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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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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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는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시간대이죠. 혹은 그 만든 세계를 쉽게 부셔버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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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 정말 이 인자가 맞는거야?”

“인류의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일인만큼 이번에 내가 직접 확인 한 거야. 그러는 너야 말로 쓸 때 없는 짓을 해서 모처럼의 추출한 인자를 망가뜨리지 마.”

둘의 살벌한 신경전 속에서, 이윤정은 난데없는 전쟁터의 한복판에 온 기분이었다. 모처럼의 자신감을 가지고, 열기있게 시작하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서로가 스쳐지나가면 스파크가 터지는 것 같은 분위기에 그때의 이윤정은 온데간데 없이 팍 식어버리고 말았다.



“저기 교수님..... 각 혈액 샘플을 분석해서 자료를 가져왔는데.......”

“거기에 올려 놔.”

평소라면, 상냥함 속에서 비수를 숨기는 그녀의 목소리가 울릴 것 같았지만 그녀는 '불쾌한 방해꾼' 의 존재 때문인지 안색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기기를 보조하는 사이사이로 그녀의 움직임은 거칠었고, 기기장비를 옮기는 아나스탸사는 보기만 해도 돌이 걸릴까봐 시선을 피한 채 그녀를 지나쳤다.



“교수님.... 어떤 가요? 지금 세분의 혈액에서 특별한 것이 발견되었나요?”

“일단은. 로알 씨의 말대로라 특수한 인자 성분이 검출되긴 했어. 다만 이것을 추출하는데 제한이 있는게 문제지.”

“다행이네요..... 그럼 이 인자를 이용한다면.....”

“다만 내 옛 조수가 저걸 망칠까봐 문제지.”

올리비에는 그렇게 말하며, 실수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시선으로 그녀를 째려보았다. 자신이 이곳에 새로운 조교로 들어올 때까지, 둘의 관계는 개와 고양이급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체르노바 씨도....... 그동안 저희 컴퍼니에 근무하시면서 게을리 하지 않으셨잖아요......”

“게으르다. 라는 수준에서 끝내는 문제가 아니야. 현실은 그런 요소들을 신경 안쓰거든. 특히나 이 일에서 그 비중이 높은 편이고. 조교야. 내가 있는 위치에 들어오면 그만큼 거기서 끝나고 자유를 얻게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자리는 시작이라는 걸 명심하고 있어야 돼. 확실한 결과를 그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면 밀려나는 게 현실이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료를 건네달라고 손짓했고 이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추가 자료를 건네주었다.



“체르노바는 그런 여자는 아니야. 매번 그 결과를 도출하는 부분에서 나의 방향이 마음에 안들었다고 했었으니까. 같은 생물학 출신이라고 하기에도 꽤나 이질적이었지.”

“그때 평가하시는 분들께서는 체르노바 씨의 연구도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었어요. 그리고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체르노바 씨에게 인수인계 때 많은 도움이 되었구요.”

이윤정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자신이 강조하는 '결과 도출' 이라는 과정에서 자신의 발목을 잡는 것들이 섣부르게 붙잡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올리비에는 각 셋의 샘플에서 인자가 있는 걸 확인해 이윤정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인자 추출실로 이동해 인자를 추출하기 시작했다. 추출기가 서서히 회전하며 안경을 쓴 그녀의 두 눈 앞으로 비추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눈 앞으로 평가원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자신이 준비한 프로젝트는 끝나 있었다. 평가는 끝났으며, 자신은 발걸음을 옮겨 나가고 쉬며, 그동안 귀찮게 자신의 머릿 속을 채우던 연구라는 이름의 '불' 을 끄면 그만이었다. 다만 지금 앞에 있는 이 '기억' 이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혹시 궁금한 사항들이 더 있으신가요? 혹은 제가 이야기하는 자료에서 문제가 있다던가?”

“아. 물론 교수님의 방법에 대해서는 불만은 없습니다. 교수님이 저희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 전에 말씀하시듯 이 모든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변화' 이면서 동시에 그 변화에 대한 확실함을 보장하는 '도출' 에서 비롯되니까요.”

평가원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앞에 놓여진 자료를 그녀에게 추가로 보여주었다.



“이건.....?”

“그때 논문입니다. 물론 교수님의 자료에 대해서도 만족스럽긴 합니다만 체르노바 양이 분석한 자료들 또한 흥미롭더군요.”

그 대답에 그녀는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조교의 생각은 언제나 저돌적이라서 말이죠. 함부로 그 자료들에 신뢰를 가지시면 안 된다고 봅니다.”

“이상하군요. 교수님이 저희 학생들에게 가르친 말들 중에서 '결과' 를 만들기 위해서는 '틀' 에 갇히면 안된다고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당시 교수님의 몸 상태가 안좋았을 때, 그녀가 저희에게 보여주었던 포트폴리오와 자료들은 저희가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느껴졌거든요.”

그의 대답에 올리비에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혹시나 자신이 당황해했나 확인하는 그의 모습에 절대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당시 제가 컨디션이 좋지 않았으니까요. 오히려 임시적으로 조교가 대신 발표를.....”

“임시적으로 말했다고 해도 당시 심사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교수님. 결국은 그녀가 저희에게 얘기한 게 아닌가요? 오히려 교수님이 체르노바 양에게 기회를 주었고 그녀는 저희를 놀라게 할 만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요.”

평가자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올리비에는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이었다. 그는 진지한 시선으로 그녀에게 조언을 했다.



“교수님. 천재라고 해서 자기 혼자서 이룩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그건 자만이고, 오만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죠. 제가 교수님에게 묻고 싶은게 이겁니다.

 

'교수님이 추구하는 방향이 오히려 추후의 미래를 책임지게 될 학생들의 방향을 억압하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물론 올리비에 교수님이 그렇게까지 학생들의 길을 막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만약에 교수님이 준비한 연구와 결과물에서 '결점' 이 발견 된다면, 그것을 바로 잡는 '조교' 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그것을 모른 채로 독단적인 길을 가서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는 수많은 과학자들 또한 지켜보았으니까요.”

그 물음에, 올리비에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틀릴 수가 있다고?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럴리가 없다. 애써서 눈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그 대답은 매번 자신을 자극했다. 

 


“교수님....? 교수님.... 추출이 끝났습니다...”

