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치카 함의 기록


챕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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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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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선조들의 기록을 통해 교훈을 얻고 그 교훈을 통해 새로운 '길' 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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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케이스 #427

 

AEGIS 8 PBLIT SECURITY SEQUENCE : ACTIVATED

ADC FACTOR : ALPHA CONFIRMED

CCN No. REGA1028L0818 : 레멘트

 


하노마크의 요청으로 특수관리 대상이 된 그녀의 첫번째 외출 기록입니다

 


[정소희. 재경그룹 직속 태스크 포스 겸 근위대 장용영의 근위대장. ADC-G1 의 침식사태 발생시 자신의 휘하 부하들과 함께 침식사태를 막으려고 했지만 소속 부대를 포함 재경그룹의 모든 구성원 실종 및 사망...... 기록만 봐도 끔찍하군.]


 

[당시 관리국에서 추정되는 사망자만 수십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 관리국 태스크 포스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은 침식사태가 심화된 곳이었죠. 그곳에서 아무도 생존조차 할 수 없는 곳이라고 판단했습니다만 그녀는 그 지옥에서 살아남았죠.]


 

[물론 자신의 육체를 대가로 말일세. 하노마크가 그녀를 데리고 왔을 때, 어떻게 살아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사실 그녀에 대한 이송과정에서 알파 자네또한 무장을 시켜야할까 고민했네. 하노마크의 선물은 도박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그녀의 침식파는 전염성 자체가 없다고 하더군요. 물론 변이된 부분에 침식파가 부분적으로 감지가 되지만 외부인이 접촉했을 때, 변이로 번질 변수가 없다고 할정도였으니까요. 외형만 괴물일 뿐 인간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이해가 안된다는 걸세. 알파. 우리가 그동안 상대했던 대부분의 침식체들은 '변이' 라는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그 변이를 통해 확장을 하면서 번졌으니까. 지금의 그녀는 그 능력자체가 없어. 마치 뭔가에 의해 '상실' 이 된 것처럼 말일세.]

 


[그것 때문에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그녀가 '인간' 인지  '괴물' 인지 여부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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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빅 소리와 함께, 창백한 방안에 불들이 하나둘 들어오자 정소희는 눈을 떴다. 자신의 옆으로 기상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울려퍼지고 있었고, 그 옆으로 자신을 위한 베타 2 흡입기가 놓여 있었다.

 


그녀가 호흡을 하기 무섭게 숨이 막혀왔고 정소희는 심호흡 속에서, 자신의 입가에 흡입기를 댄 채로 알람시계를 껐다. 흡입기의 약효가 퍼지며 호흡이 차차 안정이 되어갔을 때, 문조차 없을 것 같았던 내부에서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암 소리와 함께 비틀비틀거리는 발소리가 들어왔고 소희의 눈에서는 피로와 삶에 찌들어있는 이윤정의 모습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왔다. 



“아.....일어나셨네요. 불편하던가 하는 부분 있나요? 뭐 실험으로 뭔가 뒤틀린다던가.....”

“없어.”

“하하하하.... 다행이네요....그럼 잠깐 검사를 할테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그 대답과 함께, 그녀는 벌떡 일어났고, 이윤정은 히익! 소리를 냈다. 너무 놀란 탓인지 바둥바둥거리며 넘어질 뻔했고 소희는 그런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바로 일으켜 세웠다. 커피잔이 흔들흔들 거리는 사이로, 그녀는 붉게 부릅뜬 그녀의 눈을 보자마자 이윤정은 공포에 질린 눈동자로 웅얼거리듯 말했다.



“교수님.... 오늘 과제는 다했으니... 제발 절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철야나 야근은 없게끔 철저히 확인했으니 그러니까.........”

“검사한다면서, 이렇게 수다떨거야?”

소희의 답답한 목소리에, 아! 소리를 내며 정신이 든듯 황급히 자리를 잡았다. 혹시나 누군가 있나 몇번이고 황급히 고개를 돌리던 그녀는 안도 속에서, 한숨을 내쉰 후 자신의 허리춤에 찬 에너지 드링크를 한모금 마시고 독수리처럼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방금 얘기. 못 들으신거죠?”

“뭔 얘기?”

“아. 아니에요. 일단.....검사를 해야 하니까. 나와주시겠어요? 교수님께서도 기다리고 계시니까요.....”

이윤정의 대답에 소희는 자신의 침식으로 변이된 팔을 숨긴 채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격리실로 벗어나면서 투명한 복도가 펼쳐졌고, 내부에서는 3명의 카운터가 잡담을 나누면서 그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펜릴 소대분들.... 반갑네요...... 잠시만 지나갈게요....”

비틀거리며, 걷는 그 사이로, 셋은 변이한 소희의 팔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불쾌한 시선으로 자신의 팔과 눈을 숨겼다. 소희는 당장 벗어나고 싶은 듯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주시윤은 바닥에 베타 2 약이 떨어진 것을 보고 곧바로 주우며, 저기요~ 하면서 그녀를 불렀다. 

“조교님 따라가실 때 약을 이렇게 놓고 가시면 안 돼죠.”

주시윤이 자신이 사용해야 할 약을 내밀자마자 소희는 낚아채듯 뺏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



 

“참 무서운 분이시군요. 같은 카운터끼리 원만하게 해결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제자야. 네가 그 말을 할 처지는 아니라고 보는데?”

“스승님 이래뵈도 제 나름대로 '예의' 를 표하면서 이야기를 한 거라고요. 미나양. 대답해주세요.”

주시윤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미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지 않자 섭섭하네요. 라며, 편을 들어주지 않는 그녀에게 아쉬운 감정을 드러냈다. 힐데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손날로 주시윤의 정수리를 가볍게 치며, 당장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불쾌한 감각들. 소희는 다시는 그 시선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팔의 주먹을 쥔 채 연구소 내부로 들어왔을 때, 안에서는 올리비에 박이 자리에 일어난 채 검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일어난 모습이 이윤정의 시야에 들자 그녀는 뭉큐의 절규를 체험하듯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교수님..... 교수님이 일어나셨어......”

“조교야? 이렇게 늦어서야. 내 체면이 어떻게 될 것 같다고 보니? 우리 조교가 정말로 많이 컸구나?”

