라보며 박수를 치는 남자.


 살갗이 다 타면서도, 뜨거운 불길을 벗어나려 애 쓰는 사람들. 온 몸에 불이 붙었지만서도 바깥으로 나가려는 그 안간힘은 끝끝내 

숨이 끊어짐으로서 이루어지지 못한다. 마을 속에 맴도는 비명소리는 완전이 끝이나고 남은 것은 불구덩이 바깥에서 신이 난 듯 뛰어 다니며 웃고 떠드는 검은 옷의 무리들이었다. 


 그들의 중심에 있던 남자. 피가 잔뜩 묻은 얼굴로 신이나게 뛰어다니며 춤을 춘다. 불길이 만든 연기가 구름 한 점 없이 밝게 떠 있는 보름달 위로 날아간다. 별들이 빼곡히 보이는 아름다운 달 밤. 불타는 마을. 미쳐버린 검은옷의 무리들. 그들의 중심에 서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깜빡거리는 눈망울. 지겹다.


  저 달밤이 지나가고 나면 다음 모습. 깜빡이던 눈꺼풀 몇번이면 바뀌는 세상. 이제는 그만 보고 싶은 얼굴들이  어두운 공간 

속에 일렬로 쭈욱 늘어 서 있다. 내 몸보다 큰 기괴하리만치 징그럽게 생긴 얼굴들. 열상, 자상, 창상, 둔기 외상.  강물로 휙 던져버려 물에 녹아버린 익사체, 아까와 같이 불길로 던져버려 다 타버린 소사체 등등. 자신의 마지막이  그대로 남은 시신들의 얼굴이 나를 노려보며 무어라 무어라 말 한다. 


 옛 동료의 얼굴들인 그것들이 내 뱉는 한 서린 단어들 몇개가 귓 속을 파고 들어, 처음에는 아니라 부정하고 눈물 흘리며 소리쳐 보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어짜피 피 할 수도 없고 도망 칠 수도 없다는걸 안 이상 할 말도 없다. 익숙해 지고 나니 지루하게 초를 새며 그저 이 좆같은 꿈이 빨리 끝이나길 바랄 뿐.  


 얼굴이 앞으로 다가온다. 서서히, 내 몸 앞으로 수십의 얼굴들이 모여 다가오기 시작한다. 어짜피 도망 쳐 봐야 녀석들은 나보다 한

참은 더 빠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여기까지 왔다면 곧 끝이 난다는 것이다. 얼굴들은 입을 벌려 나의 몸을 물어 뜯기 시작한다.  

나의 살점 한 점이라도 씹어야지 분이 풀리겠다는 심정으로 줄 서 있는 수십의 얼굴들. 하나 하나 기억나던 이 얼굴들에 의해 나는

거죽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잡아 먹히게 될 운명.  

 

 너는 이좀 닦아라. 진짜 얼마나 안닦았으면 누래가지고.  너는 입버릇처럼 좆이나 까잡숴라고 하더니만 니가 처먹고 있네. 너는 시발 그 좆같은 콧수염좀 밀면 안될까? 거죽이 튀고 붉은 살점이 여기저기 묻어가는 얼굴들을 보면서도 아무린 감각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옛 동료의 얼굴들을 잊지 않게 되는 것도 어떻게보면 다행이라 생각 할 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게걸스럽게 몸을 뜯어먹는것을 경험하는 와 중에서도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남의 일을 보는듯이. 아침은 뭘 먹나, 오늘이 쓰레기 배출일이었던가? 마트가서 뭘 봐와야 하나. 건강을 생각하면 야채좀 집어 와야 하나 따위의.  


지겹다. 이제 그만 하자. 진짜......


 살 점 하나 없이 다 먹히고 나자, 평소와 같이 침대 머리맡에서 깬다. 옷가지가 널려 있는 너저분한 내 방 안. 째깍째깍, 시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침대 위에 걸어 둔 벽시계에서 들린다.  


 아무리 안에서는 적응을 했다 손 쳐도, 땀을 흘리는 것은 생리적인 현상. 침댓보는 평소처럼  젖어있고, 이마에 땀 또한 매일같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후텁지근하고 끈적끈적한 땀이 접힘 부위에서 늘러 붙었다. 불쾌한 기분을 씻어내려 욕실로 향한다.  


 따스한 물이 샤워 호스에서 나와 등을 타고 내린다. 접힘 부위 이곳 저곳을 비누거픔으로 닦아 내린다. 어제 쓰던 덜 마른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고, 더운 물때문에 잔뜩 생긴 성애를 거울에서 닦아낸다. 


