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낮이 지나갔다. 그날도 평소처럼 아이를 씻기고 같이 청소하다가 서로 안건에 관해 토론을 하였다. 부모는 이데인의 옷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지만, 자신들도 본 적 없는 옷이었다. 만약 이 옷을 어딘가에서 훔쳐 온 것이라면 이번에 소녀의 엄마가 같이 가서 돌려주기로 말을 마치며 서로 할 일을 향해 일어섰다.
 남편이 말하였다.
 “별일 없을 것이오.”
 그 순간, 불안한 직감이 스쳐 지나갔다. 뻗은 손아귀에는 잡히지 않고 찬 바람이 휭 부는 곳으로 지도자가 나섰다. 소녀의 엄마는 닫힌 문을 보며 “그래, 별일 없겠지.”하고 중얼거렸고 이윽고 잠을 청하기 위해 벽에 기대었다.
예전처럼 귀를 기울이며.
침묵이 울고 어둠이 끔뻑끔뻑 내려앉았다.
 아이가 나오는 발소리가 들리기만을 기다리던 엄마는 아이의 숨죽인 소리에 눈을 뜨며 자연스레 말하였다.
 "일어났니?"
 아이는 살금살금 다가오려던 것을 멈추고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엄마는 빙그레 웃으면서 갸우뚱하는 소녀를 향해 말하였다.
"사냥의 습관."
엄마는 겉옷을 준비하고 아이에게 망토를 덮어주었다. 물어보는 표정으로 멀뚱멀뚱 보는 아이의 헝클어진 머릿결을 정리해주고 아이가 가졌던 옷까지 챙긴 다음 말했다.
 "이제 가자."
 딸은 금방 화색이 되어서 도도 뛰어갔고, 엄마는 뒤따라 망토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겉옷을 챙긴 뒤 문을 열고 나가는 아이를 향해 말했다.
 "아가, 같이 가."
 벌써 세 걸음 정도 앞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또 다른 짚 문을 열고 있었다. 문을 열자, 찬바람이 휭 들어오며 잠이 확 달아났다.
 "빨리!"
 뭐가 그리 급한지 급하게 뛰어가는 아이의 두 눈은 달빛보다 어여쁜 색으로 빛났다.
 엄마가 오는지 확인을 한 뒤 다시 뒤통수를 보이며 뛰어갔다.
 신지 않은 아이의 신발을 챙겼다.
 그 급한 걸음에 종종걸음으로 발걸음을 맞추며 흰 눈 위에 작은 발, 큰 발을 찍었다. 하얀 눈이 별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고,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잠자고 있는 집을 건너갔다.
 밤하늘 아래 나무가 듬성듬성 검게 저 하늘로 뻗어있었다. 다소 먼 거리에서 작은 동물 소리가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러다가 한 번 동상 걸리면 큰일이라고 걱정하며 "신발은 꼭 신어야지!" 소리치던 엄마는 저 커다란 나무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뭇잎 하나 없이 가지만 뻗어있는 이곳에서 제일 큰 나무.
 숨죽인 마을과 저 언저리에 켜진 불 몇 가닥.
 ‘무엇을 하려는 걸까.’
 생각하던 엄마는 천천히 나무에 다가갔다.
 "딸, 여기서 뭘 한다는 거니."
 나무를 쓰다듬으며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장난스러운 미소가 이어졌다.
 엄마는 아이를 바라보았고 아이는 잘 보라는 듯이 나무를 바라보았다.
 손을 뻗는데ㅡ,
 나무를 짚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황금빛이 나무에 보인다 생각했다.
 그 황금빛은 나무 전체로 퍼져나가 환하게 빛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믿지 못할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나무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날릴 정도의 거센 바람이 불었다. 금빛으로 환하게 물든 나무와 이 환상 같은 나무의 따스한 파동 위 흩날리는 눈송이.
 그 커다랗던 눈송이는 작아지며 내려왔다.
 딸은 그 비현실 가운데에 손을 대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내밀고 있었다.
 더듬더듬 환상 속에 있는 것 같은 나무를 만지고 뒤를 돌아보며 남편이 회의하고 있을 만한 방향을 보았을 때.
 나무는 흔들렸고
 "엄마, 나 거짓말 안 했어."
 아이의 작은 손이 잡아끄는 힘을 느꼈다.