“어? 어..... 수고했어 조교야.”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며 인자를 분석한 자료를 확인했다. 그녀는 그 자료를 아나스타샤에게 보내달라고 시선을 보냈고 그녀는 자신의 남은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녀는 깊게 호흡을 하며 쌓여가는 '쓰레기' 들을 지워버리듯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윤정이 샘플을 들고 공방으로 이동했을 때, 공방의 제작기들은 가동하고 있었다. 여러 빛이 화려하게 비추며, 회전하는 사이로 카운터 장비등 각종 기기들이 생산되고 있었고, 완성된 형태의 장비들은 하노마크의 레기온들이 집적 장착하며,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레기온들이 그녀가 만들어낸 제식 소총과 갑옷의 유연성과 외골격등을 움직이며, 확인 하는 사이로, 아나스타샤가 공방 내부로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인자 가지고 온 거야?”

“네. 각 인자들을 추출한 샘플이랑 당시 전투구역에서 추출한 목표 샘플이에요. 이제.... 이 인자를 이용해서 장비를 만들고 테스트를 해달라고......”

이윤정의 대답 속에서,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한손에 들고 있는 장비들을 내려놓은 채 내용을 살펴보았다.



“어디보자 추출한 인자를 이용한 장비... 그리고 당시 현장에 있던 '목표' 침식체의 샘플을 이용해 더미를 한 다음 녀석에게 통하는지 체크를 하면 되는 거지?”

“네. 장비가 완성되는 되면.... 본격적으로 생산을 하면 되구요....”

“제작은 쉬워. 문제는.... 이 나쁜 아이에게 제대로 먹히느냐가 문제지.”

아나스타샤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손짓했고 장비를 테스트 중이던 하노마크의 레기온들이 다가와 각 샘플의 자료들을 가지고 왔다. 



“일이 끝났으면 돌아가도 돼. 시간이 좀 걸리니까.”

“교수님께서 '결과' 를 두 눈으로 직접 보라고 하셔서요...... 이대로 가면 전 다시 철야를.....”

이윤정은 그 생각에 당장이라도 닭살이 돋았다. 그녀는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 편히 앉으라고 손짓했고 그녀는 감사합니다.....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레기온들이 더미를 셋팅하고 장비 제작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기지개를 피며, 영웅심이라는 불꽃이 꺼진 채 망자가 되어버린 조교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박정자가 엄청 괴롭히나 보네?”

“아.... 저기... 그 이름을 부르면.....”

“난 괜찮아. 이미 그 여자의 '눈' 에서 벗어났으니까. 오히려 네가 그 이름을 부르면 클나겠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공방에 기기들에 다가갔다. 인자 샘플을 넣은 후 수량에 맞게 입력 후 제작을 하기 시작했다. 제작 캡슐이 그녀의 눈 앞에 올라가며 제작이 활성화 되는 동안 그녀는 기지개를 핀 채 이윤정이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제작은 시작됐어.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어.”

“효과가 있을까요?”

“....... 터프 가이의 말이 맞다면 분명 놈들에게도 통하겠지? 일반적인 침식전 녀석들로는 상대가 안된다고 했으니까. 그러고보니 이윤정이라고 했나?”

“네...... 교수님의 수발이면서 동시에 걸어다니는 복사기 커피머신.... 입니다.”

다시 봐도 그 인간이 얼마나 작정하고 골수까지 뽑아먹는지 알겠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넋이 나간 채 지친 기색을 드러내는 이윤정의 옆에 앉았다. 



“이제 몇년 되었어?”

“모릅니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 시설내에 있다보니, 하루가 무엇이고.... 전 어떤 존재이며....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죠.”

“하긴.... 내가 조교였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런 식으로 굴려먹다보면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으니까. 매일매일 그런 식이었지. 생각만해도 화가 날정도였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옆에 있는 커피를 마시려고 했지만 잔이 텅텅비어 있었다. 흐음. 소리를 내며 일어나 커피를 꺼내려고 했을 때, 이윤정은 품 속에서 여분의 에너지 드링크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연약한 생물에게 이런 선물을 받을 줄이야?”

“철야의 기본적인 물품들 중에 하나죠.... 그래야 교수님의 스케줄에 맞춰서 정리를 할 수 있으니까요.”

“맞아. 그게 조교의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하겠지. 아직도 기억하나 보네?”

아나스타샤는 에너지 드링크를 한모금 마신 후 축 처진 그녀의 옷을 다시 손질하듯 다듬어주었다. 하아.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윤정은 카페인에 심취하기 전부터 옷 매무새를 제대로 다듬지도 못했다. 그나마 카페인이라는 인류에게 있어서 최고의 성분을 발견해서 그나마 나았지만 교수에게 철야와 갈굼에 시달리게 되면, 언제나 그랬듯 초기화가 되어버렸다. 



“네..... 그렇게 기억하지 못하면 결국...... 교수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으니까요.”

“뭐, 그 여자라면 그러고도 남을 만한 인간이겠지. 그 인간은 내가 조교때부터, 은근 짖궃기로 유명했거든.”

그녀는 뭔가 떠오른 듯 큭큭 거리며 에너지 드링크를 한모금 마셨다. 이윤정은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에너지 드링크를 한 모금마시자 그녀는 흠? 소리를 내며 이윤정을 바라보았다.



“궁금해?”

“시간은 충분해요..... 실험결과를 봐야하니......”

그녀는 누적되는 피로를 털어버리듯 기지개를 피는 사이로, 그녀는 돌아가는 제작기의 회전하는 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빛이 한 번씩 돌아가며 자신의 두 눈에 들어오며 스쳤을 때, 그 앞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이 눈에 들어와 있었다. 스마트폰에서는 급하게 보낸 듯한 흔적과 전화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서류정리는 이미 끝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발목을 잡는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다. 지금의 자료라면, 그녀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또 무슨 문제인가? 싶은 생각 속에서 그녀는 잠겨진 스마트폰을 슬라이드 하며 잠금을 해제했다. 

 


[조교야. 미안한데, 좀 와줄 수 있겠니?]

 


박정자. 정말 이 여자는 편안하게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걸까? 내용을 보자마자 짜증이 확 올라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자료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듯한 내용은 아니었다. 아나스타샤는 깊게 한숨을 내쉬는 사이로 저만치 달려오던 버스는 이윽고 자신의 눈 앞까지 도착하고 있었다. 



“박정자 이 인간도 참 답답하다니까....”

그녀는 한숨 속에서, 내려놓았던 자신의 가방을 들고 터벅터벅 걸으며 산행이나 다름이 없는 연구동으로 걸어 올라갔다. 과 수업은 한참 끝난 교실 내부에는 인적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짙은 정적만이 가득했다. 자신의 유일한 낙이었던 버스가 저만치 가는 듯한 엔진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아나스타샤는 올리비에가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하아... 교수님. 문제가 있으면 제발 이야기좀 해주......!?”