 



올리비에 박의 성큼성큼 걷는 그 소리는 끔찍한 절규를 자극하는 발소리가 되었고, 소희는 멍하니 공포로 얼룩진 오페라를 감상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안경을 쓴 그녀의 얼굴만으로도 이윤정의 절규는 더더욱 극대화 되고 있었다. 올리비에 박은 뒤늦게 자신의 옆에 소희가 있다는 걸 느끼고, 아 소리를 내며 그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 미안해요. 제가 워낙 우리 조교를 '사랑하는' 마음 탓에 할일을 잊을 뻔했네요. 조교야. 나중에 보자.”

“가...감사합니다..... 소희 씨.... 이 은혜는.......”

왜 자신이 은인이 된 걸까? 그 물음도 잠시 이윤정은 빠르게 이탈하듯 자신의 연구실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올리비에 박은 곧바로 그녀에게 손짓을 했고 소희는 묵묵히 그녀를 따라 검사실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는 군데군데 침식체들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이 쌓여있었고, 군데군데 먼지가 가득히 쌓인 문서들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자리를 마련해 앉으라고 권했고 소희는 그녀의 손짓에 따라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잠깐 체혈을 해야하니까 좀 아플 거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소희의 변이된 팔에 체혈을 했고, 소희는 통증이 퍼져오는 고통을 참듯 짙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자리에 앉아서 채취된 자신의 혈액기에 넣고 확인하는 사이로, 그녀는 추가 문서를 가져온 후 소희를 바라보며 하나 둘 질문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온지가 어느정도 되었는지 기억하세요?”

“7일 12시간.”

“맞아요. 의뢰인이 당신을 특별 관리 대상으로 요청하시면서, 보낸 시간대이기도 하구요. 식사나 혹은 호흡에서 힘든 부분들이 있었나요?”

“없어.”

“다행이네요. 하지만 지금 폐에서는 천식 증세가 아직도 발현되고 있으니 조교가 베타 2를 주는대로 바로바로 가져가셔야 돼요. 증상을 완화시켜주니까요. 일단 검사를 끝내는대로 조교와 함께 격리실에 들어가시면.....”

 


'나가고 싶어.'

 


그녀의 대답도 잠시 소희는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 꿈틀거리던 목소리를 그녀에게 대답했다. 올리비에 박은 잘못들었나 싶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두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왜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 거죠? 혹시...... 이곳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건가요?”

“가고 싶은 데가 있어.”

“어디요? 설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는 건 아니겠죠? 소희씨가 만약에 인간이라면 몰라도 아직 당신의 신체 구성은 군데군데 침식농도가 범인보다 높게 분포되어있어요.”

“그래?.... 그래..... 당신이 봤을 때, 날 어떻게 생각해?”

 


'괴물이라고 생각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시선이 잊혀지지 않아. 경멸하고...... 당장이라도 귀찮다는 듯이 맡겼다는 듯한 그 시선. 귀찮다는 시선 그리고 날 괴물취급하는 시선들..... 지긋지긋해. 이젠....... 왜 날 이렇게 하는지..... 차라리 이름으로 부르지말고 괴물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텐데.... 토나올 것 같아. 그 태도와 그 말투 지금의 이 모든 것들이 역겨워서 토나올 것 같다고! 왜 이렇게 대하는 거야! 그래.... 괴물이기 때문이지. 그래... 가치가 있으니까. 그 개같은 연구가치 때문에 이렇게 숨통을 유지하고 있는 거지? 안 그래!?”

소희는 참지 못한 듯 소리치며 자신의 주먹을 지면에 내려쳤고, 올리비에는 침묵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옆에 펜릴 소대를 호출할 수 있는 버튼이 있었지만, 상황을 지켜보기로 한듯 그녀는 벨을 누르지 않았다.  



그녀에 이곳은 끔찍한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실험쥐처럼 챗바퀴를 돌리며, 자신의 피를 뽑아가는 이 여자도 자신을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그 시선들까지. 이 건물벽을 뜯어내며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 감정은 서서히 희석이 되며, 죄책감이라는 감정으로 변하며, 이내 웃기 시작했다.


 

“......그래.... 난 그런 존재지. 실컷 피뽑히다가 죽겠지. 난 당신의 노리개니까....... 안 그래?”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소희씨. 그렇다고 당신을 실험쥐처럼 갇히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생각? 이딴 게 실험쥐가 아니면 뭐라고 설명 할 건데!”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그녀의 분노도 싶은 생각도 잠시 올리비에 박은 품 속에서 컴퍼니로부터 받은 문서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소희가 문서를 확인했을 때 펜릴소대 3명의 리스트와 함께 이수연 부사장의 직인이 박힌 외출 문서였다. 



“물론 제한적이긴 하지만요 소희씨가 가고 싶은 곳은 이 안에 있나요?”

그녀의 대답에 연구실에서 힐끔 보고 있던 이윤정은 입을 벌리며, 자신에게 닥칠 '악몽' 이 다가옴을 느꼈다. 소희는 그 뒤로 입을 벌린 채 제발 살려달라고 비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쉽네요. 그곳이 아니라면 우리 조교에게 '부탁' 을 해볼까 생각했는데?”

올리비에 박은 아쉬운 표정으로 이윤정을 바라보자 그녀는 광명을 찾은 듯 두 손을 모으며, 자비를 베풀어준 '신' 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얘기를 했어야했는데 너무 늦게 꺼내버리고 말았네요. 미안해요. 저라고 해도 그 생활은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녀의 평온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소희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울컥해졌고 고개를 숙였다. 참....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소희의 등을 두드리자 소희는 자신의 침식으로 변이된 손을 뻗으며, 거부했다. 이를 악물며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돌렸지만, 올리비에 박은 알 수 있었다. 연약한 소녀구나. 그녀는 품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며 그녀에게 주었다.



“왜 주는 거야?”

“울고 있으니까요. 자아. 그동안 답답한 게 많았죠?”

“안 울었어.”

거짓말. 어린아이가 봐도 속지 않을 정도로의 뻔한 거짓말에 올리비에는 장난기가 생긴 듯 더 가까이가서 소희를 바라보았다.

 


“정말요?”

“정말이라고!”

“그럼 그 눈물은 뭔가요? 그리고 평소 소리치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엄청 떨리는게 들리는걸요?”

그녀가 호기심으로 가득찬 시선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소희는 이도저도 못한 채 그녀의 손수건을 받자 이내 울음을 터뜨리며, 울기 시작했다. 얼마나 울었을까? 싶은 생각도 잠시 그녀가 진정이 되었고, 그녀는 다음 사항을 천천히 소희에게 알려주었다.

