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치카 함의 기록


챕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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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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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면세계에서 미쳐버리는 건 죽었다고 생각한 존재가 생환한 채 자신의 눈앞에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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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터 C 구역 상공 

로알 제독의 함선 벨치카

 

“생존자라고?”

 

[네. 프람 소대의 정보에 따르면, 빌딩 내부 수색중에 '생존자' 를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화면을 보여주게. 하노마크.”

 

그 대답에, 하노마크는 곧바로 드론을 통해 수신된 화면을 보여주었다. 수신된 화면에서는 미라와 시현의 모습과 함께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허름한 원피스를 두른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검은 머리칼. 군데군데 굶주린 듯 창백한 피부와 한쪽 팔에는 군데군데 베어진 듯한 상처 사이사이로 침식액이 혈관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고, 그녀의 왼쪽 눈동자에서는 붉은 빛의 인광이 드러나있었다. 


 

[아리사. 지금 저건 침식체가 아닌가? 뭐하는 건가? 당장 제거를....!?]


 

“그만. 무슨 일인지 자세히 보고하게. 미라의 얘기로는 생존자를 발견했다고 들었는데?”

로알의 물음에 아리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다시 돌아보았을 때, 소녀는 그녀를 의식한 듯 붉은 빛 눈동자로 아무말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은 보아서는 '이성' 이라는 것은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작전에 방해된다면, 최후의 수단을 쓸 생각입니다.]


 

아리사의 대답에 로알은 침묵 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한참 생각에 잠기고 있는 사이로, 미라는 아리사를 대신해 수신기를 연락하며, 말했다.

 

[제독님. 물론 침식으로 인한 변이의 흔적들이 보이긴 하지만 이 아이. 아직은 인간이에요. 그러니 죽이지 말아주세요.]

 

[서미라. 잘 들어. 저 아이가 아직 살아있는 건 아직 소대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니까 그런 거야. 조금이라도 변이를 일으켜 침식체로 변이하면 우린 바로 처리해야 돼.]

 

그 대답에 소녀는 겁에 질린 듯 시현의 옷자락을 꼭 쥔 채, 아리사의 시선을 피했다. 

 

[제독. 이 아이. 아직 괜찮아. 미라랑 같은 생각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언제 침식체가 될지도 모르는 '저걸' 그대로 내버려두겠다니 죽고 싶은 건가!?]

 

[만약 진행이 된다면, 나와 미라가 책임질게.]

 

노빌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라와 시현은 자신들이 상대해왔던 침식체들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둘은 그만큼 확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노빌레의 말대로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지만, 로알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리사. 추후 함대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그 아이를 생존시키게.”

 

[하지만 제독님. 저희 소대는 수집 외에도 생존자를 짊어진다는 조건은 없었습니다. 또한 침식체들이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

 

“후속 함대 편성 후 도착까지는 시간이 걸리네. 말했듯 추후의 책임은 두 카운터가 지기로 했으니, 자료와 목표를 보호에 집중하게. 하노마크. 추후의 위협에 대비해 세이프 하우스가 확인하는 대로 소대에게 곧바로 안내하도록. 아리사는 하노마크가 마련한 곳에서 대피를 하고 후속 함대를 기다리게. 이건 명령일세.”

 

[알겠습니다.]

 

하노마크는 걱정하지 말라는 시선을 보냈고, 로알은 마지막으로 미라와 시현에게 시선을 보냈다.

 

“서미라. 김시현.”

 

[네. 제독님.]

 

“이 일은 추후에 얘기하겠네. 함대에 돌아오는 즉시 시말서도 각오해야 할 걸세.”

 

혼내듯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지만 로알의 얼굴에서는 반드시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미라와 시현은 그의 마음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걱정 마세요. 반드시 살아 돌아올테니까요.]

 

둘의 대답 이후 수신은 종료되었다. 노빌레는 그런 제독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프람 소대는 더글라스 사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로 모인 저희 테스크 포스의 주력부대입니다. 지금 저 변이될지도 모르는 침식체를 제거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 쓸 생각이십니까?]

 

“저 소녀가 어쩌면, 테라노바 함선과 더글라스 사의 채굴함 다이브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목격자일 수도 있네. 노빌레. 그 끔찍한 상상이 현실화되고 싶지 않으면 서두르게. 나 또한 준비할테니까.”

노빌레의 대답에도 로알은 단호하게 그의 말을 잘라버리듯 대답했다. 노빌레는 불만 섞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는지,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수신을 끊었다. 수신이 끊긴 후 로알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살아남았던 걸까? 지옥이나 다름이 없던 그 끔찍한 망망대해 속에서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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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미터 앞에 우회전입니다. 아가씨들. 제 드론 움직이는 걸 잘 보고 따라가세요.]

 


“재잘재잘거리지 말고 똑바로 안내하기나 해. 침식체 소굴에 던져버리지 말고.”

아리사의 호령에 하노마크의 드론이 움찔한 채 앞장서 나갔고, 둘은 흠흠 거리며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시현은 혹시나 아리사가 소녀에게 해를 입힐까봐 손을 꼭 쥔 채,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차가운 바닥 군데군데 파편이나 건물의 잔해가 너저분하게 놓여있어서 발을 다칠 것 같았지만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은 듯 태연하게 거닐고 있었다.



“안 아파? 맨발로 여기 걸으면 아파.”

시현의 물음에도 소녀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시선을 보냈다. 시현의 손을 잡고 있는 여린 팔에서는 검붉은 색의 혈관이 실시간으로 보일정도로 혈액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감염의 위험도 있었지만 조우 이후로 워치에는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그냥.... 사람이었다. 해를 가하지 않고 위협을 하지 않는 존재. 만약 정말로 이 아이가 정말로 침식체일까? 라는 의문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 의문 속에서 걷는 사이로 하노마크의 안내를 따라갔던 아리사의 발걸음 점점 느려졌다.  갑작스럽게 느려지는 발걸음 사이로 무의식적으로 아리사를 바라보았을 때, 시현은 하노마크 드론의 안내를 따라 올라가고 있었고, 그녀는 한참을 뚫여져라 자신을 처다보고 있었다.

“대장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서미라. 침식체의 기본 행동 대응알고 있어?”

