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참교육 시리즈

1편-https://arca.live/b/lastorigin/33222328

2편-https://arca.live/b/lastorigin/33235747

3편-https://arca.live/b/lastorigin/33264397

4편-https://arca.live/b/lastorigin/33293720


장화 순애 시리즈

1편 2편 3편 4편 5편 6편

7편 8편 9편 10편 11편 12편

13편 14편 15편 16편 17편 18편 完 에필로그


두번째 인간 시리즈

1편 2편


발할라 팀이 폐건물에서 시신들을 모두 수습하고 돌아올 때까지도 닥터와 의료진의 시술은 끝나지 않았다. 사령관은 조바심 내지 않고 수습된 시신들을 하나씩 둘러봤다. 발할라가 보낸 당시의 현장은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떤 군인과 한 님프는 포위 당했었는지 서로의 등을 맞댄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한 발키리는 여러 군인들을 감싼 채 함께 폭발에 휘말려 있기도 했다. 사령관의 마음을 가장 안타깝게 만든 모습은 지휘관으로 보이는 장교와 레오나가 서로의 손을 붙잡고 함께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비록 군인의 얼굴은 완전히 풍화되어 백골만 남아 당시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그 옆의 죽은 레오나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마치 자신이 죽더라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수 있기에 미련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듯이. 분명 장교도 그러했을 것이다.


아무리 죄악으로 얼룩진 구 인류라고 하지만 광기 속에서도 인간의 최후의 선함은 꽃 피는 법이었다. 그들은 비록 인간과 바이오로이드라는 구 인류의 입장을 사회가 유지될 때는 넘어설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 인류가 멸망하고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마주하고 나서야 서로를 진정한 전우이자 동료, 혹은 사랑하는 이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것은 구 인류 이전에 서로를 신뢰하고 지켜야하는 전우라는 동등한 입장이 되었기에 비로소 느낄 수 있었으리라. 


사령관은 관 안에 비로소 안식을 얻은 옛 구 인류 전사들과 발할라 팀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들이 거쳐온 과거가 어두워도 부디 그들의 영혼은 전사들의 낙원 발할라에 도달했기를. 한 명씩 세세히 살피며 애도를 표하고 이윽고 끝에 도달했을 때 사령관은 기존의 관보다 절반 가량 작은 관 앞에 멈춰섰다. 관 안에는 감색 머리의 소녀가 잠든 것처럼 안치되어 있었다. 


"이 아이야?"


"응..."


레오나가 말한, 대피 방공호에서 두 번째 인류와 함께 방치되었던 구조 요청의 주인공이 바로 이 안드바리였다. 지상의 발할라 팀과 달리 안드바리의 시신은 비교적 온전했다. 그렇지만 되려 그렇기에 너무 생생한 소녀의 죽음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어린 아이에게 마저도 자비 없이 찾아오는 것이 바로 죽음이었다. 사령관은 여지껏 자신의 지시 아래에 가족들이 죽지 않은 것을 하늘에 감사하며,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레오나."


"응, 달링?"


"난 절대로 누구도 죽게 하지 않을거야."


레오나가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사령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화장 준비를 마친 이그니스가 사령관에게 다가왔다.


"사령관님, 장례 준비가 끝났습니다."


"잠시 기다려줘. 이 모습을 꼭 봐야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없이는 장례는 보류할게."


"알겠습니다. 


사령관은 다시 한 번 오래 전에 떠난 이들에게 정중하게 애도를 표했다. 그때 시신들을 경건하게 수습하던 발키리가 무언가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사령관님."


"음? 이게 뭐야?"


"저 안드바리 품 안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그것은 데이터 칩이었다.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기록을 저장한 칩으로 보입니다."


"어, 나도 그렇게 보이네."


"두번째 인간님과 연관이 있을까요?"


"글쎄..."


삐삐


귀에서 들려오는 무전에 사령관이 응답했다.


"어, 닥터야?"


-응, 오빠! 시술 끝났어. 어서 와봐!


"알았어. 레오나, 발키리. 닥터가 시술을 끝냈다고 해. 같이 가겠어?"


"응/네."


-----------------------------------------------------------


수복실. 다프네와 리제는 어느새 간호복을 벗고 원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닥터도 마스크와 수술 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닥터?"