이어 환상은 현실로 변하며 파동이 번졌다.

***

 ‘이곳은 어디일까.’
 한 번도 보지 못한 푸른 내음이 가득한 이곳, 분명 어두웠는데 환해져 버린 하늘.
 따뜻한 공기가 휘감아 덥기까지 한……,
 "안녕하세요!"
 이런 곳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딸아이를 바라봤지만, 딸은 한두 번이 아닌 듯 인사까지 하고 있었다.
 딸은 덥다는 듯 팔을 풀어달라고 보챘고, 이 상황에 놀라 반강제로 팔을 풀어주자 딸은 벌써 옷을 집어 던지고 뛰어다녔다.
 혼낼 생각도 못 한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 딸의 옷을 주우라고 지시를 내리고 다가왔다.
 "이데인의 어머니 됩니까?"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며 앞을 바라보았다.
 짙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딸에게 이리 오라고 말했다. 다시 이리로 뛰어오는 딸이 다리를 폭 안아왔고 옅은 풀 내음이 묻어있었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딸에게서 눈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잎사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햇살이 따가웠고 땀이 흘러내렸을 때 남자가 대답했다.
 "'아버지', 이곳에서는 절 그렇게 부릅니다."

***

 거대한 문이 등 뒤에서 웅장하게 닫히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드높은 창문에서는 빛이 들어왔다.
 아이의 얼굴을 그 형형색색의 색이 물들이며 장난을 쳤고 저 위에서 빛나는 하나의 환한 빛은 그곳을 무대로 만들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악기의 소리가 들려오고 장난이 될 것이 분명한 아이의 춤이 이어졌다.
 번쩍번쩍한 조각상이 깨질까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눈 하나 끔뻑하지 않고 햇빛에 은은하게 빛나는 식기를 들고 고기를 천천히 썰기 시작하였다.
 옆에서는 비슷한 옷을 입은 ‘하녀’라는 분이 어떻게 짚고 먹는지 설명해주었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먹으려고 온 거 아니에요.”
 그러자 썰다 말고 부드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시겠지요.”
 ‘아버지’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손짓으로 휘휘 저으며 물러냈다. 그리고 여전히 미소를 감추지 않고 은은하고 아름답게 지었다.
 “언젠가 찾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이데인’의 어머님.”
 단박에 자신의 위치를 아는 모습에서 보통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을 깨달은 ‘아버지’는 “아이에게 어머님과 아버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어미가 말했다.
 “그만 본론을 얘기하죠.”
 “하하하, 급하십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던 참이라…….”
 여유로웠다.
 저렇게 말하는 이유에서 뭔가가 있을 것이 분명한데 뜸을 들였다. 엄마는 아이의 무엇을 원하는 건지 점점 불안해졌지만, 그것이 저자가 원하는 반응인 것을 알았기에 침착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길었던 말꼬리가 끊기고 다시 입이 열렸다.
 “저희는 거래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손깍지를 꼈다.
 “듣자 하니 그곳에서는 먹을 것도, 자원도 부족한 모양이더군요.”
 소녀는 여전히 춤을 추며 사람들과 놀고 있었다. 그 바닥에는, 천장에는, 밖에는 고향에 있던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화려한 무늬와 거대한 것이 펼쳐져 있었다.
 얼굴이 무표정하게 변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죠?”
 “소녀를 주십시오, 이곳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는 필요한 환경과 물질.”
 어머니는 일순간 긴장했고 ‘아버지’는 씩 웃으며 썰었던 피가 흐르는 고기를 입에 넣었다.
 “원하는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

