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결투표(自決投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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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악마의 손에 이끌리어 침대 앞에 멈춰선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아니, 지금도 미련을 온전히 버리지 못한 남자가 누워있다.

 

손발은 사슬에 묶여있고 눈은 안대로 가려놓았다.

 

그러나 어떤 것에도 가려지지 않은 입가는 쾌락에 희미하게 녹아있었다.

 

저항하고 또 저항하면서도, 차마 열락을 이겨내지 못하고 표정에 드러난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박선정은 심장이 격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자, 한 번 만져보세요. 쥐기만 하는 건 규칙에 걸리지 않는 모양이고.”

 

그런 그녀의 귓가에 백은하는 히죽거리며 속삭여왔다.

 

만진다? 무엇을 만지는지는 되묻지 않았다.

 

하반신에 우뚝 솟은 그 강직을 바라보고 침을 삼킨다.

 

백이란의 곁에 누운 성란이 그것을 살살 간질이고 있었다.

박루미는 무엇이 그리 기쁜지 그의 가슴을 혀로 핥아댄다.

 

“문희 언니를 위한 일이잖아요?”

 

이내 박선정의 손을 백은하가 붙잡더니 그것을 백이란의 하반신 근처로 옮겼다.

 

“…….”

 

성란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째릿 노려보지만

결국에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페니스의 밑둥을 붙잡곤 스윽 내밀어준다.

 

톡. 손가락이 살포시 양물에 닿는다.

 

그 너머로 전해져오는 맥박에 박선정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친구의 연인에게 손을 대고 있었다.

그의 성기를 만지고야 말았다.

 

“…….”

 

조심스럽게 그 물건을 휘감아서 쥔다.

약간이라도 긴장을 풀면 손이 파들파들 떨릴 것만 같았다.

 

“흐윽…….”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희석하기 위해서인지 무의식적으로 괜히 아래쪽 성란의 손과 겹치지 않게 잡으니 절로 위를 건들게 된다.

 

민감한 귀두 근처를 손바닥이 휘감는 감각에 백이란은 무심코 신음을 흘렸다.

 

가냘픈 그 목소리에 박선정의 가슴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랑스러운 그 소년을 지금 희롱하고 있다는 실감이 느껴졌다.

죄악감과 배덕감이 마구 뒤섞인 혼합물이 뇌를 적셔왔다.

 

귀여운 그를 더욱 골려주고 싶다는 옛 욕망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느끼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자신이 백이란을 포기했던 것은 이 감정 때문이었다.

 

그의 외견 탓에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귀여워해주곤 했다.

박선정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백이란은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가 강문희에 호감을 가졌고 결국은 맺어진 것이리라.

 

그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마음을 포기할 수 있었다.

 

자신의 욕망만을 털어놓아서는 관계가 망가질 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서지기도 전에 먼저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욕망이 다시금 피어오르고 있었다.

 

“…선생님?”

 

페니스를 쥐고 움직이지 않는 박선정의 모습에 의아한 것인지 백이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도 규칙 때문에 이 이상의 행위를 이어나갈 수 없는,

탈락자가 아닌 누군가의 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을 듣자 가슴에 무언가 틀이박히는 것만 같았다.

 

백이란은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이 박선정이라는 가능성은 추호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신뢰에 더욱이 배덕감이 찾아든다.

 

“자아, 주목!”

“……!”

 

그러던 그 순간 백은하의 목소리에 뒤이어 카메라 셔터음이 들려왔다.

 

박선정은 깜짝 놀라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갑작스런 자극에 백이란의 허리가 한 차례 흠칫 떨었다.

 

당황하며 박선정은 백은하를 바라보았다.

목소리를 내었다간 그에게 들킬지도 몰랐기에 시선으로만 무슨 짓이나며 불만을 토할 뿐이었다.

 

폴라로이드 사진기에서 드르륵 뽑혀나오는 필름을 빙긋 웃으며 휙휙 터는 백은하였다.

어쩐지 방을 밝혀놓았다 싶었더니 이것이 목적이었던 걸까.

 

“안심해요. 얼굴은 안 나오게 찍었으니까요.”

 

실제로 이내 희미하게 떠오른 사진에는 박선정의 팔만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나… 사진은 명백히 그녀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었다.

 

한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V자를 그린 백은하.

백이란의 젖꼭지를 간질이며 장난치는 박루미.

렌즈 쪽을 흘끗 바라보며 페니스 밑동을 쥐고 있는 성란.

 

페니스를 감싸쥔 손이 탈락자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했다.

