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신을 좋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님은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오히려 저는 당신을 미워합니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역겨워합니다.


당신이 나의 첫번째 어머니를 잃게 되었을 때 당신을 미워했고, 당신이 나의 두번째 어머니를 잃게 되었을 때 당신을 미워했고, 당신이 새 여자친구를 만들게 되었을 때 당신을 미워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대어 돈을 잃고, 집에 반갑지 않은 전화가 오기 시작했을 땐 당신을 증오했습니다.


당신이 모든 신뢰를 잃고, 당신의 부모에게까지 손을 벌리기 시작했을 때는 당신의 이름을 듣는것만으로도 역겨웠습니다.


아비로서의 역할을 해내지도 못한 주제에 우리에게 아비라고 불리고 싶어서 노력하는 그 모습을 보았을 때는...


그래요. 나는 그냥 당신이 싫었습니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역겨워하고. 그냥 그 모든것을 아우르는 단어로 간단히 표현하자면, 저는 당신이 정말로 싫었습니다.


가진 능력에 비해 과분한 것을 좇고, 두 번이나 손에 쥔 것도 놓쳐버리고, 의무를 다하지도 못한 채 그 껍데기만을 뒤집어 쓰고자 하는 당신이 싫었습니다.


당신을 동정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사정이 있으니까 그랬겠지. 한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었겠지.


그러나, 적어도 당신이 우리 앞에서 불쌍한 척을 하려면, 우리 앞에서 깨끗한 척은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허물을 잘 숨겼다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고, 우리 앞에서 성실한 척 하지 말았어야 했고, 우리에게 어미보다 더 어미같은이를 착취할 것이 아니라 도와주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어느것도 하지 않았죠. 그게 제가 당신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동시에,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당신이 너무나도 미워서, 너무도. 너무도 너무도 미워서.


계속해서 당신을 미워하다간, 내 주변의 모든것을 미워하게 되어버릴 것 같아서.


당신의 아래에서 태어난 나를 미워하고, 당신에게 끝까지 모질지 못한 당신의 어미를 미워하고, 아무런 잘못이 없는 당신의 여자친구를 미워하고.


당신이 받아내지 못한 내 미움이 흘러넘쳐, 내 주변을 더럽혀버릴 것만 같아서.


그래서 그냥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저는 이해를 입에 담습니다.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지 않지만, 저는 사랑을 입에 담습니다.


여전히 당신을 증오하고 미워하지만, 어떻게든 그것들이 흘러넘치지 않도록 틀어막고 있습니다.


그냥. 당신의 우습지도 않은 연극에 맞춰주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바뀌지 않을 것을 알지만, 바뀌더라도 오랜시간이 걸릴 것을 알지만.


당신을 이보다 더 미워하기엔, 내가 너무 지쳐버려서.


그냥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좋은 아비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믿어주기로 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아비이기를 원한다면, 고개를 돌려 헛구역질을 하더라도 당신의 앞에서만은 웃어주기로 했습니다.


그저, 당신을 미워하기엔 너무나도 지쳐버려서. 이렇게라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밉고 미운 당신때문에 고통받은 내 삶까지 미워질것만 같아서.


그래서 당신을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나도 당신 못지않은 병신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