 아이는 빙글빙글 돌고 그 춤은 햇빛 아래에서 빛났다.
 웃음소리가 터졌다.
 치맛자락은 아까 오면서 보았던 깃털 없는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곤충과 비슷하게 퍼졌다. 되돌려주려고 했던 아름다운 옷은 그저 손아귀에서 일그러지고 뛰어오는 아이의 얼굴만 허물없이 좇았다.
 이윽고 안겨 오는 아이를 보았다.
 엄마는 언뜻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아가, 여기가 좋아?”
 폭 안긴 아이가 조그마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응.”
 엄마는 시원한 바람이 분다고 생각했다. 널찍한 잎사귀가 날리는 바람.
 거대한 집들이 앞에 서 있다. 깨끗한 돌로 가지런히 다듬어놓은 길이 저 나무로 향한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알지 못했다.
 ‘소녀를 주십시오.’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이곳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아이는 속도 모르고 조잘조잘 떠들었다.
 “하지만 엄마 아빠도 좋은걸.”
 잠결인 듯 눈을 끔뻑끔뻑했고 아이를 안아 올리며 입을 들썩였던 엄마는, 한 인간은,
 “엄마 졸려.”
 레오미는 눈을 감은 아이를 향해 뒤늦게 눈물을 흘렸다.
 “아가, 아가야. 엄마가, 엄마는……”
 황금빛 찬란한 나무를 향해 속삭였다.
 “너랑 살고 싶어.”
 귀에 속삭였지만 뒤늦은 말에 대답은 없었고 아이의 볼에는 눈물 찍힌 자국만 흘러내렸으며
 “널 지키고 싶단다…….”
 ‘너 말을 믿었어야 했어, 빨리 이곳에 왔어야 했어.’
 불안한 직감만이 떨어졌다.
아이의 손을 붙잡은 어른의 손으로 커다란 나무를 만졌다. 거대한 ‘찬란한 나무’의 그늘 아래 묻혀 나무를 끝없이 올려다보았을 때.
 ‘내가 널 지킬 수 있을까?’
찬란한 금빛 파동이 번지며 바람이 부는 것처럼 나무가 흔들렸다.

***

 돌이킬 수 없는 파동이 퍼졌다.
레오미는 졸린 아이를 집으로 보냈다.
굽혔던 무릎을 일으키고 앞을 바라보았다.
 회의하던 사람들 얼굴에 황금빛이 일렁이고 있었고, ‘아버지’가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버지’라고 합니다.”
 특유의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거래하러 왔지요.”
 병사들이 뒤에 섰다.

 회의가 시작되었다.