“펜릴 소대가 도착하는 대로, 주의사항을 알려줄거에요. 그것만 지킨다면, 일회성이 아닌 점점 시간이 늘어날거고 나중에는......

 


'자유가 될 거에요.'

 


그리고 제 이름을 걸고 말할게요. 이곳은 당신을 '괴물' 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이 느끼고 괴롭혔던 곳은 더더욱 아니고 당신을 괴물이 아닌 '인간' 으로서 대우하고 싶은 분들이 많은 곳이니까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올리비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자신의 눈을 걸치고 있던 안경을 벗고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녀로부터 퍼져오는 향수의 냄새가 긴장과 두려움의 사로잡혔던 소희의 몸을 서서히 진정시키고 있었다.



“물론.... 두렵긴했어요. 당시 의뢰인이 당신을 맡겼을 때, 컴퍼니에서도 여러번 긴급회의를 거쳐야했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런 곳에서 차마 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먼저 당신을 받아드릴테니, 제가 책임지겠다고 부사장님과 사장님께 얘기한거에요. 물론 당신의 말대로 이 모든 행동은 연구를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당신을 '연구대상' 그 이하의 존재로 대할 생각은 없어요. 제 연구는 기본적인 원칙은 거기서부터 시작 되니까요.”

그녀의 대답에 소희는 멍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소희에게 말했다. 



“자! 우울한 이야기는 여기서 하고! 소대가 곧 올테니까, 준비하세요. 잠깐 벗어나는 시간대이니 즐겁게 갔다오시고요. 얼른요!”

올리비에 박은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라고 손짓했고 그녀는 천천히 일어났다. 이윤정의 안내를 따라 밖으로 나왔을 때, 밖에서는 펜릴 소대 3명이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색 자캣. 코핀 컴퍼니의 상징인 유니폼을 두른 그녀의 모습에 셋은 나쁘지 않다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호오? 새로운 후배인 줄 알았어요. 아. 그러고보니 미나양의 새로운 후배라고 봐야 되지 않나요?”

“뭐?”

“맞잖아요. 미나양. 모처럼의 후배가 생겼으니. 잘 대해주셔야 돼요. 알았죠....?”

주시윤의 장난을 듣던 힐데는 한숨 속에서, 주시윤의 명치를 쳤고, 주시윤은 컥 소리를 내며 배를 움켜쥐었다. 힐데는 켁켁 거리며 바둥바둥거리던 주시윤을 태연하게 걷어차며, 소희의 모습을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소희는 그 시선에 불쾌함을 느꼈지만 힐데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유니폼을 다듬었다. 



 

“규칙은 문서에서 봤을 거야. 그 룰대로 움직이고. 절대 문제일으키지 마.”

“알았어......”

“원래는 같이 가야 되지만 지금 일이 있어서 이 멍청이 제자랑 유미나가 대동할 거야. 말했듯 문서에 나와있는 시간대야. 그 이후로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해.”

힐데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에게 주의를 줬고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힐데가 나가고 나서 유미나는 가자는 듯 고개를 움직였고, 소희는 둘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

 



격리실에서 벗어나 회사밖으로 나왓을 때, 소희는 호흡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낯선 공기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유미나는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진정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고 걱정스러웠는지 다가갔다.

“괜찮아?”

“괜찮아....”

“이면세계에 있으셨다고 돌아왔으니까요. 많이 낯설 겁니다. 그래도 모처럼의 외출인데 그대로 포기하고 싶진 않을거죠?”

주시윤은 서두르자는 듯 발걸음을 옮기자 미나는 그녀를 잠시 부축하며 컴퍼니에서 마련된 차량을 타고 이동하고 시작했다. 차량 내부에서는 하노마크의 레기온이 운전 기사 복장을 한 채 내부에 탑승되어 있었고, 셋이 타는 걸 확인하자마자 출발합니다. 라고 신호를 보내며, 서서히 차량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유미나는 혹시나 대비해서 소희와 같이 앉은 채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고, 주시윤은 모처럼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듯 차량밖으로 빠르게 슬라이드 하듯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배고픈 거야?”

“아니....”

“그래도 모처럼의 외출인데, 하고 싶은거라던가 보고 싶은데가 있을 거 아니야? 시간은 충분해.”

미나는 긴장한 그녀를 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소희는 아직까지는 생각이 없는 듯 바깥의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거 정말 사람이야?”

“당연하죠. 이면세계와는 다르게 이곳은 미나양과 저 같은 사람들이 많아요.”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뭔가 이상해지는데?”

“미나양. 이래뵈도 저도 나름 쓸모 있는 카운터라고요.”

“네네 그러시겠죠.”

유미나는 그 뒤로, 그렇게 물으면서까지 믿지 못하는 그녀의 시선에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보고서 내용에서 그녀는 당시 사태에서 유일한 생존자였으며, 이면세계에서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적혀 있었으니까. 죽어버린 도시 속에서, 퍼져오는 고요와 공허 속에서 익숙해져버린 그녀의 눈동자에서 이 풍경은 말도 안되는 광경이나 다름이 없었다.



 

차량이 잠시 신호에 멈췄을 때, 소희는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 떠도 그대로 있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유미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어?”

“걸어도 될까?”

“여기서? 가고 싶은데가 생긴 거야?”

유미나의 물음에 소희는 치욕스러운 시선으로 고개를 숙였다. 주시윤은 그런 소희에게 장난기가 발동한 듯 아 소리를 내며, 그녀를 자극했다.



“신호가 얼마 안남았는데, 망설이면 차는 출발합니다~ 얼른 결정하셔야 저희도 내려서 움직이든  뭘 마시든 할 것 같습니다만?”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놀리면.....”

“전 확실한걸 좋아해서요. 저렇게 우물쭈물 망설이는 건 싫어하거든요.”

주시윤의 대답도 잠시 신호가 노랑불이 켜졌고, 소희는 못 참겠다는듯 그를 향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아카데미! 내가 있었던 아카데미 건물로 보내줘! 거기서 가져가고 싶은 게 있어!”

“좋아요. 그래야 저랑 미나양이 준비를 할 수 있죠.”