"아슬아슬했다고 해야 하나, 용케 성공했다고 해야 하나? 초인병사답게 몇 십년이나 가사상태로 버틴 게 용하긴 했어. 하지만 역시 너무 오래 방치되서 그런지 점점 죽어가고 있는 상태였더라고. 시술로 어떻게 될 게 아니었어."


"어...그럼 어떻게 조치 했어?"


"간단해. 오빠 때하고 똑같은 방법을 썼어."


닥터가 뒤에 놓인 배양탱크를 가리켰다. 배양탱크 안에는 녹색 영양액에 잠긴 두번째 인간이 산소 호흡기를 착용한 채 잠들어 있었다.


"새 육체를 만들어 준 거야?"


"응. 다행히 뇌나 심장같은 주요장기는 거의 문제가 없었더라고. 이미 오빠의 육체를 만든 설계도는 있으니까, 거기다 그냥 두번째 인간님의 유전자로 바꿔 만들기만 하면 간단한 거였어. 그렇다고 해도 역시 초인병사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방법은 생각도 못했을 거야. 일단 외형은 갑자기 바뀌면 혼란스러워할 것 같아서 기존의 얼굴을 그대로 사용했어."


"잘해줬어. 그래서 언제즘 깨어날까?"


"지금이라도 깨울 수 있어. 오빠가 올 때까지 기다렸던 거야."


사령관이 주위의 바이오로이드들을 둘러봤다. 두번째 인간의 소생은 성공했고, 이제 자신의 가족들. 구 인류를 겪어 본 이들에게 마지막 허락을 요구했다. 레오나와 발키리, 그 밖의 다른 이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깨워보자."


사령관의 말과 함께 닥터 배양탱크의 녹색 버튼을 눌렀다. 


우우우우웅


배양탱크가 빛나더니 그 속의 두번째 인간의 몸이 꿈틀거렸다. 생명유지 장치가 가동하면서 두번째 인간의 심장에 충격을 주면서 다시 뛰게 했다. 이윽고 두번째 인간의 몸에서 점점 활력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생명반응 정상화 앞으로 3초...2....1.....생명반응 확보!"


다음으로 닥터가 노란 버튼을 눌렀다. 배양탱크의 영양액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수위가 내려가면서 두번째 인간의 신체가 공기와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그의 몸에 부착된 센서들이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닥터가 빨간 버튼을 누르자 배양탱크가 증기를 뿜으며 열렸다.


취이이익 덜컹 우우우웅....


하얀 증기가 배양탱크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윽고 증기를 뚫고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바닥에 흐르는 배양액들이 두번째 인간의 발에 찰박 거렸다. 이윽고 두번째 인간이 배양탱크 밖으로 걸어나왔다. 


"오오...."


발키리가 탄성을 흘렸다. 증기를 뚫고 나온 두번째 인간의 모습은 처음 발견한 그 모습대로였다. 짧은 스포츠 머리로 다듬은 금발, 거칠고 굵은 외곽선, 짙은 눈썹, 입 주위의 수염. 신체 또한 근육의 잔결과 핏줄이 그대로 보이는 야성적인 외모였다. 사령관도 작은 키가 아닌데도 두번째 인간과 비교하면 성인과 청소년처럼 보일 정도였다. 가사상태의 피골이 상접할 때도 기골이 장대하다 여겼는데 직접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니 차원이 달랐다. 사령관과는 사뭇 다른 남성미가 생명을 되찾고 다시 일어섰다.


털썩


배양탱크 밖으로 걸어나온 두번째 인간이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았다. 사령관과 닥터가 그에게 다가가 함께 눈을 맞췄다. 두번째 인간은 쏟아지는 빛에 눈이 부신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봐요, 내 말 들려요?"


사령관이 두번째 인간에게 말을 건넸다. 두번째 인간이 사령관이 부르는 소리에 흠칫하며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 눈 좀 떠보시겠어요?"


닥터가 두번째 인간에게 물었다. 이에 두번째 인간이 천천히 손을 내리더니 파들거리며 눈꺼풀을 간신히 뜰 수 있었다. 눈이 마치 처음 써보는 것처럼 모든 자극이 너무 격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뿌연 시야가 조금씩 뚜렷해졌다. 두번째 인간이 마주한 것은 부드럽고 온화한, 그렇지만 그 속에 단호함과 용기가 깃든 청년의 얼굴과 안경을 쓴 소녀의 얼굴이었다. 