“위협이 되는 즉시 제거하고, 추후의 상황이 악화되는 걸 방지한다. 라고요.”

“그런데, 지금 네가 그걸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는 그렇게 물으며, 자신의 뒤에서 끔찍한 침식의 흐름이 느껴지는 소녀에게 시선을 주고 있었다.



“물론 저게 위협이 되지 않을수도 있어. 혹은 그 이면세계에서 변이가 되지 않은 진짜 생존자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이면세계에 발을 들이댄 이상 저건 언젠가 '침식체' 가 되어서 우릴 죽이려고 할거야. 넌 그걸 무시하고 있고.”

“대장님이 저희 소대의 위험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아이는.....”

 


'침식체야.'

 


아리사는 미라의 의견을 바로 토막내듯 대답했다. 

“아직 네가 현장에서의 경험이 부족하다는 건 알겠지만, 이번 건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모한 판단이었어. 수십년동안 각종 태스크 포스를 경험해왔지만 너 같이 멍청한 선택을 하는 건 드물었다고.”

“대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대장님이 아카데미에 계시는 동안 저와 시현이는 제독님과 함께 집적전장을 오고 갔으니까요.”

“그래서 제독님의 그 무모한 태도를 배웠다고 스스로 자백하는 거야? 그 결과물이 어떻게 되었는지 네 두 눈으로 지켜보았을 텐데도?”

그녀의 말대로 그 결과가 어떤 최악의 결과물이 불러일으키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그 최악의 결과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습게도 그 선택으로 인해 죽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숨이 붙어있더라고요. 모두를 구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대장님께서는 죄송스럽지만, 전 저 아이를 '그것' 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너 지금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말했듯 제독님께서는 추후의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다면 최후의 수단을 쓰라고 허가하셨습니다. 저 아이가 변이되지 않는 이상, 저 뿐만 아니라 시현이도 무기를 쓰지 않을 겁니다. 이건 제독님이 저희에게 주신 권한입니다. 대장님께서도 알고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너 진짜....!?”

아리사가 화가난 시선으로 미라의 멱살을 붙잡았지만 미라는 어떤 동요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총을 그녀의 목에 총을 겨누던 사이로 하노마크의 드론이 천천히 다가왔고, 아리사는 미라를 밀어버린 채 앞장서 나갔다.


 

[꽤나 짜증스러운 일이 생긴 것 같아보이는데 괜찮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좀 있으면 세이프 하우스 지점이야.]


 

하노마크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모른 척을 했지만 다른 드론의 카메라 화면에서부터, 이미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다른 드론에서 보여준 아리사의 모습에 하노마크는 침묵 속에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세이프 하우스라고 불렀지만, 건물은 군데군데 파손된 유리창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그나마 온전하게 남아있는 창문들은 철제 바리게이트로 설치했던 흔적들이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이게 세이프 하우스라고?”

 


[다른 구역들을 찾아봤지만 대부분은 폐허였어. 그리고 침식파가 드론 감지기능을 마비시킬정도로 감지되고 있고. 그 지옥들 중에서 제일 나은 집이니까요. 가격은 적절하게 쳐드릴게요~]


 

“일단 앉아서 쉴 공간만 있으면 좋겠어요.”

 


[잠깐 내부 좀 확인해볼게. 놈들이 있으면 골치 아파지니까.]


 

하노마크의 드론이 감지기능을 활성화하며, 내부로 진입하는 동안 미라는 바닥에 떨어진 팻말을 줍고 먼지를 털어내며, 살펴보았을때, 팻말에서는 '서재경' 이라고 쓰여있었고, 테두리에서는 용을 형상화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서재경.....?”

그 물음 속에서, 소녀는 반응한 것처럼 미라의 손에 쥐고 있는 팻말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시현이 그런 소녀의 검붉은 눈동자가 신기한 듯 손바닥을 피며 상하로 움직였다. 



“그 쓰레기 같은 거 쥐고 있지 말고 주변 경계나 잘하고 있어. 놈들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미라가 팻말을 내려놓는 사이로, 하노마크의 드론이 소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고, 셋은 안전을 확인한 세이프 하우스 내부로 들어왔다. 건물 내부는 누군가가 살았던 것 같은 흔적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왔다. 


 

[침식파가 좀 검출되긴 하는데, 대부분은 이터니움 광물에서 나오는 레벨들이니까. 걱정 마 내부의 적은 없으니까. 당분간은 세이프. 들어오세요 아가씨들~]


 

하노마크 보고를 듣자마자 아리사는 하노마크의 드론을 지나치며, 낡고 허름한 소파의 먼지를 턴 채 자리에 앉았다. 미라는 시현과 소녀가 넘어지지 않게 문을 대신 잡아주었고 둘이 앉을 만한 소파를 발견하고, 주변에 있던 먼지가 쌓인 이불보를 손으로 털어낸 후,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셋이 자리에 앉자마자 미라는 안심이 된 듯 바로 시현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소녀는 시현이 어울려준 덕분인지 많이 밝아진 모습이었다. 시현의 손짓에 반응했고 역으로 소녀가 시현에게 손을 뻗으며 자신의 손을 잡아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소녀가 어떤 행동을 보여도 시현은 응해주듯 대답해주었고, 소녀는 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있는 것 같았다.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며 자신에게 손을 뻗었고, 미라는 그런 손짓에 화답하듯 손을 잡아주었다.

“몸은 어때? 괜찮아?”

미라의 물음에 소녀는 긴장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너무 무리였나? 싶었지만 시현은 그런 소녀를 대신해서 괜찮다고 대답해주었다. 

 



“아프지 않데.”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고 있는 거야?”

“응. 알 수 있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시현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소녀를 바라보았고 소녀는 조심스럽게 시현을 바라보며, 뭔가를 이야기하듯 손짓을 펼쳐보았다. 시현은 음..... 소리를 내다가 아. 소리를 냈고, 알았어. 라고 대답한 후 미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맙데. 자신을 살려줘서. 그리고...... 이곳에 데려다줘서.”

이곳에 데려다줘서? 잠깐 멈칫했던 사이로, 미라는 그때 바닥에 떨어졌던 팻말이 기억이 났다. 

“혹시 서재경이라고..... 알고 있니?”