주시윤은 잘했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피며, 그녀를 칭찬하자 소희는 당장 그 엄지를 물어뜯어버릴듯 그를 노려보았다. 정말 살벌한 '고양이' 다. 주시윤은 운전하는 레기온에게 행선지를 요청했고 차량은 곧바로 소희가 있었던 카운터 아카데미를 향해 이동했다.



“미안해.”

“아...아니야. 괜찮아.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나는 어떻게 해야 그녀랑 접근할 수 있는지 막막했다. 이게 맞는지 저게 맞는 지 여러가지 퍼즐조각을 대야하는 것 같았고, 혹시나 잘못 맞추게 된다면? 이라는 공포 탓인지 자신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차량이 서서히 카운터 아카데미에 도착했을 때, 아카데미는 수업이 끝났는지 다수의 학생들이 밖으로 나오며 집에 돌아가고 있었다. 주시윤은 모처럼의 추억의 장소에 온 듯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아 여기 진짜 오랜만이네요. 여기서 정말 호되게 혼나면서 배웠던 기억이 나고요.”

“여기 아카데미에 대해 알고 있어?”

“물론이죠. 제가 여기서 45기때 졸업했거든요. 스승님이랑 부사장님도 여기 아카데미 출신이고요. 그러고보니 소희 양도 여기 아카데미 출신이셨나요?”

주시윤의 물음에 소희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이야. 소리를 내며, 놀랐다는 듯 그녀에게 다가갔다.



“몇년도에 졸업하셨나요? 보아하니 저보다는 선배인 것 같은데?”

“시기는 기억이 안나지만 내가 아카데미에서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장용영의 근위대장이 되었어.”

“잠시만요. 그때가 사태 벌어지기 5년전 얘기면, 지금이 2044년이고, 실패사태가 20년전에 발생했고..... 소희양이 근위대장 임명시기가 10년전이니까.....”

주시윤이 머릿 속으로 계산하기 무섭게 그는 자신의 눈이 부릅뜰 정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시윤은 조심스럽게 미나에게 가서 귓가에 속삭였다.



“이 분한테 함부로 한 게 점점 후회가 되는 데요....미나양?”

“설마......”

“네. 저희 스승님보다 춘추가.....”

“둘이 뭔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괴물이라 싫은거면 확실하게 말하던가!”

소희는 둘의 속삭임에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소리치자 주시윤은 아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며,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소희는 자신에게 장난을 치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갑자기 굽신굽신거리는 주시윤의 행동에 이해할 수 없었다. 미나는 마른 침을 꾹 삼키며 뚫어져라 처다보는 정소희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머릿속이 더욱 더 복잡해져만 갔다.



“저... 정소희 대선배님! 뭐 드실 거 있으신가요?”

“됐어!”

정소희는 토라진 듯 고개를 돌리자 주시윤은 하하하! 웃으며, 보기흉할정도로 그녀에게 아첨하기 시작했다. 힐데가 보면 벌써 명치를 오목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광경에 미나는 하아 소리를 내고, 간신배기 같은 주시윤을 가볍게 밀어내며 소희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편의점에 들어가기 무섭게 소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변이된 자신의 손을 꼭 잡는 미나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미나는 다양한 음료수들이 진열되어있는 냉장고에서 2+1 행사하는 음료수를 가져와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계산이 끝나자마자 발라당 누워있는 주시윤에게 휙 던졌고, 소희에게는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이건.......”

“말키스야. 가끔 쉴때 먹는 건데 나쁘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미나는 집적 캔을 딴 후 말키스 캔 안에서 빨대를 넣고 그녀에게 내밀었다. 소희는 멍한 시선으로 어떻게 마셔야할지 모르는 시선을 바라보자 미나는 스트로우를 입에 물고 마시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소희가 조심스럽게 입에 대고 마셨을 때 자신의 입안에 퍼져오는 달콤하면서 시원한 탄산의 맛이 몸에 퍼지는 게 느껴졌다.



“어때?”

“맛있어........”

“다행이야. 아니.... 다행입......”

주시윤이 춘추라고 얘기했을 때부터, 미나는 그녀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소희는 그 얘기인가 짐작한 시선으로 미나를 보며, 신경쓰지 않겠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신경쓰지 않아. 미나 선배.”

“무....뭐!?”

미나는 순간 자신이 마시고 있던 말키스를 뿜을 뻔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끔 주시윤이 가르친 그대로 미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맞잖아? 저 빌어먹을 간신배기 녀석 말대로라면, 난 말단이니까. 미나선배라고 불러야 되는 거.”

“자...잠깐만 난.....”

“싫은 거야? 이 호칭.”

소희는 그 대답 이후로, 섭섭한 듯 미나를 바라보자 미나는 혹시나 소희가 슬퍼할까봐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자, 소희는 웃음을 터뜨렸다.


 

“겉으로는 차도녀인 척하더니 속은 물렁물렁하네요. 미나 선배님?”

“정말 너 무시무시한 녀석이네. 그 말....어떻게 배웠어?”

“내 바보 후배가 알려줬거든. 유명한 드라마 대사라고 하면서.”

네네. 어지간히. 미나는 그런 후배가 정말 누군지 궁금했지만 전과는 다르게 장난기 섞인 그녀의 모습에 그녀에게 품었던 걱정의 무게가 사그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여기서 가져가야 할 물건이 있다고 했는데, 어떤 물건이야?”

“여러가지 추억이 담긴 물건이야. 지금의 나를 만든 물건이지.”

소희는 그렇게 대답하며, 서서히 해가 저물어가는 아카데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건물들 사이로 소희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퍼져왔던 온기의 기운을 느꼈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미나도 그녀를 따라가며 아카데미 내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희를 따라 들어간 곳은 아카데미 건물 내부에 마련된 대련장이었다. 방과후 탓인지 대련장에서는 인기척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 밑으로 대련복을 입은 한 소녀가 넓게 펼쳐진 무대에서 검을 휘두르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방과후인데도 게을리지 않는 훌륭한 학생이 있네요?”

주시윤의 대답 속에서 미나는 소녀가 목도를 들고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툰 움직임으로 목도를 움직이는 그 사이로 소희는 문득 그 소녀가 쥔 목도에서 자신의 이름이 쓰여진 게 눈에 들어왔고, 소희는 곧바로 자리에 일어나서 내려가려고 했다. 주시윤은 갑작스럽게 돌발행동을 하려는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듯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말라고 힐데 대장님의 명령 잊으신 건가요?”

“비켜.”