 

그리고 만약 강문희가 이것을 본다면, 박선정의 손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문희 언니가 정말로 이 상황에 역겨워하고 있다면 사진을 흘끗 보고 말겠죠.

아마 찢거나 버리거나 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백은하는 완전히 인화된 사진을 책상에 놓아두고서 다가오더니 다시금 얼굴 바로 옆에서 속삭였다.

 

“하지만 만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서 계속 이 사진을 관찰한다면… 아시겠죠?”

 

그 말에 박선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백은하의 말은 이전처럼 어딘가 미쳐있으면서도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안 돼에… 문희한테는…….”

 

그러다 백은하의 말만으로도 대강의 상황을 짐작한 것인지 백이란이 애원했다.

 

잠시 멍하게 있던 박선정은 손목이 짓눌리는 감각과 함께 냉정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페니스를 쥔 손을 움직이려했음을 알아차렸다.

 

백이란의 애원을 들은 순간 속에 있던 욕망이 멋대로 그의 페니스를 흔들려고 했었다.

 

자신은 대체 무엇을 하려고 했단 말인가.

 

“……!”

 

그러다 자신의 손가락에 맞닿아오는 감촉에 그 더러운 감정을 들킨 것 같아 호흡을 들이켰다.

 

박선정의 손 아래쪽에서 성란의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장대를 위아래로 훑어올 때마다 이따금씩 그녀의 손과 부딪혔다.

 

빠르게 슥슥 문지를 때마다 손바닥 안에 담긴 귀두가 움찔대는 것이 느껴졌다.

손도 시선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백이란의 물건이 강하게 꿈틀거렸다.

 

지금처럼 피부끼리 접촉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그게 사정의 징조라는 것을 박선정은 금세 알아차렸다.

 

이윽고 그녀의 손 안에 정액이 토해내진다.

뜨거웠다. 분명 기분탓이라는 알면서도 그 열기를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손바닥이 통째로 녹아내리는 듯한 감각이 전해져오지만 차마 손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것과 동시에 미약한 정복감이 가슴속을 따뜻하게 덥히듯 채워나갔다.

 

몇 번이고 경련하며 정액을 토해내고 나서야 사정은 끝이 났다.

 

그제야 박선정은 스스로의 손을 그의 강직에서 떼어놓을 수 있었다.

 

멍하니 손을 질척하게 적셔온 백탁액을 바라보았다.

질척질척한 액체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릴 것 같으면서도 끈적하게 들러붙는다.

 

“흑?!”

 

새하얗게 물들어만 가는 머릿속을 어찌 할 생각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으니

갑자기 성란이 그녀의 손목을 탁 채더니 끈적한 손가락을 가볍게 핥았다.

 

깜짝 놀라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으나 다행히 백이란은 사정의 여운에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를 혀가 파고들어온다.

주욱 내려온 뱀이 손바닥을 훑고는 빙빙 휘감는다.

입 안에 손가락을 넣고는 과시하듯 쪽쪽 빠는 소리를 내며 게슴츠레 올려다본다.

 

그 모습을 보며 갑자기 손을 핥아진 불쾌감이 밀려든다.

어쩐지 매력적인 성란의 모습에 희미한 도취감도 따라온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강하게 뇌리에 꽂혀든 것은 아쉬움이었다.

 

저것은 자신의 것이다. 자신이 받아낸 것이란 말이다.

백이란이 내어준 욕망의 과실, 혹은 사랑의 결실.

 

당장 손을 빼내고 싶었지만 성란은 놓아줄 생각을 하질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것은 스스로 지켜내야만 했다.

 

무의식적으로 아직 성란의 혀가 닿지 않은 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그러나 입술이 손에 닿은 순간 갑자기 섬뜩한 감각이 몰려들었다.

깜짝 놀라며 박선정은 입을 떼고 물러섰다.

 

또다시 욕망에 몸을 맡길 뻔 했다.

그래선 안 된다. 자신은 결코 그런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박선정은 그렇게 재차 다짐을 하면서도

방금 닿았던 손가락을 성란이 훑으며 정액을 빨아먹는 것을 본 순간 후회가 몰려왔다.

 

그 감정을 어떻게든 어둠 속에 다시 파묻으며 박선정은 시선을 돌렸다.

 

그녀를 바라보며 백은하는 웃고 있을 뿐이었다.

악마는 아주 환하게 웃으며 손에 든 방울을 흔들었다.

 

 

1.

 

백은하에게 있어 박선정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릴 적부터 같이 자라온 우수한 언니였으니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른들에게 이따금씩 비교를 받는 일도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스스로가 보기에도 정말 굉장한 사람이었기도 했고,

비교를 한다 해도 보통 또래뻘인 백이란과 강문희가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그 두 사람이야 물론 실실 웃으면서 넘겼을 터다.