 거울 앞에 보이는 것은 꿈속의 남자.  박수치고 호탕하게 웃으며 신이 나게 불구덩이 바깥을 뛰어 다니던 남자의 얼굴에, 주름살이 많이 늘었다. 그런거 하나 없이 말끔한 얼굴이었는데. 세월의 흉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욕실 밖으로 나와 가볍게 일상복으로 갈아 입은 나는 티비를 켠다. 원래 티비를 잘 안보지만, 오늘만큼은 챙겨서 볼 게 하나 

있었다.


 와- 이 알좀 보세요. 크 이거를 그냥 흰 쌀밥 위에 얹어서 먹으면....


치익


북쪽에서 내려 오는 바람의 영향으로 오늘은 꽤 쌀쌀한 날씨를 유시 할 것으로.....


치익. 


감히 니가 내 아들을 넘 봐?   엄마! 


치익. 


경찰은 숨진 이씨의.....


 세번을 돌리고 나서야 나오는 익숙한 얼굴. 정갈한 복장으로 앉아있는 아나운서. 예쁜 입술에서 고급스러운 중저음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흠......안 갔나? 


 한참을  앉아서 뉴스를 보고 있는데도 별 다른 이야기가 없다. 일을 벌렸다면 확실히 성공했건 아니건 뉴스에서 속보로 나올법한 

이야기였기에. 말로만이였나 보다 생각하고 티비를 끄려는 순간, 피습이라는 단어가 살짝 보였다. 


진짜로, 하러 갔구나......


 단장은 말로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말로만 할 사람이었다면 술 한잔 얼큰히 취한 상태에서 지나가듯 던지는 말을 믿고 이 자

에 내가 앉아 있을필요도 없었다. 안타까운 점은 문구였다. '숨진채 발견'이나, '살해' 당했다 가 아니라 피습. '중상'이라는 단어가 

섞여 있긴 했지만 여러모로 단장은 그 뜻을 이뤄내지 못한듯 싶었다.  


 배후를 조사하고 있다는 말이 들렸다.  역시, 그는 우리에게 가르쳤던 그대로 행했구나. 임무에 실패시엔 어금니 안쪽에 

고이모셔둔 알약을 깨물어 죽는다. 그것때문에 매 번 식사를 할 때도 그는 우리에게 어금니가 아니라 앞니로 음식을 씹는법을 

가르쳤다. 영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겠지만서도, 괜스레 밥 잘못 먹다 죽는것보단 나았기에 한참을 연습해서 겨우 적응했던 

기억이 났다.   


 근데, 자살은 억울해서 안되겠다던 그 양반이 끝끝내 저러다가 독약을 물고 죽은 것이면 그것은 자살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일을 벌이기 몇일 전, 그와 나눴던 술자리에서 그가 했던 말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잠은 잘 만 하냐?  


지글지글, 껍데기가 익는 불판 앞에서 그가 물었다. 어찌 대답해야 할 까, 고민하다 그냥 평소처럼 말했다.


.....그럼요. 밤마다 아주 동네 잔치지. 캠프파이어도 벌려주고 주민들 좋다고 손들고 환호성 질러주고 나도 좋아서 춤추고 난리도 

아니야. 


하하! 너도 그러는구나, 너도....


 씁쓸한 눈빛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그. 잔이 비자, 나는 단장의 빈 잔으로 술을 다시 따라주었다. 채우기 무섭게 다시 비워가는 술잔. 짧게 묻고 말 없이 한참을 술만 마시던 그는 어느정도 취기가 올라오자 그제서야 다시 입을 땟다. 




 나는, 진짜로 자살하고 싶다고 하는게 죽고싶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면 나는 줄 알았거든? 근데 정작 그런 생각 들 때는 말만 

그렇게 하지 인생 진짜 열심히 살았단 말이야? 이 악물고. 너도 알잖아.


 단장 인생 열심히 살 때 옆에서 거들던게 납니다. 그걸 모를리가 있나. 


그치. 그때 참 열심히 살았어. 너도.....나도.....애들도......


 단장은 다타서 딱딱히 굳은 껍데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입술에서 기름기가 번들거렸다. 


근데.....근데 말이야, 진짜로 힘들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살 이유가 생각이 안나더라.  요즘이 그래. 진성이가 하던 말, 이제는

좀 이해 할 수 있을꺼 같아. 살 이유가 없다는 말......


.......


  빈 고기판이 홀로 끓고 있었다. 나는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거 같은데 그 말을 듣자마자 까먹어버렸다.  할 수 있는 것

이라곤 깊은 한숨 뿐이었다. 