“그 요청을 거부하면, 저 또한 최후의 수단을 쓸 수 밖에 없답니다. 대 선배님?”

주시윤은 그렇게 대답하며, 허리춤에 찬 자신의 단검과 검을 보여주었지만 소희는 물러나지 않았다. 미나는 한참동안 소희의 시선을 바라보았다. 전부터, 소희는 서툴게 목도를 움직이며 연습을 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문제 안 일으킬거지?”

미나의 물음에 소희는 의아한 시선으로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미나는 자신이 침식체라는 걸 상관하지 않은 듯 자신에게 다가가며, 침식의 눈동자를 지닌 자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하게 말해줘. 그럼 보내줄게.”

“미나양? 이러면 저희가 곤란해진다고요. 이럴 때는 엄격하게.....”

주시윤의 난감한 대답 속에서, 소희는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나는 주시윤에게 길을 비켜달라고 시선을 보냈고, 주시윤은 전 몰라요. 라는 시선으로 두 팔을 피며 그녀가 내려갈 수 있게 자리를 양보했다. 



“미나양. 아무리 그래도 그녀는 침식체라고요. 만약에 문제라도 일으키면.”

“걱정 할 필요 없어.”

미나는 그렇게 말하며, 힘겨운 심호흡 속에서, 계단을 내려가는 정소희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왼쪽눈을 가린 선홍빛의 머리칼 그리고 새하얀 자신의 카운터 옷과 장갑을 낀 그녀의 발걸음은 처음으로 가벼우면서, 부드럽게 느껴졌다. 

 


“하아....... 아빠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대련에서 밀리고.... 난 무리인 걸까?”

로라는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그 앞으로 정소희가 서 있었다. 왼쪽 눈을 가린 그 사이로 섬뜩한 붉은 눈동자가 드러났지만 로라는 이상하게 로알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그리웠던 그의 기운이 자신을 찾아오기 위해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시 해봐.”

“네?”

로라의 물음도 잠시 소희는 옆에 가득히 쌓인 목도 중 하나를 쥐며, 대련자세를 취했고 로라는 얼떨결에 그런 그녀의 앞에서 대련자세를 취했다. 그녀 평소처럼 목도를 들고 자신을 향해 휘두르자 소희는 공격을 가볍게 막고 허를 찌르듯 파고들며 로라의 허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움직임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어. 내가 말하는 걸 듣고 그 들은 것처럼 따라 행동해봐.”

 


'부드럽고 강하게.'

 


“부드럽고......강하게?”

“그래. 그걸 들었으면, 생각을 하지 말고 움직여.”

소희의 대답에 로라는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목도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목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참...... 못 말리는 대선배님이시군요.”

주시윤은 팔짱을 낀 채, 이 어처구니 없는 광경을 지켜보았지만 미나는 소희의 얼굴에서부터, 무거운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로라가 같이 움직이자   전과는 다르게 몸이 가벼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신기해요. 전보다...... 몸이 익숙해졌어요. 검이 가벼워졌고요.”

“자만하지 마. 그걸 잊으면 다시 그때처럼 돌아가니까. 몸에 항상 새겨놔. 고통이 생기더라도.”

소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팔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기억하라고 주문했다. 로라가 그 사이로, 그녀의 머리칼에서 드러난 검붉은 눈동자를 의식한 듯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멈칫했다. 로라는 자신의 두 손을 등을 진 채로, 혹시나 싶은 생각 속에서, 소희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언니. 아빠의 기운이 느껴져요. 혹시 아빠를 만났나요?”

“아빠?”

“로알 벨치카요! 로라는 느낄 수 있어요. 아빠의 기운을요. 언니는 아빠랑 만났죠?”

로라의 물음에 주시윤과 미나는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소희와 대화하는 로라를 바라보았다. 소희가 믿을 수 없는 시선으로 힘이 빠졌을 때, 그녀의 어깨에 힘겹게 걸려있던 겉옷이 바닥에 떨어졌다. 로라의 눈 앞으로 침식의 흔적이 가득한 팔이 모습을 드러내자 둘은 급하게 소희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힐데는 둘의 어깨를 붙잡으며, 상황을 지켜보자는 듯 시선을 옮겼다.


 

“어. 만났어.”

“그렇구나. 그럴 것 같았어요! 저희 아빠. 잘 지내고 계시나요? 오늘도 나쁜 괴물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셨나요?”

로라의 물음에, 소희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구하려고 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침식체라고 해도 상관없이 붙잡았던 그의 모습.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죽음의 문턱에서 구했건 그의 눈동자. 소희는 그 사이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슬픔에 짓누르지 않기위해 심호흡을 했다.



“어. 날 구해줬어. 언니를...... 그 나쁜 괴물들로부터 구했어. 모든 걸 잃은 채, 방황하던 날.... 붙잡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해주었어. 그래서...... 이곳에서 돌아오게 된 거야.”

소희의 대답에 로라는 더욱 기뻐하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로라는 지금의 이 앞에 있는 자신이 괴물이라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로알처럼, 흉측하다고 생각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머리칼 사이사이에 드러난 자신의 검은색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는데도, 로라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있었다.



“너. 내가 괴물이라고 해도...... 넌 날 싫어하지 않는 거야?”

“아니요.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보기만해도 알 수 있어요. 언니에게는 아빠의 기운이 느껴지니까요.”

나에게? 자신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머리칼에 드러난 침식으로 물들인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로라는 절대로 아니라는 듯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보 같으니....”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소희는 이상하게 자신의 머릿 속을 헤집고 다녔던 아픔이 사라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안도와 포근해지는 기분이 느껴졌을 때, 소희는 자신의 뒤로 힐데의 발소리를 들은 듯 로라에게 바라보며, 말했다.

 

 

“기억해. 너의 아빠는 용감한 사람이라고. 모두를 구하려고 움직이는 분이라고.”

소희의 그 대답을 뒤로 하며, 로라에게 등을 돌렸을 때, 힐데가 팔짱을 낀 채 조용히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머리칼 사이사이로 드러난 검은빛의 눈동자와 연습을 한탓에 군데군데 찢어진 옷사이로 드러난 침식체의 팔에 힐데는 한숨 속에서 팔짱을 낀 채 각오되었냐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이지 내가 괴물이요. 라고 홍보하고 다니고 있구만. 장용영의 근위대장 씨?”

“군말은 안해. 어차피 난 괴물이니까.”