그 물음에 소녀는 통증을 느낀 듯 머리를 감쌌다. 소녀가 힘들어하는 신음 속에서 자신의 무기는 쥐어져있었다. 통증이 오래지속되는 듯 했지만, 잠시후 진정이 된 듯 소녀는 다시 눈을 떴고, 둘은 무기를 쥐려고 했던 손을 천천히 벗어났다. 

“많이 지친 것 같아.”

“식사를 제대로 안했으니까. 그렇다고 우리 전투식량이 얘한테 맞을지는 모르겠고.”

 


[잠깐만요. 아가씨들 애한테 뭐 먹이기 전에 확인해볼테니까. 가만히 계시겠어요?]


 

하노마크의 드론이 서서히 접근했을 때,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며, 멍하니 드론을 바라보았다. 적외선 센서가 소녀의 머리를 시작으로 천천히 내려가며 스캔이 되었고 그 스캔된 정보가 함교에 전송되었고, 체내 상태를 확인했다. 

“어떤가요? 상태가 많이 안 좋나요?”

 



[트라우마가 느껴져서 긴장한 것 같아. 몸이 변이가 되거나 하는 심각한 상황은 아니야. 알겠죠? 대장님?]

 



하노마크의 대답에 아리사는 권총을 내려놓은 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트라우마면....... 이 아이.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건 확실하지 않아. 네 말대로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기억나서 그런 걸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원인일수도 있겠지. 일단 영양실조 증상도 좀 있으니까. 여유가 있으면, 먹을 거라도 줘.]


 

“응.”

하노마크의 요청이 나오자마자 시현은 품 속에서, 에너지바 하나를 꺼낸 후 자신의 나이프로 부드럽게 조각 낸 후 소녀에게 내밀었다. 시현이 조각낸 에너지바를 받은 소녀는 한입베어 먹었고, 시현은 그 모습이 신기한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미라는 입가에 부스러기가 묻은 걸 보고, 잘 먹어야 돼. 라고 말하며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둘이 소녀에게 신경쓰는 사이로, 하노마크는 드론을 통해 스캔한 소녀의 체내 상태를 확인했다. 와이어로만 확인했을 뿐인데도 주시하는 그녀의 눈에서는 심각한 시선이었다. 로알은 수신화면에서 팔짱을 낀 채 자신의 개인실에서 자리에 앉은 채 소대가 발견한 '생존자' 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 아이. 볼때마다 지금 소대를 공격하지 않는 게 기적이라고 해야할 정도로요.”


[......아리사가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알겠군.]


“카운터 입장에서 침식체의 침식파는 정말 모기만큼이나 귀찮을 테니까요.”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로 저 아이는 그저 단순한 '침식체' 라고 보나?]


로알의 질문에 하노마크는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외형상으로도 시현과 미라 심지어는 드론 상에 보이는 섬뜩한 외형에서는 침식체라고 봐도 무방했지만, 공격의 의지는 없어보였다.



“저도 모르겠어요. 인간은 아니고 그렇다고 침식체라고 하기에는 공격하거나 감염시키는 않고.  알고 싶긴해요. 이 '생존자' 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말이죠.”


[모른다. 천하의 하노마크가 그 말을 꺼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로알이 의외라는 듯 하노마크에게 묻자 그녀는 전 신이 아니랍니다~ 라는 표정으로 두 팔을 벌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제가 전함내 시스템이랑 메카닉을 이것저것 다룬다고 해도 생물학은 전문가를 따로 모셔야 합니다. 제가 분석한 건 어디까지나 저 아이의 체내에 존재하는 침식파 비율이죠. 확인하려면 최고의 전문가를 통해 확인해야죠. 든든한 외주업체를 통해서 말이죠.”


[그래서 장례기간 때 어디로 갔나 싶었더니만, 외주업체에게 일을 맡기려고 했다는 건가? 나에게 얘기를 하지 않고?]


아이고 들켜버렸나? 하노마크는 자신도 모르게 꺼내버린 대답에 입을 가렸지만 로알은 자기 눈을 보고 똑바로 대답을 하라는 주시했다. 



“더글라스에게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원래라면, 더글라스 쪽에서도 가만두지 않네만........]


로알의 하는 수 없다는 듯 허락하자 하노마크는 자리에 일어나 그에게 숙녀의 예의를 표하듯 인사를 건넸다. 로알은 팔짱을 낀 채 우스꽝스럽게 인사하는 그녀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드론으로 계속 상황을 주시할게요. 세이프 하우스긴 하지만, 만약에 상황도 대비를 해야 하니까요.”


[상황이 상황인만큼 놈들의 공세가 꺾일 때까지는 조용히 있어야 하네. 우리가 c구역을 장악할 때까지 말일세.]


“그 전에 문제가 터지지 않길 바라자고요.”

 


/

 


도시를 가득히 메우는 끔찍한 포성과 총성이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되는 사이로, 미라는 불침을 선 채 주변을 확인하고 있었고, 시현은 눈을 감은 채, 소녀와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시가전인 한참인 그 사이로 아리사는 폐허가 된 빌딩에서 발견한 약간의 군수품에서 발견한 탄약을 옆에 놓고 시가전의 참혹한 포성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무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확인 할게 있다니!”

“데이터를 조사하다가 이상한게 있어서 말이야. 회사에서 확실한 걸 원하잖아? 어중간한 건 보여줘봤자 욕먹는 건 우리라고. 말했듯 우리가 그 녀석들에게 '선물' 보낸 게 전부다 허사가 되어버릴 거고.”

“얼토당토없는 개소리나 하지 말고 넘기라고! 켈빈. 지금 회사에게 얼마나 압력이 들어오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만약 네가 누락한 내용을 더글라스 사장이나 부사장이 알게 되면......”

“잠깐만 시간을 줘. '그걸' 확보하는데로 너에게 바로 전송을 해줄테니까.”

하지만 켈빈은 그 기록을 자신에게 넘기지 않았고,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곳으로 돌아왔을 때, 그 안은 처참한 지옥으로 변해버린 뒤였다. 자신의 빈 탄창에 하나하나 총기 손질도구로, 정비를 한 후 다시 대구경 권총탄을 넣는 동안 그녀의 귓가에서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는 권총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녀의 눈 앞에서는 이제는 뒤틀련 형체의 켈빈의 모습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남은 한발을 장전했을 때, 아리사의 눈 앞으로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현의 다정함과 친절함에 감사하는 미소가 아닌 자신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지 알고 싶다는 듯한 '의문' 으로 가득찬 시선이었다.