 진성이 그렇게 보내고 오늘 내일 그저 흘러보내듯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어제인가?  전화 한통 오더라. 원장 비밀전화로. 

수고 많았다고.  거기도 지금 바쁜데, 전화를 한다는건 뭐...


 조사까지 들어간  이 시점, 짧은 그 다섯 글자의 말은 많은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곧 정리 할 것이라는것을 말 했고 정리라는 것은 흔적을 없애버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결국 이게 그렇게 됐네. 


그래. 요즘 꼴 보니까 그럴만 했지.....


.......


 나는, 의외로 담담했었다. 밤마다 보는 달밤의 모습과 동료들의 마지막이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고, 아무리 티비와 멀어진다 할 지라도 여기 저기서 들리는 기류와 사람들의 성토를 모른채하고 살 수는 없었으니까. 우리를 비호하며 보채던 정권은 총성 한 발로 무너진지 오래고, 곧 그렇게 될 것이라는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말 없이 술 잔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으로 있었는데, 하필이면 대포집 옆에 틀어 놓은 뉴스에서는 우리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비밀 문서 공개. 특수부대. 요인 암살, 민간인 학살 자행.  비인간적 행위........



 전쟁이 끝이나고 찾아온 평화의 시대, 예전같았으면 기사 한 줄 안났을 저런 것들도 이제는 이런 술 집에서도 손쉽게  뉴스로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기분이 조금 묘했다. 울컥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데 무언가 떳떳하지는 못한.


......아무튼 그래서 딱, 목을 메려고 줄을 내리는데 생각해보니까 이름은 남겨야 하겠는거야. 씨발. 우리가 누구 때문에 그랬는데. 다 나라를 위해서, 우리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랬는데. 나 하나 쯤이야 죽는거 상관 없겠지만, 우리를 대표해서 우리가 존재 해왔고 무언가 열심히 살아 왔다는것은 기록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냐? 


 그리 말하며, 단장은 오른손 검지로 식탁을 세번 두드렸다. 무언가 부탁이 있을 때 마다 늘 보여왔던 행동이었다.


재호야, 같이 할래? 어짜피 정리하러 올 텐데, 마지막으로 한번 시원하게, 가자. 장비는 다 준비 해 놨다. 


 그리 말하며 손을 내미는 단장. 하지만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싫어요. 나는 그냥 내가 마무리 지을게. 할꺼면 단장 혼자 해.  


......그래? 


 사실, 이 질문도 어느정도  날아 올 줄 알았다. 연락 한 번 없이 지내던 양반이 오랜만에 연락 한다는 것은 무언가 원하는게 있을 

것이다. 내가 들어 줄 수 있는 부탁이라고 해 봤자 뭐 사람 써는 일 밖에 더 있겠나? 


쓰읍......안되나?  


......잘 알면서 그런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살다 갈라요. 정리 우리도 많이 했잖아? 내차례가 왔다고 빼는건 아니지. 


.....그래.


나의 대답을 듣고 그는 쓸쓸한 표정으로 술잔을 비웠다. 그렇게 말 없이 한참을 술잔을 주고 받고, 완전히 곯아 떨어질때 

쯔음에서야  술집을 나왔다. 밖은 꽤 쌀쌀했고, 나는 그를 들처매고 택시를 태웠다.   


아저씨 여기. 돈.  


지갑에서 지폐를 뒤적거리며 기사에게 건낸다. 


아우 아직도 현찰 가지고 다니시는 분이 다 계시네. 가만있어 보자 여기 잔돈이.....


잔돈은 팁이요. 아우 추운데 고생 많으시네. 잘 데려다 주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택시 문을 닫으려던 찰나, 단장은 나에게 짧게 물었다.   


너는, 억울하지도 않냐?......  이렇게 끝내는거.......


 벌린 입으로 술 냄새가 진탕 풍겨왔다. 허나 눈빛과 내용만큼은 진심으로 하는 질문이었던듯 싶었다. 뭔가 그런 그의 말에 살짝

울컥했었던거 같다.

 

 억울하다. 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나는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고, 나는 나라를 위해 목숨 받쳐 일 했을 뿐이다.  평화의 뒷편에서 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행했던 노력을 모르고 어찌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건가 나는 억울 하다. 나는 정말 미칠듯이 억울하다. 


 라고 하려던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오려다가, 턱 하고 걸렸었다. 그 말을 막아 선 것은 보름달 밤,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신이나게 썰 어낸 한 남자의 얼굴 때문이었다. 