 

어쩌면 박선정을 칭찬해줬다는 점에 되레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성격이 좋은 데도 정도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두 사람은 전혀 싫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모로 모든 면에서까지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는 건 알지만 자신은 그렇게 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그 둘과 다른 방면으로 우수한 박선정은 자연스럽게 동경하는 언니이자 롤모델로 자리잡았다.

 

백은하가 가족에게 품어선 안 될 감정을 품었을 때 포기할 수 있었던 것에는

물론 자기보다 더 나은 상황이던 사람이 친구를 위해 사랑을 포기했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렇게 했던 사람이 그 박선정이었다는 이유도 무시할 수 없었다.

 

어차피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건 알았다.

친구와 싸워야했고, 싸워봐야 패배할 게 뻔했다.

 

그렇기에 서로 상처를 받기 전에 내려놓았다.

 

이것은 감성의 영역이기도 했고 이성의 영역이기도 했다.


백은하는 그 판단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납치되어 게임이 시작되고 새로운 기회가 눈에 들어오자 이전의 다짐은 온데간데없었다.

 

백은하는 눈앞에서 흔들리는 먹이에 모든 것을 내던지고 달려든 짐승이었다.

 

백이란을, 강문희를, 그리고 박선정을 배신했다.

 

자신만 믿으라며 얼굴에 가면을 덧씌우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배신해버렸다.

 

그렇다곤 해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결국 얻어낸 과실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이 감미로운 생활을 평생 이어나갈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었다.

분명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길을 택할 것이었다.

 

하지만 단지 미련이라 치부하던 갈증을 해소하고 나자 다른 곳으로 시선이 향했다.

 

조금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배가 부른 셈이다.

 

백은하는 박선정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배신한, 동경하던 그녀를 바라보았다.

 

박선정은 그 자리에 꿋꿋이 버티고 서있었다.

 

그녀도 백은하처럼 사랑을 포기했고 어쩌다보니 그것을 얻을 기회가 생겼다.

그런 점에 있어서 두 사람은 동일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다른 점은 박선정이 다짐을 꺾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욕망을 위해 배신을 택한 백은하와 다르게 그녀는 강문희의 곁에 서있었다.

 

그녀는 사랑과 우정이 뒤엉킨 갈등의 해답을 이미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와서도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이것이 그녀의 답을 베끼기만 한 백은하와의 차이였다.

 

백은하는 추악한 승리와 아름다운 패배 가운데서 전자를 선택했다.

 

그러나 박선정은 아름다운 승리를 찾기 위해 몸을 던졌다.

연심을 포기하고는, 백은하가 포기한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았다.

 

동경심이 열등감으로 바뀌는 것은 정말 한순간의 일이었다.

 

그녀를 보면 볼수록 스스로의 추악함을 깨닫게 되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신의 추함에서 눈을 돌리는 건 당연한 인간의 심리였다.

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감정을 어떻게든 중화해야만 했다.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니다.

어차피 모두가 똑같다.

 

그래야만 했다.

 

그렇기에 백은하는 그것을 증명하기로 했다.

 

게임이 완전히 끝나버릴 가능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박선정을 무너뜨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나도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남은 것은 호감과 적의가 질척질척 뒤섞인 광기 어린 감정.

 

박선정의 모습을 떠올리며 백은하는 침대에 누워있다가 히죽 웃었다.

 

팔을 들어 손끝으로 집은 작은 방울을 바라본다.

가볍게 흔들자 딸랑딸랑 소리가 났다.

 

스스로의 방에서 밤을 보내는 건 오랜만의 일이다.

 

최근에는 계속 오빠의 방에서 지냈으니 말이다.

 

이것 역시 또 다른 거래의 내용이었다.

 

사흘 간 박선정을 조금씩 플레이에 끼워주는 대신 밤 시간에 백은하가 빠져주기로 한 것이다.

 

탈락자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문제될 것 없는 제안이었다.

 

박선정은 가능한 플레이에 제약이 있는 반면 백은하는 그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욱 백이란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터였다.

 

물론 온전히 박선정만을 망가뜨리기 위해서 이런 계약을 감수한 건 아니었다.

 

성란과 박루미 두 사람을 더 가깝게 하기 위함도 있었다.

 

분명 독점욕이 강한 그 둘이지만 분명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징조가 보였다.

 

그 누구와 맞붙어도 혈연이라는 족쇄가 방해되어 밀려날 백은하였다.