 

'넌 알고 있지?'

 



내가 뭘 했는지...... 그 물음에 소녀는 그녀의 추악함을 느끼듯 왼쪽의 침식으로 뒤덮은 붉은 눈동자를 부라리듯 주시했고 아리사는 호흡이 점점 거칠어짐을 느꼈다. 소녀가 잠든 방 안에서는 미라도 지친듯 잠을 자고 있었고, 하노마크의 드론은 잠시 휴면 상태였다. 아리사가 떨리는 심호흡 속에서, 자신의 권총을 쥐었을 때 방 안에 있었던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야?”

아리사는 이가 드럴날 정도로 미소를 지으며, 발소리를 죽인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왔을 때 소녀는 새까만 밤을 잡아먹는 선홍의 하늘아래에서 아리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총구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심장을 향해 조준했다.

“설마...... 죽어서 바닥에 처박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어코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줄 몰랐어. 사실..... 켈빈이 널 우습게보다가 그렇게 죽어버렸으니까.”

아리사의 대답에 소녀는 그녀로부터 느껴지는 살기에 반응하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 느낌. 켈빈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며, 공격했을 때와 같은 살기였다. 



“이젠 지긋지긋해. 회사랑 이 빌어먹을 함대랑 소대로부터, 가면을 쓰는 것도...... 이제 그만 끝내자. 아주 편하게 어때? 이 권총으로 네년의 심장에 한발만 박으면 되거든? 힘 빼도 돼. 내가..... 이 언니가 아주 간단하게 처리해 줄테니까.”

아리사는 경련 속에서 손을 뻗으며, 얼른 오라는 듯 흔들었지만 소녀는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녀는 천천히 권총을 든 채 다가오며 안전장치를 푼 채 그녀의 심장을 겨누려고 했을 때, 아리사는 그 뒤로 섬뜩한 살기를 느낀 듯 뒤로 돌며, 권총을 사격했다. 그 뒤로 각시탈을 쓴 선홍빛의 검사가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잠시후 그녀의 주변으로 엄청난 수의 침식체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드론이 다수의 침식체들을 감지하자 경보가 울려퍼졌고, 잠이 들었던 둘은 곧바로 일어났다. 밖에서는 총성이 울려퍼지고 있었고, 집 안으로 침식체들이 내부로 들어오고 있었다.

“시현아! 정면!”

미라의 외침과 함께 시현은 곧바로 방밖으로 나가며, 내부로 들어온 침식체들을 향해 나이프를 투척해 제압했다. 둘이 밖으로 나왔을 때, 각시탈의 가면을 쓴 선홍빛의 침식체는 아리사를 몰아넣고 있었고, 소녀는 침식체들에 둘러 쌓여 있었다.



“시현아! 소녀를 구해!”

그 대답과 함께, 시현은 워치의 힘을 발동 하며 다수의 투척 단검들을 활성화하며, 소녀를 에워싼 다수의 침식체들을 향해 손을 뻗었고, 은빛으로 이루어진 수십여자루의 단검들이 일제히 날아가며 침식체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렸다. 선홍빛의 검을 쥔 가면의 침식체가 아리사를 밀어붙이며, 그녀를 향해 일격을 휘두르는 순간, 미라는 워치를 발동하며 그녀의 일격에 맞섰다.


 

“대장님! 괜찮으세요?”

“미라......”

“여긴 제가 막을 게요! 얼른 시현이랑 소녀를 데리고 도망치세요!”

아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시현과 소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동안 선홍빛의 각시탈을 쓴 침식체는 검을 뒤로한 채 자세를 잡았다. 미라는 가면속에 감추어진 그 자세에서부터, 낯선 익숙함이 퍼져왔다.



“이 자세.......”

그 낯선 감각도 잠시 침식체는 곧바로 돌진하며 검을 휘둘렀고, 미라는 단번에 거리를 좁히며 휘두른 그 검을 가까스로 튕겨내며 맞섰다. 선홍과 백색빛의 칼날이 부딪히며, 세이프 하우스에 가득히 울려퍼졌을 때 세이프 하우스를 중심으로 다수의 침식체들이 하노마크의 드론에 감지되고 있었다.

 


[미라! 지금 놈들이 오고 있어! 이대로 그 녀석과 싸우면 놈들에게 포위 된다고!]


 

“하지만...!? 지금 제가 물러나게 된다면, 셋이 위험해져요! 일단 도망칠 수 있을때까지는!?”

그 대답 속에서, 셋은 세이프 하우스에서 벗어나 지하 차도로 들어갔고, 시현은 둘을 먼저 보낸 후 곧바로 달려오며, 선홍빛으로 두른 침식체를 향해 단검을 투척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침식체가 물러나며, 막는 사이로 미라는 시현과 함께 달아나기 시작했다. 침식체가 자리를 잡으며, 거리를 좁히려는 순간, 지하차도 위에 건물이 폭발을 일으켰고 건물은 폭발의 충격에 중심을 잃으며, 지하차도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아버렸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콜록거리는 사이로 하노마크의 드론이 내려오며, 소대의 상황을 확인했다. 

 


[다들 괜찮아?]

 


“네..... 근데 저희는 이제 밖으로 못 나가게 되었어요.”

미라는 그 대답 속에서, 입구를 가득히 메워버린 채 자욱한 연기를 내뿜고 있는 수많은 콘크리트와 철근 더미를 바라보았다. 

 


[방법이 없었어. 지금 내 드론 하나를 자폭시켜서 무너뜨린 거니까. 놈들이 추적하기 전에 서둘러. 다행히 여기 지하로가 지하철 선로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니까. 드론으로 안내할테니까. 추적당하기 전에 서두르자고.]


 

하노마크의 드론이 라이트를 키며 이동하는 동안 미라는 그때 침식체가 자신을 향해 자리를 잡았던 그 자세를 잊을 수 없었다.

“미라. 괜찮아? 안색이 안좋아보여.”

