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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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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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이 넘기기 전에 해야 할 말이 있어. 그거 너에게는 우스갯소리에 불과해도. 말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으니까."



수많은 도시 내부의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어미새의 품 속에 있는 아기새처럼 끌려 간지 얼마나 되었을까? 눈을 부실 정도로 불쾌한 네온사인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앞으로 그레모리 바라고 쓰여진 주점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이 너덜너덜한 네온사인 광고판에 반짝이다가 꺼지다하며 몇번이고 반복하고 있었다. 


 

2차라고 해서 엄청나게 준비했나 싶었지만, 정소희는 그런 아나스타샤에게 여기가 맞는지 의심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여기가 2차장소라고?”

“어. 우리 컴퍼니의 대표적인 2차 회식의 성지이면서 동시에 그라운드 원을 대표하는 바중에 하나지.”

제대로 분리수거조차 되지 않은 쓰레기들과 가게 홍보라고 하기에는 처참하게 망가진 네온사인에 큰 길에서 서서히 골목으로 들어가야 보일듯 한 이런 곳이? 대표하는 바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한 몰골이었기에 정소희는 더더욱 의심이 싹이 피어났다. 




“정말이야?”

“너무 의심하는 거 아니야? 여기는 내놓으라고 하는 많은 바들 중에서 꽤나 유명한 바야. 우리부터 시작해서 컴퍼니에 있는 모든 사원들은 이곳만큼은 반드시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고.”

“조교야. 이럴 때는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좋아. 소희 씨는 예전부터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 믿는 성격이니까.”

“그 이름을 들어보니까 매번 나의 피와 살을 빨아먹듯이 했던 그때가 새록새록 돋네? 박정자?”

“어머? 좀 실례했니?”

둘은 그렇게 말하며, 사그라졌던 불이 커지려고 하자 이윤정은 소화기를 들어 불을 끄듯 둘을 바르게 바 내부로 밀어넣기 시작했다. 이윤정이 문을 열기 직전 정소희는 그런 이윤정을 대신해서 먼저 앞장서며 굳게 닫혀있던 바의 문을 열었다. 



 

바 내부에서부터, 화려한 손놀림과 동작으로 칵테일을 제조하고 있는 니콜을 중심으로 여러명의 손님들이 곧 나올 그녀의 칵테일을 기다리듯 바라보고 있었다. 자정을 넘은 시간인데도 내부에서는 테이블당 두 명에서 세명의 손님들이 자리를 잡은 채 탁자위에 레인보우 니콜을 한 잔씩 내려놓은 채 웃고 떠들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일단 자리 있는지 봐야겠는데?”

“조교야. 얼른 갔다와야지?”

올리비에의 대답에 이윤정은 네. 라고 말하며, 당장이라도 뻗어버리기 직전의 목소리를 내며, 비틀거리며, 빈 테이블들을 열심히 치우고 있는 모모에게 다가갔다. 금방 끝나나 싶었는데, 모모는 자신의 손에 쥔 뽐뿌미를 쥔 채 두 팔을 크게 흔들며, 이윤정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있었고 이윤정은 히익! 소리를 내며, 어쩔 줄을 몰라하는 눈빛이었다. 




“자리가 없는 거야?”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둘은 뭔가 싶어 궁금해하는 사이로, 정소희는 근처 자리에서 아나스타샤를 앉힌 후 무슨 일인가 싶어 이윤정에게 다가갔다. 모모는 잔뜩 화가 난 듯 흥! 소리를 내고 있었고, 이윤정은 어버버 하며, 어쩔 줄을 몰라하는 눈빛이었다.



“괜찮아?”

“아.......네.... 전 괜찮습니다. 악마님...... 저 아직 지옥에 가기 전에 교수가 되고 싶은데 이대로 가게 된다면.....”

“이윤정!”

정소희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어깨를 붙잡자 이윤정은 허억! 소리를 내며, 유체이탈하기 직전의 자신의 영혼을 붙잡은 듯한 시선으로 정소희를 바라보았다. 모모는 또 방해꾼이가? 싶은 시선으로 정소희를 바라보며, 잔뜩 화가난 시선으로 보며 말했다.



“이 여자. 내 귀여운 뽐뿌미를 밟았어!”

“밟았다고?”

그 대답 속에서, 정소희가 확인했을 때, 뽐뿌미의 얼굴에는 이윤정의 신발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멀쩡했던 뽐뿌미가 발자국의 흔적이 담겨져 있었고, 모모는 훌쩍이면서 동시에 화가 잔뜩 난 시선으로 이윤정을 당장이라도 뚫어버릴 듯 쳐다보았다.



“원래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저도 모르게 그만.....”

“흥! 그런 사과는 나 마왕 모르가나 모드렛에게는 충분하지 않다! 사탕이라면 모를까!”

“에!?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건 미래를 위해 준비한 에너지 드링크랑 박께스 5병밖에 없어요.”

“그래서 내가 널 용서하지 않는거다! 그런 이상한 음료나 마시고 있는 위험한 마녀 같으니!”

마왕에게 마녀취급이라니 카페인에 타락한 마녀 이윤정은 너무하다는 시선으로 억울하다는 듯 모모를 바라보았고 모모는 씩씩 거리며, 진정하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정소희는 품 속에서, 여분의 말키스가 있는 걸 확인하고 모모에게 꺼내주며 말했다.



“이거면 돼?”

“이것이 무엇이냐 하수인?”

“말키스야. 가끔 먹는 건데 달고 맛있어. 한번 먹어볼래?”

단 거? 라는 대답에 모모는 휘둥그레진 듯 자신의 손에 쥔 말키스를 바라보았고, 정소희는 자신의 손에 쥔 말키스를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모모가 뭐에 반했는지 확인했다. 유미나가 했던 것처럼 정소희는 그 전에 자신의 장갑을 벗은 채 말키스 뚜껑을 땄고, 칙 소리와 함께 하얀색 기포와 함께 눈에 보일 정도로 약간의 탄산의 연기가 피어올라왔다. 스트로우를 안에 넣은 후 모모에게 건네주자 모모는 곧바로 두 손으로 받으며, 말키스 한모금을 마셨다.




“이....이건!? 달다! 맛있다! 그리고 시원해! 이게 무엇인가! 하수인!”

“말키스.”

“말키스라고!? 짐은 이런 건 처음 마셔본다. 역시..... 현계는 특이한 것들이 많구나!”

모모는 스트로우로 한모금을 더 마시는 사이로, 정소희는 옆에 놓인 채 이윤정의 발자국이 남겨진 뽐뿌미 인형을 조심스럽게 털어냈다. 심하게 밟히지는 않아서 털어내도 깨끗해지는 수준이었고, 모모가 한모금을 마시며 행복해하는 틈으로 뽐뿌미 인형을 옆에다 놓았다. 잔뜩 화를 냈던 모모는 말키스의 달콤한 맛에 흡족한 시선으로, 정소희를 보며 말했다.




“만족이다! 원래는 저 하수인을 용서치 않을 생각이다만, 나에게 이런 달콤한 것을 공물로 보냈으니 용서하겠다!”

“모모! 몇 번을 얘기해요! 손님이 오시면 친절하게 대하라고 했잖아요!”

그 외침도 잠시 니콜은 팔짱을 낀 채 모모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고, 모모는 힉! 소리를 내며, 니콜을 바라보았다. 



“모모 사고 안 쳤다! 내 뽐뿌미를 무지비하게 밟은 하수인에게 화를 냈을 뿐이다!”

“모모! 손님에게 서빙을 하거나 재료를 옮길 때, 무엇을 주의해야한다고 했죠?”

“뽐뿌미..... 방해 되니까 잠깐만 자리에 놓고 오라고 했다.”

“그런데 모모는 뭘 항상 쥐고 있죠?”

“뽐. 뿌. 미.”

그렇게 말하며, 모모는 당장이라도 떨어지기 싫다는 듯 꼭 쥐고 있는 뽐뿌미 인형을 붙잡은 채 말했다. 몇 번이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 인형이 얼마나 좋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을 정도로 모모의 손에서 뽐뿌미는 언제나 존재했다. 식사를 하거나 서빙을 하거나 사탕을 먹거나 심지어는 그레모리에게 안길 때까지. 니콜은 멍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윤정과 정소희의 시선이 신경쓰인 듯 둘을 바라보며, 죄송하다는 듯 인사를 한 후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들에게도 폐를 끼치지 마라고 해도, 모모가 워낙 말썽쟁이여서요. 그리고 고집은 얼마나 쎈지 단 거 아니면 못 베긴다니까요.”

“당연하다! 단 것은 특히나 짐에게 있어서 받아야할 공물이도다!”

모모의 대답에 니콜은 모모! 라고 혼내듯 소리를 냈고, 모모는 곧바로 시들시들해지듯 히잉 소리를 내며, 너무하다는 시선으로 니콜을 바라보았다. 




“자리는 있는 거야?”

“아. 물론이죠. 마침 모모도 청소도 했겠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으니, 이쪽으로......?”