아나스타샤의 짜증섞인 말투 속에서 문을 열었을 때, 자리에 앉아 있던 그녀의 옆모습에서부터 안색이 좋지 않아보였다. 지친 듯한 신음 속에서 자신을 향해 바라보았을 때, 그녀의 얼굴은 눈에 보일 정도로 짙은 홍조가 가득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그녀의 물음에도 그녀는 어떤 대답도 없이 자신의 머리를 손에서부터 떨어지지 않은 채 감싸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을 때, 손에서는 엄청난 열이 그녀의 몸에 퍼져있었다.



“어떻게 된 거에요? 오전까지는 멀쩡하셨잖아요?”

“그게.........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더이상은 못 버티겠어.... 이젠....”

그 대답도 잠시 그녀는 앉기조차 힘들 정도로 주춤거렸고, 아나스타샤는 쓰러지려는 그녀의 몸을 부축했다. 그녀를 부축해 옆에 있는 침대에 눕히자마자 아나스타샤는 옆에 있는 체온계를 꺼내 그녀의 체온을 확인했다. 체온계는 이미 새빨갛게 39도로 표시되었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올리비에를 바라보았다.



“교수님 본인이 얼마나 정신나갔는지는 아세요?”

“조교야......? 말이 심해진 것 같은데......?”

“당연하죠. 지금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앉았으니까요.”

“좀 쉬면 괜찮을 거야...... 그 전에 약 좀 먹으면 되니까.....”

올리비에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지금의 그녀의 상태는 단순한 약으로 먹고 넘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체온계는 이미 그녀의 몸에서 벗어났는데도  여파가 남았는지 40도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 다음에 발표를 준비하면 문제 없을 거야...... 열만 잡으면......”

“하아..... 진짜......”

당장이라도 온갖 폭언을 쏟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나스타샤는 가방을 세차게 내던지고 자리에 일어났다. 그녀의 귓가에 울려퍼질정도로 세찬 발소리와 함께 쾅 소리가 들릴 정도로 문을 닫았다. 잠시 후 발소리가 들려오며 문이 열렸을 때, 그녀는 아포칼립스 편의점 봉투를 자리에 내려놓고 연구소 옆에 있는 냉장고를 연 후 뭔가를 꺼냈다.


 

무엇을 준비하는 걸까 싶은 시선 속에서, 그녀는 요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후각에서 부추향이 부드럽게 스며들었을 때, 아나스타야샤의 손에는 부추죽이 담겨진 그릇을 그녀의 책상 옆에 옮기고 있었다.

“일어나세요.”

그녀의 대답에 올리비에는 말없이 열에 짓눌린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녀가 입가에 후 불며, 우동용 플라스틱 스푼으로 죽을 담고 내밀자 그녀는 말없이 먹었다. 몇 번을 먹이고 난 후 그녀는 그녀가 집적 먹게 냅뒀고, 그녀는 묵묵히 자신이 만든 죽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어.......”

“맛있는 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다리를 꼰 채 눈 앞에 있는 문제가 남아있다고 시선을 보내듯 바라보았다. 올리비에는 부추죽이 담긴 그릇을 옆에 놓고 막막해진 상황에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곧 생물학 논문을 발표를 하셔야하는데, 지금 상태로 발표를 하실 수 있으세요?”

“물론 조교야. 아무리 내가 널 부려먹는다고 해도 발표는......”

그 대답도 잠시 그녀는 가래가 끓어오른 듯 심하게 기침을 했고 아나스타샤는 옆에 있는 티슈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가래를 휴지 뱉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이로 올리비에는 송곳에 찔린 듯한 통증을 느끼는 자신의 가슴을 몇번이고 어루만졌다. 그녀를 바라보는 아나스타샤의 시선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느껴졌다.



“다른 발표와는 다르게 이번 발표는 교수님의 연구비와 관련된 발표잖아요. 다른 발표보다 가장 중요한 발표라고 저에게 몇 번이고 얘기를 했고요. 근데 이 몸 상태로 발표를 하면......”

“연구비고 뭐고 없겠지? 모처럼의 교수라는 이름에 먹칠을 할 거고.”

그렇게 말하며 올리비에는 자신의 앞에 놓인 자료를 향해 손을 뻗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손을 뻗으며 고개를 저었다.



“조교야?.....손 좀 치울래?”

“쉬세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난...... 발표 준비를 해야 돼..... 음식은 고마우니까. 이제......”

“그 몸 상태로 발표를 하다가 쓰러지면, 망신만 당하니까. 쉬라고요.”

“하지만 내가 발표를 안하면, 연구비조차도 받을 수 없는데......”

 


'제가 할게요.'

 


그 말. 처음에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한쪽눈을 드러내고 팔짱을 낀 채 다리를 꼰 이 조교는 결정했다는 듯 자신에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이 발표를 네가 어떻게 준비하겠다는 건데?”

“옆에서 본 게 있으니까요. 그걸 기억하면서 발표를 해야죠.”

“그건 내가 허락 못해. 이 발표는 연구자금과 연관되는 중요한 발표라서 더더욱 내가 해야 한다고....”

“지금 그 상태로는 발표하다가 초상치르고 싶으신거에요?”

“아나스타샤. 장난은 됐으니까 자료를 줘. 이건 교수의 요청이야.”

그녀의 완강한 대답에도 불과하고 그녀는 웃기지 말라는 듯 그녀의 연구자료를 낚아챘다. 



“아나스타샤. 너 진짜.....!? 그 자료 당장 내놓지 못......!?”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발표를 하실려고요?”

아나스타샤는 그렇게 대답하자 그녀는 콜록거리며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가볍게 피하며 그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

 


“너....... 후회 할 줄 알아...... 내 모든 걸 준비한 걸 네가..... 다 망치려고 하는 거야?!”

“야 박정자!”

진짜 답답한 인간. 아나스타샤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며,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에 찰싹 달라붙었던 그녀의 움직임이 굳어버린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지금 그 상태로 어떻게 발표를 하겠다는 거야? 시간은 없고, 이대로 질질 끌다가는 우리 모두 다 개망신당하고 연구자금도 끊길 텐데, 그딴 식으로 쌩고집 피울거야? 참다참다 하니까. 야 박정자. 당신이 이악물고 고집하는 거랑 능력에 대해선 내가 뭐라고 안해. 근데, 지금 그 몸 상태로 뭔 재주로 발표를 하겠다는 거야?”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건데!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넌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돼! 그리고 그 자리는 내가 빛을 내야하고!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란 말이야!”