소희는 그 대답 속에서, 대가를 기다리는 듯 힐데를 바라본 사이로 로라가 걱정이 되는 시선으로 자신과 소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힐데는 하는 수 없다는 듯 주시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자야. 네가 지금 입고있는 자켓을 소희에게 줘.”

“네? 잠시만요 스승님. 이 옷 방금 사비로 산 옷이라고요!”

“지금 이 모습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면, 난리가 날게 뻔한데? 그대로 둘거야?”

“참...... 모처럼의 새옷인데 이러시면 곤란해요. 스승님.”

주시윤은 한숨 속에서, 자캣을 벗었고, 힐데는 그 자캣을 곧바로 소희에게 넘겨주었다. 소희가 조용히 자캣을 입는 사이로 힐데는 한참을 바라보는 로라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지금 본 건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마.”

“네?”

“네? 가 아니라, 지금 저 녀석의 몸에 대해서 얘기하지 마라고.”

“그냥 언니잖아요.”

로라의 순수한 대답에 힐데는 당황한 시선으로 로라를 바라보았다. 로라는 고개를 갸웃하며, 힐데가 왜 당황한 건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시선이었다. 주시윤은 그런 로라에게 다가가 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음...... 로라 양. 소희 언니는 우리 같은 인간의 몸이 아니랍니다. 조금은 '특별한' 형태라고 봐야할 거에요. 인간은 아니면서 동시에 괴물도 아닌......”

“모르겠어요.”

로라의 고개를 갸웃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에 주시윤은 난감한 시선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하하하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군요. 그러다가 크게 다치면......”

“매일 허구한날 뒹굴거리다가 넘어지기 일쑤인 제자가 할말은 아니라고 본다만?”

“스승님. 혹시 그 작전 얘기하는 거면 그 이야기는 제외해주시겠어요?”

“맞잖아. 매일 나에게 엉겨붙다가 엉거주춤하면서 넘어진게 몇번인지 세기 힘든데?”

“미나양까지 참......”

주시윤은 제발 편의를 봐달라는 듯 두 손을 모으며 사정했지만 힐데와 미나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셋의 실랑이에 소희는 크흠 거리며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입가에 가렸다. 주시윤은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은 듯 호오 소리를 내며, 소희를 바라보았다.



“방금 웃으신 것 같은데? 저의 착각일지도 모르겠군요. 근위대장님?”

“소희라고 불러. 이젠 근위대장은 아니니까.”

“이젠 그 이름에서 좀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정소희.”

“지긋지긋하니까. 그런 일들은. 내 몸은 내가 아니. 로라에게는 내가 따로 설명할게.”

소희는 힐데와 주시윤의 귀찮게 파고드는 질문을 피하듯 대답하는 사이로, 자신이 어떤 존재일까 머릿 속이 잔뜩 복잡해진 듯한 로라에게 다가갔다. 



 

“저 녀석의 말대로 언니가 좀 이런저런 골치아픈 것들이 좀 있긴 해. 뭐.....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네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로라.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괜찮으니까.”

“그냥 언니라고 생각할래요. 언니는 아빠의 기운이 느껴지고..... 나쁜 괴물들에게 느껴지는 건 없으니까요. 언니가 어떤 모습이라고 해도 전 느낄 수 있어요. 언니는 그런 괴물이 아니라고요.”

로라의 대답에 힐데는 로라부터 느끼지 못했던 미묘한 기운을 느꼈다. 소희와 이야기하며, 웃는 그 사이로 소희의 주변에 가득히 느껴졌던 침식파의 기운이 옅어지다 못해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전부터 느꼈지만, 정말 특이하죠? 저 아이.”

“저 아이. 로알 벨치카의 딸인가?”

“네. 스타방에르 구원자의 따님이니. 더더욱......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네요.”

둘의 대화 속에서, 미나는 호기심이 생긴 시선 듯 조심스럽게 로라에게 다가갔을 때, 로라는 미나의 가슴에 착용되어있는 명찰의 이름을 보고 단어 하나하나 또박또박 읽듯 말했다.

 


“유.....미나? 미나 언니?”

“어? 어.”

“미나 언니. 앞으로 소희 언니 지켜주실 거죠?”

로라의 순수한 미소에 미나는 당황한 시선으로, 로라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로라는 장난기 발동한 듯 미나의 손을 꼭 잡았다. 

“무...물론. 약속할게.”

“고마워요. 미나 언니.”

로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나의 두 손에서 벗어나자 미나는 자신에게 느끼지 못했던 따뜻하면서 포근한 기분이 온몸에 퍼져오는 것 같았다. 

 



로라와 헤어진 후 소희는 주시윤으로부터 받은 겉옷을 입은 채 펜릴 소대의 호위 아래에 코핀에서 마련된 차량으로 돌아갔다. 미나와 주시윤이 후방에서 확인하는 동안 소희는 조용히 자신의 주변을 호위하는 힐데를 의식하듯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나?”

“원래 두 녀석이 날 감시하는 건 줄 알았는데, 대장께서 집적 행차하는 건 처음이라서.”

아. 뜻밖의 손님이라고 하는 걸까? 하긴 소희의 입장에서 힐데 자신은 초대받지 않는 손님이나 다름이 없을 테니까. 



“추후의 상황에 대비한다고 봐야겠지. 물론 침식사태가 발생하면, 이 이후로는 나랑 저 녀석들을 볼틈은 없겠지만. 혹시 저 두 녀석이 널 골치아프게 하는 게 있으면 말해도 돼.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처리할 테니까.”

그 말은 즉 저 두 친구를 이 컴퍼니에서 내보겠다 건가? 뜻밖에 권력에 소희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시선으로 둘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둘은 문득 소희의 시선을 의식한듯 긴장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소희는 악마가 될 것 같은 자신을 진정시키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덕분에...... 모처럼의 추억을 가져왔으니까. 이 이후로는 난 다시 그곳에서 격리되겠지만.”

“아주 잠깐일 뿐이야. 의뢰인이 일단 널 맡기고 상황이 종료될때까지니까. 추후의 나아지면, 네가 뭘하든 신경쓰지 않을거야.”

“고마운 대답이군.......”

“힐데라고 불러. 이미 자기 소개는 충분히 했다고 보는데?”

힐데는 편안하게 말해도 좋다는 듯 자신과 둘에게 시선을 보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지니스라는 것에서 이 이야기는 우습지도 모르지만, 고마워. 그 아이를 만나게 해줘서..... 힐데.”