니콜이 웃으며, 이윤정과 정소희를 안내하려고 했을 때, 니콜은 검붉게 물들인 정소희의 손을 보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소희가 뒤늦게 니콜을 의식하고 고개를 든 순간 자신의 눈 앞으로 소총 아가타의 총구가 겨누어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조준에 이윤정과 모모는 놀란 시선으로 니콜을 바라보았고,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설마 했지만......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거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무슨 소리냐 바텐더! 이 여자는 내 하수인이다!”

“모모 뒤로 물러나세요. 이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에요.”

니콜의 대답에 모모는 곧바로 니콜의 뒤에 숨었고, 정소희는 침묵 속에서, 니콜의 총구에 어떤 행도도 취하지 않았다.

 



“왜 날 공격하려는 거지?”

“느끼지는 못했습니다만 이곳에서 스스로 명을 재촉하러 오실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곳에서 악을 퍼뜨리면서 동시에 사람들을 타락시키기 위해 잠입을 하다니!”

그 대답과 함께 아가타의 안전장치를 풀며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고, 정소희는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자신의 허리춤에 검을 쥔 채 다가올 위협에 대비했다. 갑작스럽게 살벌해진 분위기에, 아나스타샤와 올리비에는 급하게 달려오며 니콜을 말렸다.



“아니에요! 니콜 양! 소희 씨는 침식체가 아니라고요!”

“박정자 말이 맞아! 소희는 니콜양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박정자가 아니라 올리비에랍니다? 배신자씨?”

올리비에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본명을 대놓고 이야기하는 아나스타샤를 보며 말하는 사이로 니콜은 그런 둘의 증언에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거짓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보기만해도...... 위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구마회 소속.... 아. 아니라 예전부터 침식체들이 사람들을 흉내내면서 들어온다는 얘기들이 있어서 더욱 경계하는 겁니다! 이 자는 위험하니 두 분은 뒤로 물러서 주십시오!”

“그래? 네가 봐도...... 난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미 그 손이 증명을.......?!”

 


'니콜 거기까지만 해. 지금 네가 겨누고 있는 건 침식체가 아니니까.'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니콜이 시선을 옮겼을 때, 취기에 사로잡힌 그레모리가 니콜을 향해 괜찮다고 인사를 하듯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그레모리 씨. 이 자는 누가봐도 침식체입니다! 성령의 힘....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이 바안에 있는 사람들이 위험하다고요!”

“정말로 위험하다고 판단했으면, 바 내부로 들여보내지도 않았겠지? 괜찮으니까 경계할 필요 없어.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질거고. 우리 귀여운 아가씨도 누굴 해치려고 하는게 아니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까봐 검을 쥐고 있는 거 알고 있어. 그럼 아주 간단하게 서로 무기를 놓으면 되겠네?”

그걸 어떻게? 라고 묻는 정소희의 시선 속에서 그레모리는 다 보고 있다는 듯 눈 웃음을 드러내며, 술잔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태평스러우면서도 취기에 잔뜩 취한 그녀였지만 자신의 눈 앞에서총을 겨누려고 하는 니콜과 검을 쥐고 있는 자신까지도 흔들리게 만들고 있었다. 



 

흠 소릴 내며, 고민에 빠진 사이로 니콜은 정소희를 향해 조준하고 있던 아가타를 서서히 내려갔고 정소희는 자신의 허리춤에 찬 검에 손을 대었던 자신의 손을 풀었다. 둘이 경계를 풀자 그레모리는 땡큐~ 라고 말해주며, 잔을 흔들어주었고 아나스타샤와 올리비에는 싸우기 직전까지 갈뻔한 상황을 막아준 그레모리에게 고맙습니다. 라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괴물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어. 네가 봐도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아니. 죽이고 싶겠지. 네가 봐도.... 난 그런 모습이었으니까.”

정소희는 그렇게 말하며, 슬픈 시선을 드러냈고, 니콜은 자신에게 느낄 수 없었던 미안한 감정이 퍼져왔다. 모모때와 같은 기분이었지만 육안에 드러난 그녀의 모습은 침식체라고 할만큼 이질적인 기운이 퍼져오고 있었다. 자신의 손에 쥔 올리비에와 아나스타샤 심지어는 이곳의 바 마담이나 다름이 없는 그레모리까지 보증을 했으니까.



“제가 좀.... 예민해지긴 했네요. 예전에 침식체 같은 악은 멸하라는 계...명이 아니라 워낙 이 바 내부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하는 일들이 많아서요. 바텐더들이라면 기본적으로 총은 들고다니기도 하고요.”

“어머 그랬어? 보통 바텐더들은 총 외에 다른 무기들을 썼을 텐데?”

그레모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니콜에게 묻자 니콜은 아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나스타샤는 침식의 흔적이 남겨진 그녀의 손과 팔을 드러낸 후 태연하게 부축을 받은 채로 니콜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튼튼하고 강인하면서 동시에 날 지켜주는 생물이 침식체라니..... 내가 봐도 너무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호위무사씨는 나랑 박정자랑 심지어는 저 미라도 구해줬거든.”

“아나스타샤 씨 전 미라가 아니라 이윤정.......”

“미라의 말대로에요. 물론 외형적으로는 침식체일지도 모르지만 제가 니콜양에게 보증을 할 게요. 침식파라던가 니콜양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들은 없다고 말이죠.”

“네...... 두 분이 그렇게 얘기하니.... 알겠습니다. 모모일도 그렇고 저도 좀.... 손님에게 무례한 짓을 한 거도 있으니... 자리에 앉으시는대로 무례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원하시는 칵테일을 준비해드릴게요.”



“어머.... 그렇게 하실 필요는 없는데..... 괜찮겠어요?”

“네. 제가 과했던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자리를 잡으시는데로 곧바로 준비해드릴게요. 모모. 이 분들 자리 앉으시는대로 칵테일 주문을 받는대로 저에게 알려주세요. 잘하면, 제가 사탕 하나 드릴게요.”

“오오! 정말이냐! 바텐더가 그렇게 말하니 짐 또한 질 수 없다! 거기 하수인들이여 내가 방금 준비한 자리들이 있으니, 그곳으로 안내하겠다!”

단거를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신이난 모모가 가장 먼저 앞장서 나가는 사이로, 일행 니콜과 그레모리가 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은 자리로 걸어갔다. 하나 둘 자리에 앉는 동안 모모는 니콜에게 받은 주문서를 꺼냈고, 셋은 흐음 소리를 내며, 본격적으로 원하는 칵테일들에 대해 의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까? 평소 먹는걸로?”

“레인보우 니콜 말하는 거면, 사양할게. 이미 질리게 마셨거든. 모처럼 독한 걸로 한잔 해보려고.”

“데몬 레이디? 아무리 술독이 쎄다고 해도, 그 칵테일은 네가 평소 마시는 보드카보다 독할 텐데?”

올리비에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아나스타샤는 도전하겠다는 듯 데몬 레이디 칵테일을 가리켰다. 올리비에와 이윤정이 레인보우 니콜로 결정하는 사이로 정소희는 멍하니 칵테일 메뉴판을 한참동안 바라본 채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우리 호위무사님은 어떤 걸로 할 거야?”

“모르겠어. 어떤 게 좋은 건지.....”

그러고보니, 이곳은 처음이었지. 화려한 조명과 함께, 칵테일을 준비하는 바텐더 니콜. 서빙과 주문을 위해 뽐뿌미 인형을 들고 다니며 틈만나면 단것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할로윈의 꼬마귀신 같은 모모. 그리고 가장 자리에서 온갖 술들을 진열한 채 음미하며 즐기는 마담 그레모리까지. 그 모든 광경들이 정소희에게는 낯선 광경이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나 니콜이 자신을 경계했을 때부터인지 잔뜩 움츠러든 기색이 있었고.



“많이 고민되면, 가장 가볍게 시작해보는 것도 좋아요. 예를 들어 레인보우 니콜이라던가.”

“내 생각에는 지금 소희에게 더 쓴 걸 먹는 건 별로일 것 같은데? 블루 모르가나도 좋고. 평소 마시는 말키스 느낌이라고 할정도로 달거든.”

“말키스처럼?”

“어. 전부터 저 서빙하는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쉬는 시간때마다 니콜에게 조르는 걸 봤거든.”

아나스타샤가 대답하기 무섭게 모모는 저만치서 니콜이 미리 준비한 블루모르가나 칵테일을 들고 한모금씩 홀짝홀짝 거리며, 단 맛에 취한 듯 자신의 인형을 파닥파닥 거리고 있었고, 그런 귀여운 모습에 올리비에와 이윤정은 모처럼의 힐링을 즐기듯 신나게 움직이는 모모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좋긴하겠네...... 미나 선배가 줬던 것과 비슷한 맛이라면.........”

“혹시나 칵테일 한잔을 아쉬워하는 거라면 걱정하지 마. 소희 네가 입맛에 맞는 녀석이 있는지 전부다 확인할 정도의 크레딧은 두둑히 받아왔으니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난......”