 

'그 자리를 빛내지도 못할정도로 몸이 망가졌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그녀의 대답에, 그녀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씩씩거리며 화를 내는 그 사이로 심한 기침이 그녀를 붙잡았고 이내 무릎을 꿇었다.


 

“그래..... 포기할게. 포기하면 되잖아....... 그래. 알겠어. 네가 내 뒷치닥거리가 싫은 거 알고 있으니까. 나가도 돼. 발표는 알아서 할테니까. 그걸로 하자. 그럼 너도 나도 편하잖아?”

그녀의 대답에 아나스타샤는 다 내팽겨쳐버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자신의 몸이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왜? 그 생각도 잠시 자신의 마음 속에서 삼각형의 날카로운 꼭지점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살갗을 파고드는 것 같은 통증이 퍼져왔다. 그 앞으로 열려진 문 옆으로 자신이 내팽겨진 가방과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박정자. 당신이 자초한 거야.”

그 대답도 잠시 그녀는 문을 닫고 자신의 가방을 발로 걷어 찬 채 자신의 자리를 준비했다. 

“너 하기 싫다고 하지 않았어?”

“보드카 마시고 사고치기 전에 좀 쉬세요. 알겠어요?”

그 대답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자료들과 그녀의 자료를 보면서 문서 정리를 시작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막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지만 시야가 흐릿해졌고,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인데, 머리는 돌에 맞은 것처럼 심한 이명이 퍼져왔다. 그녀가 눈을 뜨고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준비한 자료들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옆으로 따뜻하게 익은 것 같은 그녀의 부추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음식의 향을 보자마자 허기가 졌지만, 열 때문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아나스타샤가 가스불을 끄기 위해 잠시 일어났을 때, 그녀가 자신이 일어났다는 걸 느낀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철야를 한 탓인지 지친기색이 역력해보였다. 첨엔 당연시 되다 싶었지만, 이상하게 그녀는 그 얼굴을 정면으로 보는 것조차 힘겹게 느껴졌다. 아나스타샤는 초췌해져버린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내뱉으며, 도저히 못 보겠다는 듯 시선을 옮겼다.



“......가도 괜찮다고 했잖아....... 어차피 끝나버린 발표인데......”

“생물학의 기본 원칙은 불가능하다는 감옥에 자신을 가두면 안된다. 라고 하셨잖아요?”

“그거랑 이건 달라........”

“아니요. 같아요.”

아나스타샤는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친 기색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자신이 마련한 자리를 집이라고 생각하듯 그곳을 결코 떠나지 않았다. 

 


“진짜....... 제 멋대로구나 넌........”

“이렇게 연약하신 생물께서 눈 앞에 있는 걸 못드시고 앉았는데....... 제가 얼마나 속이 터지는지 아세요?”

“....두고봐..... 이걸 해준다고 내가 널 용서할 거란 생각은 꿈도 꾸지 마.”

그때, 정말로 자신을 끝장낼 생각이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고, 남은 자료를 꾸역꾸역 정리를 하며 가까스로 논문을 만들었고, 그들의 앞에서 당장이라도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닦으면서 발표했던 순간들을 기억했다. 



 

“......그래서 발표는 어떻게 되었나요?”

“자금이 날아가지 않을 정도로만 해줬어. 근데, 평가원들 대부분이 새로운 시도라고 하면서 칭찬하더라고. 내가 정리한 자료라고 해봐야 그 여자가 준비한 것에 절반도 안했는데....... 사실 뭔가 허전해보인 것만 채우고 논문을 발표했을 뿐이거든.”

“그럼 다행이라고 해야죠...... 그런 상황이 터지면, 심하게 멘탈이 나가서 발표못하시는 조교들도 많은데.........”

“나도 마찬가지였어. 박정자 그 인간에게 시원하게 소리치긴했는데, 막막하긴 했거든. 시간은 얼마 없지 그렇다고 다 때려치우고 가면 자금도 끊기고, 내 경력에도 심하게 오점이 남기지.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게 된 거지.”

차라리 그런 단순한 이유들이었다면? 그랬다면 속편하게 나갔을까? 아니면 보드카를 하나 들이키면서 일을 했을까?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그녀의 머릿 속을 스쳤지만, 결국은 의미없는 생각에 불과했다. 결국 자신이 '실행' 했고 '의외에' 결과물이 나와버리고 말았으니까.



“왜 떠나신 거에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좋은 반응에 연구자금까지 받았는데.....?”

“전공이 안맞는 건 둘째치고 그런 끔찍한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거든. 그 일이 한번만 더 터지게 된다면 농담아니라 보드카 먹고 그 여자 두들겨 팰 것 같으니까..... 하아... 진짜 고집도 적당히 부려야지......”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이윤정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채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뒤로 매일 신경전을 펼치긴 했지만 그 일에 비해서는 어린애 장난수준이었다.



“그래도.... 교수님께서도....... 감사하고 계실수도 있어요.....”

“우리 불쌍한 조교..... 그 모기 같은 인간에게 뇌수까지 빨려서 이상한 소리하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제가 아무리 카페인에 양념이 되었다고 해도..... 어떤 기분인지는 알 것 같기도 해요.....”

고집이라는 추악한 여신의 제물이 된 이윤정의 등을 두드려줬을 때, 제작기에서 생산이 완료된 듯 빛을 발화하고 있었고 아나스타샤는 시작인가 싶은 시선으로 자리에 일어났다. 제작기의 각 장비들이 그녀의 손을 통해 이동되었고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두 기의 레기온들이 제작된 장비를 무장하고 테스트 사격장으로 이동했다.


 

“이제..... 이 녀석들이 제대로 동작하는 지 확인해봐야겠지?”

둘은 그 대답 속에서, 더미를 향해 사격을 준비하는 레기온을 확인했다. 잠시후 레기온이 몇 발을 향해 사격했다. 사격 중에 실시간으로 목표를 확인하는 둘의 시선에서 긴장감이 퍼져왔고 잠시 후 기록된 결과가 빠르게 스캔이 되며 화면에 드러났다.



“.......그럴리가 없어.”

“저기..... 성공한 건가요?”