“왜 그 애를 만나려고 한 거지? 단순히 직감으로 그 행동을 했다고 하기에는 이해할 수가 없거든?”

 



'익숙했으니까.'

 


힐데의 물음에 소희는 당연하다는 듯 그녀에게 대답했다. 힐데는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대답에서 그녀로부터 느껴졌던 경계를 '반응' 시켰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습게도....... 참을 수가 없었거든. 만약 내가 괴물이 되어버린다면, 힐데 네가 죽여야할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야. 다행히 허락을 해줬어..... 그래서 만나게 된 거야.”

“그 위험천만한 일을 내 제자들이 허락했다라..... 누구지?”

“내가 말하게 된다면, 그 녀석은 '영원히' 쉬는 거야?”

소희의 회사용어를 이해했다는 듯한 대답에 힐데는 제법이라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권한은 사장님이 정하긴 하지만, 만약 저 멍청한 제자라면, 기쁜 마음으로 사장님께 보고할.....”

“됐어.”

“갑질을 할 수 있음에도, 그걸 포기하겠다라 네가 사장이 되면 문제만 터질 것 같은데?”

“남말하지 마. 몰락한 그룹의 근위대장이라고 해서 악마같은 것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소희는 그런 존재는 다시는 되고 싶지 않다는 듯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모처럼의 신경질적인 대답을 꺼내서 힐데가 불쾌해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덤덤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꺼내고 있었다. 



“이제 좀 사람 같아졌군.”

“내가?”

“그래. 처음 네가 이곳에 왔던 것과는 다르게...... 많이 변한 것 같아. 이야기를 하고 반응을 하고 그리고 웃게 되었고. 나도 이런 식으로 침식체와 1:1 대화를 하는 날이 올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

“언젠가 내가 이성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데 그런 소리를 장난스럽게 지껄이는 거야?”

소희는 자신의 검은 장갑을 벗고, 변이된 자신의 손을 보여주자 힐데는 이미 준비되어있다는 듯 자신의 등에 착용된 두 자루의 검에 시선을 보냈다. 



 

“그래야 펜릴 소대겠지. 관리국의 요원들께서도 늘 철저히 준비하니까.”

“관리국에 대해서 다 알고있다는 듯 얘기하지마.”

“나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아야 되는 건 너 같은데? 너흰 그 뒷처리를 하면 끝나는 일이지만 나는 내가 지휘하던 모든 것들을 잃고 참혹하게 죽는 모습을 직접 경험해야 했으니까.”

소희는 그 대답 속에서 침식화 된 자신의 눈을 부릅 뜨며 침식체로 변이된 자신의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힐데가 모르는 건 아니었다. 관리실패는 재경그룹까지 덮쳤고 재경그룹의 관할 태스크 포스와 그룹의 근위대였던 장용영까지 모든 건 휩쓸어버리며, 진행되었으니까. 



 

힐데는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그녀가 침식체가 되었음에도 필사적으로 숨이 붙어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는 어딘지 모르는 이면세계의 추락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세월 속에서 생존하며 버텼겠지. 지원도 심지어는 구조도 없이.

“그래도 넌 살아있잖아? 가끔은 그것에 대해 감사해도 좋을 것 같다고 보는데?”

“이런 나라고 해도.......그런 가치가 있다고 보는 거야?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나라고 해도 말이야?”

“만약 네가 그렇게 방황과 고통 속에서 해맸다면, 넌 로라를 만날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야.”

 


로라. 그 대답에 소희는 문득 자신의 몸에 끓고 있던 응어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소희는 그 앞으로 자신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던 로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뒤에서 실컷 고통받았으면 이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되지 않겠어? 로라의 아빠가 너에게 그 기회를 준 이상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아야하고. 그게 너와 로라가 약속한 거 아니야?”

 


'나와는 다르게 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는 아무 생각없이 자신에게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그곳이 지옥이라도 해도 상관없이 '경각' 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붙잡았으니까. 하지만 그가 아닌 힐데로부터 이야기를 듣자 이상하게 화가 치밀었다.

“네가 뭔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건가? 신성한 영역을 더럽힌 거라면, 사과할 생각은 있는데?”

“역겹게 사과하지 마. 더 짜증나니까.”

소희는 터질 것 같은 짜증을 토해내듯 대답했을 때, 자신의 호흡이 가파라짐을 느끼며, 약을 찾으려고 했을 때, 힐데는 소희에게 베타 2 흡입제를 건네주었다. 



 

“괴씸한 것 치고 나름 준비성이 있네?”

“내가 저 녀석들에게 스승이랑 선배 소리 들을려면 철저히 준비해야 하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고결한 장용영의 정소희 아가씨?”

“........너 진심으로 죽고 싶은 거야?”

소희는 흡입제를 먹으면서, 자신에게 도발하는 힐데를 바라보자 힐데는 그런 소희의 모습을 더 보고 싶은 듯 도발을 계속했다.



“궁금하긴 하거든. 그리고 네가 로라에게 가르쳐준 것들을 내 멍청한 제자들과 컴퍼니 녀석들에게 알려주면 더 좋고.”

“그 녀석들에게? 나에게 빌붙을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대충 관리했다는 거야?”

소희는 힐데의 궁금증에 쓸 때 없는 짓을 하지 마라고 말하면서도 묘하게 주시윤과 유미나에게 시선이 옮겼다. 힐데는 확실하게 할 건지 묻는 듯 시선으로 물었고, 소희는 자신의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춘 채 둘을 바라보았다. 

 


“뭐...... 이런 괴물에게 배울 거리가 있다고 한다면 상관없어. 그 컴퍼니에서 오랫동안 갇혀지내는 신세인건 마찬가지니까.”

“그럼 성사인가?”

“맘대로 생각해. 다만........ 장담은 못해. 오랜만이거든....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거......”

소희는 그것만큼은 자신이 없었는지 얼굴을 붉힌 채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주시윤과 미나는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것처럼 보였던 그녀에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있다는 걸 알자 신기한 동물을 바라보듯 처다보았다.

 


“호오 들어보니, 저와 미나양에게 재미있는 걸 가르쳐주려고 하시는 건가요? 저야 환영이긴 합니다. 저희 스승님보다 더 대선배님이신 소희 아가씨의 실력이 궁금하긴 했거든요.”