시현의 물음에 미라는 응. 아니야. 라고 말하며, 하노마크가 말한 지하수로를 통해 목표물을 데리고 이동하는 사이로, 시현은 아리사와 소녀가 전과는 다르게 더 얼어붙을 정도의 차가운 전운의 기운을 느꼈다. 자신이 데리고 왔을 때부터, 아리사는 더더욱 소녀를 적대시하고 있었고, 소녀는 그런 그녀를 피하듯 더욱 더 자신의 곁에 있는 채로, 아리사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했다. 두려움과 경멸의 시선으로 아리사를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에, 시현은 그런 소녀의 손을 꼭 쥔 채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시현은 그렇게 부드럽고 침착한 목소리로 소녀를 진정시켰다. 하노마크의 드론을 통해 따라가던 일행의 앞으로 낡고 오래된 지하철 선로가 모습을 드러냈고, 내부는 처참하게 일그러진 역과 함께 반대편에서는 처참한 몰골로 파괴된 지하철의 잔해가 길게 늘어져있었다.

“하노마크. 지금 우리 위치는 어디지?”

 


[지하선로인 것 같긴한데, 위치가 확실하지 않아. 혹시 주변에 눈에 띄는 게 보여?]

 


그녀의 물음에, 시현은 하노마크의 드론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드론은 낡고 오래된 팻말에서 '용문이라고 쓰여져있는 역 안내판을 확인했다.

“용문역.... 이라고 쓰여있어요.”

 


[역시나....... 예상대로였네.]

 


“네. 사실 저희가 왔을 때부터, 설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이면세계가 어딘지 알 것 같아요."

 


'ADC-G1. 제주 자치구역.'


 

하노마크의 대답에 프람 소대 소대는 침묵을 지켰다. 익숙한 도심지와 100층이 넘는 빌딩 그리고 재경그룹과 장용영의 흔적들. 이 모든 흔적들의 정답은 이미 관리실패로 인해 소멸되었던 그 도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면은 우리의 죄악을 이끌어낸다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직접 행차하실 줄이야.”

 


[하노마크. 여기가 정말로 ADC-G1 이라면, 도시 내의 지하철의 시스템을 확인해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 거 아니야?]

 


“찾을 수 있긴하지만 문제는 당시 완공된 구역이 지금도 멀쩡하리란 보장이 없어. 내 플랜은 어디까지나 놈들의 진입로를 일시적으로 막은 거지, 놈들이 우리를 발견한 이상 어떤 플랜을 짜놓은다고 해도 위험에 노출 된다고.”


 

[하지만 여기에 있는다고 해서 안전하지 않아요. 서둘러야 돼요.]

 


미라의 대답에, 하노마크는 어쩔 수 없나. 대답 속에서, 검색 시스템을 활성화했다.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지금 너희들은 용문과 서문 사이에 있을 거야. 놈들이 모이기 전에 그 구역에서 당장 벗어나서 너희들이 지나갔던 대교를 거쳐서 내가 대기하고 있는 포인트로 돌아와야 해. 놈들에게 들키지 않았을 때는 문제 없겠지만 놈들이 눈치챈 이상, 최악의 경우에는 전투를 벌이게 될거야.]


 

“하노마크 씨. 저희가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대교까지 이동하는데 20분넘게 걸렸어요. 게다가 호위해야할 대상이 있는 이상 더더욱 갈 수가 없을 거구요.” 

“아니면 저건 어때?”

시현은 하노마크의 드론에게 손가락을 가리켰다. 셋이 시현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을 때, 군데군데 녹이 슨 4줄 지하철이 눈에 들어왔다. 드론이 빠르게 이동하며, 지하철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은 멀쩡하긴 하지만 구형이라 제대로 동작이 될지 모르겠는데?]

 


“이게 있다고 해도 전력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움직이겠다는 거지?”

아리사의 질문도 잠시 시현과 미라에 있던 소녀는 조심스럽게 자리에 일어났다. 아리사가 권총을 쥔 채 소녀를 조준했지만, 소녀는 그런 그녀의 경계를 뒤로 한 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전동차 운전석에 다다랐을 때, 소녀는 손을 뻗었고 그 손밖으로 검붉은 액체들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몇 방울이 스며 들었을 때 전동차 내부가 꿈틀거렸고 전동차 외부에서는 군데군데 날카로운 검붉은 가시가 생기기 시작했다. 소녀가 밖으로 나오려고 했을 때, 아리사는 그녀를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아리사 대장님. 그만하세요. 제독님께서 생포하시라고....”

“닥쳐!”

아리사는 미라를 밀쳐내며 소녀를 벽에 밀어냈다. 그녀에게 권총을 조준하려고 했을 때, 시현은 그런 소녀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 이 침식체로부터 당장 나와. 너도 감염되기 싫으면.”

그녀의 명령에도 시현은 두 주먹을 움켜쥔 채 아리사를 뚫어져라 처다보았다. 

“제독님이. 생포하라고 했어. 방법이 없어. 저걸 타지 않으면, 우린 죽어.”

“다른 건 몰라도 저 침식체가 만들어낸 괴물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당장 죽여야 해. 안그럼 우리 모두를 괴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거부하기에는 놈들이 곧 몰려오기 직전인데, 이렇게 싸울 시간이 있는 거야? 아리사?]


 

하노마크의 드론 또한 시현과 함께 서있었고, 미라 또한 몇 번이고 고개를 저으며, 간곡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침식으로 뒤덮은 전동차의 뒤로 희미하게 들려왔던 침식체들의 울부짖음이 점점 소름끼칠 정도로 가까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리사는 젠장. 소리를 내며, 권총을 집어 넣었고, 둘은 안도 속에서 소녀와 함께 전동차에 탑승했다. 아리사가 두 주먹을 쥔 채 역겹기 짝이 없는 형체로 변형된 전동차에 몸을 맡겼을 때, 전동차는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덜컹덜컹 소리와 함께 서서히 가동하는 지하철 내부에서 소대는 군데군데 제주자치지구였다는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돌하르방에서부터, 군데군데 녹이슨채 널부러진 재경그룹에 대한 관련된 포스터들까지. 관리실패로 인해 완전히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건물과 도시의 흔적들은 이 이면세계에서 그대로 유적처럼 남아있었다.

 


[우리가 현재 용문에서 서문 사이라면, 침식체는 지금 구 빌딩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을 거야. 놈들이 우릴 찾기 전에 서둘러야 돼.]

