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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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김아인을 가양역으로 보낸다.”


재판장이 나무망치를 두드린다.


그와 함께 피고석에 서 있던 여성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힘없이 주저앉고는 조용히 흐느껴 운다. 

30년 가까이 지하에서 썩을 사람치고는 꽤나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을 흘리며 끌려가는 여성을 뒤로하고, 재판장의 입에 내 이름이 올라간다. 


“다음. 피고 윤상원. 피고석으로 올라오십시오.”


법정에 있던 모든 눈알들이 나를 향한다. 뒤에 있는 방청객들의 시선마저, 보이진 않지만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더럽고 추악한 연쇄살인마로 여기고 있겠지. 


“윤상원을 2호선으로!”


법정의 모든 방청객들이 오열하며 외친다. 


법정에는 사실상 재판대와 피고석, 그리고 방청객밖에 없었다. 변호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최후 변론하도록.”


재판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진다. 최후 변론같은 건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건 그냥 형식상의 것 아닙니까? 빨리 판결이나 내 주쇼.” 


“흐음..”


재판장의 눈이 날 위아래로 훑어본다. 그 후 손에 들려있는 낡은 지하철 노선도를 훑어본다.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마침내 나무망치를 든다. 


“2호선에 수용한다.” 


사실 연쇄살인마, 아니, 연쇄살인마로 여겨지고 있는 자가 2호선으로 보내지는 건 뻔했다. 어차피 망한 인생, 나는 재판장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며 말을 뱉는다. “엿이나 드쇼.”


재판장의 수염이 움찔거린다. 

그는 내 가운뎃손가락에 화답하듯 말한다. 


“가능하면 봉천역으로 보내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연두색 유니폼을 입은 두 사내들에게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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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교도소 대신 역으로 끌려가기 시작한 것은 20년쯤 전부터였을 것이다. 


들은 이야기로는, 정부는 더 이상 쓸모없어진 지하철역을 화석마냥 평생 땅속에서 썩게 내버려두긴 아까워서, 지하 교도소 비슷한 것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결과 서울에만 수백개의 교도소가 생겨 넘쳐나는 죄인들을 효율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고, 동시에 혐오시설인 교도소는 지상에 세워질 필요가 없었다. 물론 인권단체들의 쓴소리와 대모는 감안해야 했지만.. 


사실 난 이런 이야기들은 먼 나라 이야기인줄로만 알았고, 당연히 난 평생 여기는 구경도 못할 거라 생각했다.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시설이고,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턱이 없으니..


하지만 나는 지금 그곳에 있다. 


그 중에서도 순환선인 2호선에. 서울 지하철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피고인 신분이 되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 나는 사실 역이라는 것이 옛날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던 장소였는지도 몰랐으며, 지하철이라는 개념 또한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나는 의도치 않게 피고 신분이 되면서, 관련 서적을 모두 뒤져보게 되었다. 그 중 발견한 것이 100년 전 서울의 “지하철 시스템"과 현재 서울의 “수용 시스템"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현재의 공중교통이 발달하기 전까지 사용하던 서울의 지하철에 대한 내용은 정말 흥미로웠다. 수 백개의 역들과 환승, 급행열차 등, 모든 것이 간략하게 설명되어있었다. 난 그것으로 대충이나마 서울 지하철 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수용 시스템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이라 함은, 


“...죄수들은 형량에 따라 각기 다른 역으로 보내지게 되며, 1년마다 역 승강장에 열차가 도착해 죄수들은 다음 역으로 보내지게 된다. 그렇게 1년마다 역을 옮기다가 마침내 종착역에 도착하면 석방되게 된다. 또한 죄수들의 죄목에 따라 다른 노선의 역으로 보내지는데 노선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호선: 청량리~서울역. 주로 마약사범이 수용된다.


2호선: 순환선. 무기징역수들이 수용된다. 다른 노선과 달리 열차는 2년에 한 번씩 온다.


3호선: 연신내~오금. 성범죄자들이 수감된다. 


4호선: 노원~사당. 이 노선은 가석방 등 원인으로 인해 형량이 변경된 사람들의 형량을 맞추기 위한 환승 노선으로, 외부와의 출입이 완벽히 통제된 다른 노선과 달리 어느 역에서든 석방될 수 있다. 


5호선: 김포공항~오금. 살인을 저지른 죄수들이 들어온다. 


6호선: 태릉입구~연신내. 정치범, 사상범 등이 수용된다. 


7호선: 노원~대림. 만 19세 미만 미성년자들이 수용된다.


8호선: 가락시장~천호. 주로 형량이 짧은 잡범들이 수용된다. 


9호선: 김포공항~올림픽공원. 여성 범죄자들이 수용된다.”


수용 시스템에 대해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은 이 정도였다. 더 이상의 정보는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다. 


이 내용을 읽었을 때에는 내가 무엇으로 기소가 되었는지도 몰라서, 무죄 판결, 좀 심하면 벌금이나 집행유예 정도로 끝나겠지 설마 2호선까지 가기야 하겠어 하며 우습게 봤었는데 내 누명은 내 생각보다 훨씬 큰 것이었으며, 봤다시피 재판 시스템은 정말 썩을 대로 썩어있었다. 이런 식으로 재판을 한다면 분명 억울한 이유로 수용된 사람들이 나 말고도 훨씬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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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잡음섞인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이번역은 봉천, 봉천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나는 역에 도착할 때 즈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승강장에 아직 진입하지도 않았는데 쩐내가 터널 너머로 풍겨왔다. 


역에 가까워질수록, 옆에 있는 간수들도 긴장한 모습이었다.


열차는 승강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죄수 수백 명이 이미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아니 열차를 기다렸다는 듯이. 


“출입문 열립니다. 발빠짐 주의!”


내가 탄 곳 앞의 문만 열렸다. 간수들은 역 쪽으로 나를 밀쳤고, 나는 승강장 한복판에 내동댕이쳐졌다. 


“발빠짐 주의!”


열차 문은 약 2초 정도 더 열려있었다. 죄수들은 열린 문 쪽으로 몰려들었고, 간수들은 긴 봉을 꺼내 열차에 타려는 이들을 제지하였다. 


“출입문 닫습니다.” 


마침내 열차 문에 이어 강철로 된 스크린도어가 닫히기 시작했다. 


스크린도어가 닫히기 시작해도 몰린 죄수들은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죄수 한 명의 팔이 스크린도어에 끼여버렸다.


하지만 스크린도어에 안전장치 따윈 존재할 리 없었다.


피가 분수를 그리며 튀어나왔고, 그렇게 그 죄수는 한쪽 팔을 잃어버린 채 쓰러졌다.


간수들과 함께 열차가 떠나고 나서야 상황은 진정되기 시작했다. 


모든 일은 수 초만에 벌어져, 나는 잠시동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 백명의 죄수들은 나를 원 형태로 둘러싸고 있었다. 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름이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