소희의 대답도 잠시 아나스타샤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황금빛으로 도금된 머신갑이 그려져있는 코핀 컴퍼니 골드 카드를 흔들어주었다. 도대채 무슨 꿍꿍이인거지? 싶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사이로, 읏챠! 하면서, 언제부턴가 자신이 도망칠까봐 옆에 앉아있었다. 

“아나스타샤의 말대로 하는게 좋을 거에요. 소희 씨. 요번에 단단히 준비했으니까요. 일단 레벨 1부터 시작해볼까요?”

 



/


정말 이렇게 주문을 한다고? 모모가 준비해온 레시피를 보자마자 니콜은 기겁을 할정도였다. 다른 건 몰라도 특히나 데몬 레이디라니! 이 칵테일은 온갖 애주가들이 한모금만 마셨다면 다들 정신이 나갈정도라서 마담인 그레모리를 제외하고는 입조차 댈 수 없는 칵테일이었다. 


“정말 이 레시피... 맞는 거죠?”

“맞다! 바텐더! 특히나 저 단발 머리 하수인은 데몬 레이디를 가져오라고 했다!”

“혹시 다른 칵테일을 햇깔린 거 아니에요? 이 데몬 레이디는 그레모리 씨외에는 마실 수 가 없는 건데......”

“내 뽐뿌미를 다듬어주고 공물을 준 하수인이었다! 나 모르가나 모드렛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모모가 자신있게 이야기할 정도라면, 그렇긴하지만, 니콜은 알겠어요. 라고 말하며 주문을 받은 후 기다리고 있는 손님에게 칵테일을 나눠주고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 니콜은 힐끔힐끔 모모가 마려해준 자리에 앉은 아나스타샤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자신이 기도를 한 것에대한 대답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는 악마의 본거지(?)가 날아간 이후로, 그레모리는 오늘은 아무것도 못할 지도 몰라. 모처럼 재미있는 니콜양을 만날 수가 없을 것 같아 아쉬운걸. 말할정도로, 그녀 뿐만 아니라 니콜 자신도 막막해했다. 



 

모모를 지켜봐야 하고, 구마회의 맡은 임무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골치아픈 상황이던 찰나 이 그라운드 원에서 새롭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준 게 코핀 컴퍼니였으니까. 어떤 연줄로 인해서 이곳에서 시작된 건지는 모르지만, 사장의 이야기로는 평소 술을 즐겨마시는 사원들 특히나 '엘리트' 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투자를 했다던가? 그 덕분에 전에는 재료를 구하러 갈게. 라며 취기로 잔뜩 물들인 몸을 이끌고 가는 그레모리가 아닌 코핀에서 지급받은 최신형 메카닉인 '레기온' 과 함께 대동하며 나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엘리트가 누구인지 사장은 들려주지 않았지만, 데몬 레이디를 주문했을 때부터, 그 엘리트가 누군인지 니콜은 알 수 있었다. 보드카의 수배나 되는 취기를 자랑하는 이 정체모를 칵테일은 특히나 결정적인 '증거' 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 탓인지 다른 칵테일들과는 다르게 이 데몬 레이디만큼은 니콜은 느끼지 못했던 긴장이 퍼져왔다. 모모가 서빙을 받기 위해 뽐뿌미 인형을 만지작 거리며 기다리는 동안 니콜은 미세한 경련을 일며 데몬 레이디를 포함한 4잔의 칵테일을 건네주었고, 모모는 웅! 이라고 말하며, 넷이 자리은 테이블로 향해 쏜살 같이 달려갔다. 



“문제가 터지지 않겠죠. 그 데몬 레이디는 그레모리 씨 외에는 절대로 마실 수 없는 칵테일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을 닦는 니콜의 두 눈 앞으로, 모모는 아기자기한 손으로 칵테일을 하나 둘 자리에 내려놓았다. 문제가 없겠지? 생각을 하는 사이사이로 아나스타샤가 자줏빛으로 가득찬 악마의 열매나 다름이 없는 데몬 레이디를 한모금 마셨을 때, 아나스타샤는 꺄아! 소리를 내며, 한모금씩 홀짝 마시는 정소희를 인형처럼 껴안으며, 부비적거렸다. 갑작스럽게 껴안는 그녀의 행동에 정소희는 짜증이 섞인 시선으로 그만하라는듯 시선을 보냈지만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녀의 퇴로를 차단한 올리비에까지 정신이 나간 시선으로 헤에 하면서 정소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소희씨 너무 귀엽다니까~ 머리칼부터 시작해서 시선 피하려고 어쩔 줄 몰라하는 눈빛까지...... 그렇지 조교야~?”

“물론입니다. 교수님. 소희 씨....... 단 한번 만이라도 좋으니..... 터지기 직전의 제 일들 대신 처리를 해주시겠어요?”

“야! 누구맘대로, 내 호위무사를 데리고 가려고헤에~? 얘는 내꺼라고! 당장 나와 확 뭉개버리기 전에.”

고작 한모금에 정신이 나가버리고 말았구나. 그나마 신께서 그녀에게 자비라도 내려줬는지 바도 슬슬 마감시간대였고, 갑작스러운 난리에 손님들이 혼란에 빠지는 경우는 없으니까. 행주로 빈 잔을 닦는 사이로, 니콜은 갑작스럽게 한 바탕 취기에 빠진 채 뒹굴거리고 있는 아나스타샤 일행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궁금한 시선으로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아~ 그러니까. 나! 아나스타샤 체르노바는 말이야! 나 뿐만 아니라 박정자랑 생쥐를 구한 우리 정소희에게 응! 크게 쏜다고! 아! 박정자 넌 아니야! 네껀 네가 돈내!”

“에~ 아무리 배신자취급을 한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또 내뺄려고? 진짜 못 됐어. 넌 조교때부터, 매번 말은 겁나 안듣고 자기가 개척한 게 옳다고 생각한 멍청이였으니까. 그러고는 지가 다 말아먹으면 나한테 다 뒤집어 씌울려고 말이야. 넌 이런 조교가 되면 안돼! 알겠어?”

올리비에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수족이면서 동시에 온갖 잡일을 담당하는 이윤정을 보며 묻자 그녀는 형장의 이슬이 될 사형수의 시선으로 겸언한 시선으로 네. 교수님. 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탈출본능을 억눌렀다. 아나스타샤는 크으 소리를 내며, 데몬 레이디를 마시는 동안 정소희는 서서히 퍼져오는 그녀의 취기에 한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블루 모르가나를 한 모금 마시려고 했다.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아나스타샤는 곧바로 잔을 뺏었고, 정소희는 불쾌한 시선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놔.”

“이런 건 술 아니야. 소희야. 이런 게 술이지. 딱 한모금만 마셔 봐. 이런 건 애들이나 먹는 거니까.”

“진짜...... 1단계부터 시작한다면서?”

“응? 아닌데? 소희가 한 모금을 마셨으니까. 이제 2단계~ 2단계는 바로 이거랍니다. 아. 이 한모금만으로도 이렇게 취기가 확 오네. 헤헤헤....”

보드카를 생수처럼 마시던 이 여자가 저렇게 한방에 나가떨어질 정도라면, 상상이상이라는 얘기지만, 정소희는 한 숨 속에서, 아나스타샤의 옆에 놓인 데몬 레이디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마시면 돌려주는 거야.”

“응! 마셔라! 마셔!”

“그래~ 한잔 마시면, 내일 체혈 검사는 없던 걸로 할게!”

“그러면서 다 까먹은 척할거잖아.”

정소희는 의심이 섞인 시선으로 쳐다보자 올리비에는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책상을 몇 번이로 두드린 후 정소희에게 절대 그렇지 않겠다는 시선으로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 올리비에 박은 말이야. 우리 소희를 위해서 열심히 관리한 사람으로서 절대로 잊을 일 없습니다! 믿을 수 없으면, 혈서도 받아내도 돼!”

“박정자 저 여자. 꼴레 저렇게 쉽게 말하는 여자 같지? 내가 조교를 해봐서 아는데, 절대 아니야! 그러니까. 한 모금 마셔!”

둘은 그렇게 말하며, 박수를 쳐주자 정소희는 데몬 레이디를 한 마셨다. 처음에는 아무 맛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입안에 들어가기 무섭게 머리가 지끈 거릴정도의 독한 술기운이 자신의 몸을 불태우듯 퍼지기 시작했다. 정소희가 데몬 레이디를 일반 칵테일처럼 마시자 아나스타샤와 올리비에는 오오~ 소리를 내며, 과감하게 마셔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열심히 박수를 쳐주었다. 



 

“그레모리 씨 외에는 버티지도 못하는 저 데몬 레이디를 한번에 들이키다니.....”

헝겊으로 잔과 칵테일 쉐이커를 닦던 니콜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자신이 악마에 홀린 건지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머리를 감싸고 있긴 하지만 금새 적응이 되어버렸는지 정신을 가다듬은 채 취기에 휩싸인 듯 짙은 신음을 내며 둘을 바라보았다.

“내놔.......”