이윤정의 물음도 잠시 그녀는 레기온들에게 사격을 중지시키고 자신의 제작 기록을 다시한번 확인 했다. 재원은 문제가 없다. 이윤정이 가지고 온 인자 기록 데이터를 확인했지만, 채취한 샘플의 문제도 아니었다.



“아나스타샤 씨? 문제가 생겼나요?”

“.......확인해봐야겠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연구동으로 향했고, 그녀는 장비 테스트 결과물을 들고 빠르게 그녀를 따라 연구동으로 향했다.



/

 


“대상 침식체에 아무런 피해를 못 입었다고요?”

그녀의 대답에 올리비에는 믿지 못하는 시선으로 테스트 기록을 면밀히 확인했다. 남은 단어와 변수까지 확인한 후 아나스타샤와 올리비에는 최악의 결과을 맞이하고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빠뜨린 게 있어? 당시 플라티나가 수송 중에 공격받았다고 했으니까.”

“플라티나 문제는 아니에요. 플래티넘 특급 배달원이 배달했으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재원을 확인했을 때, 샘플들이 손상되지도 않았잖아요.”

“그럼 충격 문제는 아닐거고...... 샘플 인자 기기 점검은 한거야?”

“당연하죠. 조교가 확인하고 제가 바로 확인하니까요. 그리고 아나스타샤도 이미 두 눈으로 확인했잖아요.”

“저기..... 두 분 무슨 문제인가요? 혹시 제가 실수를.....?”

이윤정이 자신의 잘못인가 싶은 시선으로 올리비에를 바라보며 묻자 그녀는 일단 설명을 해줘야 하겠다고 판단한 듯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 제작한 장비로는 벨치카 함대에서 발견한 신종 침식체에게 어떤 피해를 줄 수가 없어.”

“네!? 말도 안 돼요. 샘플은 분명..... 로알 제독님이랑 프람 소대의 소대원분들의 혈액샘플인걸 제 두 눈으로 확인했다고요!”

“조교 말대로야. 터프가이랑 소대원의 카운터 와치도 분명 본인들꺼였고.”

“분명 지금의 제작방법이라면 분명 추출된 인자들이 장비에 부여됐을 거고 더미 테스트에서 성공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왜 테스트에서 실패가 뜨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둘의 설명이 끝나자 이윤정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다. 둘은 여러변수들을 최대한 좁히며 문제를 찾아보듯 서로에게 질문을 꺼내기 시작했다.


 

“조합식은 확인했어요?”

“이미 확인했어.”

“혹시나 변수가 발생되서 인자가 소멸될 가능성은요?”

“그렇게 미약한 형태였다면, 내 애들은 침식전에도 효과도 없었겠지.”

“아나스타샤.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되잖아요!”



“잠깐. 당신 설마 지금 문제를 또 나에게 떠넘기는 거야?”

“그럼 변수조차 없어야 할 상황에서 왜 테스트에서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나오는지 설명이 안되잖아요!”

“그럼 박정자. 당신. 인자 추출했을 때, 한눈이라도 판 건 아니지?”

“뭐요? 터무니 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당신이야 말로 제작 중에 인자를 날려먹어서 이상한 장비를 만든 건...!?”

“결국 또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 그때처럼!?”

올리비에의 대답에 아나스타샤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박정자. 넌 맨날 그랬어.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남에게 뒤집어 씌우고 그 잘난 교수직 유지하려고 발버둥쳤잖아? 그러면서 쓸모없으면 버리고 말이야.”

“아나스타샤. 그 이야기로 시간을 쏟을 때가 아니에요.”

“아니라고? 지금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뒤집어씌우고 앉았잖아!”

그녀의 외침에 올리비에는 어떤 대답도 꺼낼 수 없었다. 



“박정자. 너 같은 여자는 그때 평생 낙인을 찍어버렸야 했어. 그때 망설였던 내가 바보였지. 그딴 더러운 고집 때문에 썩어나가버린 걸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그녀의 대답도 잠시 이윤정은 아나스타샤의 뺨을 쳤다. 갑작스러운 후려침에 올리비에는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교야...?”

“아나스타샤 씨. 그 이야기..... 거짓말이었나요?”

 

'제게 들려준 이야기는 그런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냐고요!'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나스타샤 씨도 교수님을 많이 이해하면서 같이 협업을 하고 계시는 구나 생각했어요. 과거에 안 좋은 일이 있다고 해도 끝까지 책임을 졌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아나스타샤 씨는 제가 생각했던 그 사람이 아니에요. 교수님보다 더 비겁하게 도망을 치려고 하잖아요!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녀의 외침에 아나스타샤는 이윤정의 멱살을 붙잡았지만 이윤정은 곧바로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올리비에가 침묵 속에서, 지켜보는 사이로 아나스타샤는 터질 것 같은 분노를 터뜨리듯 옆에 있는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고, 책상에 쌓여있던 자료들과 실험 도구들이 한꺼번에 엎어졌다. 그 이후로 연구동은 실패에 대한 끔찍한 결과에 짙은 침묵이 오고갔다. 올리비에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은 채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교야.... 잠깐만 숨 좀 돌리고 와..... 부탁이야.”

“죄송합니다.... 교수님.....”

이윤정은 한숨 속에서, 연구동으로 나갔고 아나스타샤는 널부러진 자신의 장비를 챙기고 차가운 발걸음을 옮기며 연구동으로 나갔다. 둘이 나가자 그녀는 철렁내려앉을 뻔한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다가 처참한 결과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

 


환하게 들어오던 연구동의 불은 소름돋을 정도로 짙은 어둠과 정적이 깔렸을 때, 공방 내부에서는 지독한 취기의 냄새가 가득히 번지고 있었다. 안에서는 테스트를 위해 대기 중인 두 기의 레기온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녀는 옆에 놓인 보드카를 병째로 들이키고 있었다. 레기온들의 입장에서 그녀의 모습은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테스트는 끝났어요~ 그러니 좀 물러나 주겠어~ 터프가이들?”

그녀의 명령에서야 레기온은 인식한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그녀의 눈 앞으로 자신이 만들었던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날카롭고 강한 녀석들. 하지만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저 '더미' 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제게 들려준 이야기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포장이었나요?'

 


그 말은 자신의 뇌리에 박힌 듯 환청처럼 들려왔고 그녀는 곧바로 보드카를 들이켰다. 후우 소리를 내며, 옆에 자리에 놓는 사이로, 느끼지 못했던 취기가 온몸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보통이라면 가볍게 넘길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예민해진걸까? 보드카를 한모금을 마시기 위해 병을 들었을 때, 손등에 따가운 통증이 느껴졌다. 멀쩡했을 것 같았던 자신의 손에는 뭔가에 깊게 베인 상처가 새겨져있었고, 피는 딱딱하게 굳으며 갈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하아..... 진짜.... 오늘은 최악이네.”