"여기 좀 봐주세요."


소녀, 닥터가 약한 빛의 전등으로 두번째 인간의 눈을 가리켰다. 좌우 양눈을 번갈아 가리키던 닥터가 반색을 드러냈다.


"시신경도 양호하고, 제 말 잘 들리세요?"


닥터의 물음에 두번째 인간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닥터가 두번째 인간의 양 귀에 손가락을 튕겼다. 딱딱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의 귀가 차례로 쫑긋댔아.


"좋아, 청각도 문제 없어!"


"혹시 자기가 누군지 기억하세요?"


사령관이 물었다. 두번째 인간은 영문을 몰랐다. 이 청년이 대체 무슨 질문을 하고 있는거지? 그렇게 자기가 오히려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아.....아....."


두번째 인간은 당황해 자기 목을 더듬었다.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저 힘빠진 성대의 숨소리만 들렸다.


"어어...뭐야...마.말을 못하시는거예요? 닥터?"


"이상하다...성대랑 기관지는 잘 작동하는데?"


"어쩌면 신체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을거야."


레오나가 조심스레 의견을 드러냈다. 두번째 인간은 자신과 눈이 마주친 레오나의 모습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저 레오나는 얼굴을 같지만 분명 자신이 아는 레오나가 아니다. 그 옆에 있는 발키리도. 그들은 전혀 다른 이들이 분명했다.


"자.잠깐만. 그러면...."


사령관이 잠시 고민하더니 무전기를 들었다.


"엔젤. 잠시 수복실로 와주겠어?"


사령관이 호출과 함께 한 소녀가 수복실로 찾아왔다. 거의 헐벗은 듯한 복장에 뒤에 작은 날개를 단 이름 그대로 천사와 같은 모습의 바이오로이드 엔젤이었다.


"안녕하세요, 구원자님! 저를 찾으셨다구요?"


"응, 미안한데 여기 이분 통역 좀 해주겠어? 아, 여기있는 엔젤이 당신의 마음을 읽고 대신 답해주실 거에요. 말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시면 엔젤에게 신호를 주세요. 엔젤도 이 분이 원하지 않는 내용은 대답하지 말고."


엔젤이 쪼르르 날아와 두번째 인간의 곁에 앉았다. 두번째 인간은 미심쩍은 눈으로 엔젤을 보더니 다시 사령관을 봤다. 그러자 엔젤이 사령관에게 말했다.


"이런 소녀가 독심술을 쓴다니, 장난하는것이냐? 라고 하시네요."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전달하자 두번째 인간이 눈을 크게 떴다. 엔젤이 싱긋 웃었고, 사령관도 내심 우쭐해했다. 그것도 잠시, 다시 사령관이 진중한 태도를 갖췄다.


"자, 이제 의사소통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다시 여쭤볼게요. 자기가 누군지 기억하세요? 이름이 뭐죠?"


두번째 인물은 미심쩍지만 엔젤이 보여준 능력은 분명 확실했다. 자기가 왜 말을 못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건 차차 해결해나가면 될 것 같았다. 우선은 자기 앞에 있는 이들과 대화가 우선이었다. 그가 엔젤을 보자 엔젤이 바로 통역했다. 


"나는 라이오넬 시그문. 러시아 제7군단 22보병연대 6연대 10중대의 중위다. 라고 하시네요."


"이름이 라이오넬이었군요. 반갑습니다, 라이오넬."


"지금 연도가 어떻게 됐지? 전쟁은 어떻게 됐나? 라고 물으세요."


"전쟁이라...당신은 최근 몇십년 동안 쭉 가사상태였습니다. 저희가 구조신호를 듣고 방치된 당신을 발견한 거예요. 어떤 전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쟁은 이미 진작에 끝났습니다."