“응! 당연히 줘야지~ 아 여기! 데몬 레이디 한 잔 더 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모모에게 데몬 레이디를 부탁했고, 모모는 곧바로 내용을 적으며 니콜에게 달려나갔다. 지금 환각인가? 싶을 정도로 정소희는 자신의 앞에 있는 게 아나스타샤인지 햇깔릴 정도로 몽롱해진 정신 속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아나스타샤와 올리비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네가 둘로 보이는데 내가 이상한 거야?”

“아니야. 아니. 정상인 거야. 흔히 말하면 꽐라가 되서 뻗어버렸다! 라고 할까?”

“꽐라는 네가 되었겠지. 변태년아. 진짜 날 가지고 노는 게 그렇게 좋아?”

“어. 넌 뽁뽁이 같아서 매번 만지고 터뜨리는 맛이 있거든! 박정자 넌 진짜 나쁜 년이야. 이런 귀여운 애를 지 혼자 독차지해?”

“꼬우면 교수나 하시던가~ 누가 칼들고 협박했데~?”

올리비에는 심술과 질투가 새록새록 돋아나는 아나스타샤에게 메롱 하면서, 놀리자 아나스타샤는 못 참겠다는 듯 정소희를 꼭 안았다. 정소희는 하지 말라는 듯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쳤다.



“잘했어! 소희 씨. 그런 변태 조교는 그렇게 한번씩 때려야 돼!”

“에.... 아파. 나 소희한테 버림받았어....... 내가 싫은 거야? 나 슬퍼...”

아나스타샤는 그렇게 말하며, 히끅하면서 울려고 하자 소희는 하아. 소리를 내며, 그녀의 이마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쓰다듬음에 바로 풀린 듯 아나스타샤는 다시 그녀를 안았고, 정소희는 진드기처럼 붙으려는 그녀의 술냄새를 피하듯 몇 번이고 고개를 흔들었다. 



“저 소희씨..... 제가 전에 한 말은.....?”

“뭐? 여기 술마시러 온 거잖아? 취하고 노는 곳이잖아.”

“응! 맞아! 우리 소희 진짜 말 잘했어! 자~ 여기 데몬 레이디 한 모금 쭈~~~~~욱! 옳지!”

둘 아니 셋의 취기가 점점 심해지자 블루 모르가나만 시켰던 이윤정은 자신의 유일한 방패가 될 줄 알았던 정소희가 점점 타락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이 여자. 다른 사람들은 한방에 보낸다던 데몬 레이디를 두 잔 아니 세 잔째 마시고 있어? 이건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야. 너 왜 그렇게 째려봐? 나 마음에 안드냐?”

정소희는 그렇게 말하며, 벌떡일어나자 이윤정은 히익! 소리를 내며, 겁에 질린 눈동자로 정소희를 바라보았다. 그 앞으로 그녀의 손에 쥔 블루 모르가나를 보자마자 불쾌해진 눈동자로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런 어린애 술이나 처 마시고..... 말이야. 다른 건 몰라도 이곳에서는 내가 용납안해.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소희씨.”

“정소희라고 불러.”

“에!? 아무리 그래도 소희씨에게 그런 호칭은.”

“내가 허락하니까 부르라고!”

소희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부릅떴고, 이윤정은 깨갱 소리를 내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윤정을 한방에 굴복시켜버리는 그녀의 포스에 둘은 잘했어! 잘했어! 라고 말하며, 그녀를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공포에 질린 이윤정의 눈 앞으로 정소희는 히끅 하며, 검은색 장갑을 낀 손으로 이윤정의 어깨를 세게 붙잡으며 말했다.



“야. 이윤정. 내가 목숨 걸고 지켰으니, 교수님에게 잘해라. 교수님이 털끝이라도 다치면 너 죽는다. 알겠어?”

“네...넵! 저 이윤정 평생 교수님의 개이면서 동시에 커피머신으로서 역량을 다하겠습니다! 전 교수님과 정소희의 개입니다! 왈왈!”

왜 그레모리 씨가 데몬 레이디는 자신만 마신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히끅 히끅 하면서 자리로 돌아가는 사이로, 정소희는 니콜이 신경이 쓰였는지 성큼성큼 다가왔고, 니콜은 자자신의 탁자 밑에 있는 총을 만질까 말까? 고민에 빠졌다. 후우후우. 신음을 내며, 자리에 앉았고 니콜은 어색한 미소 속에서, 자신의 밑에 놓여진 아가타를 위치를 확인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 죽여.”

“네? 그게 무슨.....”

“안 죽이니까...... 총을 쥘 필요 없어. 뭐.... 난 괴물이고 네가 날 쓰레기 취급하는 건 알겠는데......”

“아. 아니에요. 그런 의도는...... 가지고 대한 건 아니라고 할까나.....”

진짜 신의 앞에서 거짓말도 하지 못하는 버릇 탓에 그녀에게 다 들통나버렸다. 니콜은 어떻게 해야 할까 허둥지둥하는 사이로, 정소희는 그럴 의도는 절대로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자신의 허리춤에 찬 검을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카운터라고 해도...... 맨 주먹으로는 아무것도 못해. 특히 난....... 이렇게 되었을 때부터 쓰레기 같이 당해버리고 쫓겨난 쌍년이라서 말이야. 걱정하지 마.”

“저 두 분에게요?”

“아니....... 저 셋은 아니야.”

 


'날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그렇게 말하며, 소희는 히끅거리며, 자신의 두 손을 부셔버릴 듯이 움켜쥐었다. 

“난 말이야. 그저 지키고 싶었다고..... 그런데 왜 날 싫어하는 거야? 천식이라고 해도..... 내 몸 하난 관리한다고! 근데 왜 내가 뭐가 맘에 안 든다고 버렸냐고. 넌 알아?”

“그걸 저에게 물어보시면 전... 모른다고 해야겠죠?”

니콜의 대답에 정소희는 맞아. 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에 취기의 악마에 사로잡힌 둘이 성큼성큼 다가가고, 정소희는 그런 둘을 보자마자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둘이 자리를 떠난 사이로 이윤정은 셋에게 퍼져온 극도의 공포에 짓눌리다 못해 지치다 못해 기절했는지 탁자 위에서 몸을 기댄 채 뻗어버리고 있었다. 




“저.... 좌석이 혹시 문제가 있나요?”

“아니에요! 우리 소희가 니콜 양에게 한게 너무 미안하다고 해서! 말이에요. 그래서 마음을 담아 사과하러 온 거에요. 그렇지 소희야?”

“응...... 미안해요. 그러니까..... 이런 괴물 같은 년이라고 해도..... 우리....”

“니콜. 이 바텐더는 니콜양이라고 하면 더 좋아하고.”

아나스타샤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부를 호칭을 알려주자 정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향해 자리에 일어난 채 몸을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아... 근데 왜 저에게 그런 인사를?!”

“싫어요? 제가 이렇게 사과하는 거? 괴물이라서요?”

“아! 그건 아닌데.... 이렇게 갑작스러운 건 저도 곤란해져서요. 그리고 제가 오히려 손님을 곤란하게했고......”

“아니에요. 니콜 양. 제가.... 멍청하게 괴물이 되어버려서 긴장을 하게 만들었으니 제 잘못이죠. 앞으로 조심.....해야죠.”

그녀의 사과에 니콜은 그러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몸을 숙이려고 했던 그녀의 몸을 붙잡았고, 소희는 히끅 소리를 내며 지친 듯 그녀의 몸에 기대었다. 자신의 손을 감쌌던 장갑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녀의 침식화되었던 손이 자신의 몸에 닿는 기분이 들었지만 니콜은 퍼져오는 거부감을 없애듯 진정시키며, 천천히 그녀에게 자리를 앉힌 후, 바닥에 떨어진 장갑을 주워서 그녀가 앉은 자리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미안. 나..... 이런 손으로 또 만지게 했어.”

“괜찮아요. 올리비에 씨 말대로 괜찮다고 하니까요.”

니콜은 그렇게 말하며, 올리비에와 아나스타샤를 바라보자 둘은 잘했다는 듯 엄지척을 올리며, 니콜을 칭찬했다. 일단 고비는 넘긴건가? 싶은 생각 속에서, 아나스타샤는 칵테일을 주문했다. 진짜 이 세분 갈때까지 가는 건가? 싶었는데 비교적 정상적인 콜드 스프링 두 잔과 핑크 홀릭 한잔을 주문했다. 



“응? 데몬....레이디 아니야?”

“데몬 레이디는 너무 질리게 마셨으니까. 이번엔 다른 거.”

“.....더 마시고 싶은데.”

“응 안돼요! 우리 소희는 우리들 지켜야 해요.”

“두 분 말이 맞아요. 끝나고 돌아가실 정신은 남겨두셔야죠.”

셋의 대답에 정소희는 뒤늦게 자신이 해야 할일을 깨달은 듯. 알았어.. 라고 말하며, 자신의 눈앞에 놓인 핑크 홀릭을 마셨다. 



“맛있어.”