 “이건 절호의 기회입니다!”
 사람들은 나무를 통해 세상이 따뜻해지는 것과 물드는 것을 보았으며 오랫동안 균형을 유지하던 ‘강인한 자들’과 ‘눈과 얼음이 녹는 땅’ 사람들의 저울은 흔들렸다.
 “저 사람의 의도가 있을 겁니다!”
 ‘강인한 자들’과 ‘눈과 얼음이 녹는 땅’ 사람들은 결국 대립하여 싸우기 시작했다. 필연적인 문제였다. 식량을 가져오고 이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은 ‘강인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식량을 가져오는 횟수가 줄면 당연히 이 마을에서 홀대받고 ‘눈과 얼음이 녹는 땅’사람들의 위치만 올라갈 수도 있는 문제였다. 족장과 지도자는 그 지점에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지만, 지도자는 생각했다.
 ‘분명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기회가 될 거다.’
 ‘강인한 자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까 봐.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괴수를 토벌할 기회가 늘어나고 식량 걱정 없이 무기를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을의 개발 속도는 빨라질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된다면 ‘강인한 자들’의 위치도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걸리는 것이 있다면.
 ‘아릭, 불길한 생각이 들어.’
하지만 지도자는 결정했고,
 ‘이 기회가 우리한테 거대한 바람이 될 것만 같아.’
 이 결정을 물릴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내내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받아들입시다.”
 옆에 있던 콧수염을 기른 남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말에 ‘강인한 자들’의 표정이 안 좋아지는 듯했지만, 지도자는 계획을 말하였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저희는 늘 식량과 괴수 때문에 고민하고 밤잠을 설쳤죠. 만약 저 사람들의 거래를 받아들인다면 괴수를 처치할 도구를 만들 시간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술과 여러분의 토벌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마련되겠죠.”
 그러자 반대했던 ‘강인한 자들’마저도 반쯤 수긍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완전히 받아들인 얼굴은 아니었기 때문에 지도자는 오면서 얘기를 나눴던 레오미를 불렀다.
 “레오미, 아까 했던 얘기 좀 전달해주시오.”
 레오미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회의 중 레오미의 발언권은 없었던 거 아니었냐며 즉각 반발이 일었다. 지도자는 특수한 상황이고 권한을 부여받는 것은 아니라며 그곳을 잘 아는 사람은 이곳에서 레오미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하였다.
결국 반발했던 사람들은 불만 어린 표정으로 있었지만, 지도자의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레오미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족장을 바라보았다.
 족장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려무나.”
 고개를 끄덕여 레오미는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이번에 저는 불길함을 느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아이를 보내는 것을 전면 부정해요. 보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바람이 불 게 틀림없거든요.”
 사람들은 그 말에 즉각 웅성웅성 시끄러워졌고 족장과 지도자도 진지한 눈초리로 말을 받아들였다. 어떤 이들은 딸이라서 그런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레오미의 본능이 어떤 역할을 발휘했었는지 알았기 때문에 진짜 무슨 큰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냐면서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소란과 별개로 고함도 들려왔다.
 이 기회를 어떻게 놓치냐고. 아무리 직감이 잘 맞는다 한들, 본인 혼자만 보고 온 건데 그 판단을 한 사람한테 맡기냐고.
 그러나 그 소리와는 별개로 레오미의 본능을 무시하기에는 예전에 당한 일이 너무 컸다. 그때 말을 무시했다가 사람들이 무슨 일을 당한 건지 모두 알고 있었고 그런만큼 레오미 말이 신빙성 없다는 말만은 없었다. 다만 그 기회가 너무 커서 놓치기에는 아쉽다는 말이 많았다.
그런데도 레오미는 소란 속에서 다시 말을 꺼냈다.
 “차라리 물려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은 심각하게 불안해요. 저들이 무슨 의도로 제 딸을 저렇게까지 데리고 나오는지 의중도 알 수 없고, 그리고 이곳의 발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곳인데 저희도 무작정 대비도 없이 저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분위기는 심각해졌다.
 동시에 슬슬 너무 말이 길다는 얘기가 나왔다. 전시상황이 아닌 이상 발언권이 없는 레오미는 수긍했고 정말 시간이 없음을 깨달았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과 아까의 다짐의 되새기며 굳은 눈으로 입을 열었다.
“족장님, 저는 이날 이후 ‘강인한 자들’ 동족과 협력하여 다시 괴수를 토벌하는 최전선에 나설 것이며,”
 합의되지 않은 말에 지도자가 “레오미!”라고 소리쳤지만, 그 말로 레오미를 말릴 수 없었고 심지어 시간이 없다며 재촉했던 이조차도 입을 벌리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지도자님께서는 저희를 위한 도구를 활발히 만들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겠다는 의미였다. ‘강인한 자들’이 이곳에서 받는 대우와 여러 가지 협력품은 그들을 지켜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그것은 나무의 휴식기를 제외하고 이곳으로 오는 괴수를 토벌하고 식량을 구하기 때문에 그만큼 대우를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최전선. 가장 주도하는 이가 되겠다는 말. ‘강인한 자들’의 타이틀을 버리겠다고 선언했던 레오미의 말에는 큰 파장이 있었으며.
크게 반대했던 사람들도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이 웅성웅성 시끄러웠다. 이렇게 된다면 ‘강인한 자들’의 위치가 낮아질 일도 레오미가 나선 것으로 꼬투리 잡을 일도 없어지게 될 것이 뻔했다.
 목숨을 건 일이었기 때문에.
 지도자가 안 된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모두에게 다짐하듯 레오미는 말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지킬 거예요.”
 ‘내 딸을.’