몇 십년? 지금 이 청년이 몇 십년이라고 한 거야, 지금? 믿기지 않는 말에 라이오넬은 엔젤을 바라봤다.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분명 눈앞의 청년의 마음도 읽을 수 있을 터. 엔젤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확실히 좀 이상했다. 분명 마지막으로 잠이 들기 전에는 자신의 신체는 피골이 상접하고 부상으로 크게 다친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은 전성기의 육체를 그대로 회복하고, 상처나 피로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라이오넬은 찬찬히 자신의 마지막 기억을 되살렸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벌레놈들이 AGS들을 감염시키면서 수도가 함락됐고, 연대가 뿔뿔이 흩어졌다. 자신은 소수의 인원들을 규합해 간신히 한 군수공장에 대피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러다 점차 하나둘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어버렸고 점점 싸울 인원이 줄어들어 갔었는데....


라이오넬이 퍼뜩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고보니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모두들 어디있지? 라고 물으세요."


"모두들?"


라이오넬이 다급히 사령관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갑작스런 돌발행동에 발키리가 황급히 막으려 하다 사령관이 제지했다. 라이오넬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내 소대원들. 나와 죽음도 함께하기로 맹세한 내 형제들. 최후까지 물러서지 않고 우리들과 함께 싸워준 발할라 전우들 말이다. 라고 하세요...."


아, 올 것이 왔구나. 사령관이 눈을 질끈 감았다. 언젠가 알려야하긴 했지만 이렇게 바로 잔혹한 진실을 알려줘야 하다니. 그렇지만 숨겨봤자 의미가 없었다. 뒤로 미룰수록 진실은 더 끔직한 고통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지금 알려야했다.


"저희가 도착했을 때....이미 인간 분들은 백골이 되어있었고, 발할라 또한 오래 전에....."


라이오넬은 눈앞의 청년이 하는 말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몇 십년이 지나있었다고? 그리고 나 혼자만 발견되어서 살아남았다고? 다들 죽었다고? 그럴리가 없었다. 다들 죽음 따위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호탕하고 투지로 불탔었는데. 


그때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엄습했다. 라이오넬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두통을 억누르려 했다.


"괘.괜찮아요?"


사령관이 다급히 부축하려 했지만 라이오넬은 그런 사령관을 저지했다. 두통과 함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자기가 쓰러지듯 잠에 빠지기 마지막의 기억이.


갑작스런 철충들의 기습. 이전처럼 소규모 수색대가 아니라 본대가 작정하고 처들어온 대규모 공습. 소대원들과 발할라가 사력을 다해 맞서 싸웠지만 중과부적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스러져 갔다. 라이오넬 또한 몰려오는 적들을 향해 한치의 물러섬 없이 맞서 싸우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겨오는 눈꺼풀은 원망스럽게도 그의 정신을 따라주지 않았다. 결국 철충의 공습에 휘말려 쓰러졌고, 쓰러진 그를 구하기 위해 전우들이 달려들어 간신히 그를 구출하고는 지하 방공호에 대피시켰다. 


그래. 분명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더 생각났다. 라이오넬은 그때 혼자 방공호에 들어가지 않았다. 발할라 대원들이 다른 이를 나와 같이 대피시켰다. 그녀는 자신도 자매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소리쳤지만, 레오나가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아주고는 그대로 그녀를 방공호에 두고 떠났다. 


그녀는 굳게 잠긴 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우리도 싸우게 해달라고, 우리도 함께 발할라로 가게 해달라고. 그러다 그녀는 라이오넬이 깨어난 것을 보고는 자신에게 달려왔다. 자신이 또 잠들 줄 알았다고. 제발 날 버리고 가지 말라고. 우리도 당장 가서 싸우러 가자고 애원했다. 라이오넬도 그 말에 부응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은 점점 감겨오고 오랜 피로와 부상으로 지친 몸도 천근처럼 무거웠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에게 웃어 주는 것 뿐. 


그 모습에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드릴게요.


라이오넬의 가슴이 철렁했다. 안돼, 제발. 그 아이만은 제발.


"신드리는, 신드리는 어디있지? 라고 물으세요."


"신드리?"


사령관의 어깨를 붙잡은 라이오넬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부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 한 줄기마저도 앗아가지 말라는 듯이. 통역을 하는 엔젤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라이오넬의 절망과 공포가 그녀에게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


"나와 함께...방공호에 있던 안드바리 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라이오넬의 충격적인 말.


"...내 딸이다...라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