“우리 니콜양의 잔은 매번 맛있어. 취해도 취해도 또 먹고 싶다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신다니 감사하다고 해야할까 하하하.....”

“그레모리 씨도 정말 눈이 좋다니까요. 덕분에 즐겁게 취하고 놀 수 있으니까 말이죠.”

“아. 그러고보니..... 놀이를 안했네? 나 취하기만 했잖아?”

아나스타샤는 깜박했다는 듯 박수를 쳤고, 그 박수에 세 악마의 공포에 기절하듯 자던 이윤정은 힉! 소리를 내며, 한번 들썩인 채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지쳐버린 듯 뻗은 채 잠이 들었다. 



“놀이요?”

“응. 아! 걱정마세요. 바 날려버리는 건 아니니까. 간단해요. 니콜양과 저와 박정자 그리고 우리 귀염둥이 소희랑 함께하는~”

 


'진실게임!'

 


진실게임이요? 그리고 도대체 왜 자신이 그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셋은 마치 당연히 참여했다는 듯이 자신까지 포함해서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룰은 간단~ 우리 니콜양이 가리키는 사람을 시작으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어떤 거짓도 없이 말하기! 물론 피할 수 있어.”

“제가요? 제가 선택한다고 해서 혹시 절.....”

“걱정할 필요 없어요. 편안하게 지목하시면 된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중에 문제 생기면 자신에게 뒤집어 씌울 것 같은데? 니콜은 그 생각을 뒤로 한 채 누구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시선으로 셋을 바라보았다. 아나스타샤와 올리비에가 누가 먼저 시작할지 고르라는 듯 니콜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보통 이렇게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고 시작하라고 한다면, 왜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냐는 등 여러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이미 깊게 빠져버린 상황이고.



“일단 가장 먼저 주최하신 분께 선택권을 드리죠. 저희 신부님.... 이 아니라 절 가르치셨던 바텐더 선생님께서는 가장 높으신 분이 솔선수범을 보여줘야 후배들이 그에 맞춰서 따라간다고 했으니까요.”

“그러면 내가 먼저 아니에요! 이래뵈도 말이죠... 생물학계의 권위자인 나 올리비에 박 교수님이라고요!”

“응 시끄럽구요. 우리 바텐더님이 선택하신 이 기회에 대해서 각오할 준비나 해~”

그녀의 대답에 올리비에는 억울하다는 시선에도 아나스타샤는 그런 그녀의 억울함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어깨를 으쓱 거리며, 누구에게 먼저 질문할까 시선으로 취기의 악마에 사로잡힌 둘을 보며 턱을 괸채 행복한 고민에 사로잡혔다. 한참을 보던 그녀의 눈은 올리비에를 주시했고, 올리비에는 뭔 소리를 하려나 싶은 시선으로 긴장을 한 시선으로 아나스타샤를 바라보았다.

“그때 기억나? 박정자 네가 감기에 걸려 헤롱헤롱 거렸을 때, 내가 네 대신에 논문 작성해서 연구비를 가까스로 벌었을 때 말이야. 그때 넌 이렇게 말했지?

 


'반드시 이 치욕 갚겠다고 말이야.'

 


그때 날 당장이라도 짤라버릴 수 있었는데...... 그때 왜 날 내버려뒀어? 내가 뭐 유능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거고. 진짜로 날 골탕 먹일 생각이라면 여러가지로 생각했을 거 아니야. 근데 넌 왜 아무것도 안한 채 내가 다른 전공을 준비할 때가지 놔뒀던 거야?”

그녀의 물음에, 올리비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다시는 상종하기 싫을 정도로 사이가 안좋아지긴 했으니까. 그에 대한 대답을 꺼내지 않거나 넘길 수 있었지만, 이대로 패스를 해버리자니 교수라는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았다. 

 



'천재라고 해서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천재를 보조해주는 조교가 있어야만 비로서 빛을 발휘할 수 있는 거죠.'

 


그 말 탓인지, 자신의 손에 쥔 칵테일이 점점 무거워지는 걸까?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으면 진작에 잘라버렸겠죠. 그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답해드릴게요. 물론.... 그때 당신이 자기가 무슨 교수인양 저에게.... 그.....”

“욕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면 해도 돼.”

“명색이 교수니까. 전 당신처럼 그런 상스러운 말은 안써요.”



“그러셔? 그때 박정자 당신은 나에게 말했잖아? 개같거나 당장이라도 자기일 맘에 안들거면 당장 쌍욕하고 뛰쳐나가라고. 그래야 스트레스를 안받고 오~래 일한다고 말이야.”

“이봐요. 두번째 질문까지 한다는 규칙은......?”

“그러는 박정자 당신이야 말로 내 질문을 어리버리하게 대답했잖아? 난 만족하지 않았어. 진실게임의 규칙 첫번째. 질문을 꺼낸 자의 입장에서 확실한 대답이 나올 때까지 그 권한은 가지고 있는다. 니까. 설마 이것도 모르는 건 아니겠죠? 생물학 교수님?”

아나스타샤의 대답에 니콜도 고개를 끄덕이며, 올리비에를 바라보았다. 2:1 이라니! 게다가 평소에는 꺼내고 싶지 않았던 그 추잡한 단어를 꺼내라고? 게임은 진행되었고 자신은 코너에 몰렸다. 올리비에는 혹시나 싶은 생각 속에서 뻗어버린 채 잠이 든 이윤정을 확인 후 심호흡을 속에서, 아나스타샤를 보며 말했다.




“자기가 마치 교수인양 지껄이는 당신의 목소리만 들어도...... 도레미파솔라시 발! 같지만!”

자신의 고상하고 우아한 교수님 이미지를 위해 사용한 난데없는 도레미파솔라시에 니콜과 아나스타샤는 풉 하며 웃음을 터뜨렸고, 정소희는 자신의 웃음이 혹시라도 들릴까봐 고개를 돌렸다. 니콜은 입을 가린 채 터져나오는 웃음 속에서, 올리비에는 주먹을 잔뜩 쥔 채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고 만 자신의 몸을 진정시키고 있는 아나스타샤를 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도...... 그때 당신이 한 그 논문이 인정하기 싫었지만 대부분 평가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까요. 심지어는 그 평가원중 한 사람이 특히나 당신에 대한 장래를 부탁한다고 할 정도였거든요. 설령 그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그 길을 발견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지도를 부탁 할 정도였으니........ 진짜 당신 같은 답답이 조교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렇게 싫으면서 날 그렇게 있게 해줬다?”

“개인과 개인이었다면, 당연히 거리를 뒀겠죠. 하지만 그때 당신과 전 이미 뗄레야 뗄 수 업슨 관계잖아요? 그 일 이후로.....”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는 당신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던 일들을 하나 둘 제가 처리하기 시작했죠. 사실 그 일 이후로 절 최악의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게 뻔했으니... 그리고 당신은 전부터 생물학보다는 기계나 장비를 만지는 것에 흥미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기회를 준 거야? 내가 그렇게 욕을 했어도?”

“교수라는 이름의 책임이니까요. 그리고 그 일 이후로는.....”

일이라니, 올리비에는 그 대답 이후로는 자신의 잔을 쥐었던 힘이 빠지고 있음을 느꼈다. 화기애해하며 취기의 몸을 맡기며 흔들렸던 셋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짐을 느꼈다. 아나스타샤는 됐다는 시선으로 그녀에게 시선을 넘겼고, 그녀는 그 전에 고개를 들어올리며 니콜을 바라보았다.



“니콜 양. 고해성사 같은거.... 해본 적 있어요?”

“네! 성황청 구마회의 기본... 아니 제가 있는 곳 근처가 성당이라서요. 거기서 가끔 죄를 짓거나 하면, 그곳에 가서 죄를 고백하죠.”

“그럼.... 니콜 양이 신부님이라고 하면 이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줄 수 있나요?”

“당연하죠! 신부님도 죄를 지은 사람 또한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얘기를 한다고 하셨으니까요. 뭐..... 교수님이 이 세계를 멸망시킬 대 마왕이라거나 아니면, 대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금기의 악마 소환서를 가지고 계시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무슨....... 그런 오컬트 적인 내용은 아니에요. 그냥....... 좀 많이 복잡했던 일이죠.”

그 대답 속에서, 올리비에는 바톤터치를 한 채 질문을 쥔 상태로 아나스타샤를 바라보았다. 취기에 사로잡힌 사이사이로 그녀의 복부의 상처를 감싼 갈색빛의 붕대는 특히나 그때 일의 대한 트라우마의 독한 향수를 자극하게 만들었다.

“그때..... 도망칠 수도 있었을텐데, 왜 날 구한 거야? 다른 건 몰라도...... 꽤나 원망하고 있었잖아? 마치 내가 너에게 뭘 해줬다는 듯이 달려왔을 때, 놀랐어. 죽을 뻔했거든. 어쩌면 유미나의 말대로 너도 그런 감정은 있었잖아?”



무슨 일일까? 싶었지만 니콜은 선뜻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그녀는 그때의 공포가 지금도 퍼져오듯 긴장을 하고 있었다. 