***

햇살이 눈에 닿아 반짝반짝하고 잎사귀 하나 없는 나뭇가지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사람들은 레오미의 말을 듣고 나서 다시 회의했으며 결국 소녀를 저녁을 제외한 시간에 보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것으로 힘들었던 합의는 마무리되었고 ‘아버지’가 당도할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은 어제 회의했던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버지’라는 사람은 레오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특유의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말했다.
 “그러지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혹시라도 이 일이 이대로 끝날까 걱정했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시끄러운 소리가 터지자 아이는 귀를 양 검지로 막으며 찌푸렸다.
 “시끄러워.”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찌푸린 채로 말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사람들이 기뻐할 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도 약간의 미소를 짓고 있어서 딸이 말하였다.
 “어? 아버지 웃는다!”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본 적 없다는 듯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이는 까르르 웃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아버지 왜 웃어요?”
 아내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의 시선은 이쪽으로 쏠려 있었고 남편은 아내를 바라보았다.
 “모든 일이 잘 풀려서 웃은 거다.”
 그리고 레오미의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졌다.
 아버지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선이 저쪽으로 쏠리지 않게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말했다.
 “따라오십시오.”
 아이가 다리를 놓고 부모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몰래 했던 일을 엄마한테 혼났었는지 유독 엄마를 더 쳐다보았다.
 레오미는 힘겹게 미소 지으며 말하였다.
 “잘 놀다 와. 우리 딸.”
 그제야 앞으로 진실과, 노는 것 모두를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활짝 웃었다. 그러다 한 걸음 다가와 물었다.
 “엄마, 울어…?”
 “아냐, 울지 않았어. 잠깐, 잠깐…….”
 눈가의 자국을 쓱 아무렇지도 않게 닦으며 얘기했다.
 “먼지가 들어갔단다.”
 아이의 커다란 호박색 눈이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았지만, 엄마는 팔을 벌리며 말하였다.
 “이리 와 봐, 엄마가 안아줄게.”
 레오미는 꼭 껴안으며 앞에 황금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아버지’를 보았고 모른 척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어서 가보렴.”
 아이는 정말 괜찮은 건지 계속해서 물었고 엄마는 딸아이의 따뜻한 마음씨에 “응, 괜찮아. 가도 돼.”하며 아이의 걸음을 재촉했다.
 딸은 한사코 뒤를 돌아보다가 문을 열기 위해 힘껏 뛰어갔다.
 그리고 엄마는 다리를 펴고 섰다.
 레오미의 시선이 나무를 향했다.
 나무는 이내 환하게 빛났다.
 기뻐하는 사람 얼굴에도, 레오미의 얼굴에도 이 순간 이곳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눈물 자국이 볼에 선명히 그려진 얼굴로 말했다.
 “이게 맞는 걸까?”
 남편은 말했다.
 “이게 맞는 길이오.”
 사람들이 왁자지껄했다.
 기쁜 얼굴 속에서 홀로 울고 있는 레오미는 아릭을 바라보았다.
 “아릭, 난 아직도 의문이 들어. 우리가 향하고 있는 길이 정말 괜찮은 길인지…….”
 레오미의 구불거리는 검은색 머리카락은 바람으로 날렸고
 “우리가 이로 인해 행복해질지.”
 거대한 파동이 번졌다.
 “아직 잘 모르겠어…….”
 아릭은 결국 사람들을 등지고 눈물을 흘리는 아내의 그림자를 보았다. 껴안았지만 그것은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황금빛을 뒤로하고 그림자를 길게 남겼다.
 그러나 사람들의 술 냄새와 환호성은 끊이지 않았고 불꽃이 아름답게 치솟았으며 황금빛 따뜻한 너울은 영원할 것처럼 주위를 아른거렸다.
그렇게 가족의 존재는 타들어 갔다.





와 매일매일 연재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드문드문 올리게 될지 감도 안 잡힙니다...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