그녀는 한숨 속에서, 자리에 일어나며, 공방 문 밖으로 나갔다. 시간은 이미 새벽 대였다. 그럼 남은 곳은 저기인가? 싶은 시선으로 올리비에가 있는 연구동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뒤엎어버린 것들이 많았으니까. 



“뭐...... 출혈은 멎었으니까 그냥 간단하게 반창고라도.......”

없다. 분명 여분은 준비했었던 것 같은데, 품 속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은 텅텅 비어져 있었다. 진짜 준비를 한 거 맞는 거야? 그녀의 짜증스로운 시선으로 텅텅 빈 반장고 박스를 버렸을 때, 불이 반정도 꺼진 연구동 복도에서 누군가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이윤정인가? 싶었지만 그녀 특유의 지치고 비틀거리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실루엣은 자신을 인식했는지 천천히 창백한 색채의 복도를 걸어왔다. 그 실루엣이 서서히 전등이 들어온 복도에 들어왔을 때 그녀의 눈에 익숙한 펄스 리볼버와 유미나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미나씨? 퇴근하지 않으셨어요?”

아나스타샤의 물음에도 그녀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차가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비에 이상이 있는 건가요?”

“......어......”

“그럼 모처럼의 정비를 해볼까요?”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뒤에 있는 보드카를 숨긴 채 머릿 속에 터질 것 같은 취기를 억누른 채 그녀를 향해 등을 돌렸다. 터벅터벅 걷는 그 발걸음 사이로, 인형처럼 무표정을 짓고 있는 미나의 입가에서 누군가를 죽일 수 있게 되었다는 광기의 미소가 새어나오며 빠르게 달려왔다. 아나스타샤는 위협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을 때 그 앞으로 그녀의 허리춤에 찬 검이 급소를 찌르려고 했었고, 그녀는 그녀의 검에 손을 잡은 채 공격을 저지했다.




“미나씨... 왜....!?”

“아..... 당신이 가지고 있는 살과 피.... 너무 맛있어보여. 보고 싶어. 고통스러워하는 걸. 그걸 줘....... 당신의 육신..... 아가씨가 보면 날 선택할거야. 날 보며 미소를 짓겠지......”

미나는 킥킥 거리며, 날에 베인 채 피를 흘리는 그녀를 발로 걷어차버렸고, 그녀의 몸은 굳게 닫혀있던 공방문을 뚫고 바닥에 처박혔다. 미나는 호흡은 점점 거칠어진 채, 짙게 깔린 피의 흔적을 따라 공방 내부로 들어왔을 때, 레기온은 위협을 느끼고 무기를 들어 그녀를 조준하려고 하자 그녀의 손에 쥔 펄스 리볼버의 탄환에 꿰뚫리며 순식간에 제압되었다. 



“너 누구야?...... 넌 미나가....”

“무슨 소리에요? 아나스타샤 씨? 전 유미나에요. 아..... 물론 껍데기만요. 히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대답 속에서 미나는 광기의 웃음 속에서 검을 휘두르며 그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총성과 칼부림 소리에 구급상자를 들고 공방으로 향하던 이윤정은 심상치 않은 소리에 달려가며 확인했을 때, 미나는 아나스타샤를 향해 이성을 잃은 듯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윤정이 넋이 나간 듯 벌어지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는 걸 지켜봤을 때, 그녀는 이윤정을 향해 소리쳤다.



“이윤정! 소대를 부르고 당장 박정자 데리고 도망쳐!”

“네....네!? 지금 무슨....”

“얼른 가라고!”

그녀의 외침도 잠시 미나의 검은 그녀의 복부를 찔렀고 미나는 그 상태로 그대로 바닥에 꽂아버렸다. 끅 거리며, 섬뜩한 통증에 움직이지 못했을 때, 미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은 채 움직이지 않는 아나스타샤의 몸에서 검을 뽑아냈다. 쿨럭 피를 토하는 그녀는 힘이 빠진 듯 무릎을 꿇은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살인에 대한 즐거움. 쾌락에 사로잡힌 그녀의 눈동자에서 문득 다른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을 때, 미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멍하니 바라보던 이윤정을 바라보았다.


 

“아....... 윤정씨....?”

“......미나 씨 왜....?”

“아.....역시 침식체보다 역시 사람을 죽이는 게 더 즐겁네요. 당신도 아가씨의 눈에 들고 싶은 거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가씨를 위해서 저에게 피와 살을 주면 된답니다. 금방 끝나니까.... 잠깐만.... 와주시겠어요?”

그 대답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바닥을 차박차박 거리며 다가오자 그녀는 들고 있던 상자를 내팽긴 채 연구동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윤정씨? 왜 도망가요? 얼른 오라니까요. 걱정 마요. 고통 없이 끝내드릴테니까.....? 혹시 아가씨가 좋아했던 숨바꼭질을 하시는 건가요? 아 그랬죠. 아가씨도 숨바꼭질을 참 좋아했죠.... 후후후 그럼 제가 술래할게요...... 걸리면... 알죠? 히히히히히.”

그녀의 섬뜩한 웃음소리가 연구동 복도 내에 들려오자 그녀는 연구실 들어오자마자 급하게 문을 잠근 후 옆에 있던 잡동사니들을 쏟아내며 그녀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물건들이 쏟아지며 난장판을 벌이는 이윤정의 모습에 올리비에는 당황한 시선으로 그녀에게 달려왔다.



“조교야! 뭐하는 거야?”

“....그녀가...... 오고 있어요.”

“그녀라니? 그게 무슨......”

“미나씨가..... 아나스타샤 씨를....?”

“그게 무슨 소리야? 천천히 얘기를 해봐....”

올리비에의 대답에도 이윤정은 공포에 질린 시선으로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그녀의 발소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올리비에가 뒤늦게 고개를 들어올리며, 투명한벽 너머를 봤을 때 그 앞으로 피투성이가 된 유미나가 천천히 자신과 이윤정이 있는 연구동에 도착하고 있었다. 



“찾았다~"

“미나씨.. 도대체 무슨!?”

올리비에가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잡동사니를 치우려고 했을 때, 이윤정은 문을 열려고 했던 올리비에의 몸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소리쳤다.