“맞아. 우습게도 있었어. 하지만 이상하게 그때일처럼 망설여지더라고. 내가 이곳에 나가게 된다면..... 박정자 쌍년을 볼 필요가 없겠지만, 근데... 근데 말이야!. 오히려 내가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아나스타샤는 그렇게 말하며, 니콜과 정소희에게 확실하게 들으라는 시선으로 둘을 보고 대답했다.

 


'너 날 찢어버릴 거면 그때 쏴버려서 날 죽여버릴 수 있었잖아?'

 


“근데 넌 안했잖아? 박정자 네 입장에서 난 정말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년이고, 개같다고 해도 말이야 솔직히.... 날 살렸을 때, 생각했어. 이런 개 같은 년에게 배울 게 하나 더 있다고 말이야.  정말로 네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공고를 걸면서까지 모집을 하려고 했냐고. 그래서 나갈 수가 없었어. 내가 만약 나가면, 넌 또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시 흔들릴거고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흠..... 얘기를 들어보니 꽤나 여러가지로 죽을 뻔한 일들이 있었나보네요......”

“그라운드 원에 첫번째 규칙. 관리 실패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이곳에 있는 순간부터 언제 죽든 이상하지 않는 곳이니까요. 특히나 저희 일행은 눈 앞에서 죽을 뻔했고, 그걸 막은게.....


 

'정소희니까요.'



 

아나스타샤가 대답을 하지 못하는 올리비에를 대신에서 대답해고, 니콜은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정소희를 바라보았다. 침묵 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가 이 둘을?

“두 분에게 죄송한데, 저도 참여자니까 저에게 넘겨주실 수 있으세요?”

“니콜양이? 우리 소희에게 궁금하게 많나보죠? 고해성사를 좋아한다고 하셨고.”

“아..... 신부님이랑 얘기를 나누다보니 좋아하게 되었다고 할까..... 뭐 그런 거죠. 소희씨도....”

“괜찮아. 말해도 돼.”

소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에 쥔 검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세 분이 위험에 처했을 때, 정말로 누군가를 구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세분을 구하셨나요?”

“어. 그게 내 사명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으니까. 난.... 비록 내가 괴물이 되었다고 해도 그건 버릴 수가 없으니까. 난 이미 실패했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다며 날 붙잡은 게..... 있었고. 넌 그저 날 괴물로 봤을 뿐이고.”

소희의 대답. 그건 수천권의 책을 읽었다고 해도 보거나 느끼지 못했던 낯선 '경험' 이었다. 충분히 준비를 했고 구마회의 사명을 잊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자신의 '오만' 이었다. 오히려 그 사명으로 인해서 외형적인 것을 인식을 하게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과 목소리. 그건 자신을 이곳에 보낸 신부가 지적을 하게 된다면, 할말이 없는 상황이어다.



“역시...... 사과를 해야 하는 건 제쪽이었네요. 소희씨가 아니라.”

“네가? 왜 나에게 사과를 해?”

“오만을 저질렀으니까요. 완벽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 괜찮겠지. 하면서 생각을 한 부분들도 있었거든요. 사과해야 할 건 소희씨가 아니라 오히려 제 쪽이죠.”

그렇게 말하며, 니콜은 자신의 손에 끼고 있는 장갑을 벗은 채 손을 뻗으며, 정소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니콜의 손 방향이라면, 침식화된 자신의 손과 악수를 받게 된다. 그 사실에 소희는 눈치챈 듯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민 니콜을 보며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괜찮아요.”

“하지만..... 네가 말했듯 난 괴물이잖아? 내 손을 잡으면 너도 큰일나고.....”

“뭐, 이미 일을 저질러버렸는걸요. 그러니까 자!”

니콜의 씩씩하면서 당당한 손 동작에 정소희는 침식화된 자신의 오른손을 숨긴 장갑을 벗는 것이 망설임을 느꼈다. 올리비에와 아나스타샤는 괜찮다는 시선으로 니콜에게 시선을 보냈고, 정소희는 심호흡 속에서 천천히 자신의 장갑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벗은 손 사이로 침식화된 자신의 손이 드러나자 니콜은 본능적으로 퍼져오는 긴장감 속에서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정소희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자마자 손을 내리는 순간 니콜은 눈을 부릅뜨며 숙이려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고, 그녀는 그 손을 꼭 잡았다. 

 


“그냥 평범한 손이네요. 제가 너무 멍청하게 생각했다니까요!”

“왜.... 잡는 거야? 할 필요 없었는데....”

“아니요. 따뜻한 걸요. 소희씨의 손.”

“그렇죠? 그래서 내가 우리 소희를 너무 좋아한다니까요!”

아나스타샤는 그 대답 속에서, 소희를 껴안자 올리비에는 질 수 없다는 듯 소희를 왼 팔을 붙잡은 채 안아주었다. 소희는 당황한 채 필사적으로 벗어나려고 했지만 셋은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 꼬옥 안으며 잡았다.



“진짜...... 내가 뭐가 좋다는 이러는 거야.....”

“그 당연한 질문을 굳이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진실이 아니야. 아니. 이미 진실이라서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고.”

둘의 대답에 소희는 벗어나려고 했던 움직임을 푼 채 셋에게는 바보스러울지 모르는 미소를 드러냈다. 다시 한번 취기와 향락의 거름 속에서 피어나는 꽃의 냄새를 느낀 듯 그레모리는 흐응 소리를 내며, 니콜과 일행을 보며 눈 웃음을 지었다.

“참..... 신기하네. 수많은 고통과 슬픔의 거름 속에서도 꾿꾿히 버티며 피어난 고결한 꽃인데, 정작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니.... 아니. 좀 더 잎사귀를 더 피어야 알까나?”

그레모리는 취기의 향락 속에서 부드럽게 눈을 뜨며, 정소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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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 선배가 회식 때문에 좀 늦을 거에요. 저 없다고 난동부리면 안돼요 미나양?”

뭐라는 건지.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한 채로 주시윤을 내보낸 뒤로 미나는 원래대로 돌아온 집의 분위기가 낯선 기분이 들었다. 옆에 항상 있어야 했던 소희의 모습이 없었고 자신 외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적막함 분위기에 유미나는 자신도 모르게 정소희가 언제 돌아올까? 라는 멍청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집안에서 할만한 것들은 다했다. 샤워를 한다던가 빨래를 한다던가 혹시나 싶어 소희를 포함한 요리를 준비하거나 평소 짜투리가 날때마다 했던 스마트폰 게임 파견임무가 '대성공' 을 했는지 확인하고 다음 임무로 보내거나 평소의 유미나의 일상이라고 할 정도로 정석적으로 움직이긴 했지만 자신의 안에서 퍼져오는 공허한 감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싶은 사이로  바깥은 서서히 짙은 어둠으로 깔려 있었고, 런닝과 돌핀 팬츠를 입은 자신의 몸에 오한이 느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하아..... 회식치고는 너무 늦잖아.”

유미나는 그 생각 속에서, 옆에 놓인 소파에 앉은 채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며, 전화를 걸려고 했을 때, 문 밖에서 질질 끌리는 듯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많이 취한 듯한 발소리였고, 지친듯 힘겨운 숨소리까지 동반하고 있었다. 잠시후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고, 유미나는 자리에 일어난 채 야심한 시간대에서 초인종을 누가 눌렀는지 확인했다.


 

[누구세요?]

 

[정~~~소희~~~ 미나야 나 왔어. 문열어~~]

 


정소희는 그렇게 말하며, 헤 웃으며, 자신이라는 듯 손을 흔들어주었고, 유미나는 전에 나갔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취해버린 그녀의 모습에 다급하게 문을 열었다. 문을 열기 무섭게 정소희는 꺄! 소리를 내며, 유미나를 안자 유미나는 자세조차 잡지 못한 채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뭐야? 왜 이렇게 취했어?”

“오늘 회식했어. 고맙다고...... 하던가? 그래서 한 잔 했어~”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마신 채로 헤롱헤롱거리면서 왔다는 거야?”

진짜. 유미나는 못말리겠다는 시선으로 정소희를 떼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정소희는 유미나로부터 벗어나지 않겠다는 듯 거 강하게 끌어안은 채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아.... 따뜻해.... 난 이게 더 좋아. 변태처럼 날 희롱하는 쌍년이나, 맨날 내 피 뽑아서 이상한 짓 하는 쌍년보다..... 네가 젤 좋아.”

“그 쌍년이라고 하는 부르는 사람들 설마 연구동에 있는 사람들 말하는 거야?”

“맞아. 왜? 내가 이렇게 쌍욕해서 싫어? 괴물 같아서?”

“무슨..... 우리 후배께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느껴지니까요. 그러니 잠깐만 놓아주시면, 안 될까요? 소희 후배님?”

미나의 대답에, 소희는 응. 거리며 아쉬운 시선으로 가슴 속에 깊이 파고들었던 자신으로부터 벗어났다. 얼마나 퍼 마신건지 자캣은 제대로 입지도 않은 채 침식화된 팔이 드러나 있었고, 머리칼 속에 숨겨진 그 눈동자는 취한 기색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용캐도 이곳에서 잘도 돌아왔네.”

