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배경 창작 글 - 인민군의 편지



경애하는 부모님께.


깨어있는 사람 한 명 없을 꼭두새벽에 진군 명령이 떨어져 남으로 내려온 지 어언 세 달이 다 되어가는데 몸은 건강히 편안하신지요혹여나 하루하루 제 생각에 잠 못 이루실 두 분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처음으로 편지를 써 봅니다.

남조선군 괴멸과 통일까지 얼마 안 남은 지금 제가 있는 낙동강은 폭풍전야처럼 고요하기만 합니다이대로 전쟁이 끝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련지요이 상황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모릅니다미제가 우리 군에 반격을 해올지아니면 전우 모두의 바람대로 이 기세로 곧장 밀어붙여 적화통일을 이루어 낼지그저 옷깃에 별을 단 사람들의 명령이 내려오면 이 한 몸 희생하여 나라와 공산주의에 영광을 바친다그것 뿐입니다.

얼마 전 남쪽으로남쪽으로 계속 진군했을 때 머리에 보자기로 싼 짐을 이고 아홉 살쯤 되어보이는 사내아이와 열두 살 되었음 직한 계집아이의 손을 잡고 걸음을 재우치는 피란민 노파를 보았습니다피란이라면 남으로 가는 게 보통이지만 그들의 발길은 북쪽을 향했습니다힘 없는 노인과 어린 아이에게까지 간섭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 판단했는지 윗사람 중 그들을 시비하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모두들 그저 검게 그을리고 지친 얼굴로 곁눈질할 뿐이었습니다행군하는 저희를 보더니 그 세 명은 손을 맞잡은 채로 부들부들 떨며 길 한복판에서 멈추더군요계집아이는 다른 한 손에 아카시아 가지를 들고 겁에 질린 채로 얼어 있었습니다만약 처음부터 한반도의 두 나라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있어났을까요분명 몇 년 전까진 한 나라였는데 말입니다.

얼굴을 마주보고 하고싶은 얘기는 산만큼 있지만 지금은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종이로 이렇게 소식을 전할 수 밖에 없다는 점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가족끼리 다시 한 번 마주 앉아보는 것이 소원이 될 줄은 제가 미처 몰랐습니다이럴 줄 일찍이 알았다면 원 없이 두 분 얼굴을 더 보고 오는 거였는데…….

한 달 하고도 보름쯤 뒤에 편지를 써서 부치겠습니다조만간 반드시 한반도를 다시 하나로 하여 금의환향하도록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주십시오



                                                                                                                 1950년 9월 13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장남 류춘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