백이란은 모두를 받아들이는 난잡한 인간이어야만 했다.

 

여자들끼리 싸운다면 그 전제부터가 박살나버리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백은하는 그녀들이 조금씩 서로를 받아들이도록 판을 짤 필요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몹시도 순조로웠다.

 

밤은 깊어가고, 통화를 알리는 벨소리가 들려왔다.

 

백은하는 웃었다.

언제까지고 웃을 수 있을지는 스스로도 몰랐지만, 적어도 끝까지 웃기를 바랐다.

 

 

2.

 

‘매일 한 번은 말을 해야 한다.’

 

[찬성] 15

[반대] 0

 

스크린에 떠오른 문자.

 

강문희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역시 이 정도면 문제는 없겠지? 정 뭣하면 혼잣말을 해도 되고.]

“네에, 아마 괜찮을 것 같아요.”

 

이것은 더 이상 규칙이 아니었다.

그저 반드시 매일 하나의 규칙을 세워야 하기에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강루미는 이제 규칙에 그다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런 것보다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통화방에 있는 사람의 수.

 

아니, 이제 통화방이라는 표현도 쓰기에 꺼려졌다.

 

스크린에 있는 것은 오직 미술교사의 이름뿐이었다.

이시연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이 통화를 듣고 있지 않았다.

 

탈락자들이 하나둘 늘어나며 매일 통화하는 인원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오늘, 박선정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백은하가 그녀에게 내린 명령 때문이었으나 그런 자세한 이유를 알 리가 없었다.

 

물론 이시연은 대강 정도는 짐작했다.

백은하와의 거래에서 오간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강문희 역시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무심코 책상 한쪽에 놓아둔 사진으로 시선이 향했다.

 

사진 속에서 그녀의 연인은 여러 여성들에게 희롱당하고 있었다.

 

문에 꽂혀있던 그 사진을 처음 봤을 때는 누군가 자신을 괴롭히고자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니 신경을 쓸 필요 따윈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강문희는 그 사진을 보며 스스로를 위안해 몇 번이고 절정에 달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고 만 것이었다.

 

그 사진에는 박선정이 있었다.

 

오직 팔만이 드러나 있을 뿐이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때의 감정은 문자 그대로 충격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 웃으며 헤어진 소꿉친구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비록 정말로 행복이 넘쳐흘러 웃은 게 아니라 어떻게든 버텨내려는 억지웃음이더라도.

 

그런데 대체 어째서?

 

싸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뼈에 사무치도록 알고야 말았다.

몸에 있는 모든 피가 차갑게 식어내리는 기분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만일 그때 침대에 누워있던 게 아니었더라면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을지도 몰랐다.

 

너무나도 끔찍했다.

가슴속을 칼로 마구 헤집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가장 끔찍한 것은 백이란과 박선정이 몸을 겹치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조금씩 흥분감에 몸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지는 그녀 자신이었다.

 

이 역겨운 자신의 감정에 강문희는 마구 발버둥쳤다.

 

살면서 자기 스스로에게 그토록 저항했던 것은 아마도 처음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녀는 패배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흐느끼면서 자신의 음부를 문질러대는 최악의 인간이었다.

 

심장의 고동이 너무 커져서 몸 안쪽에서부터 그녀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인생 최대이자 최악의 쾌감과 함께 찾아온 절정을 맞이하고서

강문희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마음속으로 사죄의 말을 연신 토해냈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를 위로해주던 박선정에게 사과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그녀의 연인만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이 끔찍한 욕망 속에서 구해주세요.

 

그저 사랑하는 그에게 공허히 매달리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3.


『게임 11일차 결과』


[규칙]

1.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2. 백이란과의 성행위를 금한다.

3. 12시부터 13시까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함께할 것.

4. 홀에서는 처음에 지급된 복장을 완벽히 착용해야 한다.

5. 스크린은 손으로만 터치해야 된다.

6. 규칙 제정 시간에 책상 위에 앉는 행위를 금한다.

7. 욕실을 사용할 때는 사용중 팻말을 걸어둘 것.

8. 매일 한 번은 말을 해야 한다.


[탈락자]

- 성란

- 백은하

- 박루미




쓰다보니 소꿉친구(+여동생) 3인방 시점이 전부 들어간 편.

전반적으로 멘탈이 튼튼하지만 한 번 찔리면 치명타가 들어가는 부위가 있는 친구들.


그리고 표지 쪽은 물어봤더니 의견이 갈리는 거 같은데

기왕 만들어둔 거 써볼까 싶어서 이쪽으로 바꿔봄.