“응. 미나 선배 말대로 난 괴물아니니까. 그래서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거야!”

“그러시겠지. 일단 샤워부터 해. 물을 준비해놓을 테니까.”

“싫어. 왜 샤워해?”

“미안한데, 우리 후배님 술 냄새가 너무 심해서 샤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생각은 말도 안되는 생각이니까. 신경쓰지 마시고요.”

유미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소희는 뭔가 떠오른 듯 헤에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하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미나 선배..... 이런 취한 나에게 뭘 할려고 했어요? 설마... 그 변태 짓하려고요?”

“뭔 소리야?”

“아니면, 가장 먼저 나보고 씻으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아 이거 교수님에게 들었어요. 모든 생물의 기본 적인 욕구는 '욕망' 이라고요. 그것이 이성이라는 벽을 부수기까지 한다고 말이에요. 전.... 괜찮아요. 미나 선배면 특히나 더욱!”

“등신 같은 소리 그만하고 얼른 씻어.”

유미나는 못 말리겠다는 듯 소희를 밀어넣었고, 소희는 미나 선배 변태~ 라고 말하며, 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희가 비틀거리며 입고있던 옷을 훌러덩 벗으며 휙휙 던졌고 미나는 잔뜩 취해버린 저년을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시선 속에서 옷을 주은 채 빨래함에 넣은 후 그녀의 몸에 맞는 옷을 찾기 시작했다. 



“뭐... 이 정도면 될려나?”

그러고보니, 정소희가 내 옷이랑 맞을려나?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라 자신이 주로 입는 실내에나 입은 옷이 맞을지는 모르지만, 소희가 나오면서 입기 편하게 화장실 문 근처에다 놓은 후 소파에 앉았다. 

 

불과 몇시간까지만 해도, 괴물이라니 뭐느니 하면서, 두려워하던 그때의 소희가 맞는지 싶을 정도로 이번 소희의 모습에 유미나는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숨기며, 화장실 안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물줄기 속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 정소희를 기다렸다. 금방 끝나나 싶었지만, 샤워가 이상할 정도로 오래 걸리자 유미나는 설마.... 싶은 생각 속에서,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정소희는 취기에 뻗어버린 듯 알몸인 상태로 샤워기 물을 그대로 튼 채로 벽에 기댄 채 의식을 잃은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정소희! 너 괜찮아!? 야!”

유미나가 몇번을 흔들자마자 굳게 감겨져 있던 적안의 눈동자가 서서히 뜨며, 유미나를 의식하듯 바라보았다. 자신의 앞으로 유미나가 샤워기에 물에 젖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몸을 붙잡은 채 흔들고 있었다.

“너 괜찮아?”

“선배.... 나 속이....”

그 대답에서부터, 유미나는 눈에 보일 정도로 정소희의 몸에서 꿈틀대는 불쾌한 '느낌' 을 감지했다. 아니야. 아닐거야. 제발. 막 왁스칠하고 청소했단 말이야! 굳게 다물었던 그녀의 입가가 서서히 벌리려고 하자 유미나는 필사적으로 정소희를 데리고 변기를 향해 얼굴을 대었고, 그녀의 두 귀에서는 술집거리를 걷다 보면 보이는 '파전' 이 어떻게 해서 탄생되었는지 가르쳐주겠다는 듯한 정소희의 괴로운 호흡과 함께 구에엑 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파고들듯 들려왔다. 

 



“진짜 얼마나 술을 퍼먹었길래..... 미치겠다 진짜!”

“미안....... 우윽.... 으엑!?”

정소희는 중얼거림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구토를 했고, 유미나는 한심한 시선으로 정소희의 등을 몇 번이고 두드렸고, 구토는 1분 넘게 이어졌다. 그제야 진정이 되었는지 거칠었던 호흡이 차차 안정화되었고, 유미나는 샤워기를 들어 정소희의 입가에 남아있는 토사물의 흔적을 씻겨내기 시작했다.



“하아....... 회식이 좋다좋다 해도 정도껏 취해야지! 너 혼자 잘하겠지. 생각한 내가 바보지 진짜. 내가 씻겨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 알겠어?”

“응.....”

정소희는 그렇게 말하며, 구토 이후로 멍한 시선으로 가만히 서있었고, 유미나는 온수 물을 조절한 후 몇 번이고 손으로 만지작 거린 후 등을 돌린 채 가만히 있는 정소희를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친 사이사이로,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힌 채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가리고 있는 그녀의 붉은 빛 눈동자가 힐끔힐끔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등부터 할게.”

“그러면서...... 날 희롱할 거지?”

“네. 네. 자기 몸가림도 못하는 후배님.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하세요.”

유미나는 고개를 저으며, 물을 튼 샤워기를 조심스럽게 소희의 몸을 대자 소희는 놀란 듯 몸을 흠칫하며,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샤워기의 물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흐르는 물 사이사이로 쓰다듬 듯 닦아내는 손 사이사이로 등에서부터, 목덜미까지 닿자 정소희의 얼굴은 점점 열을 받는 것처럼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시원해?”

“뜨거워.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어.”

“그러게 누가 그렇게 술을 마시래? 네 몸 하나 제대로 못 가누고 앉았고, 그리고 너 때문에 내 옷이 이렇게 홀딱 젖어버렸고 말이야. 너 샤워 끝나면, 나도 샤워를 좀 해야 하고.”

그렇게 말하며, 똑바로 보라는 듯 거울만 쭉 바라보고 있는 정소희를 향해 유미나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뜨거울 열기로 가득한 수증기 사이사이로 젖은 런닝셔츠 사이로, 검은색 속옷이 젖은 런닝에 눌러붙은 채 보이자 그녀는 더욱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진짜...... 아나스타샤 보다 더한 거 아니야?”

“우리 후배님이 만들었으니까요. 참..... 모처럼 새로 산 속옷인데 이렇게 홀딱 젖은 생쥐꼴을 만드셨으니까요.”

유미나는 그렇게 말하며, 긴 타월로 정소희의 등을 어루만지듯 쓰다듬었고, 정소희는 두 다리를 잔뜩 오므린 채 수치심과 창피함을 느끼며, 그녀의 손길을 받아드렸다.



“그런데 왠일이래, 간만에 회식을 하고. 연구동 사람들이 회식을 하는 경우는 잘 못 봤는데.”

“진행중이었던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된 기념. 이라고 하나?”

“진짜?”

“응..... 완성되었어.”

그 말에 유미나는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샤워기를 들며, 선홍빛의 머리칼을 향해 대었고, 정소희는 눈을 꾹 감은 채 유미나의 손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듯 감아주는 촉감을 느꼈다. 잠깐 샤워기를 끈 상태에서 평소 쓰는 샴푸를 짜낸 후 비비는 소리가 들려왔고, 머리를 비비는 소리가 두 귓가에서 들려왔다.



“어떻게 해서 완성 되었는데?”

“내가 더미를 베었는데, 그게 얼떨결에 성공을 했나봐.”

“네가? 우리 소희 후배님이 큰일 한 거잖아? 그럼.”

유미나는 그렇게 말하며, 잘되었다는 듯 미소를 지었고, 소희는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겉으로는 차갑고 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자신의 질문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우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나올만큼 차분하면서도 솔직하게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신나게 먹고 마시고 하고, 모처럼 청소했던 화장실도 한바탕 난리를 피었다는 거지?”

“죄...죄송해요. 미나 선배.”

“아니야. 진짜 너 전과는 다르게 진짜 변했다고 생각이 드니까.”

유미나는 그렇게 말하며, 샴푸로 충분히 머리를 감은 후 샤워기를 다시 틀었고, 샴푸거품으로 뒤덮은 소희의 머리를 씻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를 감쌌던 거품이 빠졌을 때, 칙칙하고 술기운으로 가득 찬 냄새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야 좀 사람 같아졌네.”

“내가?”

“어. 진짜 냄새 때문에 정말 짜증났거든. 이제야 좀 속이 시원해졌다고 할까? 움직일 수 있겠어?”

유미나의 대답에 정소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걸려진 수건을 꺼내며 잔뜩 젖은 그녀의 머리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귓가에 가득히 물기를 빨아들이는 수건 소리가 가득히 들려왔고, 젖은 수건을 세탁함에 놓기 위해 잠시 화장실 바깥으로 나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에서는 유미나가 미리 준비한 듯한 속옷외에 돌핀 팬츠와 런닝이 놓여 있었고, 화장실 내부에서부터 막 샤워를 시작한 듯 물소리가 가득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신과는 다르게 금방 샤워한 듯 유미나는 머리를 감으며 바깥으로 나왔고, 맨발로 터벅터벅 걸으며, 냉장고를 향해 걸어갔다. 뭘 꺼내는 걸까? 싶은 궁금증도 잠시 방그렛 이라고 적힌 바나나 우유를 든 채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자신에게 내밀고 있었다.

“이건.....?”

