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비빅 삐비비빅

 날카로운 알람 소리가 발 아랫쪽에서 들려온다. 어제 맞추어놓은 알람이 울리는 걸 듣고 있자니 '아 이제 중학교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실감이 났다.

 6년 동안 그래왔듯이 밥을 먹고 씻은 뒤에 거의 처음 입는 새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 엄마가 직장에 출근하시고, 몇 십 분 정도 있다가 새 교과서가 든 무거운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남들이 보면 되게 일상적으로 등교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행동은 이래뵈어도 나는 굉장히 초조하다. 걱정된다. 확실히 기대보다는 걱정, 근심이 앞선다. 선생님은 어떨까, 반 친구들은 어떨까, 학교 분위기는 어떨까, 등등. 모두 학교에 가봐야지만 답을 알 수 있는 질문들이다. 이런 고민들을 하며 고개를 살짝 떨군 채 학교로 걸어간다.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는 기역 자 모양으로 중앙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은 남자반, 오른쪽은 여자반이다. 1학년 층은 2층이고, 그 위에 2학년, 3학년 층이 있다. 등교는 8시 55분까지지만 첫날이라 그런지, 8시 30분임에도 일찍 온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그 중에는 같은 초등학교였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모르는 친구들이 태반이다. 초등학교가 규모가 과도하게 컸기에 6년을 다녔지만 졸업식날 앨범을 받아보니 모르는 친구들이 훨씬 많았다. 더구나 중학교에는 여러 초등학교 학생들이 섞여서 왔으니 안 그래도 소심한 성격 몇 배는 더 소심해질 것을 예고하는 듯 하다. 원형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정면에 1학년 교무실이 있고, 그 앞에 반 배정 표가 붙어있다. 표를 쭉 훑어보니 나는 1학년 2반이다.


 1학년 2반은 교무실 바로 옆 반이다. 뒷문으로 들어서니 칠판에는 "자리표대로 앉으세요."라는 노란색 백묵 글씨가 보이고, 그 옆에는 자리표가 그려진 B4 사이즈 종이가 자석으로 붙어있다. 내 이름을 찾아보니 1분단 맨 앞줄 왼쪽에 '10201 강민현' 이라고 쓰여있다. 짝 자리에는 '10202 기민수' 라고 써있다. 이름을 기억해 두고 자리로 들어갔다.


 한 십 분 쯤 멍 때리며 기다리고 있으니 내 옆 자리에 무거운 가방을 턱 올려놓았다.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옆을 보니 교복을 입은 한 남학생이 서서 나를 내려다 보는데, 키는 중3에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크고, 얼굴은 잘 생겨서 같은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렇게 속으로 감탄 비스무리 한 걸 하는 와중에 내게 말했다.

 "네가 강민현?"

 "어. 맞는데, 왜?"

 "그러면 너가 내 짝이구나. 안녕."

 "어, 어. 안녕."

 짧은 대화가 끝났다. 둘이 서로 어지간히도 어색해서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2명' 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도 될 정도다.

 '보자마자 인사를 건네놓고 왜 세상 어색하게 그러고 있냐.. 나도 뭔 말을 꺼내야 할 지, 내가 말한 주제를 잘 받아들여줄 지도 잘 모르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아까처럼 멍을 때리고 있다. 그러고 또 십 분 정도 지나갔다.


 앞문이 드르륵 하며 열린다. 그리고 앉아있던 반 일동이 쳐다보니 그 앞에 선생님이 계셨다.

 "1학년 2반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의 담임과 영어 과목을 맡은 임희진입니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다르게......"

 그 뒤로 언제 시작하여 언제 끝나는 지, 과목은 무엇인 지, 학교는 어떤 지, 등등을 말씀해주신 조례 시간 15분동안 꽉 채워서 말씀해주셨다. 그러나 지루하거나 하지 않고 말이 귀에 쏙쏙 잘 들어왔다. 조례시간이 끝나는 종이 치자 말씀을 마쳤다.

 "1년 동안 잘 지내보자 얘들아!"

 "네!"


 여느 학교가 그렇듯이 1, 2교시에 강당에서 입학식을 하고 3교시부터는 교실로 왔다. 입학식 때 뭘 하긴 했는데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 키 큰 애가 내 뒤에 딱 붙어있었던 것만 기억난다. 그리고 교실에서는 또 4교시까지 담임 선생님이 3년 동안 할 학교 생활에 대해 설명해주신다. 그 동안 오른쪽의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는 내 짝을 훑어 본다. 대충 어깨가 넓고 키도 커서 예상치 못하게 3번과 4번에게 민폐였을 것임을 짐작했고, 근육도 적당히 붙어 힘도 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애가 내 짝이고,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넸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 심지어 내 감상(?)에서 볼 수 있듯이 생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점심을 먹고 일찍 끝나서 집으로 간다. 혼자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어깨에 누가 손을 얹어놓아서 뒤를 돌아봤더니 내 짝이었다.

 "이름이.. 강.. 민현이라고 했나? 내일 보자!"

 "어."

 당황해서 그냥 한 글자로 밖에 답할 수 없었다. 나보다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질러 저 멀리 가는 김인수였나 기민수였나를 보니 앞으로의 학교 생활이 막 절망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