 


“어떻게 사라진 거야? 이해할 수 없어.”

시현의 물음에, 하노마크는 옆에 놓인 수많은 기록과 자료 속에서 고개를 저으며, 시현의 물음에 답했다.

 


[원인은 관리 사태 실패. 발생 당시 대규모 침식체 발생 당시에 재경그룹 내에서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의 침식체들이 이동되었고, 이 과정에서 그룹내이 병력 90% 이상이 손실되고 그룹 자체가 해체될 정도의 수많은 사람들과 건물이 사라졌지.]

 

“그럼 그때 사라졌던 그곳이 지금 이면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건가요?”

 

[쉽게 말해 그렇지. 운명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지,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구역은 놈들이 어떻게 이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표본' 이라고 봐야겠지.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우릴 환영해줄리는 없을 테니까.]


 

하노마크의 이야기 속에서, 아리사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킨 채, 빠르게 움직이는 지하철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면세계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경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미지의 세계라고 일컫기도 하지. 그 사이에서 오랫동안 생존해있던 '생존자' 만으로도 참 기적이라고 봐야겠지.]

 


하노마크는 그 대답에 아리사는 냉혹한 시선으로 드론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건가? 순순히 받아드리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리사는 조금이라도 '생존자' 가 손끝이라도 자신의 피부에 닿을 것 같으면 허리춤에 찬 권총에서 화염을 터뜨릴려고 할 기세였다. 소녀는 상처 속에서 드러난 검붉은 침식의 상처를 어루만진 채 아리사의 시선을 회피했다. 아리사는 불쾌한 시선 속에서, 소녀로부터 벗어나 다음 칸으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아이는 침식체는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침식의 흔적이 있긴하지만 그렇다기에는.......”

“특이해.”

시현은 소녀의 손과 팔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소녀는 호기심으로 가득찬 시현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가짜인가 싶어서 머리를 만지자 소녀는 거북한 시선으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진짜 같아.”

 


[그러고보니,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지 않은지 꽤 된 것 같은데, 이름이라도 있어?]


 

하노마크의 물음에 소녀는 붉은 눈동자 속에서 천천히 드론을 바라보았다. 시현은 그런 소녀에게 자신의 카운터 명함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후 바로 자신을 가리켰다.

“이게. 나. 김시현.”

“시.....현.”

“말할 수 있는 거야?”

미라의 대답에 소녀는 입을 다 물었다. 미라는 너무 신났나 싶은 생각 속에서, 미안해. 라고 사과했다. 소녀는 그 사이로 미라의 명찰에 붙어있는 사진을 바라보자 뭔가를 인식한 듯 작게 입을 벌렸다.



“서미라......미라.....”

“맞아.”

“....들은 적 있어.”

“시현이에게 많이 듣긴 했을 거야. 그래도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다행.....”

 


'승지 언니에게.'

 


그 대답에 시현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소녀를 바라보는 사이로 미라는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소녀를 바라보며 두 어깨를 잡은 채 물었다.

“그 이름을 어떻게......알고 있어?”

미라의 물음도 잠시 소녀는 뭔가를 느낀 듯 고개를 들어올렸다. 미라가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 이동하는 열차 사이로 다수의 침식체들이 군데군데 뚫려진 통로에서 뛰쳐나오고 있었다.

“김시현 서미라 당장 무기 들어! 놈들이 안에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

아리사의 외침에 둘은 곧바로 무기를 들고 열차의 다음칸으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둘이 달려나갈 때까지 소녀의 눈동자에서는 미라의 모습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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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터 C 상공

벨치카 함

 


“침식체들이 철수를 하고 있다고?”

“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현재 교전을 벌이던 침식체들의 공세가 약화되고 있습니다.”

엘리샤에 보고에 로알은 고개를 갸웃했다. 철수를 한다. 지금의 전세에서는 다행일지도 몰랐지만, 믿을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기록에서는 침식체는 이성이 없으며, 그저 적을 보면, 본능적으로 죽이며, 침식의 규모를 퍼뜨린다는 보고서밖에 없었으니까. 

“만약 놈들이 움직인다면,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거지?”

“현재 폐허가 된 빌딩으로 이동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빌딩 근처에 5등급 이상의 침식파가 감지되었고, 지금 무리를 이끌며, 시내로 진입 하고 있습니다.”

엘리샤의 대답에 로알은 자신의 시계를 만지작 거렸다. 소대가 무엇을 쥐고 있기에 그 많은 병력을 이동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도 전선을 물리면서까지? 5등급 침식체가 이끄는 무리가 소대의 위치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로알은 사태가 심각함을 느꼈다.



“엘리샤. 추후 병력 편성을 통해 소대 지원이 가능한가?”

“힘들 것 같습니다. 더글라스 사에서 파견된 지원병력이 도착할 때까지는 저희 또한 보급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현재 병력은 구역 장악 이후로는 차출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노빌레 부제독님께서 보급을 받는대로, 추후 부대와 함께 현 지점으로 도착하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소대는 더 위험해질 걸세. 우리가 재정비를 한다고 해도 소대가 침식체들과의 교전에서 도망칠 수 없을 거고.”

로알의 이야기에 엘리샤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느낀 듯 그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자리에 일어났고 자신의 품속에 꺼낸 워치를 손목에 차려고 했다.


 

“제독님. 설마 집적 가시려는 겁니까?”

엘리샤의 물음에도 로알은 자신의 워치와 함께, 팔을 뻗자, 3자루의 백색으로 빛나는 두 자루의 도끼와 3자루의 투명한 형체의 검이 형상화 되었다. 엘리샤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팔을 잡았다.



“제독님.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지금 상태로는 소대를 구할 수 없네. 집결해서 보냈다고 해도 지금 세명의 카운터로는 고등급 침식체와의 전투에서 승산이 없고. 이건 지휘를 할 수 있는 선이 아닐세.”

“제독님 하지만.......”

로알은 그런 엘리샤의 손을 벗어나며, 발걸음을 옮겼고 엘리샤는 곧바로 다급하게 뛰어가며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샤!”

노엘이 뒤늦게 일어나며 엘리샤를 말리려고 했을 때, 그녀는 이미 로알과 함께 엘리베이터 내부로 들어간 뒤였다.