“방그렛 우유. 샤워한 다음에 마시면 진짜 기분 좋아.”

“기분이 좋다고? 이것도 술 같은 거야? 미나 선배 또 날 취하게 만들어서.....”

“아니야. 술 같은 건 아니고 말키스 같은 거라고 보면 돼.”

그렇게 말하며 의심의 싹을 핀 정소희를 진정시키며, 바나나 우유에 스트로우를 꽂았고 정소희는 조심스럽게 받으며, 한모금 씩 마시기 시작했다. 




“안 써. 몸이 뜨겁거나 어지럽지도 않고.”

“술이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 너 술 먹으면 또 뻗을 게 보이고.”

말했을 뿐인데도 끔찍한 순간들이 머릿 속에 스쳐고, 유미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저었다. 간만에 청소를 한 것들이 현계 생활을 처음 배운 후배의 '파전' 으로 인해 개판오분전이 될 뻔했으니까. 맛이 익숙해졌는지 가여히 쥐어진 바나나 우유에 손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꼭 쥔 채 한모금씩 마시고 있었다. 



“맛있지?”

“맛있어. 말키스와는 다르고. 이런 것들 어떻게 잘 아는 거야?”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친구들이랑 마셔봤거든. 그러다보니 알게 되었다고 할까?”

유미나는 그렇게 말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입을 가린 채 쿡 웃자 정소희도 같이 웃었다. 그 미소 속에서, 정소희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직 취기가 있나? 싶었지만 그녀는 뭔가 고민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닥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미나 선배.”

“왜? 아직도 취기 때문에 어지러워?”

“그런 건 아니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무슨 일이시길래 우리 후배가 이렇게 고민에 빠진 걸까나?”

유미나의 질문에 소희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나. 정직원이 되었어.'

 


“정직원?”

“어. 자신의 엘리트들을 구했다고. 프로젝트에 공헌한 것도 있다고 했고, 자기 입장에서는 단순히 '침식체' 가 아니라 '사람이면서 동시에 컴퍼니의 사원' 으로서 대하고 싶다고...... 근데........ 할 수 없었어.”

“뭘?”

“널...... 복직시키지 못했으니까.”

소희의 대답에 미나는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정소희를 바라보았다. 그 대답 속에서, 정소희는 아쉬움과 슬픈 시선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왜 거기서 내 얘기를 했어? 난 이미 정직인데.”

“혹시나 싶었어. 만약에 마음이 바뀌지 않았을까? 이수연... 아니 부사장도 마찬가지로 네가 아무 이유없이 미친 채로 연구동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정소희. 아무리 내가 그런 일에 휘말렸다고 해도, 굳이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어. 어떻게 됐든 간에 결국......”

“난 그게 싫어. 그렇게 인정하는 것자체가 싫었어. 그래서 사장에게 얘기를 한 거야. 물론 안 될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난 알고 있단 말이야! 네가 아니었다는 걸. 그리고...... 내가 본 넌 그렇게 미쳐버린 채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정소희의 대답에 유미나는 어떤 말을 꺼내야할지 망설여지면서 동시에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걱정하고 있구나. 그리고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구나. 정소희가 더 침울해기 전에 유미나는 방그렛 우유를 한 모금을 마신 후 화제를 돌리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정직원은 됐네. 너에게도 좋은 일이고. 거기서 조금만 적응해도 이제 연구동 격리실이 아니라 좀 더 넓은 곳에서 나가고 할 수 있잖아?”

“그렇다고 하긴했지만, 난 그래도....”

“이뤘고. 이제 그만큼 보여주면 되고. 아주 간단하잖아? 이제 조금만 자리를 잡으면, 힐데 대장이나 그 간신배기 녀석도 인정을 하겠지. 나도 마찬가지일거고.”

“내가?”

“응. 네가 그때 날 도와주지 않았으면, 난 이곳이 아니라 감옥에 있었을 테니까. 정말 너 없었으면, 연구동 사람들도 큰일 날 뻔했고. 그래도 날 걱정해줘서 고마워. 부사장님도 다들..... 마찬가지일거고.”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감시를 당하며, 자신이 저지른 짓거리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을까? 에 대한 트라우마로 가득찰 뿐인데, 가득 찼던 바나나 우유가 서서히 비워져 갔을 때, 정소희는 깊은 피로감이 몰려온 듯 눈을 감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아..... 널..... 지켜야 하는데.......”

“자도 돼. 오늘은 너 대신 내가 불침설 테니까.”

“그래도.....”

정소희의 대답에도 유미나는 읏챠 몸을 일으켜세우며, 정소희를 부축한 채 자신의 침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침대에 눕자마자 정소희는 뭔가가 깨진 듯한 느낌이 온몸에 퍼져왔고 눈을 감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밀려왔다.

“이상해.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어지럽고...... 그냥 자고 싶은 기분이 들어.”

“술을 하도 마시다보면, 그렇게 돼. 기어코 그 취기에 못 버티고 제대로 구토를 하고 앉았으니 더욱 몸이 지쳐나가겠지.”

유미나는 그렇게 말한 채 소희의 몸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불을 덮어주고 난 후 그녀는 머리칼이 쭉 퍼진 채로 누운 정소희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면, 정소희는 인형처럼 보였다. 없으면 이상하게 그리워지고, 무서움이 느껴질 때면 더더욱 찾게 된다고 할까? 턱을 괸 채 바라보는 자신의 눈동자 사이사이로, 정소희의 적안의 눈동자는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자 둬. 날 제대로 지키고 싶으면, 충분히 쉬어야지?”

“내가 깨어나면 이곳이 아니라 다시 그곳에 있을까?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창백한 그곳에서 나.... 다시 있을까?”

“그렇지 않을 거야.”

유미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지만 정소희는 불안함을 느끼듯 침식화된 손을 뻗으며, 유미나의 손을 잡았다. 온기가 퍼져오는 사이사이로, 차가우면서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아. 매일 눈을 뜨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서서히 잠식당하는 그 느낌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아. 다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이제 더 이상은.....”

정소희는 그 대답 속에서, 눈물이 흘러내림을 느꼈다. 무서워하고 있다. 목소리 하나하나에서부터, 떨리는 호흡과 경련 속에서, 더욱 더 자신을 놓치기 싫다는 듯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눈을 뜨면, 언제나 그랬듯 너에게나 도움을 받고 있는 등신 같은 선배가 자리를 잡을 거야. 아니. 이젠 너에게 선배라는 얘기를 들을 필요가 없을 거야. 소희야. 너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기에 난

 

'등신 같은 년이니까.'

 

그 말. 혹시 들었을까? 가늘어지는 시선 속에서,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소희는 눈을 감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꼭 쥐고 있던 손의 힘은 서서히 풀려지고 있었고, 추위를 느끼듯 경련이 일고 있었다. 감기에 걸리기 전에 유미나는 정소희의 몸에 확실히 이불을 덮은 후 자신의 스마트폰을 쥔 채 천천히 침대 방 바깥으로 나갔다. 

 


'사실 놀랐어요. 미나양은 모르시겠지만, 그 누구보다도 신경써준 게 정소희였으니까요. 아니 선배라고 해야 하나? 그때 정신를 차릴 겨를이 없을 때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미나양을 지켜주었죠.'

 

'왜 그렇게 한 건데?'

 

'미나양. 소희 선배에게 그 말은 실례라고요?'

 

뭐가 실례라는 건데? 이미 알고 있는 양 지껄이는 주시윤의 말투는 전부터 재수없게 느껴졌지만, 뭐라고 반박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게 화가 났다. 그동안 자신이 나가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가식과 거짓으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을 조소를 보내던 곳들과는 달랐으니까. 

 

만약..... 미친 소리지만, 정소희가 이 모든 걸 자신을 엿먹이기 위해 한 거라면? 아니. 자신이 정직원이 되기위해 날 이용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할 수 없었지만, 유미나는 자신의 안에 꿈틀거리는 역겨운 '질투' 의 싹이 피어나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하아...... 유미나 너 진짜 개 쌍년이 된거야?”

그 물음 속에서, 자신의 방그렛 우유를 한 모금을 마셨지만, 그 감정은 단 맛이 나는 음료수로는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밤은 더욱 깊어지고, 그 짙게 깔린 틈으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자신의 안에서 더욱 더 머릿 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선배라고 불러야하는 건 너야. 정소희. 난 이미 모가지가 날아가고 칼부림을 저지른 쌍년에 불과하니까.”

그 대답 이후로, 유미나는 자신의 손에 쥔 스마트폰을 드래그를 하며, 움직였다. 게임이나 할까? 싶은 생각 와중으로, 그 이후로는 손도 대지 않을 것 같았던 '카운터 구직' 앱이 눈에 들어왔다. 게임 아이콘 옆으로 자리 잡은 그 앱은 유미나의 모든 시선과 감각을 집중하게 끔 만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미나는 눈을 감았다 뜨며, 스마트폰의 앱을 터치를 하며, 하나하나 신중한 시선으로 드래그를 하며, 차근차근 살펴보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