 

 

“지금 문 열면 우린 죽어요! 미나씨가 지금 아나스타샤 씨를 죽였다고요!”

“조교야..... 농담하지마 미나씨가 왜 그런 짓을.....?!”

그녀의 대답에 미나는 킥킥 거리며, 대놓고 피투성이가 된 그녀의 명찰을 보여주었을 때, 그녀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이제.... 당신이 알고 있는 조교는 죽었네요? 시원하지 않으세요? 사실 당신도.... 그렇게 죽이길 원했잖아요? 저 유미나가.... 아주 깨끗하게 죽여드렸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굳게 닫힌 문의 피투성이가 된 아나스타샤의 카드키를 긁었고 닫혀있던 문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앞으로 우습기 짝이 없는 저항으로 만든 잡동사니를 검으로 베어내며 가볍게 처리했을 때, 둘은 얼어붙은 듯 멍하니 자신에게 다가오는 광기의 살인마의 행진을 지켜보았다.


 

“자.....누구부터 죽일까요? 교수님? 아니면....... 조교님? 아.... 조교님이 먼저 갔으니 이제.... 교수님이 가실 차례네요. 그렇죠?”

미나의 대답에 이윤정이 이를 악물며 그녀를 저지하려고 했지만 미나는 가볍게 발로 걷어찼고 그녀는 벽에 부딪힌 충격에 기절한 듯 움직이지 않았다.



“윤정씨. 선을 지키셔야죠. 곧 보내드릴테니, 번호표를 끊고 기다리세요.....교수님. 자.....”

그 대답 속에서 미나가 그녀의 목을 움켜쥐었을 때, 컥컥 거리며 그녀는 카운터인 자신에게 우습기 짝이 없는 저항을 하려고 했다. 올리비에는 자신의 눈 앞에서 행복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미나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아. 하세요....... 이 검날이 교수님의 목을 꿰뚫을 거고..... 잠깐의 고통 이후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거에요. 그리고.... 아가씨에 눈에 들 수 있는 피와 살이 되겠죠. 그리고 전 아가씨의 선택을 받을 거구요......히히히......”

 

'누가..... 제발..... 도와줘.'

 

그녀는 눈물을 흘러내리며, 말했을 때, 미나는 문득 자신을 덮치는 차가운 살기를 느끼고 그녀를 내던진 채 후방에서 달려오는 급습을 가까스로 막았다. 그 앞으로 아나스타샤가 이를 악물며.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고 이내 미나를 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아나스타샤......!?”

“도망쳐....... 얼른.....”

그 대답 속에서, 그녀는 힘겨운 심호흡 속에서 통증에 사로잡힌 채 무릎을 꿇었을 때, 미나는 바로 그녀의 몸을 향해 펄스 리볼버를 사격했고, 그녀는 총알이 박힌 채 바닥에 널부러졌다.



“하아..... 골로 간 줄 았는데, 살아있네요? 진짜 질긴 년이라니까. 그냥 곱게 처 디졌으면 편했을 텐데, 그렇지 않아요? 교수님?”

미나는 고민하듯 올리비에를 바라보는 사이로,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는지 힘이 다 빠진 그녀의 몸을 들어올렸다. 

“교수님. 이 인간 싫죠? 당신에게 온갖 뒷담화를 까면서, 당신이 무너지길 바라고 원했던 천하의 나쁜 년이랍니다~”

“그만해.....”

“왜죠? 당신이 그토록 찢어 죽길 원하는 여자 아니었어요? 교수님도..... 아나스타샤도 서로 그렇게 찢어죽길 바랬잖아요? 그렇게 실컷 싸웠으면서 태연한 척을 하는 거에요? 참..... 역겹네요.”

미나는 킥킥킥 거리며,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아나스타샤를 바라보았다. 그 눈 앞으로 올리비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둘에게 느껴지는 필사와 갈망이라는 감각은 빙의된 자신에게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쾌락을 느끼게 해주었고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펄스 리볼버를 그녀에게 던지며 말했다.



 

“뭐하는 거야?”

“자. 교수님 이제 당신의 모든 몸의 권한은 제껍니다.”

그 대답과 함께 미나는 아나스타샤의 몸을 자신의 옆에다 두고 다리를 꼰 채 눈을 부릅떴고, 올리비에는 몸이 굳어버린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은 바닥에 널부러진 펄스 리볼버를 쥐고 있었다. 양손으로 경련을 쥔 채 총구는 서서히 아나스타샤를 향해 조준되기 시작했다.



“그토록 원하던 기회를 제가 만들겠습니다.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요~ 만약 당신이 이 쌍년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면 살려드릴게요.”

미나는 그렇게 말하며 눈 웃음을 드러내자 그녀의 심장은 바깥으로 뛰쳐나올정도로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는 시선으로, 자신의 펄스 리볼버를 주시했고 단 한치라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고정시키고 있었다. 아나스타샤는 피로 범벅된 시선 속에서, 쏘라는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싫어......”

“안 쏘면, 당신이 죽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조교가 절망에 빠지겠죠?”

그 대답과 함께, 유미나는 자신의 손에 쥔 검을 흔들며,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미나는 기다리기 귀찮다는 듯 손가락을 피며 둘에게 보여주었다.

 

“다섯 셉니다. 그 안에 안 죽이면 둘 중 하나는 죽습니다. 다섯.”

“쏴....”

그녀는 힘겨운 숨소리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올리비에는 몇 번이고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넷.”

“쏘라고......”

“셋.”

“......그러면 넌 살 수 있다고. 박정자 이 멍청한 년아......”

“둘.”

그녀의 속삭임에 올리비에는 고개를 숙인 채 터질 것 같은 공포와 긴장을 찢어버리듯 아나스타샤를 향해 대답했다.


 

“쏠 수 없어...... 난......”

“응? 왜죠? 교수님은 싫어하지 않았나요? 그토록 원하는 기회인데요?”

“차라리.....내가 죽겠어..... 그러니.... 이 조교를..... 죽이지 마.”

그 대답 속에서 올리비에는 자신의 두 손에 쥐고 있던 리볼버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 바보야...... 왜 날.... 살리는 건데.....?”

“네. 시간 끝났습니다. 아나스타샤 씨. 이제...... 당신을 업신 여긴 교수님의 최후를 지켜보시면 됩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추억이 머릿 속으로 스쳐지나갔다. 마치 한편의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그녀는 그런 아나스타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되었다는 듯 미나는 그런 그녀를 처단하기 위해 자리에 일어났다. 