 과연 내가 거기서도, 숭고하고 거룩한 뜻으로 나라를 위해 행동했다 할 수 있었을까? 강한 힘에 취해, 나는 정당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그저 하고싶은데로 시컷 즐겼던 것은 아니었을까? 모르겠다.



.....별로.


 나는 모르는 것에 대해 아는척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잘 몰랐기에, 나는 그리 말 한 후, 택시 문을 닫고 그를 보냈다. 그것이 그가 살아 있을때의 마지막 모습. 그때는 캄캄한 밤이었는데, 지금은 또 아침에 이렇게 보게 되네.  


 범행 현장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영상들이 티비를 통해 나왔다. 어지럽게 움직이는 헬기를 따라 보이는 그는 하관을 가린 검은색 

복면을 끼고 있었다. 먼 거리임에도 복면 위에 가리지 못한 두 눈에는 힘이 잔뜩 실려있었다. 몸은, 먼저 들어간 특공대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몸을 이끌고 나가 목표를 사살하기 위해 총구를 들이 올렸는데 진즉에 배치된 저격수의 총구 끝으로 발사된 탄환이 그대로 그를 끝내버렸다. 


 그래도 서 있는 위치를 보아 하니 생각보단 많이 뚫었네. 로비 앞에서 잡힐 줄 알았더니만 특공대까지 잡고. 근데, 나는 사람들 이름

외치면서 소리라도 지를 줄 알았는데 저럴꺼면 대체 왜 간 것일까 생각했다. 어짜피, 단장이 성공했다 해 봐야 저래선 아무도 이름도 몰라 줄 텐데.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간 것이라 하지 않았나?


 그의 죽음에 대해 나는 그렇게 평가했다.  전자레인지에 뎁힌 레토르트 식품을 들고 와 먹으면서. 그래도, 하나남은 친지의 죽음인데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으면서도, 배워 온 방식과 말소된 인간성이라는 것이 사람 사는게 원래 다 그런 것이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그들이 왜 이 평화의 세상에 우리를 남겨두지 못하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는 방식이 바뀌었는데, 독이 잔뜩 오른 애들을 그대로 놔두면 대체 무슨 짓을 벌일 줄 알고.  모르는 것은 무서운 것이고, 이해 할

수 없는건 위험한 것이다. 주인이 바뀌었는데 남겨두는게 이상하지. 끝내자, 여기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레토르트 식품을 부웠던 그릇을 싱크대에 넣고 물을 틀었다. 설거지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 하지않기로 

했다. 뭐, 나중에 집주인이 와서 하던가 하겠지. 그리고 나서 나는 창고 안 쪽에 예저녁에 사 두었던 줄을 꺼내왔다. 



 꿈을 견디는게 너무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사람은 하루의 8시간씩이나 자는데, 8시간 내내 힘든데 그걸 어떻게 참나? 너무

힘이들어 사 본 줄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줄을 여기에 묶었었다. 책상 위에 올라가고 한 발을 때고, 나머지 한 발 마져 때면 

거기서 끝이었는데 이게 뭐라고, 한참을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씩 떠오르고, 돌아 온 짧은 일상 속에서

느끼던 즐거움들이 생각이 났다. 마져 하려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거려면 이 줄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나니, 이 짓거리가 내 스스로가 봐도 너무도 한심하고 쪽팔린지라 에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던 때도

있었다. 그러고 나면 이제 여기저기 흩어진 옛날 친구들을 하나 둘 불러모아 서로의 추억과 서로의 고통과 서로의 일상을 더듬으며

다음날을 보내곤 했다.  근데, 지금은 그럴 사람이 없다.


 한 발을 때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단장이 그렇게 메스컴을 탓으니, 마지막 남은 나를 어떻게든 입막음하려고 원장이 눈에 불을 키고 찾고 있을거다.  껍데기 집 주변에 있던 cctv며, 상점가에 있던 카메라 등등이 나를 분명 찍었을테고 지금쯤이면 후배

몇명 보냈겠지. 


 살 이유도 없다. 익숙하지 않은 일상의 즐거움이라는게 그때는 그래도 괜찮았던거 같은데, 그것도 몇년 하고 나니까 지겨워졌다.  

그 사이를 파고 고개를 내밀며 들어온 사람도 없었고, 그냥 평소처럼 쭈욱 혼자 살던건데 내가 거기서 어떤 새로운 재미를 찾았겠는가? 익숙하지도 않았고 익숙해 지기도 귀찮았다. 아무튼 즐겁다고 느끼면서 살 이유도 더 이상은 없는거 같았다. 


 남은 한 발도 마저 놓는다. 목구멍이 바깥의 줄떄문에 조여온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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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놓은거 마무리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