 

함교 밖으로 나온 후 로알은 자신의 손목에 차있는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을 느꼈다. 하노마크의 2기의 레기온의 호위 아래에서 엘리샤는 간절한 시선으로 자신의 무기들을 확인하는 로알의 모습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제독님 다시 한번만 생각해주세요. 그곳은 제독님 혼자서 움직이시기에는 위험한 곳입니다.”

“이대로라면 소대는 놈들에게 찢겨나갈걸세.”

 


로알은 그 대답 속에서, 자신의 워치를 찼을 때, 엘리샤는 그의 워치에서 드러난 시계의 분침과 시침에 놀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로알은 뒤늦게 자신의 워치에 표시된 시간을 보았다는 걸 안 듯 자신의 소매로 워치를 숨겼다. 승강기 문이 열리고 로알이 밖으로 나가려고 했을 때, 엘리샤는 심호흡 속에서, 권총을 꺼내 그의 앞에 겨누었고 레기온들은 엘리샤의 움직임에 따라 일제히 그의 앞에 총을 겨누었다.



“뭐하는 건가?”

“제독님은 이곳에 계셔야 합니다. 절대로 전장에 계시면 안 됩니다.”

“엘리샤. 길을 비키게.”

“절대 안됩니다. 아니 안돼. 안 된다고요! 지금 제독님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나 있는 거에요? 캐서린씨에게..... 차마 이야기할 수 없어요.”

 



'제독님이 '경과' 가 되었다는 걸.'

 



그녀의 필사적인 만류에도 로알은 차가운 눈동자로 엘리샤를 바라보았다. 이미 그의 손에서는 섬뜩한 한기가 퍼져오는 도끼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엘리샤. 자네가 내 길을 막는다면, 

 


'나 또한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네.'


 

그 대답과 함께, 로알은 자신의 코트에서 차가운 한기로 뒤덮은 도끼가 빠르고 회전하며, 자신을 붙잡으려고 했던 레기온들의 팔을 토막내기 시작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자신의 무기와 하노마크의 레기온들은 일제히 전투불능 상태가 되어버린뒤였다. 그는 자신이 알고 있던 로알이 아니었다. 서리의 도끼와 섬광의 검을 지닌 


 

'카운터 로알 벨치카였다.'


 

엘리샤는 차가운 한기의 눈동자로 가득찬 그의 모습을 보고, 하아 소리를 내며,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역시...... 로알 제독님....이시군요.... 스타방에르의 구원자라고...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엘리샤. 부탁이네. 난 소대를 구해야 하네. 가능하면 자네에게는 이 무기들을 사용하고 싶지 않으니, 비켜주게. 이건 명령이 아닌.....

 


'위험에 처한 동료들을 위해 해야할 일이니까.'


 

그의 간절함이 담겨진 목소리에서야, 엘리샤는 눈을 감은 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움직이자 레기온들은 일제히 로알 제독을 따라 추가 무기로 무장한 채  고속정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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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이동하는 전동차 속에서, 적을 감지한 수백마리의 침식체들이 추격하고 있었고, 소대는 침식체들이 전동차 내부로 진입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었다.

“놈들이 안으로 진입못하게 막아!”

아리사의 대답도 잠시 전동차에 천장에 쿵 소리가 들렸고 아리사는 위협을 느끼고 전동차 천장에 권총을 사격했다. 

“제가 처리할게요! 시현아! 대장님과 그 애를 부탁해!”

그 대답과 함께 천장에서 너덜너덜해진 전동차 문으로 들어오려는 침식체를 베어버리고 전동차 천장으로 올라오는 순간 선홍빛의 섬광이 스쳤고 미라는 가까스로 막으며 자세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막자마자 미라는 곧바로 반격했고 각시탈의 검사는 공격을 피하기 무섭게 숨통을 위협하는 일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미라와 침식체가 격돌하는 사이로 침식체들이 일제히 전동차 내부로 침투하며 달려오자 시현은 접근하지 못하게 나이프로 투척했고, 아리사는 한발한발 조준하며, 진입하려는 침식체들을 쓰러 뜨렸다.


 

[좀 만 버텨줘. 너희들이 지나가면, 대교를 폭파시켜서 놈들의 진로를 차단할테니까.]

 


소대원에게 다음 플랜을 보고를 한 후 하노마크는 자신의 남아있는 30여기의 레기온들을 무장을 준비하고, 각 사격 포인트에 자리를 잡은 채 대기했다. 대교 반대편에서는 레기온들이 설치한 폭탄들이 설치되어있었고, 열차가 대교를 건널 때까지, 일제히 위치를 고수한 채 중화기들을 조준하고 있었다.



전동차가 도시와 도시를 잇는 대교로 진입했고 바깥에서 부는 강한 바람 속에서, 미라는 자세를 가다듬는 것조차 힘들었다. 반면에 침식체는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걸어가며 검을 든 채 접근하고 있었다. 이대로 자신이 떨어지거나 쓰러진다면, 소대는 위험해질 것이다. 

“물러나지 않겠어.... 절대로.”



그 목소리를 들은 듯 각시탈의 침식체는 자세를 잡으며 공격을 준비했다. 대교 바깥에서부는 바람에 미라가 잠깐 눈을 감고 뜬 순간 침식체가 쥔 검은 다시 선홍의 빛을 발휘하며 움직였고, 미라는 움직임을 읽은 듯 바로 회피하며,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베어버렸다. 검붉은 피와 함께 침식체가 고통을 느끼듯 주춤거리며 자신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쌌을 때, 침식체들은 주인의 위협을 감지한 듯 추격을 멈추었다. 시현은 그 틈을 타 자신의 나이프들을 운전칸과 2번째 칸에 박은 후 보호막을 활성화시켰다.

 


시현이 미라를 데려오기 위해 전동차 위로 올라갔을 때, 미라는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반으로 갈라진 가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미라! 하노마크가 대교를 폭파시킬 거야!”

시현의 외침에도, 미라는 어떤 미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보여지는 것은 새까맣게 뒤덮은 침식 속에서, 드러난 적안과 선홍빛의 머리칼을 지닌 검사였다.

 


“정소희...... 선배?”