 

차박차박 걷는 발걸음 속에서, 그녀의 손과 날카로운 날이 눈 앞에 닿으려고 했을 때, 미나의 육체를 지배하던 감각이 끊어짐을 느꼈다. 그 앞으로 정소희가 눈을 부릅뜨며, 그녀의 팔을 베어버리고 있었고 그 일격만으로도 올리비에를 붙잡았던 팔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일격 속에서, 망령은 자신과 같은 기운을 지닌 침식체를 바라보았다.



“말도 안돼.... 어떻게 내 몸을!?”

망령의 당황한 시선도 잠시 그녀가 검을 휘두르려고 했고 망령은 곧바로 회피하며 연구동 창문을 뚫고 바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망령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사이로, 새까맣게 뒤덮었던 컴퍼니 내부에서 비상벨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1동을 중심으로 수많은 서치라이트들이 서서히 움직이는 그 사이로 망령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코핀 컴퍼니의 정문에 손을 뻗으려고 했을 때, 선홍빛 섬광이 눈 앞에 스쳤고 망령은 가까스로 그 공격을 피했다. 그 뒤로 서치라이트의 움직임 사이로 침식으로 뒤덮은 소희가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선홍빛의 날을 드러낸 검이 망령의 눈 앞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이 아이는 내꺼야..... 나 같은 하찮은 백정 같은 망령이라고 해도 아가씨의 눈에 들 수 있는.... 아름답고 강인한 몸이라고!”

“개소리하지 말고 당장 내놔. 찢어버리기 전에.”

그녀의 대답과 함께, 선홍빛의 날은 더욱 자신을 빨아들이듯 발화되었을 때, 망령은 품 속에 작은 나이프로 미나의 목을 겨누었다.

 


“날 베는 순간..... 이 년의 목숨도 끝이야. 장용영의 근위대장.....”

망령은 자신의 자줏빛 기운을 발화하며, 경고를 보내자 소희는 어떤 침묵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의 검을 숨기듯 뒤로 자세를 잡았다. 포기를 한 걸까? 망령은 킥킥 거리며 그녀를 조소한 채 몸을 돌리는 순간 소희는 자신의 침식으로 뒤덮은 적안을 부릅뜨며, 단번에 미나를 베어버렸다. 찰나의 순간 망령의 눈 앞으로 자신이 빙의했던 미나의 몸에 피가 쏟아졌고, 그 틈으로 자신의 몸은 선홍빛의 날과 함께 베어지고 있었다.



“....진짜로..... 나와 이 년을...베다니....?”

그 대답도 잠시 망령은 자신의 머릿 속이 폭발 할 것은 강한 두통이 느껴졌고 이내 머리를 감싸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 외침은 끔찍한 굉음처럼 주변에 울려퍼졌고 그와 함께 망령은 미나의 몸 밖으로 빠져나오며, 갈기갈기 찢겨지며 사라졌다. 

 


망령이 소멸된 후 미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그 중심으로 짙은 피가 바닥에 번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의 검을 검집에 넣은 후 상태를 확인위해 다가가려고 했을 때, 그 앞으로 불똥이 튀었고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앞으로 서윤과 알트 소대원들이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자신이 했던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나..... 미나야!?”

“빌어먹을 침식체 같으니!”

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권총을 겨누었고, 서윤은 자신의 무기를 쥔 채 빠르게 달려나가며 쓰러진 미라의 상태를 확인했다. 서윤은 그녀를 부축하는 사이로 미나의 피로 흥건해진 자신의 손을 보자마자 이성을 잃은 채 눈을 부라리며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용서 할 수 없어...... 감히......... 내 친구를!?”

그 대답 속에서 그녀의 돌격소총은 소희를 향해 사격했고, 소빈도 합세하며, 수십여발의 총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소희는 자신의 팔꿈치와 검으로 막는 사이로 그녀의 오염된 침식을 덮었던 옷은 서서히 찢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수십여발의 총알이 빗발치는 사이로 서윤의 류탄 발사기에 발사된 유탄이 그녀에게 직격으로 터졌고 그녀는 그 폭발 속에서, 날아가며 나뒹굴었다. 



“죽은 거야?”

“제가 확인하죠. 둘은 미나의 상태를 확인해주세요.”

서윤은 남은 류탄과 탄창을 재장전하며, 흩뿌려진 침식의 파편과 피로 긁혀진 흔적을 따라갔다. 그 끝에서, 소희가 유탄 파편에 박힌 채 부상을 입은 인간의 형태가 남아있는 팔을 침식으로 오염된 팔로 붙잡고 있었다. 그녀가 살아있다는 걸 알자 서윤은 이를 악물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진짜 징그럽게도 버티는 군요. 제 소대의 화력을 직격으로 맞았는데도 버틸 줄은 몰랐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소희는 그녀를 노려보며, 자신을 향해 조준하는 그녀의 돌격소총을 바라보았다.



“이제 끝입니다. 침식체 씨.”

 

'당장 그만 두지 못해!'

 

힐데의 외침에 서윤은 그녀를 조준하려고 했던 공격을 멈춘 채 소리가 들린 쪽으로 바라보았다. 그 뒤로 힐데가 서윤을 주시하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힐데....대장님?”

“뭐하는 짓이야?”

“저 침식체가.... 미라를 공격했어요.”

서윤의 대답에 힐데는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똑바로 보란 듯 피투성이가 된 미나에게 시선을 옮겼고 힐데는 알트 소대의 부축을 통해 병원으로 이송하는 미나를 확인했다. 



“가만두지 않겠어요. 제 친구를......죽이려고 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루테니까요!”

“그만! 지금 사장님이랑 부사장도 오고 있으니까. 이 이상으로 소동을 그만부려.”

힐데의 대답에서야 서윤은 자신의 몸에 끓어올라오는 살기를 억누른 채 조준하려고 했던 자신의 돌격소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서윤이 미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동안 힐데는 처참하게 옷이 찢겨지고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채 일어나지 못하는 소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게 사실이야? 서윤의 말대로..... 네가 미라를 공격한 거야?”

“그래......”

“왜 그런 거야?”

그녀의 물음에 소희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힘겨운 호흡 속에서 자리에 일어나 검을 쥔 채 벽에 기대며 자신의 몸을 찢는 것 같은 통각을 견디듯 눈을 감았다. 그 침묵 속에서 코핀 컴퍼니 소속 병사들이 들이닥쳤고 그들의 레이저 사이트들이 일제히 소희를 향해 조준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