“그 망할 '아가씨' 라는 단어를 빼. 화가 치밀어오를 것 같으니까.”

“아하하하. 예의를 포장해서 담아 말씀드린 건데 제가 좀 말이 삼했나보군요. 대선배님.”

주시윤은 눈 웃음을 지으며, 화나게 할 생각이 없다는 듯 두 손을 피는 사이로 소희는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유미나를 바라보았다. 미나의 눈에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기괴한 형태의 침식체의 팔과 변해버린 자신의 눈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희는 그런 시선에 익숙하다는 듯 미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싫으면 안해도 돼. 나 같은 년이야 침식체에 불과하지만......”

“아니야. 그건....... 사실 총에 비해서 좀....... 검을 쓰는 게 영 익숙치 않은 부분들이 많아서. 그리고 로라의 말대로 네가 아무리 외형이 그렇게 보여도 결국은 내가 만나고 전투를 벌였던 침식체들과는 달라보였거든. 그래서......”

미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산으로 가는 것 같은 자신을 느꼈다. 소희는 답답한 시선으로 미나에게 다가갔다. 미나는 흠칫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차고 있던 총을 쥐었지만, 소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총을 자신의 변이된 손으로 가져간 후, 인간의 형태가 남아있는 손으로 미나의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유미나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실력은 있네? 전투에 익숙한 게 보이지만 그 익숙함에 물들이면 안 돼. 나도 그렇게 가지고 있다고 이 꼴이 나버렸으니까.”

“네...... 소희 씨.”

“그냥 소희라고 불러. 어차피 내가 너에게 선배라고 불러야 하잖아?”

“알았어.... 소희야.”

미나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녀가 자신을 보고 선배라고 부르는 호칭은 영 적응하기 힘들었다. 소희는 귀엽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미나에게 감사의 선물을 주듯 그녀의 무기를 돌려준 사이로, 힐데에게 준비가 되었다는 듯 시선을 보냈을 때, 힐데는 아. 소리를 내며 주시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왕 할거 '저 녀석' 은 좀 더 갈궈도 돼. 내가 뭘 하려고 해도, 진짜 말귀를 거꾸로 먹는 녀석이니까.”

“하하하 스승님. 저도 나름 제 역할을 했는데 이런식으로 절 대하시면 어떡합니까?”

주시윤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했지만, 소희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표정에 주시윤은 그녀에게서 퍼져오는 섬뜩한 기운을 느낀 듯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소희는 그런 둘의 모습에 재밌다는 듯 쿡 웃어버렸다. 

 


“그나저나 내 제자의 말대로라면, 나도 널 선배라고 불러야 하나? 졸업시기 상으로는 선배나 다름이 없으니까.”

“하아.... 그만해. 이미 그 단어는 질리도록 들었으니까.”

힐데의 물음에 소희는 다시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흐음...... 정말 주시윤의 말대로라면, 알파 자네가 아카데미 몇기생인지 알고 있나?]

 

[네? 갑자기 그게 무슨.....]

 

[힐데가 선배라고 부를 정도라면, 그동안 그녀에게 반말을 했던 것들에 대한 '사과' 를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농담이시죠? 아무리 스승님보다 더 앞선다고 해도 그건......]

 

[흐음..... 우리 코핀컴퍼니의 기본 수칙은 상사를 존중한다. 라는 걸 잊었나? 설마 나보고 개[검열] 변태사장[검열]. 라고 부르는 건 아니겠지?]

 

[........그냥 이 알파인가 베타인가 그 구닥다리한 거 그냥 버리고 그냥 본명 까죠. 이딴 게 무슨 기밀이에요!]

 

[어영부영 넘기지 말게 알파. 자네가 대선배에게 무례한 소리를 한 걸 이미 다들었다네.]

 

[그거야...... 몰랐죠.]

 

[모른다고 하면 다 되나? 흐음 힐데에게 말해야겠군. 이수연이 군기가 빠져서 선배한테 [검열]을 퍼붓는다고 말일세.]

 

[하아..... 알았어요. 저기.... 대선배님. 저도 스승님과 마찬가지로 이 아카데미 졸업생인데 저보다 선배인지 모르고 함부로 반말을 까면서 갑질을 한 거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선배님의 겪으셨던 일들을 기억하며, 저희 코핀컴퍼니를 안락한 집처럼, 뒷치닥꺼리나 담당하는 하녀 처럼 굴리거나 [검열] 같은 일이 생기면, 이수연 개[검열] [검열]년 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으니 마음껏 부려주시면 됩니다.]


 

[음! 그걸세! 그래야 알파답지.]

 


[참고로 이건 정소희 선배님에게 한거지 당신 같은 인간한테 한거 아니니까. 조용히 좀 하세요.]

 


[내가 인간이라고? 난 인간이 아니라 '머신' 갑일세! 하. 하. 하.]

 


[이 기록 끝나는대로 간만에 리액티브 소드 연습 좀 해봐야겠군요. 아 마침 연습하기 좋은 '사장실' 더미도 있군요? 곧 갈테니까, 죽을 준비하세요.]



chapter 1 end




후기



안녕하세요? 필자입니다.

벨치카 함의 기록이 첫번째 챕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원래는 간단한 분량의 팬픽 스타일로 만들려고 했지만,

카운터 사이드 특성 상 다양한 전투요소와 전략 등을 요구하는 게임이다보니 문제가 발생하고 그 문제에 대한 캐릭터들의

다양한 상황과 갈등이 이 게임에 녹아내려야 할 필요성이 생기면서 다양한 장면과 신을 추가하게 되었고  이제는 총 4부작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챕터 2는 지금 전체적인 구상은 완료되었고, 전체 분량의  50% 정도 완성되었습니다. 챕터 2에서부터는 여러분들이 관리하시는 '코핀 컴퍼니' 의 비중이 높아질 예정입니다. 편수는 1챕터보다 좀 더 많을 수 있으며, 읽는 분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와 사건들을 더 추가해서 게임에서 즐기던 '또 하나의 외전 스토리' 라는 느낌으로 완성이 될 예정입니다. 



전체적인 스토리 진행 이후로 카운터 케이스라는 특수한 '편' 을 만들어 후일담 혹은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스토리를 담을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이 주시는 조회수와 추천 그리고 덧글은 연재하는 저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항상 지켜봐주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챕터 2는 작업이 완료되는데로 연재를 시작하겠으니,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