그 물음도 잠시 자신의 눈 앞으로 새빨간 피가 흩뿌려졌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끔찍한 통각을 자극했다. 그 피는 미라에게 손을 뻗으려고 했던 시현의 얼굴이 묻었을 때, 미라는 구멍이 뚫린 전동차 내부로 떨어졌다.

“미라....!?”

시현이 위협을 감지하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 미라를 도우려고 했지만, 이미 내부로 진입한 침식체들에게 가로 막혔다. 시현은 이를 악물며, 자신을 방해하는 침식체들을 제압하며, 전동차 안으로 떨어진 미라에게 달려가려고 하자 아리사는 그런 시현을 붙잡았다.



 

“비켜. 당장.”

“김시현! 미쳤어? 지금 이대로 가면 너도 폭발에 휘말린다고!”

“미라가 위험해. 당장 구해야 돼....... 당장 구해야 한다고!”

그 외침 속에서, 아리사의 손을 뿌리치고 전동차 내부로 들어온 침식체들을 단검으로 베어버렸다. 정소희가 떨어진 미라의 흔적을 따라서 전동차의 네번째 칸 내부로 들어왔을 때, 미라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전동차 연결기가 있는 문 앞에서 바닥에 흥건히 피를 흩뿌리며, 채 힘겹게 서있었다. 


 

정소희가 검을 치켜세우며, 자세를 잡는 순간 미라는 천천히 고개를 돌어올리며, 아리사의 만류의 손길을 뿌리치며, 자신에게 달려오는 시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시현이가 미라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을 때, 미라는 입가에 피를 머금은 채 천천히 입을 열며 말했다.


 

'시현아. 대장과 그 아이를 부탁해.'


 

시현이 뒤늦게 눈치 챘을 때, 미라는 열차 연결기를 끊어버렸다. 연결기가 끊어진 그 순간 시현의 눈동자 속에서는 그녀를 지탱하고 있던 정신과 육체가 붕괴되어버리듯 무릎을 꿇는 것을 모습을 마지막으로 빠른 속도로 멀어져갔다. 


 

“추적해.”

연결기가 끊기고 전동차의 속도가 느려지자 소희는 자신의 침식체들에게 일제히 추격명령을 내렸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침식체들의 파도 속에서 그녀는 피의 흔적을 따라 천천히 걸어간다. 그 흔적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미라 벽에 기댄채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검을 꼭 쥔 채 바닥에 기대어 있었다

 


“선배....... 정말..... 선배 맞나요?”

그 물음에 소희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잘못 본 걸까 몇 번이고 깨져버린 가면 속에서, 드러난 그녀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쿨럭거리며, 피를 토해내는 고통 속에서 미라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터져오는 출혈을 막기위해 상처를 지혈하려고 했던 미라의 팔과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있었고, 그녀의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맞군요. 선배.... 정말로 선배....”

그 대답과 함께 뻗었던 손이 축 늘어지려고 했을 때, 소희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으며,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미라의 손목을 잡은 손은 경련이 일고 있었다. 붙잡은 손의 온기가 바람이 불어도 소멸되는 촛불처럼 꺼져가고 있었을 때, 자신의 뒤로 거대한 폭발음이 퍼져왔다. 그 앞으로 도시와 도시를 잇고 있던 대교가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나며, 새까맣게 뒤덮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 폭발의 여파도 잠시 자신의 주변에 감지되었던 수많은 침식체들의 침식파가 일제히 꺼진 듯 느껴지지 않았고, 이 이면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섬뜩한 한기가 퍼져왔다. 그 한기는 찰나의 순간 바로 코 앞까지 다가왔고 소희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검을 들기 무섭게 맹렬한 섬광의 일격에 밀려나며, 넘어질 뻔한 자세를 가까스로 붙잡았다. 그녀의 앞으로 눈부신 섬광의 검을 쥔 중년의 남자가 서있었고, 그는 냉혹한 시선으로 자신을 향해 섬광의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소희는 뒤늦게 공격자세를 취하려는 순간 그의 손에 쥐고 있던 서리도끼가 맹렬하게 회전하며 투척했고, 그 도끼는 스쳤을 뿐인데도 자신의 몸에 드러난 두르고 침식파편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강하다.'

 


그 감각 속에서, 그의 검은 자신의 숨통을 끊기 위해 망설임조차 없을 정도로 냉혹하고 가차없이 휘두르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반격의 틈이 생겼지만 소희는 뒤에 쓰러진 미라를 의식한 듯 방어 자세를 취했고 로알은 곧바로 발로 걷어차며, 그녀를 밀처냈다.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거지?”

그의 물음에도 소희는 대답하지 않은 채 침묵 속에서 그를 주시할 뿐이었다. 로알이 다시 거리를 좁히며 움직이려고 했을 때, 그녀는 손을 뻗었고 그런 그의 주변으로 침식체들과 한 마리의 비스트가 그를 포위하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잔챙이들로 시간 끌 생각인가?”

로알은 전동차 바닥에 박혀있던 서리도끼를 향해 손을 뻗자 도끼는 맹렬하게 회전하며, 자신을 포위했던 수십여마리의 침식체들을 토막내며 그의 손으로 돌아왔고, 자신을 짓밟으려고 했던 비스트를 섬광의 검을 쥔 채 돌진하며, 한번의 일격으로 토막내버렸다. 

 


비스트가 고통의 울부짖음 속에서, 깊은 바다 속으로 잠겼을 때, 로알이 그녀를 추격하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지만 그녀와 미라는 사라진 뒤였다. 적을 놓친 걸 알게 된 로알은 전동차로 돌아와 천천히 둘이 있었던 흔적을 확인했다. 미라가 있었던 자리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은 흔적이 눈에 들어왔고 그 밑으로 그녀가 쓴듯한 토막난 각시탈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제독님. 후퇴해야 합니다. 지금 대규모의 침식체들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하노마크의 보고와 함께, 자신의 눈 앞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침식체들과 비스트들이 폭발이 발생한 지점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로알은 자욱한 연기가 퍼진 자신의 뒤로 하노마크가 탑승한 고속정이 서서히 하강하고 있었다.

“알겠네. 곧 귀환하지.”

그의 대답과 함께 로알은 고속정에 몸을 맡겼고 두 척의 고속정은 침식체와 비스트들의 포화를 피하며 빠른 속도로 작전구역에서 이탈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